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21. 진심 (1)
주팀장은 도현과 함께 차에 타자마자 휴대폰을 잡고 업무를 시작했다.
도현의 테스트 접수를 먼저 하고,
도현의 부모님에게 약식 보고를 하고,
한국 헌터 협회장님이신 강혁 삼촌에게 1주기 워프 보고를 하고,
부산물들에 대한 미팅까지 잡고 나서야 휴대폰을 귀에서 뗐다.
“그렇게 바쁘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한참을 지켜보던 도현이 한마디 했다.
“예? 전 일 할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만?”
‘돈만 주면 못 할 게 없습니다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알아서 걸렀다.
도현은 이미 자신의 말을 듣고 진저리치며 눈으로 욕을 해서였다.
“그럼 도련님은 뭐가 제일 즐겁습니까?”
이 말도 걸러야 했지만 발끈해버린 탓에 튀어나왔다.
“침대와 한 몸이 되는 거?”
“…?”
“100년도 거뜬합니다.”
도현의 대답은 진지했지만 주 팀장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진지함이라 생각했다.
100년?
각성자들은 오래 산다. 하지만 대부분이 일찍 죽는다.
돈으로 직결되는 워프는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현은 예외였다.
그렇다고 저 말을 웃어넘기기에는 기분이 찜찜했다.
‘너무 디테일한데?’
경험자만 안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처럼 느껴졌달까.
‘설마….’
주 팀장은 실소했다. 설마, 그럴 리가.
‘5년이 500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생각해도 헛소리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드렸다.
새삼 돈에 찌든 자신이 느껴졌다.
회의감이 밀려올 때쯤, 도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재미라… 그래, 요리가 있었지.”
“예…?”
헌터가 아니고 요리…?
고개를 끄덕이는 도현을 보고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려는데, 인공지능의 알림이 들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정차한 차 안에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한숨을 내쉰 주 팀장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가시죠.”
자동으로 열리는 차 문 밖을 나가자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한국 헌터 협회.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내 5명이 도현의 눈에 들어왔다. 좋게 봐주면 털털해 보이는, 나쁘게 말해 노숙자 같은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강혁 삼촌?”
“우리 조카아아아!”
도현이 그렇게 엮이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 강혁이 양팔을 활짝 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도현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자신도 모르게 덮쳐 오는 강혁을 향해 주먹을 날려버렸다.
캐앵!
턱에 직격으로 맞은 강혁은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멀리 날아갔다.
“협회장님!”
뒤늦게 따라온 수행인들이 강혁이 날아간 곳으로 사라졌다.
“도, 도련님?”
“내, 부탁. 기억 안 나요?”
한자한자 씹듯 내뱉는 도현을 보고 주 팀장은 그제야 도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혁 삼촌과 안 엮이게 해달라고. 그런 도현을 호랑이 소굴에 배달해 드린 격이다.
“죄송,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은 없습니까?”
“있긴 합니다만, 대기자가 많아 꽤 기다리셔야….”
“얼마나.”
“3시간… 협회에서는 바로 가능합니다!”
곧이곧대로 대답하려던 주 팀장은 날카로워지는 도현의 눈을 보고 바로 말을 돌렸다.
“몇 층.”
“21… 으아아악!”
도현이 주 팀장의 목덜미를 잡고 21층을 향해 지면을 박찼다.
“우도현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투피스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도현과 주 팀장을 맞이했다.
“빨리 가능합니까?”
도현이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여성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장님께서 일러두셨습니다.”
여성은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우아하게 묵례를 하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삼촌이?
‘괜히 날려버렸나?’
갑자기 뛰어오니까 놀라서 손이 먼저 맞이한 것뿐이지만, 이런 준비까지 해뒀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도련님… 목 좀….”
잊어먹었던 주 팀장의 목을 놓자 연신 헛기침을 하며 소파에 드러눕듯 앉았다.
한 10년은 늙은 모습이었다.
“하아, 도련님 다음번에는 저는 놔두고 가주십시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주 팀장은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후회했다.
‘괘, 괜히 맡았다.’
인센티브 두 배라는 임 이사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난 뒤였다.
‘임 이사님….’
진한 미소를 짓는 임혜정의 얼굴이 도현의 얼굴과 겹쳐 보이자 오한이 몰려왔다.
아무리 5급 헌터라 해도 약 100미터에 달하는 높이는 뛰는 게 아니라 날아오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비밀이지만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이런 경험은 두 번 하고 싶지 않다.’
계약을 물리고 싶었다. 하지만 답은 애초 정해져 있는 상황.
주 팀장은 파김치가 되어 고개를 젓는 사이 문이 열리고 나갔던 여성이 들어왔다.
테이블에 음료 두 잔을 올린 그녀는 손바닥만 한 파란 사각 케이스를 도현에게 건넸다.
“헌터증입니다.”
케이스 안에는 주민등록증 크기의 푸른색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도현의 이름이 적힌 3등급 헌터증이었다.
“마나만 불어 넣어주시면 됩니다.”
“테스트는 없습니까?”
“네, 협회장님 지시입니다.”
‘대련 때문인가?’
스트레이트로 3등급을 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뭐, 이렇게 봐준다면 나야 편하지만.’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뜨려고 했던 도현은, 마나를 불어 넣기 위해 헌터증을 확인하다 등급이 눈에 갔다.
‘3급이랬지?’
차도식. 헌터의 정점이니 뭐니 하며 종일 떠벌리고 관심에 목마른 사람.
그 소리를 일주일 동안 들었더니 귀에 딱지가 앉았다.
“3등급 위로 있습니까?”
“있긴 합니다만….”
여성은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국내에는 협회장님밖에 없습니다.”
대답은 주 팀장 쪽에서 나왔다.
“삼촌이요?”
