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35화 (35/200)

# 35

35. 별것 아닌데(1)

하지현은 어렸을 아빠를 잃은 사고로 인해 심각하게 고민하면 우울해지며 우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그럴 때면 어디선가 나타난 도현이 말했다.

‘하찌롱, 찔찔 짜냐?’

‘아―니거든?!’

코를 크흡 하고 들이마시며 눈을 쓱쓱 닦고 일어나면 도현은 아무것도 못 본 척 성의 없는 얼굴로 손을 잡아끌었다.

‘맛난 거 먹으러 가자.’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단것만 사 준다든지,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는 걸 사 준다든지,

가끔 도현이 심통 나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문제를 가져와 모르겠다며 풀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고민은 사라지고 함께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봐, 별것 아니잖아.’

그래. 그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됐는지.

그런 네가 행방불명되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상이 변하고 헌터라는 홀로서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현씨, 거 봐요, 별것 아니죠?’

페어로 팀을 짜고 차도식 헌터와의 첫 헌팅.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건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가슴을 파고든 사람.

하지현의 볼을 타고 떨어진 눈물이 차도식 얼굴에 떨어졌다.

차도식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얼굴 위로 떨어지는 연인의 눈물이 제 눈물이 되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뷔페 룸에 강혁과 셋이 앉아 식사했던 건 기억이 났다.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늘 마음에 들지 않은 협회장, 강혁 아저씨의 주저리를 들으며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건 흔한 일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도현이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상황은 이상해졌다.

‘알았으니까, 그만 하세요.’

결국 싸가지 없게 한마디 하고 말았고, 기가 막히게 우도현이 룸으로 들어왔다.

‘함께 들어 온 외국인 남자. 아니, 변신술을 쓴 커다란 흰 족제비가 떠들어댔지.’

다른 차원에서 500년이나 살다 왔다고.

이후의 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자신보다 잘난 놈에 대한 열등감.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고,

‘박살이 났지.’

한 방에 제 몸 같은 대검 부서지고, 자신도 나가떨어졌다.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것까지 확인했고……..

‘어?’

몸이?

차도식은 덜덜 떨리는 양손으로 몸을 더듬었다.

상처나 심각한 부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워지지 않는 흉터까지 말끔해졌고 기운이 넘쳐흘렀다.

‘환상…? 아니, 마법인가…….’

아니다. 몸을 타고 울렸던 찢기는 근육과 부서지는 뼈 소리가 현실이란 걸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살려준 것 역시.

‘우도현…….’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로.

아내에게 한 대 맞은 고통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차도식은 부끄러움에 몸부림쳤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열등감이 자신을 비웃듯 이제는 이성까지 잡아 먹히다니.

‘우도현이 아니라 나…였나.’

허탈감과 자괴감이 함께 밀려왔다. 거기다 저 때문에 슬픔에 빠진 아내까지.

‘어떡하지……?’

정신이 들고나니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백지장이 된 머릿속엔 그저 자신을 보며 눈물범벅이 된 아내만이 보였고,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비수가 되어 자신의 가슴을 푹푹 찔렀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또 찔찔 짠다. 하찌롱.”

도현의 말에 하지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찌롱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그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벌떡 일어났다.

어버버 거리는 차도식을 슬쩍 차가운 눈으로 흘기자, 차도식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하지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현이 낮게 말했다.

“늦었어.”

“마눌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미천한 놈이 정신을 놓아버려서…….”

하지현은 검지로 도현을 가리켰다. 차도식의 고개가 검지를 따라갔다.

“사과는 도현이한테 해야지.”

차도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후다닥 달려가 도현이 앉은 소파 옆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우도현 헌터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 빌어먹을 성격을 못 고쳐서, 폐를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도현의 얼굴은 떨떠름했다.

강혁은 짐짓 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도현을 향한 눈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도현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딱히 화가 나지도 않았고, 차도식의 공격을 받아준 건 테스트를 위해서였다.

자신을 어떻게든 써먹으려는 강혁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발악이랄까.

이제 첫걸음이지만.

“매부 일어나요. 사내새끼들이 빡돌면 치고받고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뭘 심각하게 그래요.”

