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60화 (60/200)

# 60

60. 도를 아십니까? (5)

에놀드가 떠돌이 포교를 하던 때.

그날은 정말 최악이었다.

몬스터와 추위로 쓰러지기 직전에 탐스러운 빛을 내는 나무에 홀려 걸었고, 겨우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가구도 채 안 되는 마을이었지만 촌장은 흔쾌히 잘 곳을 제공해 주었고, 촌장의 아내는 처음 먹어 보는 맛의 스튜까지 제공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옛날이야기 하듯 말을 꺼냈다.

‘겨울에는 먹을 게 없으니 몬스터들도 흉포해지죠. 이 시기에는 사냥꾼도 집에 처박혀 안 나온답니다. 호호. 예전에도 이렇게 추웠던 겨울이었어요. 그해는 정말 흉작이었거든요. 뜯어 먹을 나무껍질도 없을 정도였죠. 먹을 게 없으니 몬스터들이 마을까지 내려왔어요.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나타났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열의를 태우며 다시 말을 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몬스터를 없애 주시고는 마을 중심에 엄청 큰 나무를 심어 주셨어요.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세상에! 겨울에만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지 않겠어요? 거기다 추우면 추울수록 열매의 맛도 좋아지죠.’

그러고서는 주먹만 한 노란색 동그란 열매를 들어 보여 줬다.

‘카오카오 열매랍니다. 마을 밖으로 가져가면 바로 썩어 버리지만, 마을 안에서는 무엇을 해 먹어도 다 맛있어요. 증조할머니가 너무 감사해서 아끼고 아껴 뒀던 감자와 고구마 종자를 삶아 드렸는데… 고향 맛이라며 너무 맛있게 잘 드셨나 봐요. 그런데 드시면서 중얼거리시는데, 애새끼 하나 보기 드럽게 힘들다면서… 유부남이셨을까요?’

뒷이야기는 없었지만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느낌이었다.

1년 후 겨울, 다른 지역의 눈에 파묻힌 마을에 갔을 때, 꼬마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조잘조잘 떠들었다.

‘60년 전에 갑자기 겨울이 시작되었대요. 땔감으로 쓸 나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너무 추워서 얼어 죽지 싶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오셨대요. 그리고 대뜸 마을 한복판에 벌러덩 누워 잤대요! 키키킥, 말이 안 되는 소리긴 한데,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기지 않아요? 그 추위에 눈밭에서 드러누워 자다니. 근데 진짜 신기한 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대요! 그냥 그분이 하루 자고 갔을 뿐인데요. 그분은 마법사였을까요? 아, 더 신기한 건 10년 뒤에 마을 뒷산에서 드래곤의 레어가 발견됐어요! 텅 비긴 했지만…….’

이렇게 상상이 안 될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몇 주를 걸어 도착한 또 다른 마을.

봄이지만 늘 후끈한 불을 뿜는 도시에 갔을 때 넉살 좋은 대장장이가 익숙하다는 듯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가 왜 철과 불의 나라인지 아쇼? 100년 전의 일인데, 갑자기 땅이 뜨거워지는 거야. 그때부터 3년 동안 가뭄이 이어졌지. 그때만 해도 선선하기로 유명했던 곳인데, 타서 죽을 것 같은 더위가 몰려왔어! 영지민 절반이 말라 죽었지. 설상가상으로 무능력한 영주까지 도망가 버렸어. 모두가 곧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분이 오신 거야!’

갑작스럽게 영주 성을 무너뜨렸는데 거기서 하늘까지 치솟는 불기둥이 생겨났단다.

무엇으로도 꺼트릴 수 없는 불. 엄청난 열기를 뿜는 불은 아직도 철이 종잇장처럼 순식간에 녹아 버릴 정도로 고열을 품고 있다 했다.

그리고 불기둥의 여파로 영지를 두른 산맥 한 곳이 무너졌는데, 그곳에서 광맥이 발견되었다.

파도, 파도 메마르지 않는 철광이.

‘우리에게는 신이시지. 허허, 그분이 떠나시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내려온다네.’

-이제 잠 좀 자겠네. 더워서 잘 수가 있어야지.

우스갯소리 같지만 유명한 전설이란다.

제일 심각했던 건 이 모든 이야기는 신교에서 절대 들을 수도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백작령쯤의 도서관에서 철저한 악으로 기록된 ‘악의 연대기’에만 있을 뿐.

에놀드가 이런 소문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포교로 치장한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그가 들은 이야기는 수십, 수백 가지였다.

