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20.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4)
도현은 이마를 찌푸렸다.
힘을 내뿜는 건 저 돌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차도식보다 강한 힘을 품고 있다고?”
도현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순수하면서도 밀도 높은 마나가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것은 분명했다.
웬만한 능력으론 접근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강혁 삼촌이라면 접근 정도는 가능은 할 것 같았다.
“흐음.”
자주는 아니지만 제브라드에서도 겪어본 적 있는 일이다.
단지, 몹시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달까.
“더 이상의 육아는 사양인데.”
비록 인간의 아이는 아니었더라도 한때 드래곤들에게 시달렸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했다.
그렇다고 놔두고 가기에는….
‘설마 이게 진짜 알이라서 태어난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어난 무언가가 2주기의 보스몬스터라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다.
현재 상태의 국내 헌터들로는 명함 조차 못 들이밀테니까.
“하아, 어떡―”
심각했던 도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적임자가 있었다. 그것도 가까이.
몇 주 전에 결혼한 신혼부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축하 선물도 안 줬지.”
안에 든 게 무엇이든 이게 알이라면. 차도식보다 강하다면, 선물로는 적당하다 못해 넘칠 거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도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수입도 챙겨 보실…?”
습관적으로 돌을 잡아 인벤토리에 넣으려던 도현은 주변의 붉은 마나석들이 일제히 내뿜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후아아아앙!
동시에 손에 잡힌 돌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거 느낌이 쌔 한데?”
순간 붉다 못해 하얀 불꽃이 싱크홀을 집어삼켰다.
쿠구구구궁―!
“지진?”
“무슨 지진이야?”
한창 하리오카 열매를 줍던 학생들은 땅이 흔들리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에서 같은 작업을 하던 두 헌터와 주 팀장, 진 박사까지 학생 주변으로 몰려왔다.
뾰족한 수가 없는 모두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맞댈 뿐이었다.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차도식이 진 박사에게 물었다.
“정령은 뭐랍니까?”
“도망갔어.”
“네?”
학생들이 되물었지만 이미 익숙한 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능력 이상의 상황에서 도망가버리는 진 박사의 정령. 그 말은 지금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차도식은 입맛이 썼다.
이미 땅이 진동하자마자 긴장할 정도로 강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할 일은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차도식이 입을 뗐을 때 하지현이 중얼거렸다.
“우선 지진을 조사….”
“싸가지. 무사해야 할 텐데….”
‘그놈에 우도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놈이 아니라, 남편인 자신이나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을 걱정해야 하지 않나?
‘그 집 사람들은 도대체가!’
처가, 큰 처가 할 것 없이 전부 그놈 걱정밖에 없다.
“지현…!”
드드드드!
참다못해 한마디 하려고 하자 다시 땅이 흔들렸다.
멀리서 느껴지는 흔들림이 아닌, 근처에서 발생한 진동이었다.
100년은 묵었을 거대한 나무들이 들썩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사색이 되었지만, 헌터인 차도식이나 하지현, 연구소장인 진박사는 이 상황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았다.
“몬스터가 출몰합니다!”
진 박사가 외치며 정령을 불렀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쾅, 콰앙!
차도식은 재빨리 대검을 소환해 쏟아지는 나뭇가지들을 쳐냈다.
“타올라라!”
이어 빠르게 주문과 수인을 맺은 하지현이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나무를 향해 던졌다.
쾅! 콰아앙!
몬스터를 맞고 터져나가는 불꽃과 검은 연기로 주변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후우, 후우!”
두 헌터는 한숨 내쉬었다. 이미 둠고블린 무리에서 1차 전투를 하고 온 상태다.
약간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감행한 공격이었기에, 아무래도 공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크오오오오!
고막을 터트릴 정도의 괴성이 워프 전체를 울렸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며 시야를 가렸던 연기가 일시에 사라졌다.
흐릿한 그림자만 보이던 몬스터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다섯 그루의 나무뿌리가 한데 뭉쳐 땅 위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파리해진 안색의 하지현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네임드….”
도현이 찾으러 간 네임드가 이곳에 출현했다.
차도식은 결국 꾹꾹 눌렀던 화가 폭발했다.
“대체 그 새끼는 어딜 간 거야?!”
그리고 봇물 터지듯 뱉기 시작했다.
“그 새끼랑 같이 가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헌팅도! 부산물도! 내가 리더라고, 내가 랭킹 1위라고! 그! 런! 데! 그 새끼는…!”
사실 이보다 더한 대우를 받았던 적도 있었고, 뒤통수를 맞은 적도 많았다.
그건 참을 수 있었다. 책임감과 강해질 거라는 목표로 독하게 마음먹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우도현만 엮이게 되면 모든 게 다 꼬여버린다!
“도식씨!”
하지현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은 자신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 같았다.
차도식은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미웠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끊임없이 구애했다.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걸 알고 오빠처럼, 그림자처럼 그녀를 챙겼고 배려했다.
