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44화 (44/200)

# 44

44. Peak Time (4)

짜아아악!

뱀처럼 쏘아진 검은 채찍이 거실 바닥을 치차 공기가 찢기며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던 에스틴이 귀찮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오제아에게 말했다.

“빨리 끝내고 그 반쪽짜리를 찾도록 하지. 시간이 얼마 없어.”

“알았어, 에스틴. 그래도 오랜만의 유희인데 조금은 참아 줄 수 있잖아?”

탄가트가 고개를 저었다.

“명령이 우선이다. 나와 에스틴이 먼저 찾도록 하지.”

레리아사가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난 저것만 있음 되니까. 알아서 해.”

“나중에 정보 교환하도록 하지.”

끝으로 보바가 결정을 내리자 에스틴과 탄가트가 몸을 날렸다.

아니, 몸을 날리려고 했다.

“……!”

다섯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도현이 품속에서 바들바들 떨어 대는 토토를 토닥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반쪽짜리 찾으러 제브라드에 가려던 거네?”

도현은 식탁 위에 토토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일어나 마족들을 눈에 담았다.

시간이 지나도 마족의 개성은 변함없었다.

문제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굳은 얼굴들이 폭발할 것처럼 붉어졌다는 걸까.

보바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나 본데, 그게 통할 것 같나?”

다섯의 마족이 일제히 살기를 담은 마기를 뿜어 댔다.

안개처럼 거실 바닥에 깔렸던 마기가 점차 차오르더니 이제는 무릎을 넘겼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산 하나는 말라 죽거나, 생태계가 바뀔 정도의 힘이었다.

하지만 도현에게는 그저 집을 어지럽히는 먼지에 불과했다.

특히, 마기는 가전제품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펑!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TV가 터져 나가며 푸쉬쉬, 연기를 뿜어 댄다.

이어서 냉장고가, 전자레인지가, 밥솥이 차례로 펑, 펑 소리를 내며 전사했다.

……밥솥?

미간을 좁혔던 도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쪽 입꼬리가 파들 떨렸다.

“후…….”

도현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무감각한 시선으로 마족들을 훑었다.

“교육이 좀 필요하겠어.”

다섯 마족이 웃음을 터트렸다. 입으로 협박만 하는, 현재의 속박이 전부라 생각하는 탓이었다.

도현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언제 있었냐는 듯 마기는 사라지고 말끔해진 거실이 드러났다.

마족들은 눈을 깜빡였다. 마기가 저리 쉽게 사라지는 건가……?

대마법사, 아니 제브라드의 신녀나 신자가 나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드래곤……?’

설마… 하는 시선을 주고받을 때쯤 사라진 마기에 모르달이 머리를 슬며시 들었다.

“우, 우와아악! 마, 마, 마족! 도, 도, 도련…….”

다섯 마족을 보고 깜짝 놀라던 모르달은 식탁에 펼쳐진 방어막과 심드렁한 도현을 보고 의기양양해졌다.

“역시 도련님임다요! 저 어린 마족들은 도련님의 한 손가락도 감당 못 할 검다욧!”

“어린 마족?”

모르달이 도현의 옆에 서며 코를 킁킁댔다.

“백 년 좀 넘은 것들임다요. 나이에… 에, 조금. 조오오오금 강한 것 같지만, 그래 봤자 오크나 고블린 수준 아니겠슴까요?”

인간으로 치자면 10대 초반. 발끈한 마족들이 모르달 말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감히 노예 주제에!”

“제브라드의 뒤만 닦다 보니 겁을 상실한 것이냐!”

그러든 말든 음산하게 웃는 모르달을 떨떠름하게 보던 도현은 다섯 마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햇병아리에겐 매가 약이지.”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토토의 맴매’를 꺼냈다. 그리고 모르달에게 갖다 댔다.

화들짝 놀란 모르달의 눈이 도현을 향했다.