그 대부분이 사소한 이유에서 몸을 움직인 것들이라 믿거나 말거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에놀드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야기 속 그의 힘. 어쩌면 그 힘은 왕국을 넘어 제국까지 넘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약 630년 전, 노르세아스 제국의 황제의 검인 트론처럼.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새 삶을 얻은 사람들의 믿음은 신교의 신앙보다 두텁고 높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귀찮아서.

그 한마디는 엄청난 의미가 더해지고 미화되었다.

영주가 명령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그렇게 미화된 의미는 제브라드 구석진 외딴곳까지 퍼졌고

그렇게 우도현교가 탄생했다.

존경과 흠모와 강인한 힘까지 갖춘, 세상에 존재하는 신.

평민들로 시작한 우도현교는 그가 갑자기 제브라드를 뒤엎으며 폭발적으로 커졌다.

악독한 귀족들을 처리하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용병이나 마법사, 기사 같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내렸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까지 감화되자 제국도 신교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도현은 소리 소문 없이 종적을 감추었고 신교는 신탁을 공표했다.

[우도현은 제브라드에서 영원히 추방되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그를 제브라드의 뜻에 따라 ‘악’으로 명한다. 악을 따르는 악의 추종자들은 신교에서 처단하리라.]

절묘한 타이밍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도현교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최근에 갑자기 다시 나타난 우도현교 때문에 신교가 발칵 뒤집혔지.’

제브라드의 첫 제국의 시초, 노르세아스.

400년 전 몰락하고 허울뿐인 백작 직위로, 현재는 몬스터를 막는 인간 방어벽이 된 가문이었다.

최근 그 가문에서 영애인 헤미오르 노르세아스가 소드마스터로 급격하게 성장하며, 우도현교를 언급했다.

이후 헤나지그 카 오르센도 우도현교의 명예 신도라고 자신을 밝혔고, 신교에서는 그 둘에게 압박을 넣기 시작했다.

그때, 페드릭 카 블루울프까지 나섰다.

그는 용병왕으로 추대되었던 이였지만, 그 자리를 무르고 요리사가 되었다.

더 경악할 일은 그가 드래곤의 맹약자라는 것. 그 드래곤이 요리 스승이라는 헛소문도 돌고 있긴 했다.

이쯤 되자 신교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신교의 명예 주교인 오르조 백작의 추악한 본모습을 들춘 사건.’

백작의 오른팔이라 하는 하이든 경이 폭로했다.

그는 30에 가까운 이종족을 탈출시켰다.

백작의 기사 300명이 하이든 경을 바짝 쫓았지만, 소드마스터의 무위를 보이며 되레 박살 내 버렸단다.

물론 30명의 이종족도 하이든 경을 도왔다. 그 모습을 얼떨결에 본 사람들의 말론 땅과 하늘이 진노한 줄 알았다고.

그들은 곧장 노르세아스 가문으로 향했고 몸을 의탁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이든 경은 이종족과 친구가 되었고, 특히 30명 중 엘프의 여왕인 하이엘프의 반려가 되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

도현의 흔적을 되짚던 에놀드는 몸을 떨었다.

한 명만 있어도 나라가 100년은 유지된다는 소드마스터만 셋.

친구가 된 이종족만 해도 왕국 하나 몰락시키는 데 7일이면 충분했다.

거기다 8서클 마스터인 헤나지그까지 더해져 제국의 병력과도 맞먹는 전력이 되었다.

‘미쳤군, 미쳤어.’

에놀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브라드에서 추방되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추방한 제브라드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아니다. 이 사람을 겪은 시간은 짧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인간이다.’

귀찮다는 말도 사실일 거고, 잠을 못 잤다는 말도 사실일 거다.

단지 그 행위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됐을 뿐이다.

에놀드의 직감은 정확했다.

그러자 의문이 생겼다.

‘왜 제대로 된 교단이 없는 걸까.’

제대로 된 힘을 가지려면 교단을 만듦과 동시에 함께 알려야 했다.

제국이 무서워서?

신교가 무서워서?

‘아니, 모두가 그럴 정신이 없는 거야.’

그리고 깨달았다.

그 일에 딱 맞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푸하하핫!”

결론을 내린 에놀드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어 버렸다.

***

“끄윽!”

모르달은 막 음식에서 손을 떼며 빵빵해진 배를 짧은 앞발로 두들겼다.

정신없이 먹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생각난 레시피가 이렇게 대박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조금 빼 뒀다가 제브라드 님께 드려야겠슴다. 후후.’

