# 64
64. 시작 (4)
“그럼 당사자 말은 들어 봐야지. 모르달 데려와. 토토도.”
도현은 토 달지 않고 빠르게 토토와 모르달을 데려왔다.
품에 안긴 토토와 쇠사슬에 꽁꽁 묶여 끌려온 모르달을 보자마자 다들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것도 잠시, 그 잠깐 사이에 쌩쌩해진 토토가 엄마를 보자마자 풀쩍 뛰어 엄마에게 안겼다.
“할무니! 할무니!”
“아구구, 우리 토토!”
함박웃음을 지으며 토토를 안아 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현은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을 보고 지은 적 없던, 저런 표정이라니.
그것도 자신의 펫을 보고 말이다.
괜스레 토토에게까지 질투를 느끼는 자신을 인지한 도현은 입 안이 썼다.
입을 쩝 다시는데 손에 든 쇠사슬이 꿈틀거렸다.
“도련님! 너무하심다요! 화산에! 용암에 넣어 버리시면 어떡함니까욧! 소인 타 죽는 줄 알았슴다욧!”
‘이놈 왜 이래?’
도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평소 눈치 보며 튀기 바쁜 놈이 오늘따라 유난히 바락바락 대든다.
그 이유는?
흘깃흘깃 모르달의 눈이 향하는 곳을 보니 역시나 엄마다.
“아하.”
도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가 얼떨떨한 얼굴로 도현에게 물었다.
“현아, 무슨 말이니? 화산? 용암에 넣어……?”
“그렇슴다요, 마님!”
모르달이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꿈틀대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만 보면 도현이 제일 나쁜 주인 같았다.
하지만 도현은 그런 시선에 꿈쩍하지 않았다.
“차 타고 오는 동안 좀 잤는데, 그사이 토토랑 모르달이 술을 먹었더라고.”
“수울?”
엄마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양주 다섯 병.”
도현이 손가락까지 쫙 펴며 말하자,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엄마는 입꼬리의 웃음기를 지우고 품에 안긴 토토를 빤히 쳐다봤다. 토토는 뻔뻔하게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무니 술? 모야?”
도현은 충격과 동시에 기가 찼다.
저 뻔뻔함이라니!
저 가증스러운 연기의 스승, 도현은 발아래 모르달을 지그시 바라봤다.
‘같이 들러붙어 있더니 아주 제대로 물이 들었구만.’
도현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했다. 모르달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바닥에서 뗀 발이 모르달을 향할 때쯤,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토토, 토토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 먹으면 아야 해요! 지지, 지지 한 거야. 그리고 모르달? 형이 되어서 모범을 보여야지, 같이 끌어들이면 어떻게 하니?”
도현의 표정이 묘했다.
‘아야? 지지?’
그 표현이 웃기면서도 어쩌면 토토가 이해하기엔 직관적일지도 몰랐다.
‘집이었으면 이미 맴매로 다스리고도 남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도현은 엄마를 지켜봤다. 자상하지만 엄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엄마는 둘에 맞춘 벌을 내렸다.
금주는 당연했다.
토토는 한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 읽기, 쓰기, 말하기로 어떻게 보면 가벼운 벌이지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토토는 좀이 쑤셔 난리가 날 거다.
모르달은 본인의 의사 관계없이 매니저 수업에 들어갔다.
모레, 워프 일정이 잡혔으니 오늘 안에 엄마가 내놓은 선까지는 이수해야 퇴근이란 말에 모르달은 혼이 나가 버렸다.
특히 모르달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차 부부의 말에 엄마가 더 적극적으로 변해 선임 매니저까지 붙였다.
손도 안 대고 코 푼 도현은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듯 시원하게 웃었다.
슬슬 이야기가 정리되고 일어나려 할 때쯤, 주 차장이 드물게 뜸 들이며 말을 꺼냈다.
“헌터 채근석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도현의 헌터 데뷔 무대였던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로 세계는 아직도 떠들썩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도현만큼 뜨거운 감자로 지목된 건 채근석이었다.
헌터들이 워프 헌팅 때 필수로 착용하는 아이템, 헌터캠.
거기에 찍힌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채근석.
대외적으로나 헌터들 사이에서도 꽤 인정받던 그가 사실은 살인마였다니.
특히 5급 헌터와 헌터가 되지 않았더라도 헌터에 준하는 각성자들의 연이은 실종 사건에 각성자들은 자신의 급수를 알리는 걸 꺼리게 된 일화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인데, 그 원인이 채근석이었다는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2차 각성.
용종이라는 종족으로 2차 각성한 그가 보스 몬스터를 한순간에 찢어 버리는 모습은 범죄자라는 것도 잊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저런 헌터가 한둘이 아니라고 핏대를 세우며 헌터들의 범죄 이력 공개를 원하는 국민들로 국가와 대한 헌터 협회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헌터 공식 1위로 자리 잡은 차도식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으론 세상이 얼마나 현실에 안주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채근석이 보스 몬스터 체내의 워프핵을 삼키자 불안정해진 워프 탓에 영상이 끊기긴 했지만, 음성은 살아남아 도현의 등장까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최강 헌터의 무너짐과 동시에 희대 최악의 범죄자 탄생. 그리고 그 범죄자를 물리친 신생 헌터까지.
그때, 차도식과 하지현의 공식적인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다.
헌터 채근석은 사실 몬스터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뒤집힌 그날, 우연히 워프에 떨어진 채근석을 죽이고 그의 몸을 이용해 각성자인 척한 몬스터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웠다.
그 사실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불안감이 떠돌았다.
