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56화 (56/200)

# 56

56. 도를 아십니까? (1)

쿠오오오오!

3m의 거대한 창. 그중 2/3를 차지하는 검은 용의 머리가 울부짖었다.

동시에 쩍 벌어진 용의 입에서 새카만 칼날이 솟아났다.

어떻게 보면 닳고 닳아 깨지고 부서진 날 같기도 했고, 선인장의 가시 같은 것이, 칼날이 불규칙적으로 돋아난 모습 같기도 했다.

어쨌든 무척이나 위협적인 창이었다.

골고타는 짐승의 본능 같은 거친 살기를 뿜어내는 창끝을 도현을 향해 겨누었다.

[찢고, 찢어, 네놈의 존재 자체를 지워 주마!]

위압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도현을 압박했다.

도현은 장엄한 말을 내뱉는 골고타를 보며 시겔로를 빙빙 돌렸다.

“요즘 신들은 주둥이로 싸우나 보지?”

[뭐… 뭐라?!]

쿠오오오오!

마룡창이 다시 울부짖었다. 마나가 창으로 모여들며 검은 날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골고타의 날개가 펄럭였다.

황금빛으로 물든 날개가 빛을 쏟아 냈다. 동시에 창끝, 붉은 점이 나타나며 점점 커져 갔다.

푸화아아악!

용종이 도현에게 처음 날렸던 화염 브레스였다.

다른 점이라면 이쪽은 정말 성인이 된 레드드래곤의 브레스와 맞먹는다는 걸까?

‘이거, 쳐 냈다간 워프가 즉사겠는데.’

생각과 달리 도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순간 시겔로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스파크가 브레스만큼 쭉 늘어났다.

쨔자자자작!

수천 마리의 검은 새 떼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화염과 충돌했다.

쿠아아아아아!

그 뒤를 이어.

[죽어라아아악!]

흉측한 창이 광폭한 기운을 뿜어내며 도현의 심장을 찔러 왔다. 도현은 마룡창을 피하지 않은 채 그저 시겔로를 손에서 놓았다.

콰드드득!

뼈째 씹어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흉흉한 기세를 뿜던 거대한 마룡창은 사라지고―

쿠―웅!

몸 오른쪽 절반을 잃은 골고타가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그의 왼쪽 가슴에 시겔로가 얌전히 꽂혀 있었다.

뻥긋뻥긋.

절반밖에 남지 않은 입이 움직이며 빛 부스러기를 흘려 댔다.

그 위로 확장된 동공은 그 무엇도 담지 못한 채 빠른 속도로 생명이 꺼져 가고 있었다.

도현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시겔로를 뽑았다.

발광하다 허무한 죽임을 당한 골고타는 이제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지?”

도현은 고민했다.

이대로 워프와 함께 버리기는 찜찜했다.

그렇다고 가지고 가자니 쓸데가 없었다.

‘천족처럼 성혈을 담을 수도 없고.’

재활용도 안 될 쓰레기일 뿐.

그런 고민을 해서일까, 뜬금없이 알람이 울렸다.

띠링!

특수 퀘스트 발생!

지구를 꿀꺽하려는 신을 찾아라!

신-골고타(마룡) 처치

신-????

신-????

신-????

신-????

신-????

신-????

보상: 미정

‘이건 또 뭐야?’

이젠 알림이 울릴 때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차피 하려고 했던 일이긴 하지만, 누구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은 떨칠 수 없다는 게 더 불쾌했다.

“아… 모르겠다.”

피곤하니까 만사가 귀찮았다.

골고타를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 버리고 가려는데, 그 의도를 알아챈 건지 얌전했던 시겔로가 몸을 뒤틀었다.

파드득, 파득!

도현은 반사적으로 시겔로를 뽑았다. 손잡이를 꽉 쥐고 모든 짜증을 담아 말했다.

“미친 새끼 아니랄까 봐. 그만 좀 처먹어라.”

도현이 뭐라든 시겔로의 검날에서 끈적한 검붉은 액체가 뚝뚝 흘렀다.

마치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려 대는 모습이었다.

치직! 파박!

도현이 놓아주지 않자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사정없이 스파크를 뿌려 대며 발버둥 쳤다.

“하, 이 새끼… 꺼져라, 꺼져.”

