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 꼬인다 (3)
헌터 협회 회장실.
원목 책상 앞에 앉은 강혁은 굳은 얼굴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초조했다.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
1주기를 겪고 3등급이 되었고, 이번 2주기로 1등급 예정인 워프다.
3급 헌터가 귀한 판에 없애도 없앴어야 했던 워프였지만, 유일하게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워프라서 없애지 못했다.
그것도 약 2년 전의 일이었고, 현재는 마나석이 해외 수출의 물품 중 으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문제는 2주기.
3등급이 됐을 때도 협회에서 헌터 30명을 파견해 없애려고 했지만, 국가에서 거부했다.
아무리 마나석이 보편화 됐다 해도 아직 석유에 의존하는 나라가 더 많았다.
그렇게 미루던 것을, 결국 2주기가 되어서야 헌터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며 공문이 내려왔다.
그렇다 해도 이미 1등급 예정인 워프는 사실상 헌팅이 불가했다. 그래서 ‘규격 외 등급’이라는 폐쇄 처분을 해 버리려 했던 걸 차도식이 고집을 부렸다.
도현에게 강력한 무기를 받은 탓일까, 2급까지 되더니 최고에 집착하던 차도식은 강한 워프에 집착했다.
근면 성실해진 것은 좋은데, 과한 만큼 모자란 게 없다고.
강혁이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그는 결국 정식 방법을 통해 팀을 꾸렸다.
그렇게 모인 헌터가 헌터 회사 플래티넘의 1팀, 채근석 팀이었다.
소문이 좋지 않았지만, 나서는 회사가 없었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보낸 지 오늘로 3일.
예상대로 워프가 변이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 변이가 주변 마나를 끌어모으는 형태가 아닌, 마나를 발산 중이라는 것.
워프가 파괴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들어간 헌터 모두가 귀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건지 모르겠지만, 1분 1초가 촉박했다.
입을 꾹 다문 채 소파에 앉아 있던 주 팀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제 말대로 도련님을 함께 보냈어야 했습니다.”
도현을 배제하던 강혁의 결단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주 팀장이었다.
숨겨 둔 패가 있는 건 좋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렸는데 도현을 숨기는 게 중요하겠는가.
특히 이번 워프는 위험도가 너무 높은 탓에 주 팀장도 합류하지 못했다.
“조커라고, 조커. 누가 조커를 이런 데 쓰고 싶겠냐? 그리고 도식이도 거부했었잖아.”
서로의 욕심이 결국 화를 불러왔다.
이제 남은 건 얼마나 살아 돌아올지, 거기에 누가 살아 있을지에 초점이 잡혔다.
강한 워프일수록 강한 헌터가 먼저 잡아먹힌다. 그게 워프 내부의 몬스터 때문이든, 동료에 의해서든.
늘 그랬다.
거기에 엎친 격으로 신뢰 못 할 동료까지…….
능글능글하게 웃는 채근석이 떠오르자 강혁은 담배 연기를 깊게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껐다.
“거머리 새끼, 그놈이 무슨 짓만 저질렀어 봐, 이번에는 정말 지옥이 뭔지 깨닫게 해 줄 테니까.”
이미 이 둘의 머릿속에는 구출 실패라는 단어는 없었다.
차도식과 하지현의 무사 귀환.
그것만이 채근석이 살길이라.
살기로 가득한 사무실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 분위기를 깬 건 주 팀장의 짧은 탄성이었다.
“저기, 협회장님. 이렇게 되면 이번 구출이 도련님 공식 첫 데뷔 무대 아닙니까?”
움찔, 강혁의 얼굴이 짜증에서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렇지……?”
주 팀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순간 둘의 눈앞에 도현으로 인해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혁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괜…찮겠지?”
***
강미영은 휴대폰을 들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랭킹 10위 검색어를 확인했다.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 변이, 크로아의 바위산 2주기, 2주기, 차도식 헌터 2급, 헌터 2급, 워프 변이 동영상, 차 헌터 부부, 채근석, 채근석 팀, 플래티넘…….
