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55화 (55/200)

# 55

55. 큰 하마를 건들면……(5)

도현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거렸다.

손에서 힘이 빠지자 잽싸게 떨어진 골고타가 경계의 눈초리로 도현을 살폈다.

몬스터의 몸이라 그런지 회복이 빨랐다.

도현은 저걸 잡을까 말까 고민했다.

순간 많은 힘을 쓴 탓에 손발이 축축 처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좀 귀찮은 정도.

조금 더 기억을 파헤치고 싶지만 부족한 힘이 발목을 잡았다.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속도 매스꺼워 혀를 차자 골고타가 킬킬대며 웃었다.

“충격적이었나? 크크큭, 한낱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지. 그래도 버틴 정신력 하나만큼은 칭찬해 주마.”

‘저놈은 날 모르나?’

이상했다. 자신을 아는 놈이라면 저런 순박한 모습을 보일 게 아니라 대치할 것도 없이 빠르게 행동했어야 했다.

도망치거나 죽기 살기로 덤비거나.

‘대체 저 해맑음은 뭐냔 말이지.’

뭔가 아주 사소한 걸 놓친 기분인데.

찜찜함이 신경을 긁었다.

대답 없이 서 있으니 기고만장해진 골고타가 2차로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자, 분노에 몸을 맡기고 이 육신을 죽여라! 이 골고타 님은 제자리로 돌아가 네놈들의 행성을 마음껏 주물러 주겠다!”

친절히도 자살할 수 없다는 걸 알려 주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양팔을 벌려 크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는 모습까지 보니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절로 실소가 나왔다.

“풋.”

혹시나 자신의 입에서 나온 건가 생각했던 도현은 옆에 선 오제아임을 알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생각한 반응이 아니어서일까, 골고타가 환희에 찬 얼굴을 굳혔다.

도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순진한 놈이 신이라니.”

골고타는 등을 타고 퍼지는 소름에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놈을 따라 도현이 한 걸음씩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우선 타격은 전혀 없었지. 내가 뒷심이 좀 부족해서 더 못 봤지만, 정보는 잘 받았다.”

“거, 거만 떨지 마라, 인간! 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가 어, 어디서! 이미 격에 타격을 입은 네놈의 영혼은 조각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연기는 집어치워라!

소리치는 입과 달리 골고타의 얼굴에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도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런데, 내가 좀 강하거든. 그리고 안타깝지만.”

말을 끊자 골고타가 경기하듯 흠칫거렸다.

“넌 못 돌아간다는 거다.”

골고타의 주먹이 잘게 떨렸다. 갈피를 잃고 흔들리는 눈동자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도현은 진한 미소를 띠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넌 그 몸에 들어왔을 때부터 격을 잃었어.”

헛바람을 집어삼킨 골고타가 악을 썼다.

“거짓이다! 거짓이야! 난 신이란 말이다! 천! 년! 그 긴 시간을 신으로 살아온 내가, 고작 이딴 몸에 갇힐 리가―!”

쩌렁쩌렁한 고함에 골고타 주위의 땅이 쩍쩍 갈라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이 도현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진정한 신의 힘을 보여 주지.”

골고타는 남은 한 줌의 격을 폭발시켰다.

도현의 힘에 멈췄던 워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된 만큼, 가속화되어 세상이 뒤집혔다.

거기에 더해, 골고타의 힘에 휩쓸린 워프는 더 난폭해졌다.

이대로 소멸하는 게 아닌가 싶었을 때, 세상의 불빛이 점멸했다.

어둠이 찾아오는 워프 속에서 하늘을 향해 용암을 분출하는 산봉우리가 횃불처럼 시선을 잡아끌었다.

콰아아아앙!

겉은 붉고 속은 검은 불꽃이 터졌다.

하늘을 가득 뒤덮은 검고 붉은 구름이 폭풍 같은 화산 폭발로 폭풍이 몰려온 바다처럼 뒤집히고 뒤섞여 덩이덩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꽈과광!

