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37. 이게 아닌데 (1)
[6등급 워프, 스네일의 안식처에 입장하셨습니다]
장마가 한창인 날씨를 뚫고 들어온 워프 속 세상은 청초함 그 자체였다.
새벽녘 이슬을 머금은 푸른 잎 위에는 흔히 지구에서 봤던 달팽이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다양한 색을 가졌다는 것과 몬스터이지만 크기가 10센티미터로 작다는 것 정도랄까.
그저 흔한 뒷산에 산책 온 느낌이었다.
‘그냥 저대로 다 담아도 되겠는데?’
솔직히 귀찮은 몸을 이끌고 온 이유가 퀘스트 때문이었던 도현은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돌아가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도현에게 모르달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도련님, 이곳은 대체 뭠니까요?”
며칠 있었다고 보이기 시작한 모르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느껴졌다.
찡그렸다 폈다 하는 게, 자신이 느꼈던 것처럼 워프가 제브라드와 묘하게 닮은 점 때문인가?
도현은 다시 워프를 훑었다.
헌터가 되면 한 팀을 만들어 4~5등급의 워프를 정리하는 게 첫 실전이었다.
한 팀을 구성하는 헌터는 5명인데, 대부분 헌터 회사에 입사하고 선임 헌터들과 함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건 어느 헌터 회사든 한국 헌터 협회에 등록한 헌터들의 의무였다.
반대로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헌터들은 헌터 프리랜서로, 줄여 헌프리로 불렸는데, 5등급에 3년 차 이상의 헌프리를 포함해 한 팀을 이루어 첫 실전을 경험한다.
워프 등급은 6~7등급으로 내려가며 인원수도 3명으로 줄어든다.
당연히 신입을 포함한 머릿수였다.
이 모든 상황에서 동일한 점은 신입은 첫 헌팅부터 2회까지 아이템 분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반발에 예외 조항이 생겨났다.
실력이 충분하다면 튜토리얼을 건너뛸 수 있다는 것.
대신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고, 팀 구성원은 최소 3명이 함께 해야 했다.
그리고 6~7등급 워프에서 헌팅 경험을 5회 이상 쌓아야 5등급 워프 출입이 가능했다.
현재 이런 제약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도현이 유일했다.
3인이라는 최소 팀원을 테이밍한 몬스터로 대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전날 모르달과 토토의 등급을 테스트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었다.
그런 고생 끝에 둘은 5급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등급을 더 높이지 않은 이유는 테이머라는 직업을 가진 헌터는 찾아보기 힘들고, 특히 테이밍한 몬스터들도 강하지 않아서다.
도현은 여길 보나 저길 보나, 나무로 빽빽한 워프를 훑으며 중얼거렸다.
“워프가 2주기를 맞으면 보스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했지.”
1주기의 워프에서는 ‘네임드’가, 2주기의 워프에서는 ‘보스 몬스터’가 출몰한다.
그저 출몰만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주기마다 워프 등급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였다.
헌터가 꼭 알아야 하는 필수 상식 중 하나.
그래서 주기에 들어선 워프는 그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헌터의 등급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다.
도현의 경우 엄마의 굴림이 헌터의 최소 경험으로 둔갑하여 패스되었지만.
그 덕에 헌터 협회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워프 생태계 정보 수집.
2주기를 맞이하며 곧 4등급이 될 워프였기에 협회에서 협력 공고를 냈지만, 나서는 헌터들이 없었다.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
희생을 강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헌터가 몸을 사리는 게 아이러니했으나, 어쨌든 여벌 목숨이 없으니 이해는 됐다.
도현은 투덜대며 헌터웨어에 붙은 헌터캠을 확인했다.
기능은 영상 녹화가 다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헌팅의 증거가 되어 줄 중요한 물건임과 동시에, 워프의 생태계 자료 수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치.
그러니 도현이 할 일은 최대한 워프를 많이, 넓게 둘러보는 것이다.
다른 헌터들에게는 몰라도 도현에게는 산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귀찮았다.
‘그렇다고 안 하기도 뭣하고.’
학교 출석 대신 헌팅을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약한 워프까지 하지현과 차도식이 처리한단 말에 안 움직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퀘스트 때문이기도 했다.
