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30화 (30/200)

# 30

30. 그렇고 그런 것

딸랑딸랑!

“이모님, 저희 왔습니다!”

김승재가 활기차게 문을 열며 가게에 들어섰다. 이어서 이민준, 시민형, 고창하. 그리고 도현이 들어왔다.

“어서 와. 헌사과 발표 날이었구나? 오늘도 정식?”

“아뇨, 오늘은 전골 주세요!”

“양 많이 주세요!”

“그래, 고생했으니 잘 먹어야지. 좀 기다려.”

익숙하게 이민준과 시민형이 주문을 하고 모두 좌석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이른 점심이었지만, 도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밥 한 끼를 사러 온 것이다.

김승재가 물을 따르고 고창하는 수저를 놓았다. 도현은 그것을 흘려 보면서 가게 내부를 훑기에 여념이 없었다.

4인 테이블 4개가 전부인 가게.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시멘트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바닥에 조리실과 홀을 스테인리스 선반으로 구분한 게 다였다.

물론 카운터도 스테인리스 선반이다.

훈민정음이 어지럽게 적힌 벽지가 발린 벽에는 달력과 시계뿐이었다.

왠지 엄마, 아빠가 찾을 것 같은 비주얼이다.

두리번대는 도현을 보고 이민준이 키득거렸다.

“옛날 식당 같아서 놀랐지? 그래도 여기 꽤 소문난 맛집이라고?”

김승재가 추임새를 넣었다.

“이모님 솜씨가 진짜 쥑이거든!”

“야, 늬들 행님한테 자꾸 반말할래?”

시민형이 두 사람에게 꼽을 주자 둘은 어이없는 얼굴로 시민형을 바라봤다.

“야, 넌 니네 형한테 존댓말 하냐?”

“미쳤어? 그거랑 이거랑 같냐?”

“당연한걸! 블랙은 영원한 블랙이다!”

도현을 지칭하는 ‘블랙’.

레인저물에 심취한 이민준이 도현을 보고 스페셜 레인저인 ‘블랙’이라 칭한 이후, 모두가 어이없어했지만 무언으로 수긍했었다.

도현도 딱히 거부감이 든다기보단 넷의 조합이 웃겨 신경 쓰지 않았달까.

도현의 시선이 한숨 쉬는 고창하와 마주쳤다.

“덜떨어진 애들이라 미안하다.”

이민준이 버럭 했다.

“곱창 너!”

시민형도 대놓고 불쾌해했다.

“쟤들이랑 같은 취급은 너무하잖아!”

이어 이민준이 정말 실망한 투로 말했다.

“레드! 리더로서 실격이다!”

고창하는 더 깊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 모습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넷이 있으면 심심하진 않겠어.”

“악연이지.”

고창하의 즉각적인 대답에 다시 왁자지껄했다. 가게에 온통 셋의 목소리로 가득 차 귀가 따가울 정도였지만 도현은 그 소란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름 즐거웠다.

‘제브라드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내 학교 생활도 이랬을까?’

그랬더라면…….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대학을 갔을 거다. 그리고 저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청춘을 즐겼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친구 놈들이 진하게 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강한이랑 근석이도 찾아봐야 하는데.’

많이 변했겠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고창하가 운을 띄웠다.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내치지 않아서. 평생 구경도 못 할 상급 워프를 탐사한 것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부잣집 2세들은 제멋대로에 막무가내가 표준이었다.

그런 학생들은 리포트 위크가 되면 돈으로 발랐다.

5등급 정도의 워프를 가진 헌터 회사에 정식 의뢰를 하는 것.

그리고 전문 탐사대를 불러 탐사를 하거나, 이도 저도 안 된다면 탐사 보고서를 돈을 주고 사서 제출했을 거다.

그랬다면 학점은 완벽했겠지만 이런 보람을 느끼지는 못했겠지.

그렇게 묻어갈 수도 있었지만, 도현은 달랐다.

4등급 워프. 그것도 협회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곳이었다.

헌터도 화려했다. 감히 꿈도 못 꿀 국내의 톱 헌터 차도식과 하지현이 함께했다.

거기다 해외에서도 모셔 가려고 하는 워프 연구소 1팀 진미경 소장까지.