도현은 고개를 저으며 시겔로를 허공에 던졌다. 그가 놓자마자 골고타의 심장으로 달려들 것만 같았던 시겔로는 반항 없이 조용히 허공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후우…….”

한숨 돌린 도현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반쪽만 남은 골고타를 봤다.

생명이 꺼져 가던 그사이에도 눈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골고타가 생각난 도현은 혀를 찼다.

시겔로에게 몸을 뜯긴 직후 입을 뻥끗거리던 골고타.

‘어째서?’

제 죽음을 이해 못 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도현의 손에 자신이 죽은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신을 넘어서는 힘.

도현이 직접 움직였다면 팔이든 다리든 하나는 성치 못했을 거다.

그래서 달갑지 않은 시겔로까지 꺼냈다.

아픈 건 싫었으니까.

시겔로 덕에 상처 하나 없이 순식간에 전투를 끝낼 수 있었지만, 역시나 시겔로는 감당하기 쉬운 놈이 아니었다.

이 몸으로는.

‘이거… 이놈 때문에라도 빨리 힘을 되찾아야겠는데.’

시겔로는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는 놈이다. 거기에 무엇도 가리지 않는 잡식.

‘뭐, 물릴 정도 같은 것만 주면 뱉어 내긴 하지만.’

제브라드에서 깽판을 치던 시절, 너무 입을 고급으로 만들어 놓는 바람에 조금 곤란해졌다.

거기에 이번의 골고타 같은 신격을 가진 놈을 먹어 치웠으니…….

되도록 시겔로를 꺼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을 비웃듯 상황은 더 골치 아프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하, 어쨌든 정리하고 나가야지.”

도현이 골고타의 사체에 손을 댔을 때였다.

“어?”

사체가 환한 빛무리에 싸이더니 크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내 익숙한 사내가 잠자듯 평온한 얼굴로 누워 있었고.

퐁!

그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금빛 구슬이 도현의 몸에 들어갔다.

용들의 전설, 골고타의 격(신급)을 획득했습니다.

격이 한층 더 깊어집니다.

손실된 능력치가 10% 복구되었습니다.

현재 능력치: 64.6%(복구된 능력치 포함)

떨떠름한 시선이 시스템 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도현 앞으로 오제아가 날아와 다급하게 말했다.

“주인님, 다른 분들은 출구에 대피시켜 두었어요. 이제 이 차원도 한계인데, 어서… 어? 저 인간은……?”

“내가 옮길게. 가자.”

도현은 기절한 채근석을 어깨에 짊어졌다.

워프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헌터와 두 펫이 평소처럼 도현을 맞이했다.

하지만 차도식과 하지현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현은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의아해하던 둘은 도현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출구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렇게 도현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도현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엎어지듯 뻗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그사이 자연스럽게 TV를 켠 모르달이 눈을 반짝이며 채널을 돌렸다.

[갑자기 마나 자기장에서 엄청난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스파크는 워프 앞까지 이어지고 이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헌터 협회에서 감췄던 신생 3등급 헌터, 우도현 헌터입니다! 우 헌터는 테이머로…….]

도현은 TV에서 떠들어 대는 목소리가 누구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모르달이 끌고 왔던 여자 리포터.

예상대로 모르달은 TV에 나타난 자신을 보며 헤벌쭉해진 입에서 괴상한 웃음을 흘려 댔다.

“으헤헤, 도련님 보셨슴까욧?! 이 잘생긴 소인이 나왔슴다욧! 오오, 토토 님도 너무 귀엽게 잘 나왔슴다! 근데 도련님은 왜 얼굴을 찌푸리심… 흠, 이상하게 저게 더 잘생겨 보이심다. 역시 도련님이심다!”

TV에 눈이 박힌 채 신나게 떠들어 대는 모르달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저놈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날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다시 리포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앗! 방금 워프에서 헌터들이 나왔습니다! 헌터 수는 3명! 차도식 헌터와 하지현 헌터, 그리고 신생 헌터 우도현 헌터… 아니, 우도현 헌터에게 업힌 건 채근석 헌터 같습니다. 총 4명! 헌터들의 귀환입니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TV에 눈이 갔다.

