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63화 (63/200)

# 63

63. 시작 (3)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현은 로이의 음성에 눈을 끔뻑 떴다. 그리고 적막한 실내에 이상함을 느꼈다.

한창 떠들고 있어야 할 둘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바닥을 보자마자 현실이 되었다.

잠든 토토와 널브러진 짐승 모르달.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자 코끝이 찡했다. 차 안이 온통 알코올 냄새로 가득했다.

“알코올……?”

벌떡 일어나려던 도현은 천장에 머리를 박고 다시 앉았다. 손으로 짚은 의자 위로는 과자 봉지와 술병이 나뒹굴었다.

기가 찼다.

“하… 이것들이 술을 먹어?”

손 옆, 술병의 라벨을 훑었다.

로열 살루트 38.

와인인 줄 알았더니 양주라고?

그 외에도 푸른 라벨의 조니워커, 투명한 용기의 잭다니엘, 25라 적힌 시바… 뭐까지.

도현은 머리가 아팠다.

그래, 한 백번 이해해 보면 술은 먹을 수 있다. 사람과는 다르니까.

“그래. 먹을 순 있지. 그런데…….”

“헤헤, 제브라드 니임♡ 더더 쓰다듬어 주떼요― 여기, 배도, 목… 우흐흐.”

열린 냉장고에 머리를 박고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는 모르달을 보고 있자 하니 차고 뭐고 간에 다 부숴 버릴 것 같았다.

“후…….”

하지만 첫 시승이 마지막 시승이 되면 안 된다.

손짓 한 번으로 차 실내를 정리한 도현은 토토를 안아 들고 모르달을 매장… 아니, 띄운 채 차에서 내렸다.

“어디다 파묻으면 잘 파묻었다고 소문날까.”

파묻어도, 버려도, 어떻게든 집으로 찾아올 놈이란 게 문제다.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에 무한한 생명력과 뒤지지 않는 회복력, 그리고 무식할 정도의 방어력까지.

지구 어디에 버려도 이놈을 곤란하게 만들 곳은 없었다.

이를 갈며 오랜만에 머리를 팽팽히 돌리던 도현은 품속의 토토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헤에, 압빠!”

까르륵 웃는 얼굴을 보니 차마 혼은 못 내고 같이 웃어 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든다.

‘이대로 데려가?’

귀찮음에 그러고 싶었지만, 토토와 짐승 모르달 놈을 기다릴 엄마가 풀풀 풍기는 술 냄새를 이해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등짝 한 대는 예약일 테지.

“음, 냠냠, 토토 뚜빼기 잘 만드러! 끼핫!”

잠꼬대까지 하며 자는 토토를 보다 생각이 반짝였다.

“농장이 있었지.”

엄마의 스네일 화장품 때문에 들어간 일 이후로 가 본 적 없었던 농장이 오늘따라 무척 반가웠다.

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농장에 들어가자마자 토토와 짐승 모르달 놈을 던져 두고 나오려 했던 도현은 완전히 달라진 농장 모습에 멍하니 둘러봤다.

한쪽은 아마존 밀림을 연상케 하는 하리오카 숲과 그 반대편엔 언제 솟아났는지 모를 바위산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두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는 처음 보는 타워 3개가 보였다.

“숲이야 그렇다 치고, 화산… 아, 크로아 서식지? 그럼 저 타워는?”

바위를 뛰어다니며 잡초를 씹어 먹는 크로아를 뒤로하고 타워를 살폈다.

하나는 익숙한 아파트의 모습이었고, 나머지 둘은 흔한 창문조차 없는 직사각형 덩어리.

‘창고인가?’

엄마가 스네일을 가져간다 했으니, 뭔가 필요해서 지은 것 같았다.

거기다 주변으로 만들어진 아스팔트 도로.

이런 언밸런스함은 대체 뭔지.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 있으니 귀에 익숙한 알림음이 들렸다.

다양한 개발로 농장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농장이 도현읍으로 성장합니다!

주민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주민을 받아 보세요!