화려한 멤버가 헌사과 리포트로 모일 줄이야…….

헌팅과 탐사가 끝난 이후에도 진미경 소장은 헌사과 학생들의 리포트를 봐주며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런 버프를 받았으니 리포트는 당연하게도 A+, 참석한 전공 교수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은 것도 처음 겪은 일이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향했을 때의 쾌감이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람과 함께 뿌듯함이 몰려왔다.

도현은 회상으로 울컥하는 고창하를 보며 턱을 긁적였다.

각기 다른 4명. 시끄럽고 제멋대로라지만 그 안엔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리포트 위크를 잊어 먹고 있었지만, 잘해 내기까지.

‘뭐든 맡기면 잘할 것 같은데.’

학업을 아예 배제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리포트 위크 같은 조별 과제는 귀찮음의 덩어리였다.

도현은 곰곰이 생각하다 넷에게 물었다.

“이런 과제가 졸업까지 이어져?”

“그렇지. 형태는 다르지만.”

고창하의 대답과 함께 의문 가득한 네 쌍의 시선이 도현을 향했다.

도현은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다 말했다.

“쭉 한 팀으로 못 가려나? 4년 동안.”

“뭐……?”

벙찐 고창하 옆으로 시민형의 안색이 환해졌다가 걱정스럽게 변했다.

“학과장이 허락할까?”

시민형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김승재와 이민준이 흥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우오오! 미쳤다! 미쳤어! 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인연!”

“역시 블랙! 헌사과 특공대! 길이길이 빛나리!”

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제일 정상적인 고창하를 향해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해 볼게.”

“자, 음식 나왔어요!”

타이밍 좋게 아주머니가 냄비를 들고 나타났다. 양손으로 쥔 냄비는 높이가 낮고 넓게 퍼진 전골냄비였다.

냄비가 테이블 중앙의 불판에 올라가고 가스가 점화됐다.

“끓으면 적당히 잘라서 먹으면 돼.”

집게와 가위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이어서 소스와 밑반찬과 밥이, 전골을 덜어 먹을 그릇과 국자가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모락모락 김을 내는 전골을 보며 도현이 물었다.

“이게 뭐지?”

시민형이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밀푀유나베라고 뜻이 천 개의 잎사귀라나? 그렇다더라.”

기다렸다는 듯이 이민준이 빈정댔다.

“오올, 유식한 척은.”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거든?”

둘의 투닥거림은 도현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요리 이름을 되뇌며 전골의 재료를 살피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배추와 깻잎, 얇은 소고기가 켜켜이 쌓여 전골냄비를 꽉 채우고 있었다.

표고버섯을 기준으로 새송이버섯, 느타리버섯, 팽이버섯이 냄비 중심에 세팅되어 하나의 꽃처럼 보였다.

보는 재미도 있고, 음식의 기대감도 끌어내는 요리다. 특히 유명한 호텔이나 가게에 꿀리지 않을 정도라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렇게 재료를 살피고 있으니 보글보글 끓는 김을 따라 진한 국물의 향이 침샘을 자극했다.

“그릇 줘 봐.”

버섯과 채소, 고기를 먹기 좋게 자른 고창하가 국자를 들고 도현의 그릇에 크게 한 국자 뜨고 그릇을 되돌려 주었다.

어린아이처럼 기다리던 도현은 그릇을 받자마자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술 떠먹었다.

뜨끈한 육수에서 익숙한 멸치 육수의 맛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소고기에서 우러 나온 고기 육즙이 적절하게 섞이며 감칠맛을 냈다.

맛을 음미하던 도현은 서둘러 젓가락을 들었다.

채소와 고기를 적당히 집어 입에 쏙 넣었다.

“하아…….”

순간 불덩이를 삼킨 듯 입 안이 익어 버릴 것 같았다.

혀와 입천장은 이미 데어 붓다 못해 따끔거렸지만, 이 뜨끈한 맛이 좋아 포기하기 아쉬웠다.

살캉살캉.

뜨거운 김을 뱉으며 천천히 채소를 씹자, 달큼한 맛과 아삭거리는 식감이 느껴졌다. 이어 채소 사이의 소고기가 씹혔다. 오래 끓인 탓에 질길 줄 알았던 소고기는 얇은 만큼 부드럽게 씹히며 소고기의 육즙을 뱉어 냈다.

