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51. 큰 하마를 건들면……(1)
도현이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을 때 개떼처럼 몰려오는 카메라와 사람들이 보였다.
“도련니이이임! 방송임다요! 방송! TV에 나오는 그거 말임다요!”
해맑은 모르달을 쳐다보는 도현의 얼굴은 썩어 들어갔다.
잠깐 멈춘 그 틈을 비집고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우도현 헌터님! KHTVC, 강미영 리포터입니다! 잠깐 인터뷰 좀 해 주십시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마주쳤던 여자였다.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은 강미영을 뒤로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기자들이 산을 이루었다.
도현은 숨을 헉헉 내쉬는 강미영 옆 헤벌쭉 웃는 모르달을 쳐다봤다.
“하… 이 가래떡은 정말…….”
나오기만 하면 사고를 쳐 대는 이놈을 집에 가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손을 뻗었다.
“우에에엑!”
도현은 모르달의 머리를 잡자마자 푹 꺼지듯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어, 어? 어디 갔지? 우도현 헌터니이임!”
당황한 강미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황량한 워프 앞 풍경만 있을 뿐이었다.
걸음을 멈춘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워프 근처 마나 자기장 지역에 푸른 불빛이 번쩍했다.
파지직! 파박!
형체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줄을 잇듯 이어지는 푸른 불빛은 빠른 속도로 워프를 향해 다가갔다.
400m, 200m, 50m…….
사람들의 시선이 불빛을 따라 움직였고, 그 종착지는 마나 파장의 중심지인 워프 앞이었다.
“우도현 헌터다!”
스파크가 마지막으로 터진 곳에 빨간 원숭이를 어깨에 올리고 손에 모르달의 머리를 잡은 도현이 나타났다.
그리고―
“드… 들어갔어!”
기자 하나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도현다운 행동이었다.
***
차도식은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 죽은 보스 몬스터 ‘증식의 크로아’와 그 앞에 새카만 피를 뒤집어쓴 채근석.
채근석 주변은 그의 팀원이었던 헌터 4명이 쓰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눈을 부릅뜬 얼굴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듯했다.
채근석이 한껏 달아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큭,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차도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친 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뭐, 사고는 늘 일어나니까.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니 감사해야지. 안 그래, 차도식 헌터님?”
킬킬 웃어 대는 채근석의 얼굴 반쪽은 파충류의 몸처럼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세로로 찢어진 진노란색의 파충류의 눈과 인간의 검은 눈에 기이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 힘을 개방하는 데 5년이나 걸렸어. 얼마나 게걸스럽게 처먹던지, 그것도 5급 이상의 각성자만! 아쉬운 건 마지막 장식을 차도식 헌터님으로 하고 싶었는데…….”
끝을 흐리던 채근석은 차도식 뒤로 정신을 잃은 하지현을 힐끗 보며 웃었다.
“그걸 하지현이 눈치챘네? 우도현 그 개자식의 사촌 동생이라 그런지 눈치가 제법 빨라.”
무엇이 즐거운지 채근석은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차도식은 이를 악물며 자신 뒤에 쓰러진 하지현을 더 가리기 위해 애썼다.
얼굴이 푸들푸들 떨릴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아니지, 아니야. 진정한 힘을 사용한 적도 없지 않나? 저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를 썰어 버리고 싶겠지? 악취는 사양이지만, 네가 원한다면 가능해, 다 가능하다고! 이 몸과 계약만 하면 모든 걸 발아래 둘 수 있다!
‘시…끄러워!’
머리에 울리는 음침한 목소리에 차도식은 더 날카로워졌다.
자신의 아내, 하지현이 채근석에게 죽을 뻔했다.
겨우 숨만 붙은 상태이지만 머릿속을 울리는 이 목소리 덕에 살린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뒤로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목소리가 강함을 빌미로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차도식을 즐겁게 구경하던 채근석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공식 1위 차도식 헌터님이 허접한 4급 헌터와 눈싸움이라니. 아! 꼴딱꼴딱 넘어가는 와이프 때문에 그래? 걱정 마, 걱정 마. 차도식 헌터님을 맛있게 먹고! 디저트로 즐겨 줄 테니까.”
구석구석, 쓸고 핥아 주겠어.
“이 새끼가아아악!”
마지막 한마디에 이성을 잃은 차도식은 짐승 새끼의 대갈통을 날려 버릴 심산으로 양손에 쥔 대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놈의 손바닥에 가로막힌 대검이 불꽃을 튀기며 미끄러져 내렸다.