워프가 2주기에 들어서자 국가는 석유 채취를 포기하고 헌터 협회에 워프를 처리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이 때문에 영상 매체와 온라인은 국가의 갑질이라며 떠들썩해졌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헌터 협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했다.
협회에서는 ‘워프 지역 폐쇄’를 결정했지만, 차도식 헌터가 반박하는 글을 SNS에 올리며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워프 지역 폐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워프 파괴만이 평화와 국민의 행복을 위한 길이다.]
대한민국은 차도식의 글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역시 세계 넘버원 헌터. 개념 발언이란 찬사가 쏟아졌지만…….
강미영은 짧게 숨을 뱉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500미터 거리 끝에 거대한 크기의 달 조각.
항공기 하나 크기의 워프는 초록색에서 주황색을 걸쳐 현재는 붉게 물들고 있었다.
곧 1등급이 될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
이때까지의 워프 변이는 응집되는 마나가 주변 일대를 블랙홀처럼 빨아 당기며 워프 중심으로 재난이 일어났었는데, 이 워프는 반대였다.
뿜어져 나오는 마나로 생성된 자기장에 누구 하나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 벌써 13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무도 안 나오는 거야? 지원 팀은 어쩌고?’
강미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쉬지 못하고 일한 지 3년, 딱 하루를 쉬기 위해 싸우면서까지 연차를 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결국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푸념 섞인 혼잣말을 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3일 동안 쏟아붓던 비가 그쳐서인지 꿉꿉함은 사라졌지만, 곧 7월을 알리듯 습도와 뜨끈한 햇볕에 찜질방에라도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 곁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미영아, 뭐라도 건졌어?”
“아… 종석 선배.”
친근하게 이름을 불렀지만, 강미영은 불쾌했다.
선배이지만 1년 전 정규 방송으로 적을 옮긴 배신자.
‘저 새끼 때문에 내가 1년을 어떻게 보냈는데…….’
선배라는 놈이 프로그램을 들고 날라 버렸다. 그 일로 폐쇄될 뻔한 프로그램을 살려 낸 건 강미영, 그녀였다.
그 덕으로 고정 리포터에 간판 리포터라는 수식어까지 붙게 됐지만, 그동안 했던 개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치가 떨렸다.
‘진짜 낯짝도 두껍지.’
자신은 워프 변이 때문에 밤을 꼴딱 새우며 지키고 있는데 저 자식은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콩고물이나 얻어먹으려고 하다니.
그렇다고 화를 내 봤자 자신의 입지만 좁아질 뿐이었다.
강미영은 온 세상 근심 걱정을 다 짊어진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선배. 어떡하죠… 진짜, 써먹을 게 하나도 없네요. 워프도 계속 저 상태고… 선배는 혹시 건진 거 있어요?”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눈으로 구종석에게 들이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자 그는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뒤로 내뺐다.
예쁜 여자만 밝힌다더니 역시다.
“아니, 하하. 나도 막 이제 와서, 그럼 수고해.”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한 건 좋지만, 자신의 외모 평가를 확인한 시간이 된 강미영은 예상대로 후다닥 사라지는 구종석의 뒤통수에 대고 중지를 두 번이나 치켜세웠다
“썩을 새끼.”
“미영 씨, 좀 이따 할까요?”
씹어 먹을 듯 말을 내뱉던 그녀는 뒤에서 들리는 카메라맨 김영대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후하, 후하!
심호흡 몇 번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평상시로 돌아온 강미영은 또렷하고 강한 인상으로 마이크를 들어 카메라를 쳐다봤다.
카메라맨이 손을 접기 시작했다.
3, 2, 1, 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HTVC ‘헌터가 간다!’의 특별 방송 리포터 강미영입니다. 3시간 전에 이어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현재 보시는 바와 같이 ‘크로아의 바위산’ 워프는 3등급에서 1등급으로 변이하고 있습니다. 변이가 시작되고 13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지원 팀은 파견되지 않은…….”