“쯧.”
도현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내키지 않아서일까, 조용한 숲속에 간간이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울음조차도 거슬렸다.
생산 워프와 달리 다양한 몬스터들이 드글드글한 숲.
‘그냥 싹 다 갈아엎어 버려?’
성질대로라면 진작에 엎었겠지만, 워프 하나하나가 귀한 국가 재산이라 하니 소중히 다뤄 줘야 한다나.
“그냥 빨리 끝내고 가자.”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것. 그게 헌팅의 목표였다.
도현은 스네일을 지나 숲 깊숙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주변은 무성한 풀과 나무, 그리고 여기저기에 널린 것은 스네일밖에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숲 깊이 들어갈수록 스네일의 크기가 커졌다.
‘보스 몬스터도 스네일이려나?’
간간이 몬스터들이 보였다. 제브라드에서 지겹게 봤던 고블린이나 늑대, 코볼트, 그리고 곰의 몸뚱이에 새의 머리, 날개처럼 펄럭이는 팔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아울베어까지.
아울베어만 빼면 몸집이 작고 약삭빠른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몬스터들의 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스네일이 더 많긴 했다.
번식력이 좋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다른 몬스터들의 먹이?
‘뭐, 어쨌든 6등급 워프인데.’
새로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라서인지 잔 벌레들이 많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득달같이 달라붙는 모기와 그런 모기를 잡아먹으려는 곤충. 그리고 거미까지.
모르달이 입에 들어간 벌레를 뱉으며 징징댔다.
“퉷퉷, 도련님. 이 벌레들 어찌 못 함까요?”
한마디 하면서 다시 입에 들어간 벌레들을 뱉어 내기 바쁜 모르달과 코와 귓속으로 들어오는 벌레 때문에 연신 재채기를 해 대는 토토.
도현의 주변으로는 벌레들이 다가오지 못했지만, 두 펫이 겪는 기분만큼은 공감했다.
“다 태워 버릴까.”
순간 뱉은 말이지만 도현의 눈에 짜증이 스쳤다.
결정만큼 행동도 빨랐다.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나타난 불덩이들이 벌레를 태우다 못해, 풀과 나무에 옮겨붙으며 타올랐다.
깜짝 놀란 모르달이 소리 질렀다.
“도련님! 무슨 짓임까요! 쫓아내면 되지 웬 불임까요! 숲 다 태우실 작정이심까요?!”
“낏낏낏!”
모르달과 반대로 토토는 박수를 쳤다. 굉장히 괴로웠나 보다.
거머리라도 된 양 도현의 다리를 잡고 말리는 모르달을 털어 던져 버린 도현은 진심을 담아 불을 만들어 냈다.
“조금 길 좀 내겠다는데, 이해해 주겠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워프. 몬스터를 정리해도 어느 순간이면 몬스터의 수는 정리 전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헌팅을 하는 이유다.
이 모습은 마치 일정 시간 뒤면 리젠되는 게임 속 던전을 닮아 있었다.
화르륵! 푸화아아악!
수십 배로 늘어난 불덩이가 숲에 떨어지자마자 풀과 나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폭죽 터지듯 불꽃이 터져 나갔다. 퍼진 불씨가 이제는 수십 그루의 나무를 잡아먹었다.
화르르륵!
울창하던 숲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속 시원하네.”
양손을 탁탁 털며 도현이 웃었다.
그사이 숲에서 튀어나온 모르달이 새카맣게 그을린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도련님! 왜 이러심까요! 이러다 워프핵이 깨져서 워프가 파괴되면 어쩌시려고 그러심까욧!”
“끼끼끼끼낏! 끼끼낏!”
이번엔 토토도 도현의 어깨를 탁탁 치며 나무랐다.
도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뭐 저렇게 아는 게 많아?’
워프를 유지시키는 워프핵. 강혁 삼촌이 신신당부했던 주의점이었다.
도현은 당연하게도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말이다.
잔소리를 해 대는 모르달과 토토를 귀를 후비며 무시한 도현은 불로 인해 자욱하게 깔린 연기를 손으로 흩쳤다.