차도식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도현을 바라봤다.

옆에서 강혁이 거들었다.

“그으래, 사내란 자고로 싸우면서 우정이 깊어지는 거지! 크흠.”

차도식은 그런 둘을 흔들리는 눈으로 번갈아 봤다.

“풉!”

하지현은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도현과 강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못 맞추는 차도식을 보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저렇게 맹한 구석이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나.

분위기가 풀어지고, 차도식과 하지현이 긴 소파에 앉자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하지현에게 툭 던졌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 선물.”

붉은 가죽 장갑 한 쌍과 민무늬 은빛 팔찌 두 개.

무기 착용은 못 하고 팔찌와 액세서리로 무기의 빈자리를 메우는 그녀의 모습을 봤던 도현이 꺼낸 것이다.

“이건…….”

“꺄악, 뭐, 뭐, 뭐야? 레드드래곤의 브레스 장갑?! 그것도 유일 아이템? 옵션도 미쳤어! 싸가지, 대체 어디서 난 거야?!”

“여, 여보, 이 팔찌도 봐… 이런 능력을 가진 아이템이 있었어……?”

‘설명할 필요도 없겠네.’

귀찮음을 덜어서 좋긴 한데, 아이템 정보창이 뜬다니.

‘이게 대체 현실이야, 게임이야?’

이젠 구분 짓는 게 무의미할 정도라는 생각이 든 도현은 입을 쩝 다셨다.

그러는 사이 마지막으로 강혁이 아이템을 확인하고 넋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

“조카야, 이게 뭐냐? 이런 아이템이 존재한다고……?”

아직도 셋은 두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레드드래곤의 브레스 장갑(유일)

레드드래곤의 가죽으로 만든 반장갑.

손등에는 다양한 주문이 각인된 미스릴을 박았다.

공격력 1,000

마나 2,000

정신력 100

옵션: 드래곤 피어 면역(MAX), 마나 회복(SS), 불 속성에 대한 내성(S)

연인의 팔찌(특수)

언제든, 어디서든, 서로를 부를 수 있다.(주 1회)

한 번 착용 시 뺄 수 없다.

단, 변고에 의해 자동으로 벗겨질 수 있다.

음, 없는 물건이구나.

아무래도 아직 지구에는 구할 수 없는 물건임은 분명했다.

도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것 아닌데요, 뭘.”

정말 별것 아니었다.

친우, 페론드가 수명이 다해 눈감은 뒤 어쩌다 흘러 들어간 게 드래곤의 레어였다.

거기서 알게 된 드래곤과 함께 유희를 즐기다 만든 게 저 장갑이다.

‘드래곤이 드래곤 슬레이어인 것도 정상은 아니었지.’

미친 레드드래곤이 있었다.

마왕이 되기 위해 세상을 마계에 떨어트리려고 했던 그 드래곤은, 드래곤 로드의 ‘영면’이란 결단과 함께 유희 중이던 도현과 드래곤들이 처치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용사 이야기로 탈바꿈되어 아직도 제브라드에 전설로 내려오고 있었다.

영면에 든 레드드래곤의 사체는 도현이 갖게 되었고, 유희에 있어 좋은 영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은빛 팔찌.

이 팔찌는 페론드와 함께 발견한 던전에서 얻은 것이다.

페론드가 사용했지만, 그가 죽고 도현이 수거했다. 이후 400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 거다.

차원은 달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도현 주위에 연인은 하지현과 차도식밖에 없었으니, 축하의 의미로 준 건데.

‘지구에는 아직 이런 수준의 아이템이 없다고?’

이거 심각한 거 아닌가?

고민하던 도현은 금방 생각을 지웠다.

이런 일에 신경 쓰려고 돌아온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세 사람 다 격하게 반응하자 도현이 당황했다.

‘더 좋은 아이템을 꺼냈다간 난리 나겠어.’

절대 꺼내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하는데 눈앞에 던져준 두 물건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하지현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받을 수 없어.”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차도식 때문에 염치가 없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받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마음만 받을게.”

도현은 조금 짜증이 났다. 평소 잘 따지지도 않던 배분을 들먹였다.