그녀는 달달달 외운 말을 내뱉다 순간 자신과 카메라 사이에 뚝 떨어진 사내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새까만 머리와 대조적인 하얀 얼굴, 웬만한 모델도 따라가지 못할 키와 넓은 어깨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흰 티에 청바지 차림인데도 태가 났다. 특히 바지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은 손과 귀찮음이 잔뜩 묻은 표정은 강하면서도 살짝 반항적이어서 섹시하게 느껴졌다.
꿀꺽, 붉어진 얼굴로 침을 삼키던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자 심드렁한 사내, 도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다 ‘낏?’ 하는 소리에 눈이 그의 어깨로 향했다.
성인 머리 크기의 붉은 털 원숭이가 앙증맞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생김! 섹시! 귀여움의 조합이라니!’
이건 반칙을 넘어 치트키 수준이다.
속으로 세상에 불평하던 강미영은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다시 눈의 초점이 풀렸다.
“여기 워프 관리실이 어딥니까?”
중저음의 목소리. 나른하면서도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마성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홀린 듯 친절히 가르쳐 줬다.
“저, 저기가 워프 관리실이에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까딱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작게 감탄했다.
저런 비율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니.
정말 오랜만의 눈 호강이다.
진짜 방송만 아니었으면 따라가는…….
‘아차! 방송!’
그녀는 화들짝 놀라 카메라를 봤다. 김영대 역시 넋을 놓고 그 사내가 가는 길을 찍고 있었다.
생방송 중에 둘 다 무슨 일인지!
다급하게 한마디 하려는데, 무언가 다리를 툭툭 친다.
“안녕하심까요, 소인 모르달이라고 함다요! 근데 지금 뭐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됨까요?”
하얀 덩어리의 푸른 눈을 가진 생물. 날렵한 몸이 낭창거리는 게 가래떡을 연상케 했다.
‘모… 몬스터? 말을?!’
“꺄악!”
***
“지원 헌터 우도현입니다.”
도현은 워프 관리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밝혔다.
50평은 될 것 같은 사무실이었지만 직원은 단둘이었다.
텅 빈 책상들이 수십 개나 있는 것이, 워프 파괴가 결정되고 직원 수가 준 듯했다.
50대로 보이는 직원 한 명이 도현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헌터님. 협회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혼자이십니까?”
도현은 말없이 인벤토리에서 지갑을 꺼내 헌터증을 건넸다.
이런저런 질문을 꺼내던 직원은 헌터증을 보자마자 눈동자가 흔들렸다.
떨리는 손으로 헌터증을 받은 그는 컴퓨터에 연결된 리더기에 헌터증을 올렸다.
“……확인되셨습니다, 우도현 헌터님. 그런데 지금은 워프에 입장이 불가합니다. 마나 자기장이 너무 거세서 변이가 끝나야 입장을… 우 헌터님?”
도현은 헌터증을 다시 건네받자마자 말도 없이 관리실을 나왔다.
‘워프가 파괴된 거라면 폐쇄되는 데 24시간이랬지.’
오는 길에 이어진 통화에서 들은 설명이었다. 각 워프의 등급에 따라 폐쇄되는 시간이 차이가 나는데, 3등급의 경우 24시간이라고.
이것도 최소로 잡았을 때다. 만약 변이를 마친 상태로 폐쇄된다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 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들어간 헌터들이 문제야.’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워프핵이 파괴되면 워프를 고정하고 있던 마나가 날뛰기 시작한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가 갑자기 빙하기에 가까운 온도로 내려갈 수도 있다.
밟고 있던 땅이 사라질 수도 있고, 사막이 되어 푹푹 빠질 수도 있었다.
‘거기에 몬스터까지…….’
천재지변도 문제지만 남아 있는 몬스터도 3등급이라 확신할 수 없다. 결국 헌터는 개죽음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처음부터 얘길 하던가.”
적어도 같은 팀의 불신은 없었을 거 아닌가.
도현은 혀를 차며 워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갈 때 모르달이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