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36화 (36/200)

# 36

36. 별것 아닌데 (2)

자신도 아이템을 달라며 징징대던 강혁에게도 적당한 무기를 던져 주고서야 풀려난 도현은, 다른 뷔페 룸으로 옮기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학교 출석을 해결했다 싶으니 생각지도 못한 방문자 예고가 날아왔고, 토토와 모르달의 신분 좀 만들자 하니, 덤터기로 세 사람까지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그 도중에 차도식은 묘하게 맛이 갔다.

“설마, 지구에서도 우도현교가 만들어지겠어.”

찜찜했지만, 지구는 제브라드가 아니니까 그럴 리는 없었다.

찝찝함을 애써 무시한 도현은 자신을 부담스럽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모르달을 보고 물었다.

“왜?”

“이제 정말 먹슴까요?”

아아. 밥 먹으러 왔다가 휘말렸더니 벌써 두 시간이 지나 버렸네.

그래. 도현의 짧은 대답이 나오자마자 테이블 위의 토토와 모르달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 댔다.

음식을 가지러 일어나려고 하니 노크가 들렸다. 뷔페 직원이었다.

“실례합니다, 음식 세팅을 해도 되겠습니까?”

‘참, 삼촌이 그냥 앉아 있으면 된다 했었지.’

도현만 모르지 협회만큼은 현재 새로운 3등급 헌터로 시끌벅적했다.

공개해도 난리 날 판국에 비공식으로 진행되었고,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니 모였다 하면 하나같이 3급 헌터에 대한 이야기밖에 안 나왔다.

‘그게 아니더라도 한동안 협회에 오지 말고.’

강혁의 당부 아닌 당부를 듣고 나름 신경 써 줬다는 것에 도현은 잠시 고마움을 느꼈다.

마침 마지막 접시를 내려놓은 직원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남기고 나갔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메뉴를 고르시고 호출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사이 먼저 음식을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지 못한 토토와 모르달이었다.

토토는 정신없이 이 접시, 저 접시를 오가며 손에 쥔 음식을 꿀떡꿀떡 삼키기 바빴고, 모르달은 냅킨을 목에 두른 채 우아하게 나이프로 고기를 썰고 입에 넣어 씹었다. 그럼에도 둘의 속도는 같았다.

대조적인 모습에 도현은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 것도 모른 채 고기를 씹으며 맛을 음미하던 모르달은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다.

“우오오오! 도련니임! 대체, 이건 대체……!”

“…….”

‘너무 맛있슴다요!’, ‘소인처럼 운 좋은 거대 흰족제비는 없을 검니다요!’, ‘지구라는 차원은 축복받은 차원임다요!’라며 쉬지 않고 극찬을 해 댔다.

오히려 조용한 건 토토였다. 끼낏대는 것 없이 오직 먹기만 했다.

초롱초롱하다 못해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눈빛이나 거의 씹지 않고 삼킬 때가 많아 좀 걱정이긴 하지만… 한창 클 때니까 괜찮겠지.

여러모로 두 놈 다 무섭게 접시를 비우고 있다.

도현은 빠르게 사라져 가는 음식들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러다간 자신 앞에 놓인 접시마저 빼앗길 것 같은 느낌.

도현은 서둘러 포크와 나이프를 잡았다.

셋은 그렇게 식탁 위의 음식 쟁탈전을 시작했다.

***

어둠이 내려앉은 뉴욕 맨해튼. 환한 불빛들이 더없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도시였다.

그 중심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조용히 도시 야경을 눈에 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2미터의 거구에 진중하면서 다가가기 힘든 푸른 눈, 아무렇게나 날리는 잿빛 단발머리는 무척이나 언밸런스했다.

사내, 리암 루카스는 방금 받은 보고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차도식 그놈이 2급이라고?”

“예.”

리암 루카스 등 뒤로 한 발 떨어져 있는 여비서, 아바는 작게 ‘예’ 하고 대답했다.

“거기다 3급이 또 나왔는데, 누군지 모른다?”