“신성력 좀 부어 봐. 햇병아리들한테 천족의 피를 쓸까?”

“어, 어, 아, 아님다요!”

천족의 피라니. 한 방울, 아니 묻히는 시늉만 하더라도 저 마족들은 한 방에 소멸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모르달은 정말,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제일, 아주 약한 신성력을 펼쳤다.

하지만 그 신성력도 이미 세계수의 나뭇가지라는 점에서 몇백 배로 뻥튀기가 될 것이기에 그저 도현에게 선처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우웅!

‘토토의 맴매’에 맑고 청량한 은빛이 깃들었다.

탁, 탁, 탁.

“흠, 적당하네. 모르달, 토토랑 있어.”

도현이 진한 웃음을 지으며 햇병아리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딛자, 방금까지 소릴 질러 대던 놈들은 입을 꾹 닫은 채 불안한 눈으로 도현을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마계의 노익장분들께선 아직 정정하시나?”

뜬금없는 물음에 의문이 담긴 다섯 쌍의 시선이 몰렸다.

“……?”

“욕심만 찬 할매와 세상 통달한 할배, 킬킬대기만 하는 할배.”

끝없는 탐욕을 가진 셀피네스와 나태한 레이지, 교만한 카베테스. 현재 마계를 이끌어 가는 기둥이자 ‘종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신들이었다.

탄가트가 침음처럼 중얼거렸다.

“우도현……?”

도현은 핫도그에 설탕 묻힘을 빼먹은 듯 읊조렸다.

“아. 하긴, 고작 150년 좀 넘었지?”

쩡 하는 소리가 나듯 거실이 적막해졌다. 새파랗게 질린 마족들은 도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그저 애벌레처럼 꿈틀댈 뿐이었다.

악에 받친 레리아사가 험악하게 소릴 질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우도현? 그 새끼가 제브라드에서 사라진 지 150년… 인간이 살아 있…….”

딱!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맴매의 맑은소리가 울렸다.

누가 봐도 그저 가볍게 톡 친 것밖에 되지 않았다.

고작 그럴진대, 레리아사는 눈을 뒤집으며 괴로움에 찬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햇병아리 넷은 그 소리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온몸이 찢기며 영혼이 소멸될 것 같은 고통. 태어나서 처음 겪는 그 고통에 레리아사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도현은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고작 이 정도로 기절한다니.”

주위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무단 침입에 기물 파손에, 식사 방해까지. 왜 마족들은 하나같이 예의란 걸 모르지?”

자의가 아닌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마족들은 그걸 따질 정신이 남지 않았다.

그저 도현과 도현의 손에 들린 맴매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볼 뿐.

“뭐, 어리다니까 실수야 할 수 있지. 그러니 딱 한 대씩만 맞자.”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도현은 산뜻하고 깔끔하게 팔을 4번 휘둘렀다.

딱, 따닥, 딱!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그나마 제일 강한 소리는 자신과 토토, 모르달을 지목했던 셋에게 떨어졌다.

“허억!”

“크허허억!”

“크으윽흡!”

“아아악!”

모두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비명을 사중주로 질러 대다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 기절이었다.

도현은 맴매를 야구 배트처럼 어깨에 걸치며 혀를 찼다.

“마족이란 이름이 아깝다.”

아직도 덜덜 떨어 대는 토토를 끌어안고 토닥이던 모르달이 물었다.

“도련님, 저 마족들을 어떻게 하실 검니까요?”

맴매를 인벤토리에 넣은 도현은 턱을 쓸며 고민했다.

“선물로 보낼까?”

“선물 말임까요?”

“어. 반쪽짜리 마족에게.”

눈을 끔뻑이며 의미를 다시 되새기던 모르달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예에? 반마족 말임까요? 허… 도련님, 어째 그런 불경한 종족을……!”

“내가 너야?”

귀를 후비던 도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 보니 커넥트창을 확인 안 한 지 오래됐네.’