“야, 돈 많은 오빠가 여동생한테 선물 하나 못 해 주냐?”

붉어진 얼굴로 하지현이 버럭 소릴 질렀다.

“나도 돈 있거든?!”

도현이 피식 웃었다.

“얼마나 있는데?”

“내가 헌터 생활 6년 차야! 죽을 때까지 팍팍 써도 다 못 쓴다고!”

씩씩대며 말하는 하지현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빛으로 도발하며 ‘넌?’이라 묻는다.

도현은 손가락을 접었다가 검지만 폈다. 그 모습에 하지현이 프흐흐 웃었다.

“푸훗, 100억? 헹, 그 정돈 헌터한테 푼돈이거든?”

도현은 덤덤한 얼굴로 검지를 흔들었다.

“천.”

“천……?”

“경쯤?”

천억도 아니고, 천조도 아니고, 경.

그저 수의 단위 정도로만 알고 있는 그 ‘경’.

“아이템이란 것도 따지면 수천 배는 껌값이지.”

깜빡, 깜빡.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하지현이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높였다.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

도현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귀를 후볐다.

하지현이 씩씩대며 몸을 부르르 떨자, 강혁이 한마디 했다.

“지현아, 이럴 땐 그냥 땡큐! 하고 받는 거다.”

“…….”

하지현은 꾹 다문 입술을 삐죽거렸다.

시간이 지났다지만, 달라진 게 없는 그녀의 모습에 도현은 웃음이 났다.

‘아니지, 달라졌지.’

성질이 좀 더러워진 거 같긴 한데, 헌터 일을 한다고 하니까 뭐 그 정도야 흔한 일 일 거고.

그 변화를 준 건 아무래도…….

도현은 하지현 옆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차도식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독사에게 들킨 쥐처럼 바짝 얼어붙는다.

‘무기 깨 먹었지.’

고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으니…….

도현은 다시 인벤토리에 손을 넣고 휘저으며 차도식에게 물었다.

“매부, 좀 커도 괜찮죠?”

“예, 예? 아니, 으응?”

아직도 적응 못 하는 매부를 보자 장난기가 발동한 도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잡힌 두툼한 손잡이를 쥐고 천천히 꺼냈다.

손잡이 끝이 뾰족한 새카만 봉 하나가 딸려 나오더니, 도현이 팔을 크게 휘두르며 빠르게 빼냈다.

―――!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감각에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전신을 드러낸 대검은 180센티미터의 도현과 엇비슷할 정도로 컸다.

“대… 대검?”

차도식의 목소리에 작은 희열이 느껴졌다.

먹칠한 듯 온통 까만 대검. 손잡이 부분만 해도 30센티미터는 되었다.

손잡이부터 크로스 가드까지 금색으로 번쩍이는 검. 그 위로 날렵하게 쭉 뻗은 양날의 검날이 은은하게 검은빛을 발했다.

칼날 끝부터 파인 금빛 골조를 따라 2/3 지점에는 선명하게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사람 눈알 같은 핏빛 보석.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요염하게 반짝였다.

“…….”

차도식은 잠깐 스치듯 훑었음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

침을 꿀꺽 삼켰다.

도현은 대검을 바닥에 박고 삐딱하게 섰다.

모두가 넋을 잃은 가운데 도현은 점심 메뉴를 말하듯 입을 뗐다.

“보다시피, 좀 커요. 전 주인이 한 덩치 해서.”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칼날을 잡고 손잡이 부분을 차도식에게 건넸다.

차도식은 홀린 것처럼 양손으로 대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묵직할 거라 생각했던 대검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작게 허공을 세로로 베었다. 느꼈던 무게와 달리 휘두른 대검은 손에 착 감기며 미끄러지듯 허공을 갈랐다.

“……!”

공기 저항조차 느껴지지 않는 절삭력.

꼬리뼈를 타고 소름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차도식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미쳤다. 미쳤어!

“정보창.”

아홉 번째 마왕 ‘어둠’의 ‘심장’(유일)

마왕 어둠이 자신의 심장으로 만들어 낸 대검. 그의 권능이 그대로 녹아든 ‘심장’은 밤보다 어둡고 피처럼 뜨겁다.