“한국 협회장이 직접 지시했다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아바는 잔뜩 긴장한 채 긴 금발 한쪽을 귀 뒤로 넘겼다.

유일무이한 1급 헌터 노아 이선이 행방불명되고 1년 반.

지구의 가장 강력한 나라로 손꼽혔던 미국은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헌터 육성에 집중했다.

하지만 각성자가 판을 쳐도 헌터는 10%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

해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워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게다가.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워프는 헌터들의 성장보단 그 수만 갉아먹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저 반쪽짜리 나라에만 생산 워프가 모인 것인지.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헌터가 많은 나라. 생산 워프가 많아 삶에 지장도 없는 나라. 거기다 유일하게 2급 헌터가 협회장인 나라.

그리고 3급의 머릿수는 이쪽이 10배 이상 많지만, 1 대 1 대전에서는 이상하게도 차도식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랬던 놈이 2급이 된 것도 열불이 나는데, 새로운 3급 헌터까지?

“…….”

곧 3급 헌터 30명 양성이라는 세계적 뉴스로 미국의 저력을 선보이려 했던 그의 계획은 이미 저 쓰레기통에 처박힌 상태였다.

까득.

이를 갈던 리암 루카스는 아바에게 말을 툭 던졌다.

“실전이군.”

아바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눈을 굳게 감았다 떴다.

“예.”

“기대는 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라.”

그녀는 그의 등을 향해 묵례한 뒤 대답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도현은 오랜만에 부모님 회사인 블랙홀에 들렀다.

“아들, 얘네들이 네 테이밍 몬스터란 말이야?”

“안녕하심까요, 마님. 소인, 도련님을 모시고 있는 거대 흰족제비족 모르달이라 함다요. 여기, 이분은 원숭이족 토토 님이심다요!”

“끼낏!”

꺄악, 작게 비명을 지르며 토토와 모르달을 주무르는 엄마, 임혜정은 아들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우리 아들 능력도 좋아, 엄마도 하나 구해 주면 안 되니?”

모르달을 준다면 사양 않고 가져갈 눈치였다. 순간 도현은 모르달을 주겠다고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만능 일꾼.

마음에 안 들지만, 모르달은 의외로 고급 일꾼이었다.

청소와 요리. 그리고 육아까지.

토토 돌보기와 살림은 첫날 겪고 알았지만, 그저께 뷔페에 다녀오고서 요리 실력이 폭발했다.

실습은 몰라도, 지식만으로는 뷔페의 모든 음식을 꿸 정도.

예정대로라면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모르달이 만든 음식을 시식할 생각이었지만…….

늘 생각대로 하루가 굴러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들, 이렇게 어린애들 데리고 워프에 가는 거야?”

“뭐, 6등급 워프인데. 혼자도 아니고.”

‘사실 혼자 가지만.’

2주기라는 말도 쏙 뺐다.

그래도 걱정인지, 엄마는 작게 투덜거렸다.

“테이머라 몬스터들이 사냥한다지만, 그래도 조심해. 얘네도 첫 던전이잖아.”

각성자들이 갖는 정보창, 헌터들은 그 정보창에 직업이라는 게 표기되어 있었다.

도현은 모두의 기대감을 깨고 ‘농부’라는 직업을 확인했다. 그래서 당황한 세 사람이 테이머로 입을 맞춘 것이다.

그 입김이 아빠인 우대성에게 전해졌고, 다시 엄마 임혜정에게도 알려졌다.

도현은 적당히 걸러 들으며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을 말했다.

“근데 뭐가 필요하다고 했어?”

“여기.”

그녀가 새끼손톱 크기의 USB를 건넸다.

몬스터 처리를 총괄하는 우대성과 달리 임혜정은 블랙홀의 대표 이사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인기가 높은 사업 중 하나가 화장품이었는데, 마침 그 재료를 얻을 수 있는 워프에 도현이 가게 된 것이다.

도현이 세 사람에게 들었던 대로 휴대폰에 USB를 끼우자 휴대폰이 정보를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헌터와 헌터에 관련된 사업에 사용되는 마나석 USB였다.

