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 이게 아닌데 (3)
도현과 모르달이 스네일을 하나씩 집는 사이, 마시멜로를 먹어 치운 토토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마자 갈색의 스네일 한 마리를 덥석 잡아 크게 한입 베어 먹었다.
쫀득쫀득!
키조개 관자도 울고 갈 만큼 쫀득한 식감과 달달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끼이이이익!”
‘최고다!’라고 외치듯 목소리를 높이는 토토를 보며 모르달이 붉은색 스네일을 냉큼 쥐고 껍질째 와작 씹었다.
탱글탱글! 톡! 톡!
얇은 껍질이 톡 터지며 새우의 진한 육즙과 고소함이 밀려온다. 결대로 입 안에서 찢기며 씹히는 맛은 새우의 맛 같다가도 대게 특유의 달콤한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맛에 흠뻑 취한 모르달이 자신도 모르게 방정맞게 웃었다.
“캬하하하, 너무 맛있슴다요오오!”
도현도 기대하며 삶은 스네일을 집어 들었다. 진한 초록색의 스네일. 그런데 물방울무늬다.
‘뭐, 별로 다르지 않겠지.’
가볍게 흘리며 입에 쏙 넣었다.
“……!”
청양고추를 씹은 듯 아릿한 맛과 함께 고추냉이의 알싸한 향이 코를 뚫고 머리까지 찔렀다.
뱉어야 할지 고민하는 도현에게 모르달이 다시 방정맞게 웃었다.
“프하하하하, 도련님 그거 꽝임다요!”
꽝?
“먼저 죽은 놈들은 청양고추 맛이 났슴다요.”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움찔한 모르달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소스로는 사용할 수 있지 안 슴까요? 죽어서도 맛을 내는 놈들이라니― 캬!”
나쁘지 않은데, 나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현은 모르달이 별미라고 건네준 적갈색의 스네일을 한입 먹었다.
양념에 재워 숯불에 구운 고기의 육즙 맛이 혀를 적셨다.
이어서 부드러우면서도 고기 특유의 씹는 맛이 흡사 소고기 특++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도현의 취향인 레어로 말이다.
톡 터지던 껍질이 식감을 버릴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쫄깃하면서도 씹을 때마다 나오는 육즙이 속살과는 미묘하게 달라 더 잘 어울렸다.
좀처럼 고기가 당기지 않는 자신도 계속 먹고 싶을 맛이었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지 안 씀까요? 이놈들은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미안함다요.”
색별로 맛도 다르고 심지어 조리법에 따라 맛도 다양해진다는 모르달의 말에 도현은 손에 쥔 스네일을 보며 시스템에 감탄했다.
농장.
자신에게 이보다 더 어울릴 직업이 있을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현은 이 맛을 알아낸 모르달을 쳐다봤다.
마침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던 모르달이 40대 아저씨처럼 ‘캬아아!’ 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국물 맛도 끝내줌다요!”
스네일로 참을 간단히 때운 도현은 워프 조사에 앞서 농장으로 이동했다.
하피가 궁금해서였다.
“헉! 도련님, 여긴 어딤까요? 가, 갑자기 다른 차원으로…….”
도착하자마자 모르달은 당황했다. 그와 달리 와 본 적 있는 토토는 하리오카 나무를 보고 신나 달려갔다.
토토의 뒷모습을 보던 도현의 눈이 커졌다.
처음에 8그루였던 나무들이 어느새 숲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증식이라도 하나?’
거기까지 생각했던 도현은 간과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무다. 열매를 맺고 그게 땅에 떨어지면 씨앗에서 싹이 틀 것이고 나무로 자라날 게 당연했다.
그러니 이렇게 숲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긴 한데…….”
끝이 어딘지 모를 숲을 보며 농장이 워프처럼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워프… 다른 차원?’
뒤늦게 토토를 따라가며 모르달이 외치던 말이 떠올랐다.
“흐음.”
생각지도 않은 정보를 얻은 도현은 시스템이 지구와 제브라드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정 지은 생각을 의심했다.
