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59화 (59/200)

# 59

59. 도를 아십니까? (4)

에놀드는 창밖의 테이블에 털썩 앉는 도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씩 웃으며 자신 옆자리를 향해 턱짓하는 얼굴이 시원시원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열린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여기 앉아.”

뚜벅뚜벅 걸어와 자연스럽게 도현 옆에 털썩 앉은 에놀드는 음식이 즐비한 식탁에 한 번 놀라고, 맞은편에 앉은 모르달을 보고 또 놀랐다.

“제브라드의 심부름꾼……?”

그저 전설로만 내려오는 신성한 동물. 거대 흰족제비족을 실제로 본 것이다.

두 볼이 터질 듯 식사 중인 모습은 의외였지만 말이다.

모르달도 에놀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입이 터질 것 같은 수육 쌈을 우걱우걱 씹어 꿀떡 삼키고서 소리쳤다.

“신교 사제님 아님까욧!? 여긴 어떻게 왔슴까?”

모르달의 눈이 에놀드에게서 도현으로 옮겨졌다.

“쌈 가지러 갔더니 왔던데.”

“아하, 방문자… 근데 여긴 어쩐 일― 엥? 신성력 어데 갔슴까요?”

모르달과 에놀드는 신기한 듯 서로를 살폈다.

그러다 모르달의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버렸다.

“사람 잘못 봤어. 난 사제가 아니야.”

“옷이나 다른 걸 입고 그러심쑈.”

콧방귀를 팽 뀐 모르달은 아무렇지 않게 제 머리만 한 쌈을 하나 싸더니 와작와작 베어 먹기 시작했다.

에놀드를 제외한 모두가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무시당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가슴께까지 오는 담을 넘어 펼쳐진 생소한 풍경에 모르달의 빈정거림은 벌써 잊어버린 지 옛날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끌리듯 담 가까이 다가갔다.

밖이라 생각했던 이곳은 건물의 최상층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담을 넘어 다양한 높이의 건물들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생소한 형태의 세상. 삭막함만 가득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역시나 다른 차원이구나.’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달라진 공기에 설마 했지만, 그게 사실일 줄은…….

이 마을, 저 마을 들르며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괴짜 요리사 이오르가 정말 특이한 요리를 개발했다고.

‘라면이라는 건데, 이게 이 세상 요리가 아니래! 다른 차원 요리라던데?’

‘예끼, 이 사람아! 믿을 게 없어서 그 정신 나간 요리사 말을 믿어?’

우스갯소리로 치부됐던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에 더 소름이 돋았다.

‘제브라드시여, 왜 이런 곳에 저를 보내셨습니까?’

덧없는 물음이 불어오는 미적지근한 바람에 흩어졌다.

에놀드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25년 한평생 몸을 채웠던 신성력은 꿈처럼 사라졌고, 교리에 따라 절제의 삶을 산 몸뚱이만 남았다.

그조차 삐쩍 말라 허드렛일 하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죽음뿐이겠지.’

아니, 다시 돌아갈 수나 있을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고향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그는 공허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 앞에 불쑥 쌈 하나가 나타났다.

도현이었다.

“먹어 봐.”

얼떨떨하게 받아 든 에놀드는 다시 식사에 열중한 도현과 두 동물을 보다 자신의 손에 올려진 쌈을 슬쩍 풀어 봤다.

싱그러운 채소의 잎사귀 안에 두툼한 고기 한 점이 보였다. 색이 맑은 것이, 굽거나 볶은 게 아닌 삶거나 쪄 낸 형태였다.

이런 음식이라면 교리에 어긋나지 않은…….

‘파면당한 사제 주제에 무슨 교리를 찾는지.’

무뚝뚝하게 닫혔던 일자 입에 다시 조소가 서렸다.

그 조소를 발견한 모르달이 테이블을 탕 치며 버럭 화를 냈다.

“지금 신성한 음식 앞에서 뭣 하는 짓임까요?!”

“신성? 음식이 신성하다고? ‘제브라드의 심부름꾼’이 고작 음식을?”

에놀드의 고저 없던 목소리가 점점 열기를 띠며 높아졌다. 경멸 어린 시선이 모르달의 맑은 눈과 부딪혔다.

어느 쪽이든 먼저 들고 일어나면 싸움으로 번질 타이밍이었다.