탐험을 통해 땅을 넓힐 수 있습니다!

‘농장: 무럭무럭 성장’이 하향됩니다.

(성장 속도 10배 증가→성장 속도 5배 증가)

‘농장: 타임아웃(현실 시간 흐름 정지)’이 ‘농장: 느린 하루’로 변경됩니다.

농장: 느린 하루

-농장의 시간이 5배 느리게 흐릅니다.(농장 5일→현실 1일)

“…….”

도현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제브라드가 슬쩍 물어보던 심시티가 떠올랐다.

당장에라도 뒤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여긴 토토와 모르달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된 일. 선택권은 없었다.

도현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어쨌든 지금 할 일이 더 중요했다.

‘토토는 저 아파트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 이놈은…….’

농장 이곳저곳을 살피던 도현의 눈에 화산이 들어왔다.

***

도현은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늦었네요.”

한창 브리핑 중이던 주 팀장과 그 앞으로 앉은 차도식, 하지현 부부,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주 팀장의 눈인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인사가 날아왔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어서 와.”

“어서 오십시오, 처남님!”

“아들아, 오랜만이다.”

“아들, 토토랑 모르달은?”

도현은 대답 없이 앞으로 갔다.

30석쯤 되는 큰 회의실이라 빈자리는 차고 넘쳤지만 그렇다고 멀찍이 다른 자리에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현의 눈이 아빠 옆자리로 향했다. 아빠는 그 시선을 느끼고서 눈짓으로 엄마를 가리켰다.

거기엔 두 사람이 뜨겁게 도현을 보고 있었다.

왼쪽에는 차도식, 오른쪽에는 엄마가. 그리고 그 사이의 빈자리.

“…….”

도현은 그 빈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으흠, 그럼 이어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용한 회의실에 주 팀장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서 곧 2주기를 맞이할 워프는 총 215개로, 5등급 129개. 4등급 74개, 3등급 12개입니다.”

프로젝트 빔이 비추는 컴퓨터 화면에는 대한민국 지도가 떠 있었다.

지도 위에는 지방마다 워프가 등급별로 떴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저번 주, 헌팅 이후로 일주일이나 쉬었으니 다시 헌팅 할 워프를 고르는 자리 같았다.

하지만 이런 따분한 자리를 싫어하는 도현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주 팀장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솔솔 감기는 눈꺼풀과 단잠이 자신을 끌어당겼다.

도현이 마음 놓고 잠들려는 차에 엄마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토토랑 모르달은?”

모기 목소리로 묻는 말에 눈이 찡그려졌다.

역시 포기 못 하는 엄마. 대답 안 하면 대답할 때까지 사람을 괴롭힐 걸 알기에, 도현은 짧고 굵게 말했다.

“자.”

“자?”

차마 술 먹고 뻗었다고는 말 못 했다.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미심쩍은 시선이 느리게 주 팀장에게 향했다.

이대로 넘어가면 제일 좋겠는데.

그런 생각 사이로 주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면이 바뀌고 꽉꽉 들어찬 표가 나타났다.

워프의 등급과 2주기까지 남은 시일, 중요도, 위험도를 가지고 순위를 매긴 형태였다.

“우선 급한 워프 수는 30개입니다. 이 중에서도 10위까지가 1단계 위급 수준이고 11위부터 14위까지는 3단계 경보 수준, 그리고 15위부터 30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는 관심 수준입니다.”

조용히 보고 있던 아빠가 물었다.

“협회장님의 의견은?”

“평소와 같습니다. 11위부터 공식 입찰로 처리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 건으로 적극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주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넷은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괜히 움찔 깬 도현이 눈을 빠끔 떠 양옆을 살폈다.

표정들은 나쁘지 않은데 분위기가 가라앉은 게 영 이상하다.

잠으로 늘어진 몸 때문인지 삐딱하게 돌아가는 고개에 앞의 표를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5등급 워프는 왜 없지.”

시선들이 조용히 도현에게 몰렸다.

꾸중이나 잔소리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하나같이 씁쓸했다.

