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40화 (40/200)

# 40

40. 이게 아닌데 (4)

푸른 불꽃에 휩싸인 토토가 보였다.

“토토야?”

“키아아아악!”

캬르르륵!

토토를 향해 뛰어들던 몬스터들이 불꽃에 타들어 가며 팝콘처럼 튀었다.

강한 도현은 두고 모르달과 토토에게 몰렸던 몬스터들이 제일 만만한 토토만 집요하게 공격한 탓이었다.

키이이익!

몬스터들이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흙에 몸을 비벼 댔지만 오히려 불은 더 번지며 몸을 집어삼켰다.

고통 속에서 몬스터의 숨이 끊기자 불꽃도 사라져 버렸다.

생명이 끊길 때까지 타오르는 푸른 불꽃.

‘불카누스의 화신이라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새로운 알림창이 떴다.

토토가 1차 각성을 합니다.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숭이였다.

탐스러운 붉은 털이 가득한 근육질. 씩씩댈 때마다 뿜어대는 푸른 불꽃에 막무가내로 달려들던 몬스터들도 주춤했다.

눈을 한참 끔뻑이던 도현은 눈앞의 원숭이를 황당하게 바라봤다.

“토토……?”

[펫]토토(돌원숭이/유일)

1차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유아기→청년기

*성장 속도 1000% 유지 중

능력치(상세 보기+)

자신의 종족을 깨닫습니다.

장인의 특성이 생성됩니다.

손재주 능력이 최고치로 상승합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1차 각성이라고?”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상상을 뛰어넘는 성장 속도는 ‘성장 속도 1,000% 유지 중’이라는 설명에 겨우 납득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건 갑작스럽게 각성을 한 것이냐는 건데.

모르달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감정이 격해지면서 각성으로 이어진 것 같슴다요.”

모르달의 말은 이랬다.

성장할 때가 되어 성장하거나, 어떤 계기로 인해 성장하거나.

토토는 후자에 속한다고.

“최근 토토 님이 간절할 정도로 큰 충격이 있지 않았슴까요? 차도식 헌터가 도련님을 위협했을 때처럼 말임다요.”

아, 그러고 보니.

변태 귀족을 달고 왔던 하이든. 그놈 때문에 토토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앞섰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모르달 말처럼 밥 먹으러 갔다가 뷔페에서 만난 차도식도 있었고.

“몬스터의 공격이 결정적인 자극이 된 것 같슴다요. 잠재된 힘은 강하다지만, 아직 어리고 약한 몸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 말임다요.”

“그럼 강제 각성이라는 거잖아.”

도현은 다른 이유보다 강제라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않슴까요. 워프에 들어올 때마다 집에 두실 검니까요?”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차라리 성장하도록 돕는 게 낫다는 말이네.”

“그렇슴다요.”

도현은 불편한 마음으로 상태창을 세밀히 살폈다.

데려왔을 때부터 알았던 종족 특성이 개방된 것 외에 능력치가 S부터 시작하는 걸 보고 조금 안심이 들었다.

‘이 정도 능력치면 4등급 워프쯤이야.’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왕성히 성장할 테니 잘 먹이고 잘 재우면 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현은 모르달이 다시 자신의 바지를 잡아당기자 잔뜩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왜?”

“토토 님이 좀 이상함다요.”

토토의 전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꽤 멀리까지 나가 몬스터를 학살하는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바퀴벌레들은 어디로 가고 거미들이 토토를 둘러싸고 싸우는 중이다.

키릿! 쉬이이익!

쾅! 콰앙! 콰아아앙!

토토의 몸보다 두 배쯤 부푼 푸른 불꽃이 질척거리는 땅과 썩은 나무들을 훤히 볼 정도로 컸다.

과하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들이미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상태로 몬스터를 잡는답시고 땅과 숲을 파괴해 대니, 주변도 엉망이고 토토도 제정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러다 토토 님이 먼저 쓰러지겠슴다요!”

도현의 생각도 모르달과 같았다.

워프가 변이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워프가 파괴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서둘러 토토 곁으로 다가갔다.

악취로 가득한 썩은 숲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푹푹 팬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치리릿!

그런 땅이 다시 들썩이며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만 30센티미터에 실처럼 가는 다리가 몸통의 두 배나 됐다.

새카만 머리의 6개의 붉은 눈이 번들거리며 토토를 향해 집게 같은 입을 쫙 벌린다.

