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43화 (43/200)

# 43

43. Peak Time (3)

엄마의 웃는 모습에는 긴장이고 근심이고 단 1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참 웃던 엄마는 정말 궁금한 듯 도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강혁 삼촌이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은 듯했다.

‘주 팀장도 형식적인 보고만 하고 만 것 같고.’

그럼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 봤자 혼자 간 것 정도.

눈치가 얼마나 빠른 엄만데, 그 말만 믿을까.

도현은 거짓말을 부풀리느니 사실을 말하기로 택했다.

“2주기였어.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니 워프가 변이하더라고.”

변이한 워프를 살피다 몰려드는 몬스터에 토토와 모르달이 나섰고, 전투 중에 워프핵을 건드리게 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워프핵이 박살 나 버렸고, 워프가 파괴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풀어 하면 몇 시간이고 떠들어 댈 이야기였지만, 토토가 갑자기 커져서 워프핵을 부쉈다고 하면 믿어 줄까?

농장도 뺀 이유는 제브라드에서 지냈던 일까지 파고들 엄마가 감당이 안 돼서였다.

말이 끝나자 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톡 떨어졌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도현을 꼭 안았다.

“엄마?”

한참을 안고 있던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도현을 봤다.

“미안해, 엄마가 아들을 너무 위험한 데로 몰아 버린 것 같아.”

그녀가 대학을 보낸 것도, 헌터 라이선스를 따라 닦달한 것도. 사실은 위험하니까 그 위험을 알고 학교에 더 충실해, 몇 년 뒤에는 회사를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각성자가 일반화된 사회. 몇 년 안에 헌터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될 것을 먼저 내다본 그녀의 계획이었다.

좀 더 경험하고 많은 걸 알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

‘역시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 된다더니.’

사고를 칠 때마다 들었던 엄마의 잔소리를 도현에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엄마의 마음을 깨달았었다.

하소연처럼 엄마에게 달려가 투덜댔더니, 알아서 잘할 거라며 귀한 손주 잡지 말라고 되레 자신을 나무라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어느새 엄마는 손주를 끔찍이 여기는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임혜정의 걱정 가득한 눈을 보던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엄마, 걱정 마. 나 강해.”

“강하다면 얼마나 강하다고. 괜히 엄마 안심시키려고 하지 말어.”

그녀는 도현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테이블 위 커피포트를 들어 빈 잔에 커피를 따랐다.

“진짠데.”

“뭐, 얼마나 강하길래? 차 서방보다 강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높은 선을 말한 것 같아 킥 웃던 그녀는 도현이 하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아니, 세계 1위.”

“푸흡, 우도현. 엄마 웃기지 마.”

“이런 거로 웃겨서 뭐 하게?”

표정 변화가 없는 도현을 한참 보던 임혜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엄마, 커피 넘쳤어.”

마침 테이블 위 허공에서 흰 덩어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도련니임, 저녁 뭐 드시… 우왓 뜨, 뜨겁! 아이고, 모르달 죽네!”

테이블에 발을 디디려던 모르달이 넘치는 커피를 밟고 우당탕 넘어져 꿈틀댔다.

그런 모르달 배 위로 토토가 착지했다.

“압빠! 왜 안… 아!”

***

도현은 턱을 괸 채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눈앞의 세 사람을 보고 있었다.

“마님, 어떻슴까요? 시원하심까요?”

“너무 시원한데? 모르달, 못하는 게 뭐니? 호호호.”

“하무니! 냠냠, 마싯써!”

정확히는 한 사람과 두 짐승.

‘농장이 나를 따라 움직일 줄이야…….’

두 짐승을 집에 놔두고 온 건 좋았다. 농장에 일일이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그 출구가 ‘자신’이라니.

분명 좋은 시스템이다. 어떻게 써먹든 활용도는 엄청나니까.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냔 말이다.

그것도 엄마 앞에서.

그 짧은 앞발로 엄마의 어깨를 주무르는 모르달이나 엄마를 할머니라 부르며 작은 스네일을 순식간에 구워 주는 토토나.

“하아.”

도현은 한 1년쯤 늙어 버린 느낌이었다.