도현은 휴대폰 액정에 뜬 수백 개의 목록을 훑기 시작했다.

목록 중 하나를 터치하면 해당 품목의 사진과 정보까지 볼 수 있는 상세 정보창도 떴다.

꽤 유용하지만 단점은 정말 비싸다는 것.

하지만 블랙홀에서는 이런 건 단점에 속하지도 않았다.

‘스네일의 체액, 껍질, 점액…….’

모든 목록을 훑은 도현은 간단히 결론 냈다.

‘워프를 탈탈 털어 오면 되겠구나.’

이번에 가게 된 워프, 스네일의 안식처는 그냥 딱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었다.

달팽이 사육장.

모든 게 달팽이에 의한 달팽이를 위한 워프였다.

본래라면 몬스터 워프로 분류됐겠지만, 한때 불었던 달팽이 화장품 붐이 이 워프로 인해 다시 불이 붙었다.

바르기만 하면 최소 5년, 많게는 10년도 젊어진다는 젊음의 크림.

그 효과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거기다 몬스터라서인지, 마시는 포션은 몸속을 젊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물론 투자 대비 효과는 미미했지만 어쨌든 젊어진다는 건 누구나 환영할 일이었다.

임혜정은 목록을 훑는 도현을 보고 걱정과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아들, 정말 괜찮겠어? 매니저도 없는데…….”

도현의 담당인 주 팀장은 현재 부재중이었다.

하지현과 차도식이 어제 3급 워프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그 빈자리를 임시로 메우려고 했지만 도현이 거절했다.

“별거 있나 뭐. 경험해 봤으니 걱정하지 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의 굴림으로 6개의 워프를 다녀왔고, 리포트 위크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워프 7개. 엄청난 업적이기도 했고, 워프의 등급도 높았다.

그렇기에 웬만한 헌터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게 이력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땐 매니저로 간 거잖아.”

표면적으로 엄마에게 올린 보고는 그랬다.

‘어째 엄마한테만 숨기는 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일이 그렇게 돌아갔다.

엄마에게 알려졌다간 걱정으로 도현을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지만, 도현의 생각은 좀 달랐다.

실제로 아빠보다 엄마가 더 강했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이 더 강하다고 알고 있었다.

아빠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엄마의 마나가 표면적으로 적게 느껴져서다.

거기다 갱신 안 한 헌터증도 한몫했고, 테스트 이후 1년도 채 안 되어 헌터를 그만두고 블랙홀에 뛰어들어서이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엄만 헌터증 색이 뭐려나.’

이번에 가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헌터증의 색이었다.

색이 말하는 건 단순했다.

같은 등급의 강함의 척도.

그린, 블루, 레드, 블랙.

보통 블랙을 제외하고 3단계로 나누는데, 블랙은 이미 그 단계를 넘겼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현은 3급 헌터가 아니라 그 위라는 뜻.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도현을 더 숨기는 이유이기도 했다.

도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을 딱히 말리지 않는 엄마의 의중을 벌써 눈치챈 상태였다.

엄하지만 다정한 엄마. 친구 같은 엄마. 자신을 존중해 주는 엄마.

늘 떠받들어 주는 아빠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엄마가 원하는 만큼 뽑아 올게.”

워프를 모르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그저 심부름이라도 가는 듯한 대화였다.

시원시원한 도현의 말에 엄마는 커다란 백팩을 건네며 상큼하게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 아들.”

아빠가 봤다면 자신보다 엄마와 붕어빵이냐며 투덜댔을 미소가 마주 보는 두 사람에게 걸렸다.

용무는 끝났으니 이제 가 볼까?

더 나눌 얘기도 없으니 돌아서 나가려는 도현을 임혜정이 불렀다.

“아들, 엄마도 몬스터 한 마리만!”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못 들은 척 문을 열고 나가자 서둘러 토토와 모르달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그렇게 도현은 헌터가 되고 정식으로, 홀로 워프에 발자국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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