도현은 잊고 있었던 커넥트창을 열었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햇병아리 다섯을 보내려면 중간 점검은 해 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도노스 제국력 453년 1월―

[그라드(반마족)가 8서클에 도달합니다! (후원하기/댓글 달기)]

[그라드(반마족)가 세력 ‘퍼스트 쿼트’를 구축합니다]

―아도노스 제국력 452년 11월―

[라스가 최상급 어둠의 정령으로 단계가 상승합니다]

[헤나지그 카 오르센이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의 후견인임을 선포합니다]

[대단한 업적! 실용마법학파의 전설로 제브라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추앙받습니다]

[헤나지그 카 오르센이 제6 마탑의 마스터로 선포합니다.(후원하기/댓글 달기)]

“으음…….”

분명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인데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선, 그라드와 헤나지그가 커넥트창에 연결된 제국력이 450년 1월이었으니, 딱 3년이 흘렀다.

‘그런 것치고는 성장이 빠른데?’

이 악물고 노력한 걸까, 예상외의 업적도, 행보도 놀라웠다.

‘뭐, 상태창을 보고 대충 예상은 했다만은.’

급조이긴 하지만 선물이 도움 될 것 같았다.

도현의 눈동자가 햇병아리 마족 다섯을 향했다 커넥트창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발견한 붉은 말풍선.

무려 24,125라는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게 알림이란 소리인데.

왠지 저걸 건드렸다가 폭탄을 맞는 게 아닐까?

찜찜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누르자.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가 진심을 다해 ‘커넥트 시스템’을 원합니다.]

[블루드래곤 이노라드 오르제아트가 우도현을 찾아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를 협박합니다.]

[블루드래곤 이노라드 오르제아트가 우도현을 찾아 그라드를 미친 듯이 팹니다.]

[블루드래곤 이노라드 오르제아트가 우도현을 찾아 헤나지그 카 오르센을 협박합니다.]

[블루드래곤 이노라드 오르제아트가 우도현을 찾아 페드릭 카 블루울프를 개 패듯이 팹니다.]

[페드릭 카 블루울프가 맹약 조건에 따라 차원이동에 대한 서적을 수집합니다.]

[페드릭 카 블루울프가 블루드래곤 이노라드 오르제아트의 맹약자가 됩니다.]

…….

도현은 이마를 짚었다.

성격이 뭣 같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급하긴 정말 급했나 보다.

그런데 차원이동 서적이라니?

지구에 오려고?

‘설마…….’

왠지 등이 서늘해졌지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도 제브라드를 만나 지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나.

이건 재능과는 무관한 신의 ‘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도현을 멀뚱히 보던 모르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련님, 왜 그러심까요?”

“아니다…….”

도현은 헤미오르의 알림을 터치해 나오는 메뉴 중 ‘커넥팅’을 선택했다.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와 커넥팅 되었습니다]

알림이 뜨자마자 헤미오르의 감정과 업적에 대한 글들이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지막 알림이 도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가 자서전을 기록합니다.]

그 핏줄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똑같다.

이어서 이오르까지 커넥팅을 하려고 보니 메뉴가 뜨지 않는다.

‘방문자만 커넥팅이 가능한 건가?’

방문자가 누가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도현은 페드릭을 터치하고 확신했다.

방문자만 메뉴가 뜬 탓이었다.

발광하는 이오르 때문에 페드릭까지 커넥팅을 한 다음 창을 껐다.

커넥팅 창이 사라진 시야에는 방문자로 인해 먹다 멈춘 보쌈이 보였다.

그새 식어 버린 수육.

따끈할 때가 맛있는데.

자연히 전자 제품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터진 전자레인지.

터진 밥솥.

터진 냉장고.

터진 전기 오븐.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날개 하나씩 찢어 버릴까…….”

“도, 도련님?”

사색이 된 모르달이 도현을 불렀지만 무시했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교육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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