이어 새카만 번개가 지면을 때렸다.

도현은 공기에 퍼진 매캐한 기름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

극독의 냄새. 어떤 헌터가 왔다 하더라도 숨을 들이켜는 순간 염라대왕 앞에 서 있겠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검은 화염 덩어리가 지면을 향해 우박처럼 쏟아졌다.

공성 무기인 투석기도 울고 갈 우박이었다.

때아닌 돌 매질로 모르달의 방어막도 바들바들 떨어 댔다.

‘슬슬 끝내야겠는데.’

도현은 앞에서 자신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는 골고타를 보며 감탄했다.

끌어모으는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신은, 신이란 건가.’

도현은 신이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격이 뭔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신이란 위엄을 보여야 했던 제브라드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그 외의 신이라던 놈들은 조물주라 할 수 있는 제브라드에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니까.

그래도 도현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신은 역시나 제브라드였다.

그런 제브라드조차 힘을 잃지 않은 그때, 붙어도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쉽네, 아쉬워.’

부족한 힘이 아쉬웠다.

‘저걸 막아, 피해?’

막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단지 후유증이 가벼운 감기에서 앓아눕는 몸살까지 추가되는 게 싫었다.

게다가 딱히 막을 이유가 없다.

이미 워프핵이 부서진 워프.

자신과 용종의 전투가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붕괴되지 않은 게 대단할 정도였다.

그만큼 오제아가 흡수한 힘을 워프에 뿌려 버텨 주고 있는 거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다.

선택의 시간이었다.

‘입구로 애들 좀 옮겨.’

도현이 제 생각을 오제아에게 흘리자 오제아의 몸이 어둠에 녹아들었다. 나타난 건 두 헌터와 두 펫이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저들을 대피시킬 생각이었다.

[이 몸의 힘에 놀란 것이냐? 큭큭큭,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힘 때문일까, 격을 되찾은 듯 목소리가 달라졌다.

도현은 얼굴을 구겼다.

저 정도면 감기 몸살 정도가 아니라 장염까진데?

……좀, 많이 아플 것 같다.

‘정보고 신 놈이고 간에 그냥 튈까?’

아픈 건 질색이다.

도현이 한숨을 내뱉은 사이 골고타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비늘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짐승 특유의 튀어나온 주둥이가 들어가고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반들반들한 정수리에서 황금색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차오른다.

풍성해진 금발 사이로 귀가 있을 자리에 ‘ㄴ’ 자로 꺾인 검은 뿔 두 개가 돋아났다.

화려한 색만 뺀다면 마계의 마족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촤라락!

등 뒤로 10m에 이르는 금빛 날개 한 쌍이 하늘을 뚫을 듯 홰를 쳤다.

금빛 후광이 골고타의 몸을 타고 오롯이 반짝였다.

그런 그놈 주위로 자연재해가 휘몰아쳤다.

끝없이 솟구치는 용암.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염 덩어리.

꽈과광!

그 사이로 허공을 찢는 번개까지.

도현은 말없이 지켜보다 어이없게 중얼거렸다.

“이거 역할이 뒤바뀌었는데……?”

***

도현은 직감했다.

튈 타이밍을 놓쳤다.

게다가 흉흉한 모습으로 자신을 찢어 죽일 듯 보는 저 ‘마신’은 자신을 곱게 보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하, 진짜.”

짜증이 샘솟았다.

취미로 요리나 하며 조용히 백수로 살려는 자신을 왜 다들 가만두지 않는 건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한 달.

제브라드 인간들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달밖에 안 흘렀다.

그 많은 일이 고작 한 달이라니.

고생해서 집에 돌아왔기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엄마, 아빠 등쌀도 참았다.

제브라드의 놈들이 와도 불쌍하니 밥이나 먹여 보내자 싶어 똥구멍도 닦아 줬다.