“모르달.”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모르달을 불렀다. 모르달은 도현의 눈치를 살폈다.

살짝 짜증이 배어 있지만 정말 화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더 떠벌렸다간 야단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르달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래도 이대로 입을 닫아 버리면 저 발칙한 신도가 자신을 우습게 보지 않겠는가.

모르달은 슬쩍 눈을 테이블로 흘기며 아닌 척 투덜댔다.

“……흥, 운 좋은 줄이나 아심쑈.”

몇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준비했던 에놀드는 거짓말처럼 기세가 꺾인 모르달을 보며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제브라드의 심부름꾼이 인간을 따른다고?’

생각조차 못 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젠 완전히 자신을 무시하고 식사에 열중하는 모르달이나, 주변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입에 집어넣기 바쁜 붉은 원숭이나.

그리고 자신에게 뜬금없이 식사를 권하는 이 사내까지.

스물다섯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하, 언제 이런 것에 신경 썼다고.’

그는 불량했다.

어렸을 때부터 특출 난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좀도둑이 되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신을 모시는 사제가 심심하면 술을 마시고 도박을 했으며, 매일 싸움박질은 기본이었다. 물론 그가 제브라드만큼 끔찍이 여긴 담배도 있었다.

도박 빚에 쫓겨 도망치고 몸싸움이 커져 도둑 무리에 죽을 뻔한 일상에서도 그는 사제의 소임을 다했다.

하루에 감자 하나로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치료해 주었고, 돼지 한 마리를 한 끼로 먹는 귀족들에게는 몇백 골드를 준다 한들 치료해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남았던 이유는 신녀나 신자에 필적하는 신성력 때문이었다.

불량 사제. 그게 그의 축복이자 저주의 이명이 된 것은 성인이 되고 옮겨 가게 된 대교단에서였다.

대신관이 기거하는 교단. 백작령에 자리한 만큼 많은 신도와 사제들이 신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특출 난 신성력에 에놀드는 단숨에 주교로 추대되었지만, 그 추대가 완전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데에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권력.

그것이 문제였다.

신교조차도 그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그는 포교 사제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기구한 운명의 한 아이를 구하려다 구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죽음의 문턱 앞에서 제브라드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지만…….

‘그녀는 아이를 살려 주었을까……?’

그 기억만 떠오르면 주체 못 할 분노와 함께 나약한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그런데도 살아 있다는 것이…….

기쁜 만큼 그녀가 원망스럽다.

막연한 마음에 시선을 돌리다 아직 손에 들린 음식에 눈이 갔다.

육식이 당연한 제브라드에서 등한시하는 채소. 그리고 그 채소 속에 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

벌어진 채소 사이로 곱게 놓인 고기가 채소의 물기에 윤이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데리고 피신하면서부터 제대로 뭔가 먹은 기억이 없었다.

갑자기 고기 특유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거기에 처음 맡아 보는 향신료가 고소한 향과 섞이더니 콧속을 휘저었다. 거북하다기보다 참을 수 없는 식욕이 훅 밀려왔다.

입 안에 침이 고이며 위가 크게 요동쳤다.

꾸르르르륵!

에놀드는 얼굴을 붉히며 손에 쥔 쌈을 다급하게 입 안에 욱여넣었다.

와삭와삭!

신선한 채소가 고기와 함께 씹혔다.

잘 먹지 않은 탓인지 채소의 비린 향이 느껴지려는 찰나 고기에서 진한 육즙이 터지며 고소하고 깔끔한 맛으로 바뀌어 버렸다.

‘세상에 이런 조화가 있었다고……?’

에놀드의 눈이 커졌다.

그런 그 앞에 다시 쌈이 나타났다.

도현이었다.

“이건 묵은지.”

이번에는 손으로 건네는 게 아닌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 중앙에 음식 한 덩어리가 보였다.

새빨간 소스가 잔뜩 묻었음에도 반들반들하니 윤이 나는 채소가 고기를 둘둘 말고 있었다.

멍하니 살피는 에놀드 손에 도현이 포크를 쥐여 줬다.

“찍어서 먹으면 돼.”

에놀드는 도현의 말에 홀린 듯 포크로 찍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

화염 덩어리를 입에 넣은 듯 알싸한 매운맛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뱉을까? 뱉어야 하나?’

갈등하는 가운데 시큼한 맛이 뱉으려는 본능의 멱살을 잡았다.