“예, 2급이시죠. 1급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끝맺음이 이상한 말에 도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행방불명입니다.”
“행방불명?”
“작년 겨울… 1월쯤인가요, 2등급 1주기 워프에 들어갔다가 소식이 끊겼습니다.”
‘잠깐. 그쯤이면….’
자신이 지구에 돌아왔던 시기와 비슷했다.
설마.
그냥 우연일 거다.
“도련님 인증절차 끝내고 빨리 가시죠.”
주 팀장이 재촉했다.
도현은 이곳과 가까워지는 익숙한 기척에 빨리 튀려던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남은 건 궁금증을 푸는 것밖에 없었다.
“1급 테스트가 뭡니까?”
쾅!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강혁이 말했다.
“그건 내가 이야기해주지, 조카.”
환하게 웃는 입 아래 커다란 반창고가 유난히 튀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강혁의 말을 정리하면 이랬다.
1. 능력치, 스킬이 S급 1개,
A급 3개 이상.
2. 3등급 워프 5개 클리어.
3. 2등급 워프 2개 클리어.
4. 국가적, 세계적 특수상황 협조.
5. 헌터 등급 3등급 이상만
지원 가능.
다 들은 도현은 1초의 고민 없이 말했다.
“헌터증에 마나만 주입하면 된다 했죠?”
“어허! 조카, 왜 이러는 거야?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나를 개 패듯… 아니, 그 황홀한… 흠흠, 아무튼 그런 힘은 처음 느껴봤다니까?”
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릴!
그 예로 주 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게 보였다. 무슨 죄라도 지었나?
도현은 개미지옥같은 강혁 말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빨리 탈출하고자 헌터증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푸른색의 카드가 파르르 떨며 검게 변했다.
푸른색일 때의 검은 글자는 흰색이 되었다.
“헉, 거, 검은색?!”
“됐죠? 갑니다.”
“조카! 조카아아아!”
색깔에 따라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지만 도현은 헌터증을 인벤토리에 넣고 재빨리 출입했던 창문으로 뛰었다.
뒤따라 나오려던 강혁이 주춤했다. 극구 사양하던 주 팀장도 멍한 얼굴로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이 아래로 추락하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이거 나쁘지 않은데.’
오랜만에 정통 마법을 썼더니 생각보다 편했다.
‘통학 때도 굳이 드론을 타지 않아도 되겠어.’
호기심에 탔다가 편해서 계속 애용한 것이지만, 이 방법이 빠르고 편할 것 같았다.
물론 날씨가 좋지 못하다면 그땐 드론을 다시 이용하겠지만 말이다.
“조카, 밥 먹고 가!”
‘밥! 으음….’
아직 포기하지 않은 강혁이 외쳤다. 밥. 도현이 무척 좋아하는 협회의 뷔페가 눈에 아른거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삼촌과 마주 보며 밥을 먹는다?
또 무슨 일을 벌일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거기다 워프에서 구한 재료도 있다.
‘요리가 해보고 싶기도 하고.’
창문에 붙어 구경중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도현은 자신의 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길 채 5분도 안 돼서.
“대체 여기가 어디야?”
생각 없이 날아왔던 도현은 방향을 잃어버렸다.
주택과 상가가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교차로가 눈에 들어왔다.
도현은 대로변에 착지하고서 근처 안내판을 둘러봤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100미터.
왠지 흰옷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싶더니.
“이거 정반대 방향으로 와버렸네.”
다시 날아가려다 포기했다.
또 방향을 잃고 헤매는 건 사양이다.
‘택시 드론 불러서 타고 갈까?’
오늘 하루 바쁘게 보냈으니 그게 심신 회복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택 같았다.
그렇게 생각이 기울었을 때, 위장이 도현에게 항의했다.
“아, 오늘 먹은 게 없네.”
이른 아침에 나가야 해서 굶었더니, 워프에서 바쁘게 설쳐야 했고, 헌터 테스트니 뭐니 해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결국, 먹은 거라고는 워프의 하리오카 열매 하나가 전부.
“뭐 드론 탈 거면 배 좀 채우고 갈까?”
근처가 병원이고 하니 음식점도 있을 거다.
다행히 다양한 가게가 즐비해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띈 건 소고기 국밥집.
“그러고 보니 돌아와서 국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네.”
고기 사랑이 좀 식긴 했어도 제브라드의 고기와 대한민국의 고기는 비교 자체가 미안할 지경이다.
굳이 따지자면 저렴한 믹스커피와 스패셜 드립 커피의 차이랄까.
그런 품평을 머릿속으로 해대는 동안 발이 알아서 국밥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소하고 진한 소고기 냄새에 미소가 지어질 무렵, 스쳐 지나가는 진한 어묵과 순대 냄새가 코를 때렸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작은 공터에 세워진 포장마차. 간이분식집이었다.
번쩍!
떡 귀신, 어묵 귀신으로 불렸던 도현의 또 다른 자아가 순간 각성하듯 깨어났다.
어슬렁어슬렁 걷던 걸음이 직각으로 틀어지며 빠르게 포장마차로 향했다.
“총각, 어서 와!”
비닐 커버를 젖히고 들어가자 인심 넉넉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곰살맞게 도현을 맞이했다.
오른쪽에서부터 떡볶이, 순대, 어묵, 튀김과 김밥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에 새빨간 고추장을 듬뿍 끼얹은 굵은 떡이 유혹하듯 고고하게 반짝였다.
찜기에는 조용히 사우나 중인 순대가 탱글탱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옆으로 커다란 꽂게를 선두로 국물 우림용 새우와 무, 대파가 둥둥 떠다니는 국물 위에 무수히 꽂힌 꼬치가 반신욕 중이었다.
꿀꺽!
도현은 오랜만에 식탐과 허기짐을 함께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