검은 거미줄이 토토를 향해 뿜어졌다.

촤아아악, 촤악!

수십, 수백 마리의 거미가 일제히 뿜은 거미줄이 푸른 불꽃에 싸인 토토를 돌돌 말았다.

순식간에 고치가 된 토토를 보며 모르달이 어, 어 하는 사이 불꽃이 더 힘차게 치솟으며 거미줄을 녹인다.

푸른 불씨가 녹아내리는 거미줄을 타고 거미들에게 들러붙었다.

키릿, 키이이익!

숲 자체의 악취에 몬스터들이 타들어 가는 악취가 뒤섞이자 절로 속이 거북해졌다.

토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미들에게 달려들었다.

불타는 거미의 몸통을 양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찢으며 그 사체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크아아아앙!”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크게 울부짖던 토토와 도현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 저 녀석……?

“크르르륵.”

유리알처럼 반짝이던 초록 눈동자는 사라지고 흰자까지 푸르게 변한 토토는 도현을 보며 살기까지 내뿜고 있었다.

“도, 도련님, 토토 님이 정신을…….”

“어, 맛 간 거 같다.”

“쿠와와와왁!”

토토의 괴성에 푸른 불꽃이 반응했다. 터져 나가는 불씨가 도현을 덮쳤다. 옆에 서 있던 모르달이 식겁한 얼굴로 도현의 다리 뒤로 숨었다.

금방이라도 도현을 태워 버릴 것 같던 불꽃은 머리카락 한 올 태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킁? 크아앙!”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토토가 펄쩍 뛰더니 애 머리만 한 두 주먹을 도현에게 휘둘렀다.

후웅, 후웅!

거친 바람 소리가 위협적이었지만, 그마저도 도현에게 닿지 못했다.

“쿠오오오!”

골이 날 때까지 난 토토가 가슴을 두드렸다.

도현이 혀를 찼다.

“안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나.”

나름 정도 들었고 태어나자마자 거둔 토토를 이대로 둘 수도 없었다.

매를 생각했던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토토가 성하지 않을 거다.

가볍게 주먹을 쥐고 꿀밤을 때렸다.

따악! 딱!

“쿠어어엉!”

눈앞에 별이 번쩍한 토토는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펄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저, 저! 도련님, 어쩜니까요!”

눈꼬리가 올라갔다 싶더니 토토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썩은 나무, 몬스터, 바위 할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도현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쿵! 쾅! 콰앙! 퍼억!

도현의 가벼운 손짓에 모든 게 부서져 멀리 나동그라진다.

토토는 성질에 못 이겨 주먹으로 땅을 쳐 댔다. 그 난동에 땅이 분화구처럼 푹푹 파였다.

흡사 바닥에 드러누워 빽빽 울어 대는 애 같았다.

‘이… 녀석이?’

짜증이 스멀스멀 올랐다.

웬만한 몬스터도 비비지 못할 덩치로 어렸을 때 하던 떼를 부리다니.

도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왜 엄마 마음이 이해될까…….”

어렸을 적 장난꾸러기를 넘어 악동이라 불린 도현이었으니, 아마 토토보다 더했을 거다.

마음을 다잡은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한 팔 크기의 몽둥이를 꺼냈다.

그걸 본 모르달이 헉, 하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도, 도, 도련님, 그, 그거 세계수 나뭇가지…….”

“나쁜 버릇은 초장부터 잡아야지.”

누군가가 했던, 지겹게 들었던. 그리고 그렇게 싫었던 그 말을 자신이 할 줄이야.

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토토를 향해 한 발 뗐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겐 맴매가 약이야.”

“크우?”

막 땅에서 거대한 초록빛의 바위를 양손으로 꺼내 든 토토는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몽둥이에 반사적으로 바위를 들었다.

“어?”

다섯 살짜리 애만 한 돌이 도현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반으로 갈라지며 토토의 머리에 떨어졌다.

쩌정!

“께엑!”

뒤로 나자빠지는 토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현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마…나석?”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찬란하게 빛나던 초록색 돌이 공허한 회색으로 변해 버렸다.

동시에―

쿠구구구구!

워프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워프핵이 파괴되었습니다]

[30분 후 워프가 파괴됩니다]

도현은 메시지창과 음성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르달만이 펄쩍펄쩍 뛰었다.

“도련님! 이게 무슨 일임까요? 마나가, 마나가 사라지고 있슴다요!”

도현은 이마를 짚었다.