거기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얼굴이 살짝 복잡해 보였지만, 그것조차 고생의 흔적으로 포장되어 리포터가 입이 마르도록 찬양해 댔다.

이어서 거대한 워프가 와작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붕괴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달 조각이라서 그런 걸까. 보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10초도 되지 않아 황무지가 된 달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화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화면 중앙에는 허겁지겁 뛰는 리포터가 보였다. 강미영 리포터였다.

처음 봤을 때도 잘 뛴다 싶었더니, 역시나 1등으로 도착했다.

불쑥 들이밀어진 마이크는 모르달 앞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마이크를 잡으려는 모르달에게 갑자기 뒤를 이어 나타난 마이크가 강미영 리포터의 마이크를 쳐 내고 도현 앞에 멈췄다.

이어서 피로와 짜증이 가득한 남자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우도현 헌터! KVS 헌터헌터 구종석 리포터입니다!]

리포터 구종석. 그가 나타나자 다른 리포터나 기자들의 목소리가 살짝 작아지면서 마이크들이 주춤했다.

거기에 힘을 얻은 건지 비릿한 미소를 지은 그는 더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우도현 헌터! 말 좀 해 주십쇼! 3급인데 어떻게 워프를 파괴한 겁니까? 1등급으로 변이… 커헉!]

득의양양하게 묻던 리포터의 면상을 모르달의 꼬리가 찰지게 때렸다.

찰싹!

영상으로 보기엔 그저 귀싸대기를 때리는 수준이었지만, 그 리포터는 뺨을 잡고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잡음처럼 ‘종석아!’라는 말이 작게 들려왔지만 모르달의 외침에 그 목소리도 파묻혔다.

[배신자는 죽음뿐임다! 어디서 마이크를 들이밈까요?! 흥, 강미영 리포터 마이크 주심쑈!]

모르달의 하얀 얼굴이 화면 가득 잡혔다.

도현은 쯧, 혀를 차며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뒤에 이어질 상황이 떠오르자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아서였다.

“압빠, 아포?”

풀쩍 등 위로 뛰어오른 토토가 알밤만 한 주먹으로 등을 토닥였다.

그 힘이 얼마나 될까 싶은데, 콩콩 토닥일 때마다 시원함에 절로 아저씨 소리가 나왔다.

‘아아, 녹는다 녹아.’

도현의 눈이 몽롱하게 흐려졌다.

이후로 TV에서 방영된 영상은 뒷담 같은 것이었다.

차도식과 하지현은 헌터 협회를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다며 말을 아꼈고, 주인공이 된 양 떠들어 대던 모르달은 그사이에 채근석을 앰뷸런스로 보내고 돌아온 도현에게 걷어차였다.

꽥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모르달 뒤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모르달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비척비척 일어나 도현에게 물었다.

“저녁 안 드실 검까요?”

“귀찮아.”

정말 귀찮았다. 오랜만에 힘을 과하게 쓴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었다.

“그럼 소인이 솜씨를 부려 보겠슴다욧! 삼계탕 어떻슴… 아니지, 워프에서 잡은 크로아. 고놈으로 크로아 탕은 어떻슴까요?”

차 부부를 구한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에 서식하는 머리 둘 달린 산양 몬스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산양이라.’

솔깃했다.

워프에 들어가자마자 천 단위로 몰려다니는 크로아를 신나게 처리했었다.

양고기는 처음이었으니까.

제브라드에서 양고기는… 정말 입에 댈 게 못 되었다.

워프라서 혹시나 괜찮지 않을까 싶어 잡아 대니, 그사이에 토토가 크로아를 몰래 농장으로 빼돌렸다.

결국 두 번째 몬스터가 농장에 입주했고, 풀어만 놨음에도 순식간에 수가 불기 시작했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도현은 야단도 치지 못했다.

이러다 농장이 몬스터로 개판 될 것 같았지만… 일단 전부 식량이란 생각을 하니 딱히 나쁠 것 같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양탕이라…….’

슬쩍 모르달을 보니 크로아 탕이라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열심히 검색하더니 신난 얼굴로 화면을 보여 줬다.

“이것 보심쑈! 크로아 탕! 레시피도 있슴다욧!”

꽤 유명한 워프라서인지 크로아로 만든 요리들이 참으로 다양했다.

게다가 몸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마나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고.

“응? 마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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