차도식이 다시 베고 찌르고 대검을 쳐올려 보지만 채근석은 파충류처럼 변한 반쪽의 몸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공격을 멈추자 짐승이 낄낄댔다.
“뭐야, 설마 끝이야? 2급도 별거 없는데?”
이를 악문 차도식은 방금과 똑같이, 하지만 몸이 아닌 짐승의 눈을 향해 찔렀다. 기다렸다는 듯 비늘 덮인 손으로 잡아채자 그는 망설임 없이 대검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동시에 짐승의 품을 파고들어 인간인 반쪽의 턱을 향해 킥을 날렸다.
우두둑!
짐승이 본능적으로 인간 손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발을 잡은 손은 인간의 맨손.
수수깡 같은 놈의 팔은 발을 막았지만 밖으로 꺾여 덜렁거렸다.
놀란 놈의 턱에 다시 킥을 날렸다. 충격을 피하지 못한 몸뚱이가 뒤집어지며 허공에서 굴러 땅에 나자빠졌다.
‘역시 반쪽은 4급 그대로야!’
대검을 회수하는 차도식의 얼굴에 살짝 희망이 깃들 때였다.
―――!
차도식은 소름 끼치는 살기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반동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소리 없이 싹둑 잘려 나가며 허공에 비산했다.
‘채찍……?’
꼬리였다.
채찍처럼 길게 늘어났던 검은 꼬리가 짐승처럼 네발로 땅을 짚고 선 채근석 뒤에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점점 짐승의 모습으로 바뀌는 채근석을 보며 차도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잘게 떨려 오는 몸이 이미 한계를 알려 왔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하지현의 목숨 대신 채근석이 삼킨 워프핵이 가져온 현실이었다.
-그래, 이것이 네놈의 한계다. 저 반쪽짜리 도마뱀이 암컷을 삼켰다면 네놈도 벌써 끝났겠지만. 이젠 끝이겠군.
이를 악물었다. 목소리는 듣기 싫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수긍하는 마음을 알아챈 건지, 음산하지만 달콤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나와 계약만 하면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다!
‘씨발, 시끄럽다고!’
“우리 차도식 헌터님, 딴 데 정신 팔 여력이 남으셨나?”
머릿속에 떠들어 대는 음침한 목소리에 정신이 팔렸던 차도식은 갑자기 귓가를 스치는 짐승의 목소리에 삐죽 머리털이 섰다.
“아, 안 돼!”
새카만 짐승이 차도식을 스쳐 지나갔다.
찢어질 듯 커진 차도식의 눈이 하지현으로 향하는 순간, 짐승의 몸 전체가 갈라지더니 입이 되어 벌어졌다.
쩌어어억!
“지현아아아악!”
차도식은 막기 위해 다가갔지만, 검은 꼬리가 그를 막아섰다. 매섭게 몰아치는 공격은 자아를 가진 것 같았다.
눈이 뒤집힌 차도식은 장기간 전투를 예상하고 남겨 두었던 힘을 폭발시켰다.
쾅! 콰앙! 퍼억!
대검으로 꼬리를 잘랐다. 그 고생이 무색하게 다시 생성된 꼬리가 대검을 때리고 폭격하듯 빠르게 공격을 이어 갔다.
차도식은 위협적인 공격에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꼬리를 쳐 냈다. 그의 목표는 꼬리 끝, 채근석을 향해서였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빠르게 다가가던 그는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으아아악! 도려여어언니이이임!”
채근석의 입에 하지현이 들어가려는 차에 하늘에서 새하얀 덩어리가 그녀를 밀어내고 짐승의 주둥이에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웁?!”
채근석은 자신의 입에 박힌 흰 덩어리를 뱉으려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몸을 사리던 차도식이 죽기 살기로 자신의 꼬리를 끊어 내는 게 느껴졌다.
‘이 쓰레기를 씹어 삼키고 하지현을 먹는다.’
채근석은 다급하게 흰 덩어리를 씹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씹으려고 할 때마다 미끄러지며 자신의 이빨이 부서져 버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고, 모르달 죽네! 모르달 살려어어엇!”
게다가 입 속에서 꽥꽥 질러 대는 비명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모르달……?’
낯이 익은 이름이다. 삼켜질 때 하얀 덩어리였던 게 기억났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크기는 얼추 1m 30cm쯤. 짐승에 가까운 외형까지.