임혜정은 토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도현에게 물었다.

“아들.”

“응?”

“이거 설명 좀?”

반쯤 감긴 눈이 엄마의 손을 응시했다. 거기엔 엄지 크기의 갈색 스네일이 따끈따끈한 김을 뿜어내며 먹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네일이 왜……?

“너 스네일 구할 수 있는 거지?”

“……!”

왠지 엄마한테 탈탈 털릴 것 같은 이 예감은 뭘까?

***

자취방에 돌아온 도현은 양손 가득 들린 종이 백을 식탁 위에 올렸다.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여 먹은 저녁.

저녁 먹기 전 엄마한테 들킨 스네일로 농장까지 털리고 드나들 수 있도록 이웃 등록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스네일 유통에 대한 계약서 작성까지 마치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다 토토가 선물이랍시고 엄마에게 그릇을 드렸다가 옵션 때문에 토토를 납치하려 했던 소동도 있었지만…….

‘차라리 그때 던져 줘 버릴걸.’

갈비탕이 아닌, 갈빗집을 다 씹어 먹으려는 두 놈 때문에 편한 식사 시간을 보냈다고 하기엔…….

‘피곤하다.’

그런 도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놈은 식탁 위에 모두 펼쳐 두고 도현을 불렀다.

“흐흐흐, 도련님. 빨리 먹고 싶슴다요! 세팅하겠슴다욧!”

“냠냠! 압빠, 빠리!”

“기다려.”

도현은 아직 뜯지 않은 봉지에서 쌈을 꺼내 씻은 다음 볼에 가득 담아 식탁 의자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뚝뚝 흐를 것 같은 침을 꿀꺽 삼켜 대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둘을 보자니 웃음이 나왔다.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 사 온 보쌈.

‘갈비찜도 맛있었지만, 하필 근처에 보쌈집이 있을 줄이야.’

고기보다 생선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보쌈은 그냥 지나치기 너무 힘든 메뉴다.

먹을 거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두 먹보까지 가세하니 ‘먹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예스맨이 되어 버렸다.

“먹자.”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양손으로 수육을 집어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첩첩첩, 찹찹찹!

리듬감까지 느껴지는 소리를 BGM 삼아 수육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새우젓에 살짝 담가 입으로 가져갔다.

야들야들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수육이 혀 위에 녹아내렸다.

돼지고기 특유의 질감과 옅은 계피, 월계수 향이 감칠맛을 느끼게 했다.

‘아빠가 맛집이라더니 정말인가 보네.’

흡족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추의 물기를 털고 손바닥에 폈다.

그 위에 깻잎을 올리고, 두툼한 수육 두 점을 한 번에 낚아 쌈 위에 올렸다.

무말랭이무침과 겉절이를 적당히 올리고 한데 모아 입에 넣었다.

아사삭! 파작, 파작!

파릇파릇한 채소의 식감 뒤로 조금 단단한 무말랭이가 씹힌다. 진한 젓국과 매콤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말랑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수육과 어우러진다.

‘역시, 이 맛이야!’

꼭꼭 씹어 삼킨 도현은 다시 상추를 들었다.

깻잎을 올리고 이번에는 다른 쌈인 레드 치커리와 케일, 청겨자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수육 3점을 폭신한 쌈 위에 올리고, 무말랭이와 겉절이를 넣고 마늘 한 쪽과 젓가락 끝으로 살짝 덜은 쌈장을 수육 위에, 마지막으로 새우젓을 조금 올렸다.

와삭와삭!

방금 느꼈던 풍미가 좀 더 강하고 진하게 느껴졌다. 그 조화 안에서 알싸하게 퍼지는 마늘의 향이 감초 역할을 했다.

이어서 풋고추를 들어 쌈장에 찍어 깨물었다.

고추 특유의 풋내와 함께 혀를 마비시킬 듯한 매운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맵다. 너무 매워서 씹던 것도 잊고 물을 찾을 정도인데, 그 맛이 너무 맛있다.

이럴 때 맥주도 함께 즐겨야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자마자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캬, 그래. 이 맛이지.

넉넉해진 마음과 기분을 흥얼거리며 다시 가볍게 즐기기 위해 젓가락을 놀렸다.