더군다나 돌아온 지구는 자신이 알던 세상과 달라진 상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조용히 좀 살고자 발바닥에 땀띠 날 정도로 뛰었는데.

“이거 완전 호구로 아네?”

한껏 기지개를 켠 골고타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는 도현을 보며 그 모습을 음미하며 웃었다.

[뭐라 지껄이는 거냐, 인간. 미치기라도 했나? 크큭, 그래. 이 몸의 진정한 힘 앞에서 제정신일 리 없지!]

뚜욱!

도현은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감아 뜬 그의 눈에 섬뜩한 빛이 감돌았다.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었다고 복창해라.”

도현이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자 검은색의 잘빠진 검이 잡혔다.

용종을 두들겨 팼던 그 검이었다.

약 60센티의 검. 끝에 고리가 달린 손잡이와 칼날과 손잡이의 경계가 없는 형태였다.

손잡이부터 칼끝까지 온통 검은 검.

“시겔로.”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미친 새끼.

파괴력이든 생김새든 식성이든 전부 상상 그 이상의 검.

퍼더덕! 퍼덕!

시겔로가 물고기처럼 몸을 퍼덕거렸다.

오랜만에 주인이 자주 꺼내 줘서 기분이 좋은 건지, 눈앞의 먹이를 빨리 먹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건지.

도현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보채지 않아도 바로 먹여 줄 생각이니까.

도현은 자루 끝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빙빙 돌려 댔다.

골고타가 배를 잡고 웃었다.

[크하하하! 그 짧은 막대기로 뭘 하자는 거냐? 이 몸을 웃겨 죽일 셈이라면 극찬해… 크허억?!]

푸우욱!

바람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던 시겔로가 도현의 손에서 사라졌다.

시겔로를 찾았을 때는 이미 골고타의 배를 관통하고 구름 사이로 날아간 상황이었다.

콰과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름이 번쩍인다. 시겔로가 빠진 구름에 3m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도현은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언제 허공에 갔다 왔나 싶은 시겔로가 검은 스파크를 뿌리며 손에 쥐였다.

[이, 이게 무슨… 신의 육체를 뚫는 검이라고……?]

한 방에 얼이 나간 골고타가 떠듬거렸다.

도현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시겔로를 빙빙 돌렸다.

“오랫동안 짱 박아 둬서 그런지 예전 같지 않네.”

도현의 말에 시겔로가 몇 배나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짜자자자작!

송곳니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검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스파크가 작은 천둥처럼 터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떤 골고타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한 건지 깨닫고 얼굴이 시뻘게졌다.

[감히… 감히! 이 골고타를 우롱하는 것이냐!]

골고타가 힘을 끌어 올렸다.

배에 난 구멍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한층 더 밝아진 후광이 마치 일출을 보는 듯 장대하게 빛을 뿌렸다.

빛이 워프 곳곳을 밝히는 사이.

피이이잉!

다시 날아간 시겔로가 다리 하나를 뜯어 먹고 구름 사이로 퐁당 빠졌다.

[끄어어억!]

후광. 골고타는 모든 공격을 막아 주는 빛의 방어막을 만들어 냈지만, 시겔로가 뚫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 결과로 시겔로가 뚫고 지나간 방어막 한 곳이 달걀 껍데기처럼 와그작 부서진 모습이었다.

도현은 그러든 말든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언제 날아갔냐는 듯 검은 스파크를 질질 흘려 대는 시겔로가 파르르 떨어 댔다.

“조금 처먹은 거로 흥분하기는…….”

시겔로는 부정하듯 검은 스파크를 더욱 강하게 뿜어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던 골고타가 비명 같은 괴성을 질렀다.

콰드드득!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시겔로에게 뜯긴 다리가 다시 돋아났다.

[마룡창!]

골고타가 외쳤다.

잔뜩 갈라지고 지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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