달이 떨어지고 워프가 생겨나고.
이 시점이 도현이 제브라드에 떨어졌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라…….’
“그래. 제브라드 하나가 아니라는 건가?”
만약 제브라드 같은 신들이 모의 작당한 거라면?
도현의 눈썹이 휘어졌다.
‘근데 왜?’
이해는 안 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리오카 숲 앞에 다가가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스네일 사육사 하피의 서식지를 탐색합니다.
하리오카 숲 지대.
스네일 사육사 하피의 서식지로 지정하시겠습니까?
‘나무가 있어서 사육이 가능한 걸지도?’
예를 누르며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나무, 관리도 못 하는 마당에 하피가 정리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스네일까지. 알아서 관리할 테니까 딱이네.’
지금 잠깐 사이 불어난 나무가 눈으로만 봐도 5,000그루는 훌쩍 넘는다.
하피를 거두길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하며 도현은 서식지를 선택했다.
끼에에에엑!
고음의 괴성이 숲 전체를 울렸다.
날갯짓을 한 번 할 때마다 색색의 작은 덩어리들이 숲으로 떨어졌다.
맨 처음 봤던 10센티미터 크기의 스네일들이었다.
꾸르륵, 꾸르륵.
나무에 안착한 스네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리오카 나무 표피에 남은 스네일의 점액 길을 따라 색색의 알들이 와르르 생겨났다.
너무 작으니 설거지할 때 수세미의 세제 거품 같았다.
‘아, 달팽이가 자웅동체였지?’
그런 지식을 꺼내는 동안 태어난 달팽이들이 꿈틀거리며 점점 크기를 키웠다.
‘무슨 64배속 빨리 감기라도 한 줄 알겠네.’
경이로운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두르는 동안 스네일이 나무 한 그루를 차지하는 데 단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무가 죽은 건 또 아니었다.
단지 가지가 뻗고 열매가 맺히는 속도가 절반쯤 느려진 것뿐이었다.
달팽이들이 수 불리기를 멈춘다 싶더니 이젠 몸집이 쑥쑥 커졌다.
워프의 깊은 숲에서 봤던 그 50센티미터의 스네일이었다.
“오오, 도련님! 이 스네일은 하리오카 열매 맛이 남다요!”
토토를 쫓아간 지 얼마나 됐다고.
냉큼 달려와서는 작은 스네일 한 마리를 생으로 입에 털어 넣더니 손으로 양 볼을 잡고 우적우적 씹어 댔다.
새로운 맛의 스네일에 흠뻑 취한 듯했다.
‘이러다 진짜 농장 되겠는데……?’
한때 모바일 게임으로 유행했던 팜 타이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게임이 망하며 들인 노동력과 시간이 헛수고가 됐던 게임.
“이젠 귀찮아.”
타이쿤 현실판이란 메리트에 혹했지만, 도현은 애초 마음을 접었다.
그냥 음식 창고. 딱 거기까지다.
이미 방문자만으로도 벅차다. 그나마 모르달이 도움 되니 참는 거지, 아니었다면 진즉에 파업했을 거다.
요리 재료를 습득했습니다.
스네일의 굳은 점액: 6++ 등급
스네일이 먹다 만 잎사귀: 6++ 등급
……
식재료 수급 100/1,000
식재료 도감 완성(초급) 10/30
농장의 스네일로 엄마의 의뢰를 끝낼 즈음 퀘스트 창을 확인한 도현은 미간을 좁혔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던 퀘스트의 진척이 너무 느렸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워프 다섯 곳은 돌아야 겨우 완수할 정도.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명 정도 떼 버릴 수 있다면 나쁘진 않지.”
애써 그렇게 위안하며 마지막으로 도현은 하리오카 열매와 달팽이를 쥐고 대화하는 두 짐승을 흘깃 보며 열매 하나를 챙긴 뒤 농장에서 나왔다.
아직 헌터 협회 의뢰가 남은 상태다.
“아, 전부 녹화됐겠네.”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전부 들어간 헌터캠을 이대로 제출한다면…….
“몹시 귀찮아지겠지.”