“응……?”

잡히는 게 없다.

이미 수육은 없고 텅 빈 용기만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용기째 들이켜고 감탄하는 두 짐승 놈이 보였다.

“캬, 너무, 너무 맛있슴다요! 이런 은혜로운 음식이 있었다니!”

“토토! 너무 마싯어! 꺄아아아!”

“이것들이…….”

미간을 좁히며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수육을 또 꺼내 자신 앞에만 놓았다.

“100인분 사 오길 잘했지.”

하루 종일 먹기만 하는 식충이들과 뭘 먹으려면 넉넉하게 사지 않고는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엇, 도련님! 왜 하나만…….”

“토토, 토토 더 죠!”

“시끄러. 누가 둘이서 내 것까지 다 먹으래?”

수육을 향해 마수를 뻗는 두 짐승 놈에게 젓가락으로 응징을 해 준 도현은 한 번에 5점을 낚아 상추 위에 올렸다.

함께 먹기 제일 좋은 무말랭이와 겉절이는 당연한 공식이다.

맛을 음미하며 곁들이는 맥주 역시 최고다.

느긋한 식사 중에 두 놈이 침을 삼킨다.

모르달의 눈이 수육과 맥주 사이를 오가다 울컥했을 때였다.

끼이익.

익숙지만 낯선 방문 열리는 소리.

방문자였다.

도현은 재빨리 식탁을 감싸는 보호막을 둘렀다.

그러자마자 열린 방문에서 새카만 어둠이 몰려오며 바닥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으으으, 도, 도련님… 사, 살려 주심쑈. 이, 이 정도의 마기는…….”

방문이 열리자마자 모르달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덜덜 떨었다.

“아, 압빠, 무셔…….”

토토도 도현의 품에 안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다.

마족의 방문이었다.

핏빛 머리 옆으로 도드라진 산양 뿔 한 쌍. 마족 에스틴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중간계인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진보라색 긴 생머리, 무수한 해골이 겹겹이 쌓인 티아라 형태의 뿔을 머리에 얹은 마족 오제아가 미간을 좁혔다.

“중간계라기엔 마나가 턱없이 부족한데?”

허리까지 뻗은 청록색의 장발. 선글라스처럼 뿔을 눈에 두른 마족 탄가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든 간에 중간계는 확실해. 저기 인간과 제브라드 노예도 있으니까.”

고양이 귀처럼 뾰족한 뿔을 가진 레리아사가 은빛 레몬 단발을 흔들며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저게 제브라드의 노예군요? 하아, 너무 이쁜데? 타락시키면 어떠려나?”

이마에서 콧등까지 가린 마스크 형태의 검은 뿔. 검은 투블럭의 보바가 도현의 품에 웅크린 채 벌벌 떠는 토토를 가리켰다.

“그럼 난 저 붉은 짐승을 갖겠다. 진한 불의 냄새가 나는군. 축복을 받은 게 틀림없겠어.”

오제아가 보바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뭐야, 선택권이 없는 거야? 하, 뭐 생긴 건 반반하니 참아 주지.”

에스틴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중간계의 저택은 이렇게 좁은가? 케트라 한 마리면 가득 차겠어.”

시궁창 쥐를 닮은 최하급 마계 몬스터를 말한 것이었다.

보바가 고개를 살살 저었다.

“마기를 막기 위해 실드를 친 건가? 보기보다 실력이 있는데. 마법사?”

진지한 물음에 레리아사가 눈을 반짝이며 윗입술을 핥았다.

“마법사는 무슨. 저기 바닥에 웅크려 발발 떨어 대는 저 제브라드 노예 놈이겠지.”

그저 한마디씩만 해도 정신 사나운 머릿수의 방문자. 도현은 다섯 명이 낄낄대는 꼴을 보다 기가 찼다.

“니들 뭐냐?”

오제아의 입에 비웃음이 걸렸다.

“겁을 상실한 걸까, 이지를 상실한 걸까? 뭐, 어쨌든 조금 있으면 살려 달라고 빌어 대겠지만. 후후.”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웃던 오제아가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며 털자 검은 채찍이 나타나 거실 바닥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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