“하아, 하필 사고를 쳐도…….”

어쨌든, 이번만큼은 가볍게 넘어가기 글렀다.

도현은 머리에 혹을 달고 기절한 토토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포옹!

토토의 크기가 커지기 전으로 돌아왔다.

사고라는 사고는 다 치고 팔자 좋게 기절이라니.

욱, 끓어오르려는 마음을 다스리는 도현의 귀에 다급한 모르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나가야 함다요! 무너짐다욧!”

한숨을 내쉰 도현은 몽둥이를 인벤토리에 넣은 뒤 토토의 꼬리를 잡아 들고 터덜터덜 걸었다.

***

도현과 펫 두 마리가 워프를 빠져나오자 진한 초록빛을 띠던 달의 조각이 펑 하고 깨지며 워프가 사라졌다.

“후우…….”

한숨과 함께 좁혀진 미간이 펴지질 못했다.

“끄응, 끄응…….”

모르달에게 안긴 한 뼘 크기의 토토가 혹 난 머리를 감싸며 계속 앓아 댔다.

다른 무기였다면 생채기 정도야 금방 나았겠지만,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든 몽둥이다.

웬만해선 쉽게 낫지 않으리라.

안쓰럽다가도 오늘 한 짓이 괘씸했던 도현이 토토를 향해 눈을 흘기며 쯧, 혀를 찼다.

“그러게 누가 나서랬어?”

“아니, 압빠, 위험…….”

토토가 말했다.

각성의 탓인지 정신을 차린 토토는 떠듬떠듬 말을 했다.

놀란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화도 잊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잘 먹고 잘 크면 돼.”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토토의 눈에 생기가 돌아와 반짝였다.

“압빠, 쪼아! 압빠, 쪼아!”

그 모습을 보던 모르달이 앞발로 코를 쓱 닦으며 중얼거렸다.

“후후, 토토 님 잘 컸슴다요.”

그렇게 펫 두 마리와 사람 한 명이 어슬렁거리며 비로 물러진 산길을 내려가는데, 헌터 5명이 서둘러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어?”

“어?”

도현과 헌터 무리의 선두가 서로를 보며 멈춰 섰다.

“근석이?”

“우도현?”

만나고자 했던 친구 놈이었다.

채근석. 친우 중 하나.

덩치와 험한 얼굴에 어느 누가 봐도 조폭을 연상하게 했던 녀석.

그래서인지 딱 질이 좋진 않았다.

단지 성격이 잘 맞아서, 잘 통해서 서로가 불편한 구석을 외면했던 사이였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셋 중 한 놈인데 뭔가 기억 속의 그놈이 아닌 것 같았다.

‘헌터였나?’

“너… 살아 있었냐?”

한참 뜸 들여 나온 채근석의 말은 ‘네가 여기 왜 있냐?’라고 묻는 듯했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채근석은 앞뒤 잘라 물었다.

“언제?”

“좀 됐지.”

“새끼, 연락 한 번 없어?”

피식 웃는 모습이나 말투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뭐랄까 강압적이다.

‘뭐, 헌터라서 그럴지도.’

체내에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딱히 많지 않았지만, 몰려온 사람 중에서 제일 강했다.

그만큼 고생깨나 한 듯했다.

“근데 워프에 들어간 헌터가 너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근석의 시선이 도현을 훑었다.

복장 때문이었다. 그저 무난한 추리닝 차림이었지만, 실제로는 최고급 몬스터의 가죽을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헌터웨어다.

그만큼 헌터들도 쉽게 장만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다.

대기업 도련님들이나 가끔 입을 만한 허세용 방어구라지만 기능이나 방어력은 톱 헌터들도 탐낼 정도.

게다가 이 제품은 단 10벌만 존재한다는 스페셜 넘버였다.

채근석이 눈을 씰룩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제대로 가시 돋친 말이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도현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원하게 웃었다.

“늘 그렇지. 그런데 여긴 웬일?”

“워프 변이로 도움 요청이 와서. 그런데 꼴을 보니 뭐 해결된 것 같은데?”

“어. 정리하고 내려가는 길이지.”

‘어떻게?’라고 물으려던 채근석의 시선이 도현 옆 하얀 덩어리에게 향했다.

“안녕하심까요! 거대 흰족제비족 모르달이라 함다요!”

“몬스터가 말을… 너 테이머냐?”

채근석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명백한 조소였다.

도현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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