예전처럼 화사한 웃음을 지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겠지?

망상으로 헤픈 웃음을 흘리던 모르달은 순간 맞은편의 사제 아닌 사제가 터트리는 웃음에 깜짝 놀라 버렸다.

“푸하하핫!”

“크헉, 켈륵, 미쳤… 켈륵, 슴까, 켈륵! 요?!”

사제 아닌 사제에게 핏발이 선 눈을 부라렸지만, 천장을 보며 실실 웃어 대기만 했다. 완벽한 무시였다.

‘저런 싹수없는 사제 아닌 사제가 어디 있슴까욧!’

이를 빠득 갈던 모르달은 이어진 그의 말에 사고가 정지해 버렸다.

“교단을 설립할 거다.”

도현은 채소 쌈을 우물거리며 에놀드를 보고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어.”

쌈을 열심히 씹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자.

“알고 있을 텐데? 신도들이 워낙 잘나셔야 말이지.”

참지 못한 모르달이 빽 소리 질렀다.

“무슨 사제가 그런 저급한 말을 씀까욧!”

도현은 둘을 보고 킥킥 웃었다.

몇 번 더 씹어 쌈을 삼킨 도현이 말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만든 건 아닌데, 하겠다면 말리진 않아. 좀 귀찮…….”

“귀찮아서겠지.”

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었다.

“뭘 좀 아는데?”

“잘 알지.”

둘은 비슷한 웃음을 입에 걸쳤다.

그 모습에 뿔난 모르달이 씩씩대며 벌떡 일어났다.

“저, 저! 도련님께 반말이라니! 거기다 교오오단 설리이입?! 제브라드 님께서 배신자를 가만두실 줄 암까욧!”

“어, 신님이 내 멋대로 살아도 된대.”

“예―에?!”

턱이 떨어질 듯 쩍 벌어진 모르달을 보고 두 사람은 약속한 듯 웃어 댔다.

저녁 시간이 끝난 건 그로부터 2시간이 흘렀을 때쯤이었다.

도현은 자잘한 물품부터 먹을 것까지 넣은 밋밋한 팔찌를 에놀드에게 던졌다.

“뭔데?”

“초보자 여행 세트.”

모르달이 보기엔 웃음 포인트라고는 전혀 없음에도 둘이 다시 깔깔 웃어 대자 괜히 기분이 상해 끼어들었다.

“사제 아닌 사제 놈, 다 먹었음 돈 내고 가심쑈!”

“모르달.”

심기 불편한 도현의 눈초리에 모르달의 목이 거북이처럼 움츠렸지만, 기세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에놀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돈? 밥값?”

“그렇슴다! 먹었음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님까요?”

모르달이 버럭 소리 질렀다.

에놀드는 빙글 웃더니 도현을 보고 말했다.

“그,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교리 같은 거 어때?”

먹는 내내 도박이니, 등 처먹고 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탓에 도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정상적인 교리가 나올 것 같진 않은데.”

“재미는 있을 거야.”

“마음대로 해.”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나의 신이여.”

과장된 인사였지만, 도현은 그게 왠지 조금 슬퍼 보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들어가는 에놀드의 뒷모습을 보고 도현이 덧붙였다.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이오르에게 가 봐.”

순간 에놀드의 눈이 커졌다가 웃음을 지었다

그때 끼어들 타이밍만 노리던 모르달은 결국 소리를 꽥 질렀다.

“이… 이……! 돈 내라고 안 했슴까욧! 도둑놈! 사제 놈!”

그런 모르달을 놀리듯 어깨 너머 손바닥을 대충 흔드는 에놀드의 모습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달칵.

에놀드 아드노타

25/남

제브라드교 포교 사제(사망)→우도현교 대신관(몽크/교리 설파)

능력치(상세 보기+)

특이 사항

1. 우도현교의 두 번째 대신관.

2. 우도현교의 교리를 창시, 설파에 앞장섭니다.

3. 주먹으로 마스터 경지에 오릅니다. 그의 주먹은 산도, 바다도 가를 수 있습니다.

모르달은 에놀드가 가자마자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도련님은 저딴 사제가 뭐가 좋다고 웃어 댐까요?! 생긴 것도 여인처럼 반반하게 생긴 게, 도련님께 꼬리나 치고! 제브라드 님은 또 왜 저딴 사제를 살려 주셨는지 모르겠슴… 꽤엑!”

구시렁거리는 모르달을 발로 뻥 차 버린 도현은 에놀드와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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