어느새 주변은 새카맣게 타 버린 나무와 풀이었던 재들이 보였다.
그 위로 그을음이 가득한 동그란 덩어리가 보였다.
“스네일? 불에 구워졌네.”
도현이 주워 살피자 토토가 냉큼 뺏어 들더니 입에 쏙 넣어 버렸다.
“뀟뀟뀟!”
“……맛있다고 하심다요.”
눈을 반짝이며 손 위에서 폴짝대던 토토는 바로 내려가 구워진 스네일을 줍기 시작했다.
미심쩍어하던 모르달도 주워 먹더니 오오, 감탄을 터트렸다.
“우오오! 이렇게 쫄깃쫄깃하고 가득한 육즙이라니! 도련님, 정말 맛있슴다욧!”
“뀟뀟!”
신나게 먹어 대던 토토도 폴짝폴짝 뛰며 먹어 대다 하나를 덥석 쥐더니 도현의 몸을 타고 올라와 입에 넣어 버렸다.
와작와작.
토토의 말대로 씹자마자 육즙이 터지더니 쫄깃하고 탱탱한 육질이 씹혔다.
진한 육즙 사이로 고소하고 달달했다. 특히 그 사이로 퍼지는 과일의 상큼한 맛이 뒷맛을 깔끔하게 만들며 여운을 남겼다.
정말 눈을 번쩍이게 만들 만한 맛이다.
“오…….”
잘 놀라지 않던 도현도 감탄했다.
숯처럼 깔린 재를 들춰 잘 구워진 스네일 하나를 들었다.
잘 털리지 않는 재 사이로 스네일의 껍질 색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진노랑이다.
와드득!
이번에도 육즙과 함께 통통한 살이 씹혔다. 다른 점은, 느껴지는 과일 맛이 달달하고 부드러웠다.
‘바나나랑 비슷한데?’
꿀꺽 삼킨 도현은 또 다른 색의 스네일을 찾았다. 검은색이었다.
‘오, 이건 소고기 맛이 나네.’
그렇게 먹길 10마리.
연두색의 스네일은 사과 맛이, 보라색은 포도, 진한 주황색은 오렌지 등 다양한 맛이 났다.
마지막으로 찾은 색은 선명한 초록색.
이런 색을 띠는 과일이 무엇일까 생각과 기대감으로 입에 넣었다.
“……!”
고추냉이 맛이었다.
“나름 중독성이 있는데…….”
코를 찡그리며 삼킨 도현은 다시 고추냉이 맛 스네일을 찾아 먹으며 아직 숲을 먹어 치우는 불을 살폈다.
처음에 비해 수십 배로 넓어진 불길에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다 통구이가 되거나 겨우 목숨을 건지는 놈들까지 다양했다.
도현은 손에 묻은 재를 탁탁 털고 몸을 일으켰다.
“간식도 잘 먹었겠다. 적당히 길도 냈겠다, 일이나 시작해 볼까.”
도현은 엄마의 의뢰를 떠올렸다.
스네일과 스네일의 자취가 묻은 모든 것들.
“음, 나무를 통째로 가져가면 되나?”
뭐 숲에 널린 게 나무니 일일이 채집을 하는 것보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나무가 통째로 들어가나?”
인벤토리에서 엄마가 수거할 때 쓰라며 준 백팩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둥둥둥둥!
낯익은 북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어? 설마……?”
[스네일의 안식처의 지배자 스네일 사육사 하피가 등장합니다!]
낭랑한 여자 목소리가 귀에 꽂히기 무섭게.
끼에에에에엑!
지진이 난 듯 숲이 진동했다. 아직 꺼지지 않았던 불길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바람에 푸확 하고 자취를 감췄다.
갑작스럽게 엄습한 적막감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도현과 두 펫을 덮쳤다.
쿠우웅―!
사람 형체의 몬스터가 지면에 내려앉았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날개, 맹금류의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몬스터.
“하…피임다요!”
모르달의 당황스러운 외침에 하피는 더 우렁찬 괴성을 질렀다.
“캬아아악!”
도현의 눈이 하피에게 꽂혔다.
‘하피… 수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