‘우도현… 테이밍 몬스터!’
후우우웅!
깨닫자마자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역한 맛이 느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거부감. 어둠을 부정하는 빛, 신성력이었다.
채근석은 모르달을 뱉어 버렸다.
“우웨에에엑!”
닿는 즉시 땅을 녹일 정도의 강한 산성 체액에 범벅된 모르달이 바닥을 굴렀다.
“쿨럭, 쿨럭, 으웩! 도련님, 너무하심다욧! 소인, 성심성의껏 도련님을 모시는데 이럴 수… 아이고, 냄새야!”
가볍게 착지한 도현은 코를 막고 팔딱대는 모르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안 죽었잖아. 그리고 쿠션으로 나쁘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고약한― 우욱, 무슨 마기가 이렇게 더럽슴까요? 차라리 마물이 더 깨끗하겠슴다욧!”
바르르 치를 떠는 모르달을 보며 픽 웃던 도현은 자신에게 달려들다 허공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묘한 짐승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반은 제브라드에서 익숙하게 봤던 드래곤의 모습이고 반은 인간이었다.
“채근석……?”
검은 비늘로 싸인 몸 반쪽이 움직일 때마다 차락차락 서늘한 소리를 냈다. 반대로 인간인 부분은 전라 상태.
도현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채근석이 경계의 눈빛을 지우지 않은 채 도현에 물었다.
“우도현… 어떻게 온 거지?”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5급으로 알고 있는 도현이 3등급 워프에 들어온 것도, 딱히 특출 나 보이지 않는 테이머 몬스터가 신성력을 가진 것도.
그리고 저놈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까지.
도현은 채근석의 말을 무시하고 무덤덤하게 물었다.
“몇이나 먹었지?”
채근석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벌어진 입 사이에서 뱀의 혀가 날름거렸다.
“꽤 먹었지. 곧 마룡화가 완성인데 마지막을 네 녀석으로 장식해도 좋겠어.”
채근석은 관찰을 끝냈다. 이 자리에 모인 놈들이 아무리 발악한다 해도 자신을 위협할 수준은 못 된다.
도현의 출현이 의문 덩어리였지만, 결론은 먹이가 하나 늘어난 것밖에 되지 않았다.
채근석은 여유를 되찾았다.
강자가 모든 걸 갖는다.
여기서 강자는 자신이었다. 그리고 전리품도 챙길 것이다.
채근석의 눈이 하지현을 향하자 욕심이 차올랐다. 동시에 차도식을 견제하던 꼬리가 차도식을 잡아 던짐과 동시에 부풀어 올랐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꼬리가 드러났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박힌 가시에서 녹색의 독이 흘러내렸다.
꼬리가 도현을 향해 쏘아졌다.
“처남님!”
땅에 나뒹굴던 차도식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꽈과광!
눈 한 번 깜빡하기 전에 도현에게 떨어진 꼬리에 넋을 잃은 차도식은 도현이 서 있던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단 한 번의 채찍질로 지면이 분화구처럼 꺼졌다. 그 넓이만 10m. 거기서 떨어져 나온 흙더미와 돌조각이 우박처럼 사방에 튀었다.
차도식은 기어가듯 몸을 억지로 움직여 하지현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 긁히고 찍힌 상처로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주먹만 한 크기로 떨어져 나간 옆구리에서는 아직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있는 포션을 전부 들이부었음에도 낫지 않는 상처는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다. 썩고 있다는 의미였다.
“…….”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인 상황.
여기에 싸움으로 인해 몰아치는 마나는 그녀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차도식은 남은 힘을 모두 긁어모아 하지현을 감쌌다.
6시간의 보스 몬스터 사냥에 이어 하지현을 구하고, 채근석을 막기 위해 정신력 하나로 버텼던 그 시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하지만 도현이 오자마자 안도감에 한순간에 긴장이 풀려 버렸다.
온몸이 물먹은 듯 너무 무거웠다. 정신까지 무뎌지며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안 돼, 정신… 잃으면 안 돼!’
양손으로 뺨을 때렸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뜨이지 않는 눈꺼풀에 억지로 힘을 줘 보지만 세상이 점점 멀어져 갔다.
‘안 되는데…….’
감기는 시야에 저 멀리, 검은 꼬리가 도현을 몰아치고 있었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흙먼지로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분했다.
‘저 용 새끼… 내 손으로…….’
죽여 버려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