씹는 속도가 빨라졌다.

추임새처럼 씹히는 쫄깃한 버섯이 2차로 도현을 흔들었다.

꿀꺽.

‘맛있다!’

깊고 진한 육수의 맛도 좋았지만, 적당히 익은 채소와 어우러지는 소고기가 채소의 아쉬운 부분들 채워 주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이 모든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는 거다.

도현은 앞에 놓인 그릇을 봤다. 남은 거라고는 자잘한 건더기와 국물밖에 없었다.

한 김 가신 국물은 따뜻하지만 먹기 딱 좋은 온도로 식은 상태.

후르륵.

시원했다. 채소와 고기를 씹으며 느꼈던 국물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우니 이대로 꿀꺽 삼키기 싫을 정도.

그런 마음과 달리 몸은 정직했다.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넘어가자 몸에서 열기가 후끈거리며 동시에 땀이 살짝 났다.

상쾌함이 몸과 마음을 즐겁게 만든다.

도현은 오랜만에 순수하게 웃었다.

“맛있다.”

언제 먹어도 맛있겠지만, 더운 여름만 피한다면 물리지 않고 즐길 수 있을 음식이었다.

술 먹고 다음 날 해장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고 나이나 남녀 구별 없이 즐기기도 좋아 보였다.

숟가락도 뜨지 않은 채 음미하는 도현을 보고 있던 4명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

“휴, 괜히 긴장했네.”

국물을 한 숟갈 더 떠먹던 도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김승재와 이민준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고창하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도련님은 이런 거 안 먹을 줄 알고 꽤 고심했거든.”

“딱히 안 가리는데?”

몬스터를 주로 먹었던 옛날을 생각하면 이런 음식은 진수성찬에 가까웠다.

물론 지구의 몬스터는 고급 음식이지만.

‘그러고 보니 토토도 좋아하겠는데?’

등교 때문에 집에 두고 온 토토가 생각났다.

‘오늘 저녁은 밀푀유나베로 해 볼까?’

무척 좋아하겠지.

작정하고 먹으려면 냄비부터 장만해야 할지도 모른다.

즐거운 생각에 피식피식 웃던 도현은 밑반찬을 공략하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

제일 만만한 콩나물부터 미역 줄기 채 볶음, 어묵볶음, 도라지무침, 계란찜 등.

메인만 해도 이미 차고 넘치는데, 밑반찬도 가볍게 보기 힘들었다.

시민형이 뿌듯하게 말했다.

“이런데도 한 사람당 7천 원밖에 안 해.”

‘싼 건가?’

학생 수준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의 식사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직접 가게를 찾고 먹어 보는 시간이란 노력의 결과물.

하지만 도현은 딱히 가격을 생각하며 뭘 먹은 적이 없었던 탓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눈을 끔뻑이며 소처럼 음식만 우물거리는 모습이 털털해 보였나 보다.

김승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윽시 귀공자 블랙!”

고창하가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도현은 신경 쓰지 않고 음식에 집중했다. 술술 들어가는 것이, 전골을 세 번이나 덜어 먹자 국자가 냄비 밑바닥을 긁었다.

“아.”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이민준이 조리실을 보고 외쳤다.

“이모, 5인분 추가요!”

“근데, 형은 왜 학교 다녀?”

도현은 국물을 푼 숟가락을 입에서 빼며 시민형을 봤다.

‘뭐라 말해야 하나?’

경험상 100퍼센트 사실보단 거짓과 사실을 적당히 섞어 말하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다.

“어…머니가 4년 치 등록금 내 버려서?”

정확히는 엄마의 등쌀이지만.

순화시켜 말했음에도 넷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이거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다른데?”

“……?”

“그러게. 일탈일 줄 알았더니.”

“그렇잖아, 집안도 빵빵하고 능력 좋은 헌터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이민준이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맞아. 특히 그날 차도식 헌터의 참교육이……!”

“브라더 다메욧!”

김승재가 다급하게 이민준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셋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도현은 픽 웃었다.

역시 심심할 일이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