공격력 ?

옵션: 증폭(S), 어둠의 왕(SS), 심장의 주인(SS)

‘무슨 설명이…….’

이렇게 불친절할 수 있을까.

몇 번을 읽었음에도 정보창에서 눈을 못 떼는 차도식을 향해 도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하얀빛 덩어리가 빠르게 차도식을 향해 날아갔다. 움찔 놀란 차도식이 본능적으로 대검을 내리그었다.

두부처럼 반으로 갈린 빛 덩어리는 그대로 폭발했다.

콰과과광!

“으헉!”

“꺄악!”

힘의 여파가 뚜렷한 동심원을 그리며 룸을 흔들었다. 놀란 강혁과 하지현이 몸을 낮췄지만 굴러 넘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룸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

모든 게 말짱한 이유는 도현이 먼저 손을 써 두었기 때문이다.

차도식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이게?”

자신이 아무리 온 힘을 쏟아도 이런 파괴력은 나올 턱이 없었다.

적어도 3배 이상의 힘.

“증폭…….”

대검의 옵션 중 증폭을 의심해 봤다.

‘아니야, 뭔가 더…….’

깨어났을 때 어렴풋이 느꼈던 감각이 떠올랐다. 마치 구름 위를 뛰어다닐 만큼 가벼웠다.

‘그리고 힘도…….’

구석구석 넘쳐 나는 힘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도현이 강혁에게 말했다.

“삼촌, 같은 등급이 생겼으니 안 심심하겠네요.”

둘은 서로를 보며 눈이 커졌다.

“같은 등급……?”

“설마, 이놈이 2급이라고?!”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도식에게 마지막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소환 해제라고 생각하면 대검은 사라져요.”

차도식은 2급이라고 중얼대는 강혁을 무시하고 도현의 말대로 대검을 소환 해제했다.

검은 먼지를 흩날리며 검이 사라졌다. 허공에서 떨어진 붉은 보석이 차도식의 손등에 녹아들었다.

엄지 한 마디 크기의 붉은 보석이 튀어나와 요염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손등에 박힌 보석을 연신 문질렀지만, 그 어떤 감촉도 보석의 것이 아니었다.

따뜻했다. 사람의 온도와 다를 바가 없을 만큼. 그리고…….

두근!

맥박이 느껴졌다.

‘보석에 맥박이……?’

꿈결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빨려 들어가듯 현실로 바뀐 느낌이었다.

차도식은 갑작스럽게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현재 지구에 밝혀진 모든 아이템을 갖다 비교한다 한들 도현이 건넨 세 개의 아이템에 비하면 쓰레기로 보일 정도였다.

상상 이상의 가치를 가진 아이템.

신의 무구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귀한 아이템을…….’

차도식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열등감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을 만들었고, 목숨이라 할 수 있는 대검까지 부숴 먹었다.

모든 게 죗값이라 생각했다.

이번 일을 뼈에 새겨 두고두고 곱씹으며 모든 걸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랬는데…….

차도식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들어 도현을 봤다.

늘 짓는 덤덤한 표정.

나른하면서도 귀찮음이 가득 담긴 눈.

좀 전까지만 해도 저 얼굴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미치도록 싫었는데.

너무나 평범했다.

아니, 평범을 넘어 게으름이 물든 얼굴인데.

마주한 자신까지 평온해지며 모든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차라리 화가 풀릴 때까지 자신을 쥐어 패 줬으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한심하다.’

차도식은 복잡한 마음으로 도현 앞에 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처남님, 아니 우도현 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깨닫게 해 주셔서.

그러니 남은 목숨도 이 힘도.

전부 우도현 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차도식은 그렇게 깊게 맹세했다.

다시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이것 참…….’

도현은 난감했다. 제브라드인들이 도현교를 만들고 추앙했을 때 느꼈던 황당함과 두통, 껄끄러운 마음을 다시 느꼈다.

이러지 말라고 말하는 도현과 그 앞에 부복한 차도식을 빤히 보던 강혁이 혼자 중얼거렸다.

“존나 부럽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