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24화 (24/200)

# 24

24. 진심 (4)

흑백이었던 현실에 색이 입혀지며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따끈한 김을 뿜어내는 오뎅탕과 꼬치, 토토가 먹어치운 빈 꼬치까지.

비워진 유리잔을 보자마자 다시 소맥을 제조한 도현은 어묵 하나를 후 불어 입에 넣자마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쿠당탕탕!

“우와왁!”

요란한 소리가 거실을 울리며 사내 하나가 볼썽사납게 널브러졌다.

달칵.

닫힌 방문 위로 3시간이 카운트되기 시작했다.

잠깐의 정적. 얼굴을 번쩍 든 사내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여, 여기는 어딥니까?”

여기저기 깨지고 해진 중세시대 갑옷의 덩치 큰 사내였다.

한 손에는 둥글게 매듭진 사슬을 들고 붉어진 코를 매만지는 모습이 허술하다 못해 멍청해 보이기까지 했다.

황당한 시선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마다 탁한 빛을 띠는 푸른색의 긴 머리가 산발한 채 나풀거린다.

얼빠진 얼굴과 덩치가 마치 미련한 곰 한 마리가 서 있는 느낌.

제브라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병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너무 누추하달까.

‘이번엔 한 명인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도현은 자신 맞은편 자리에 턱짓하며 사내를 불렀다.

“정신 차렸으면 여기 앉지.”

“당신은 누굽니까? 여긴 어디고요? 난 분명….”

횡설수설하며 앉던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 당신은… 설마, 제브라드의 사자? 여긴 제가 죽어서 온 사후 세계인 겁니까? 오, 세상에 제브라드시여!”

“제브라드 사자…?”

제브라드인들은 죽으면 자신들의 세계의 신의 사자가 내려와 데려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신을 만나 선행과 악행을 재어 새 삶을 살 수 있을지, 소멸시킬지 판결을 내린다는 그런 전설이 있었다.

‘몸은 멀쩡한 걸 보니 자해는 아니고, 목을 매달… 사슬이 끊어져 있네.’

그래서일까, 자신이 죽었는지 산 건지 구분 못 하는 사내가 너무 어이없었다.

“저의 한탄을 듣고 이런 술자리까지… 크흑! 감사합니다.”

사내는 혼자 주절주절 떠들더니 자연스럽게 꼬치를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헉!”

씹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해지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크흐흑, 죽고서야 이런 음식을 먹어보다니… 녀석들도 함께 먹었다면….”

팔로 눈물을 훔치고 마저 꼬치를 다 비운 사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경악했다가 녹았다가 황홀했다가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가.

도현은 낮게 한숨을 쉬고 일어나 빈 잔을 가져오며 인벤토리에서 럼주도 한 병 꺼냈다.

1 대 1 대 1.

톡 쏘는 맛 뒤로 훅 끓어오르는 취기가 나름 매력적인 비율이다.

제조를 끝내고 사내에게 내밀자, 울면서도 한 번에 원샷으로 마셔 버렸다.

사내는 크흐흡, 콧물을 삼키고 퉁퉁 부은 눈으로 도현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추태를 보여서 죄송합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무능력한 용병단 대장이라… 챙겨줘야 할 애들이….”

흐르려는 코를 다시 삼켰다.

“아이들은 잘 간 겁니까? 당연히 선한 애들이니 길을 떠났겠지요? 크흡, 그런데 이게 음식이 맞긴 합니까? 이런 건 처음 먹어봅니다.”

횡설수설하는 사내를 두고 도현은 말없이 일어나 그릇을 가져왔다.

오뎅탕을 덜고 포크와 우동스푼을 함께 사내 앞에 놓았다.

사내는 울면서 후르륵 마시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뜨더니 기침을 하고 접시를 비운 뒤 도현이 한 대로 덜어 먹었다.

경건하게 접시를 내려놓으며 감은 눈을 번쩍 떴다.