동시에 아삭거리며 고기가 함께 씹혔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육즙이 매운 채소를 흠뻑 적시자 입 안의 불이 소리 소문 없이 꺼졌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하면서도, 맵고 짰다.

그런데도 맛있다.

‘맛있어…….’

여태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고민과 상황을 잊을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꾸르륵, 꾸륵!

배가 더 요동쳤다. 때마침 테이블 위에 접시가 치워지고 거대한 그릇이 놓였다.

“이건 크로아 탕.”

역시 도현이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에놀드는 특이하게 생긴 숟가락을 쥐고 자신의 얼굴보다 큰 그릇의 크로아 탕을 퍼먹었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감질난 그는 양손으로 그릇째 쥐고 쩍 벌린 입에 들이부었다.

꿀꺽꿀꺽꿀꺽꿀꺽!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시원함과 고기에서 느꼈던 특유의 향이 육즙으로 가득한 국물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탕!

분명 엄청난 양이었음에도 에놀드가 내려놓은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진 후였다.

“후우우…….”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에놀드는 탈이 날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고 개운함이 몸을 맑게 만들었다.

뭔가 가득 찬 기분.

신성력이 몸을 채우고 있을 때와 비슷했다.

“……?!”

눈이 커진 에놀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신성력이 사라진 몸 곳곳을 채우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

세상이 밝고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공기 중의 아주 미세한 흐름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마나. 세상을 이루는 근간.

벅찬 마음과 함께 원한다면 모든 걸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절대적인 이 힘.

모든 게 ‘나’라는 존재를 위한 경배였다.

그리고 왜 사제들이 마나를 다룰 수 없는지 깨달았다.

애초 주체가 달랐다.

신을 받들어 모시는 사제들에겐 주체가 자신일 이유가 없으니까.

에놀드는 사소하면서도 확연한 차이를 깨닫자 울컥 눈물이 났다.

‘제브라드시여…….’

남은 삶을 자신을 위해 살라는 그 말이 이 마나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더 먹을래?”

감회에 젖었던 에놀드는 도현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귀찮음이 깔린 심드렁한 표정이 기분 나쁘기보단 묘하게 사람을 평온하게 만든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에놀드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놓고 고개를 끄덕이다 머리털이 삐죽 섰다.

너무나 편안했다. 마치 몇십 년은 알고 지낸 친우처럼 너무 편해서 그 자연스러움조차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일말의 위화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게 말이 될 리가… 정신 차려, 에놀드 아드노타!’

에놀드는 예전 경험을 끄집어내며 억지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넌 누구지?”

도현의 얼굴에 호의적인 웃음기가 서렸다.

“입에 맞으면 더 먹어.”

에놀드는 당황했다.

대놓고 말을 돌리는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도…….’

총을 머리에 겨눴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총이 무엇인지 모른다 쳐도 위협적인 분위기는 충분히 전해졌을 텐데도.

‘밥 먹을래? 라고 했었지.’

어이없을 정도의 뜬금없는 말이긴 했지만, 그 한마디에 자신이 움직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깨달음도 얻었다.

‘대체 이 사내는 누구지……?’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건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맞이하는 한 사내와 두 동물이라니.

한두 번이 아닌 듯 너무 익숙해 보였다.

‘아!’

신의 심부름꾼에게 고개가 홱 돌아갔다. 우걱우걱 채소를 씹어 대며 불만 가득한 눈이 자신을 노려봤다.

‘방문자라고 했었지.’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궁금증은 아니었다.

에놀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도현을 뚫을 기세로 훑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185 정도의 키. 뚜렷한 이목구비.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머리와 눈동자는 희귀한 색이다.

제브라드에는 없는 색이니까. 있다고 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하늘에서… 떨어져?’

순간 에놀드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신교에서는 ‘악’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절대 거론해선 안 될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도현?”

대답은 옆이 아닌 맞은편의 제브라드 심부름꾼에게서 튀어나왔다.

“우리 도련님 이름은 왜 부르심까요? 사제 아닌 사제님.”

에놀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뒤끝 있는 심부름꾼이나 평범해 보이는 도현의 모습은 신교에서 듣던 것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떠돌며 들었던 소문이 진실인 것 같은데.’

관심 없고, 귀찮아하고, 복잡한 거 싫어하는 괴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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