국가와 헌터 협회는 두 헌터의 말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채근석이 깨어난 뒤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반나절도 안 되어 깨어난 채근석은 병원에서 탈출했다.
그것도 헌터캠에 찍힌 몬스터의 모습을 하고서.
대한민국은 의도적으로 도현에 관한 뉴스와 기사를 도배했다.
최악의 범죄자가 사라진 소식도 당일 평 시간대 뉴스에서만 잠깐 언급되고 사라졌다.
그저 인터넷 기사만 떠도는 가운데, 네티즌들은 사라진 채근석을 보고 ‘빌런’이라 칭하며 그중의 왕이라 하여, ‘빌런킹’이라는 이명이 떠도는 상황이었다.
주 차장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사담인 만큼 가감 없이 말씀드리자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도련님입니다.”
함께 워프에 들어갔던 차도식이나 하지현은 채근석을 위협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
좁혀진 용의자 중 지목된 사람은 도현이었지만 이마저도 국민에게 엄청난 욕을 듣는 상황이었다.
너무 어이없는 말에 우대성이 기가 차서 물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그놈을 빼돌렸다는 개소리를 해 댄다고? 구출한 사람한테?”
대놓고 한 건 아니지만 입술만 중얼대는 게 욕이 틀림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도현은 무덤덤… 아니, 계속 졸고 있었다.
주 차장은 그런 도현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그쪽에서 내민 증거로는 도련님이 헌터 테스트를 하러 협회에 갔던 날 협회장에게 가한 ‘폭력’과 저를 인질로 21층까지 뛰어오르는 ‘부도덕한 행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식적 첫 헌팅이었던 스네일 안식처 근처에서 채근석 헌터와 만난 정황도 있고요.”
‘천잰데?’
눈을 반쯤 감고 있으면서도 귀는 열어 둔 도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틀린 원인과 과정을 들고 정답을 맞힌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저 묵묵히 있는 도현이 답답했던 임혜정이 물었다.
“아들, 어떻게 하고 싶어?”
그녀의 얼굴은 도현이 원하기라도 한다면 국가와 전쟁도 불사할 모습이었다.
하지만 도현은 현재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는 답을 내놓은 국가도 너무 웃겼다.
제브라드에 비하면 정말 애교 수준 아닌가.
대놓고 이빨을 들이밀 때. 그때 가서 뒤엎어도 될 문제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놔둬.”
모두가 탄식하는 가운데 드디어 잠이 깬 도현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정말 길고 긴 숙면 뒤 개운함이 몸을 감쌌다.
그 기분을 음미하던 도현 앞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봤던 알림이 다시 떴다.
띠링.
손실된 능력치가 1% 복구되었습니다.
현재 능력치: 85%
으음… 몇 시간 만에 다시 1%다.
일주일 만에 20%가 넘게 힘이 회복되었다.
크로아 워프에 다녀온 그날 저녁. 모르달의 레시피 검색으로 만들었던 크로아 탕을 먹은 뒤 계속 졸려 일주일 내내 잠만 잤다.
휴대폰도 토토에게 맡기고 밥도 뒤로한 채 오늘은 정말 나가야 한다는 닦달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긴 했지만,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죽은 듯 잠만 잤다.
그리고 아침에 확인했던 능력치는 84%쯤.
그제야 이게 크로아 탕 때문이 아닌, 골고타를 처치하고 흡수했던 격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회복되어서 좋기는 한데…….’
회복되어도 그만. 이대로 멈춰도 그만이라 생각했었지만, 신이란 것들 때문에 힘의 필요성을 새삼 느꼈다.
아무리 강한 도현이라 해도, 머릿수부터 밀리는 싸움은 장담할 수 없으니까.
정말 만에 하나 뭉쳐서 쳐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정말 안 내키지만, 만나는 봐야겠지.’
제브라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행동은 이상했다.
여태까지 물어볼 필요가 없어서 외면했지만, 골고타의 기억을 읽은 이상, 그녀의 입으로 말하는 진실을 들어야 할 때라 생각했다.
‘우선은 요리 학원에 갔다가.’
요리 학원에서 드디어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수업을 진행하는 쉐프의 인기가 너무 좋아 한 달은 걸린다더니, 일주일 만에 자리가 난 것이다.
‘오늘 가면 민혁이를 볼 수 있으려나?’
“아.”
갑자기 생각 하나가 떠오른 도현이 탄성을 내뱉었다.
시선들이 모이자, 도현은 주 차장에게 물었다.
“나도 팀 만들고 싶은데.”
뜬금없는 말에 모두가 놀랐지만 주 차장만큼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예, 도련님. 보통 한 팀은 5명으로 구성합니다. 현재 도련님은 토토 님과 모르달 님이 계시니 최소 2명. 최대 4명까지 팀을 짤 수 있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작게 고개를 살짝 숙이는 주 차장 뒤로 아빠가 물었다.
“아들아, 헬퍼라도 데려갈 생각이냐?”
‘헬퍼?’
처음 듣는 용어의 대답은 주 차장이 해 주었다.
“같이 헌팅을 하는 헌터가 아닌, 헌터의 편의를 위해 함께 가는 인력입니다. 집에 고용하는 사용인처럼요.”
‘오, 나쁘지 않은데?’
그런 편의성을 제공하기도 한다니. 세상이 헌터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주 차장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아, 팀을 이루신다면 접수를 해야 합니다. 이건 워프에 출발하기 3시간 전까지 협회에 보고해야 하고요.”
“아하.”
살짝 웃는 도현의 눈이 모르달을 향했다. 모르달은 퀭해진 얼굴로 몸을 떨었다.
정말 오늘 하루만큼은 속 시원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