“정했습니다. 죄가 있다면 달게 벌을 받을 것이고, 악행의 무게보다 선행의 무게가 무겁다면… 요리사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사내의 결연은 너무나도 진지해, 도현은 난감함에 김빠지듯 웃고 말았다.

“우선 오류 좀 짚고 넘어가지.”

“예, 신의 사자님!”

잔뜩 긴장한 사내가 반짝이는 눈이 도현을 향했다.

“난 신의 사자가 아니야. 그리고 너도 죽지 않았어.”

“…예?”

“무슨 이유에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때 이쪽으로 넘어온 것 같은데.”

도현의 엄지와 중지가 맞부딪히며 ‘딱’하고 소리를 내자 사내의 옆에 떨어진 쇠사슬이 허공에 떴다.

머리 하나 들어갈 큰 매듭 위로 길게 이어진 줄이 레이저로 잘라버린 듯 깔끔하게 뚝 끊겨 있었다.

눈을 끔뻑이던 사내는 이내 울컥, 울음을 터트렸다.

“저, 정말 제가 안 죽었군요… 안 죽었네요, 안 죽어… 하하핫!”

사내는 숨넘어갈 듯 웃어대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당신은 누굽니까?”

곰 같은 덩치가 진지해진 얼굴로 일으킨 몸을 낮추며 허리춤으로 양손을 가져갔다.

검을 뽑기 위한 자세인 듯했지만, 그 허리는 텅 비어 있었다.

“핫, 내 검! 아, 유언으로 빼놨….”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저런 놈이 용병 일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의문이 생겼다.

“어설프게 경계하지 말고 자리에 앉지?”

도현의 방금까지 한탄하며 처량하게 울다 음식을 맛보고 접시를 씹어 먹으려던 놈이 맞나 싶었다.

용병이 미친놈 집합소인 걸 알지만, 그래도 저렇게 곱게 미친 건 또 처음이었다.

“어, 음. 쉬시는데 방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예의 바르게 미치기도 쉽지 않다.

“이름.”

“페드릭 카 블루울프라 합니다.”

용병들은 이름 뒤에 등급과 소속단이 붙는다. 이는 귀족의 작위 계승의 우선순위와도 같았다.

‘카면 최상급인데?’

도현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제일 높은 순위가 카. 그 뒤로 차, 탄, 만, 비, 히, 사 순이었다. 용병단을 만들 수 있는 등급은 탄부터다.

믿기 힘든 건, 저렇게 어설픈 놈이 제일 높은 용병 등급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혼란함에 극치인 페드릭을 보며 도현은 빈 잔에 3종류의 술을 다시 말아 건넸다.

“페드릭, 용병단을 왜 해체했지?”

용병단 해체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용병단을 창설한 단장이 죽거나, 용병단이 유명무실해졌을 때 해체된다.

하지만 페드릭은 그런 이유와는 멀어 보였다.

“경영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현의 한쪽 눈썹이 씰룩였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아무리 성격이 더럽다더라도 카 등급은 용병계에서도 손에 꼽는다. 기사로 치자면 소드마스터보다 한 단계 낮거나 반 단계 낮은 정도.

그런 힘을 가진 용병이 경영의 문제로 해체라고?

“제가 애들을 키우다 보니….”

“……?”

“의뢰를 해도 해도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파산….”

“허….”

참신한 해체 방법이다.

“밥 먹을 돈도, 잠도 줄여 계속 뛰어봤지만 계속 적자고… 사실, 겉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오랜 기간 전쟁이 없다 보니 몸값이 높아 의뢰가 잘 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

강한 만큼 몸값이 적게는 몇 배 많게는 수십 배로 뛰는데, 웬만해서는 부담하기 쉬운 가격은 아니었다.

“……?!”

가만, 전쟁이 없다고?

“전쟁이 없다?”