주 팀장이 말했다.

“잘 짚어 주셨습니다, 도련님. 하지만 인력의 한계가 있어, 상위 등급의 워프를 우선으로 정리한 뒤 하위 등급 워프로 넘어갈 계획입니다.”

현재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모두가 말없이 수긍하는 가운데 도현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물었다.

“그런데 2주기 뒤에 어떻게 되는 건데요? 3주기가 있나?”

아빠가 한탄했다.

“이런 무늬만 헌터를 봤나. 아들아, 자격증만 따고 공부는 안 할 거냐?”

엄마도 가볍게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아들, 주기란 게 몇 년마다 일어나는지는 아니?”

“음…….”

“1주기는 워프가 나타나고 2년, 2주기는 3년 뒤인 5년이야. 세상이 바뀐 지 몇 년이 흘렀니?”

“5년……?”

도현은 그제야 왜 3주기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는지 깨달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차도식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올해가 제일 바쁩니다. 헌터는 부족한데, 워프들이 서로 생일 파티를 하겠다며 난리인 거죠. 하핫.”

‘개그……?’

차도식 혼자 웃는 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한 농담 같은데 더 이상해졌다.

다시 헛기침을 한 주 팀장이 화면을 돌렸다.

“차 헌터님 말씀대로 올해 말까지 스케줄이 꽉 찬 상태입니다. 이것도 정리 수준으로, 워프 파괴 계획이 생기면 일은 2배로 늘어나죠.”

도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찌롱이를 봤다. 작년에 너무 바빠 잠깐도 볼 수 없었던 그 일이 올해도 이어진다니.

측은한 시선으로 둘을 보는데, 마주하는 둘은 싱글 웃는다.

도현의 시선이 의아하게 변하는 가운데, 엄마를 넘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봤더니 제 자랑이 하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걱정 마라, 아들아. 모두가 네가 있어 든든하다!”

도현의 얼굴이 멍해졌다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렇다. 자신도 이제 헌터였다.

“젠장!”

주 팀장의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차도식과 하지현의 소식이 이어졌다.

3년 동안 이어 온 파티를 오늘부로 해체하고 각 팀을 꾸리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주 팀장도 현장을 뛰던 매니저에서 파트장. 즉 차장으로 진급하게 됐단다.

차도식과 하지현은 주 차장이 이끄는 매니저 팀의 팀장들이 맡는다고.

거기까지 들은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난 필요 없어.”

말을 듣자마자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반대했다.

주 차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대외적인 부분을 처리해 줄 매니저는 꼭 필요합니다.”

매니저가 없다면 몬스터 매입 부분부터 회사와 협회에 보고, 조율 등의 자잘한 업무를 도현이 해야 했다.

게으른 그가 하지 않을 건 뻔한 일이었다.

주 차장이 그 부분을 콕 짚자, 도현은 당연하게 대답했다.

“모르달 시키면 돼.”

“얘,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

엄마가 모두를 대표해서 한마디 했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니 글쎄.

마치 내 자식 고생시키지 말라는 뉘앙스다.

‘내가 기필코 굴려 주지.’

많은 감정이 담긴 다짐을 한 도현은 농장… 아무튼, 화산 깊숙이 처박아 버린 모르달을 떠올랐다.

정신 차리자마자 뛰쳐나와 꽥꽥 소릴 질러 대겠지.

그러니까 매니저로 굴려 버리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다.

도현은 엄마의 굴림으로 주 차장과 함께 워프에 갔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사체 매입이라는 단순 반복 작업. 그리고 뭣 모르던 주 차장의 비아냥까지.

헌팅을 나서면 기본이 6, 700마리부터 시작했다. 등급이 높은 워프에 간다면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할 거다.

그 개고생을 모르달이 겪는다고 생각하니 치솟았던 짜증이 한껏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워프를 거덜 내고 만다.’

곧 업무에 압사당할 모르달을 생각하며 고소하게 웃던 도현에게 사심 가득한 엄마의 명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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