그럼 편집해야지.
도현이 헌터캠을 만지려다 180도 달라진 워프에 눈을 깜빡였다.
화창했던 날씨는 어디 가고 밤이 되었다. 나무로 빽빽했던 숲은 태풍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듯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드문드문 느껴지던 몬스터의 기척도 지금은 쥐 죽은 듯했다.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도현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살랑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쳐 가는 고약한 악취에 인상을 썼다.
두리번거리던 두 펫도 코를 급하게 잡고 도현의 곁에 모여들 때였다.
띠링!
‘히든 조건-모든 스네일을 없애라!’를 충족했습니다.
워프가 [스네일의 안식처]에서 [썩은 나무숲]으로 변경됩니다.
워프가 변했다?
‘워프가 변이한다고?’
도현이 멈칫한 사이 워프의 마나 농도가 진해졌다.
무늬만 워프였던 곳이, 그 찰나에 4급으로 탈바꿈했다.
착각이 아닌, 진짜 4등급 워프의 탄생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사사삭, 키릿?!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 속에서 새카만 몬스터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크기만 해도 중형견쯤 되는 토토와 맞먹을 정도였다.
도현은 눈을 깜빡이며 몬스터를 확인했다.
“바…퀴벌레?”
모르달이 펄쩍 뛰었다.
“바퀴벌레 말임까요? 그런, 더러운 몬스… 으악! 도련님, 치워 주심쑈!”
가까이 다가오는 놈들을 피해 도현의 몸을 타고 오르려는 모르달이 귀찮았던 도현은 슬쩍 몸을 뺐다.
“다, 다가오지 마심쑈! 다, 다 죽여 버리겠슴……! 히이익!”
패닉에 빠진 모르달이 굵고 튼실한 꼬리를 흔들었다. 신성한 기운이 맺히며 투명한 방어막이 모르달을 감쌌다.
“헉, 헉, 더럽고 추악한 놈들임다욧! 성수만 있었음, 다 불살라… 히익! 방어막에… 기어오르지 마심쑈! 흐이이익!”
바닥에 엎드려 짧은 손으로 머리까지 감싼 채 소리만 질러 대는 모습에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참… 신의 심부름꾼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도현은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히 새로운 워프가 되었다.
아직 의뢰는커녕, 이런 변화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애초 헌터들이 히든 조건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닐까?
“하피 때문인가?”
스네일을 기르는 몬스터는 하피였으니, 하피를 알게 되더라도 헌터들이 하피를 처리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워프의 변이 시기가 늦어질 테고…….
어쨌든 자신이 그 시기를 당겼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거 삼촌한테 잔소리 듣진 않겠지?”
도현은 세상 심각했다.
아무리 막나간다 해도 삼촌이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꽤 들썩거렸을 거니 말이다.
심각한 고민은 3초를 못 넘겼다.
“아. 몰라, 배 째라 그래.”
자신이 해 준 게 한둘인가.
그것으로 생각을 끝낸 도현은 찜찜한 마음을 털어 내고 이젠 자신의 다리를 잡고 징징대는 허연 족제비를 아니꼽게 쳐다봤다.
“도련님! 도련님! 여기 어딤까요? 그 맛있던 스네일들이 있던 곳 맞슴까요? 썩어 버린 땅 아님까요?”
“썩어 버린 땅?”
말과 함께 번쩍 한 기억이 떠올랐다.
제브라드의 큰 땅덩어리 남쪽 끝.
몬스터조차 살지 않는 곳인데, 그곳은 남쪽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들지 않으며 뜨뜻하고 습한 기온에 모든 게 썩어 버린다.
마족의 기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며 저주받은 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통로가 막혀 버려 썩는 곳이었다.
잠깐.
“거기에 봉인된 게 있었지?”
“예예, 그렇슴다요. 혹시나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마왕 침략 때문에 성검이 묻혀 있슴다요.”
“오…….”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모르달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도련님, 무슨 생각이심까요?”
“여기도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즐거운 생각을 하던 도현의 귀에 깜빡했던 토토의 비명이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