“예? 아, 예. 최근 하라잔에서 내전이 있었던 뒤론 전무할 정도입니다.”

“내전 이전에는?”

“꽤 오래된 일이라… 듣기론 한 100년쯤 되었다 들었습니다.”

그 시기라면 도현이 지구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곰곰이 생각하려던 도현은 가볍게 포기했다. 어차피 제브라드에 돌아갈 이유도 없고 기회도 없으니까.

‘남 일이야 남 일.’

생각을 돌리며 페드릭이 했던 말들을 조합했다. 평온한 세상, 고아를 돌보는 용병 단장.

‘버틴 게 신기할 정도네.’

“3년 전만 해도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1년 정도 지나자 의뢰가 뚝 끊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드는 경비를 줄인 건가.’

적어도 닭 한마리 뜯을 수 있었던 생활이 건포나 딱딱한 빵으로 떨어지고 갑옷조차도 겨우 수선해 쓸 정도였을 테다.

돈을 쪼개어 용병단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을 후원해야 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있었단 소릴까?

‘미련하다.’

자신이었다면 애초 시작도 안 했을 거다.

그 미련 속에서 무엇이 좋았던 걸까?

“미련하단 말 많이 듣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정 때문에 죽을 거라고요. 그래도 어쩝니까, 내전 속에 죽어나는 것은 평민들인데.”

처음에는 내전이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 일어나는 영지전이 손 쓸 겨를 없이 커져버린 경우였다.

욕심으로 일어난 영지전으로 피해를 보는 건 그 땅에 사는 영지민들이다.

이유도 모른 채 징집됐고, 영지전이 끝난 뒤에는 영지민이라서 폭리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했다.

그것도 승전했을 때 잘 풀린 케이스였고, 패전의 경우는 말이 영지민이지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살기 위해 선택은 도망이었다.

결과는 지옥이었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 버려진 자식들, 영지전으로 인해 잉태한 생명까지.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밥줄로 행상이나 던전을 찾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돈을 날린 귀족들도 머리가 있다.

광산, 유적, 던전.

용병을 쓰면 큰돈이 나간다. 그래서 꾀를 낸 게 용병들에게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몰리며 용병의 입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터졌다.

용병단 내의 갈등이 분열로 이어진 거다.

“모두가 떠났습니다. 그것도 제 탓이니 이해했습니다. 그때 던전 하나가 발견되었고, 마지막으로 힘을 모으자고 했었죠.”

그렇게 들어간 던전에는 자신이 구했던, 자신이 아꼈던 아이들의 목이 잘려 나뒹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저 혼자 뿐이더군요. 삶의 의미가 사라지고 나니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지가 쇠사슬 매듭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도현은 입맛이 썼다.

깊은 한숨과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을 때 페드릭이 슬며시 도현을 불렀다.

“저, 신의 사자님.”

무심한 도현의 눈이 눈을 대룩대룩 굴리는 페드릭에게 닿았다.

“이거 좀 더 먹어도 됩니까? 너무 맛있어서… 헤헤.”

꼬치와 오뎅탕을 보며 입안 가득 침을 흘리는 모습이 퍽 천진난만했다.

“으허, 잘 먹었습니다!”

페드릭의 식성은 대단했다.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고 도현은 다시 세 번이나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꼽사리 낀 토토도 통통하게 부른 배를 주체하지 못하고 식탁에 대자로 드러누워 숨만 쉬더니 이내 잠들었다.

도현은 문 위에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 그렇게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꽤 시간이 남았다.

빈 잔을 내려놓는 페드릭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발그스름하게 붉어진 얼굴과 입가에 지어진 잔잔한 미소가, 처음 들어왔을 때 보다 꽤 좋아 보였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요리를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요리?”

도현의 묘한 눈빛이 페드릭을 향했지만 페드릭은 알지 못했다.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드릭의 눈은 이내 아련해졌다.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무 걱정 먹어 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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