겨우 마음을 여는데 2년, 커플이 되고 결혼까지 마음을 돌리는데 3년. 총 5년이란 시간을 들여 드디어 식을 올리게 된 그날, 그녀가 드디어 자신의 것이라고 세상에 공표하는 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 새끼가 식장에 온 걸 알기 전까지는.
“전부… 그 새끼가 망쳤어.”
차도식이 짐승처럼 짖을 때였다.
“나 말이야?”
도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차도식은 반사적으로 대검을 들어 내리찍었다.
콰과광!
애꿎은 지면만이 깊게 파이며 흙이 튀었다.
“이거 내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네?”
대검이 닿은 지면 옆에선 도현이 빈정거리며 작게 웃었다.
차도식의 얼굴은 모든 피가 몰린 듯 시뻘게졌다.
“이 새끼가―!”
하지현의 짝사랑, 전속 회사의 아들, 행방불명 됐다 돌아온 회귀자, 게임만 해대던 썩은 새끼!
하지현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도현의 수식어를 속으로 읊으며 외쳤다.
“어떻게 너 같은 새끼가 다 가졌냐고오오오!”
차도식은 처음으로 살기를 끌어 올렸다.
대검을 타고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대검이 도현의 급소를 향해 거침없이 쏘아졌다.
찌르고, 베고, 가른다.
붉은 기파가 허공을 잘라내듯 상처를 남겼다. 차도식의 필살기라 일컫는 레드 다이너마이트였다.
도현은 무덤덤한 얼굴이 차도식을 향했다.
핏발 선 눈동자, 일그러진 얼굴은 둘 중 누군가 죽지 않은 이상 끝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살기라니.
‘이거 너무 만만하게 보였나?’
“쯧.”
혀를 찬 도현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봤다. 숲은 어디 가고 어느새 붉은 기운이 자신을 가두어 상태였다.
“참. 가지가지 한다.”
찌롱이를 봐서 참았던 좁쌀의 인내심이 팝콘처럼 펑 터져버렸다.
“이제 마지막이다!”
차도식은 희열에 찬 목소리로 대검을 역으로 쥐었다. 그리고 붉은 구슬을 향해 작살처럼 던졌다.
‘폭발하면 모든 게 끝난다!’
고막을 찢을 거대한 폭발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쩡!
대검이 꽂힌 자리부터 금이 간 붉은 구슬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게… 뭐…?”
길을 잃고 흔들리는 차도식의 눈동자가 도현을 담자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외쳤다.
“우도혀어어어언!”
“우선 머리 좀 식히고 있어.”
도현은 발로 차도식의 복부를 걷어찼다. 대포처럼 쏘아진 차도식이, 작은 산만 한 나무에 박혀 기절해버렸다.
“하, 여기 있을 줄이야.”
도현은 꿈틀대는 덩어리를 허탈하게 쳐다봤다.
하리오카 나무를 몬스터로 만든 기생몬스터. 둠고블린을 뼈다귀만 남긴 것도 이 몬스터의 짓이었다.
기생몬스터 카리오카의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요리 재료 리스트에 등록합니다.
카리오카 : 4+등급.
“이러니 찾아봐도 없지.”
“끼낏!”
혼잣말해대는 도현의 말에 오른쪽 어깨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채 한 뼘도 안 되는 붉은색 원숭이.
“얌마, 네가 뭘 안다고 끽끽 대?”
“낏!”
붉은 원숭이는 도현의 어깨에 앉아 가슴을 내밀며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현실을 믿지 못하는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로 그런 도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현은 킥킥 웃으며 땅에 꽂힌 차도식의 대검을 집어 들어 가볍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대검이 카리오카에 푹 꽂혔다.
키에에에엑!
얽힌 뿌리가 괴로운 듯 온몸을 칭칭 감았다. 카리오카와 연결된 나무들도 비명을 지르며 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쿵.
사체가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도현이 카리오카를 향해 손바닥을 펴 주먹을 쥐었다.
요리 도구 재료를 습득했습니다.
카리오카 나무 : 4+ 등급
요리 재료를 습득했습니다.
카리오카 뿌리 : 4+ 등급
“…….”
워프 1주기 조사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
워프는 일단락되고, 기절한 차도식을 데리고 하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하단 말을 남기고 먼저 가버렸다.
리포트와 탐사 건은 도현이 네임드를 잡으러 따로 떨어졌을 때, 만든 입체형 지도를 넘기는 것으로 끝냈다.
모든 걸 다 끝냈음에도 휴대폰의 시계는 오후 1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좋다, 좋아.’
가뿐한 마음으로 귀가하려던 도현을 주 팀장이 불러 세웠다.
“도련님, 헌터 테스트 안 보십니까?”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주변의 닦달로 듣기 싫었는데. 도현이 대꾸보다 주 팀장의 대답이 한 박자 빨랐다.
“임 이사님께서 당부하셔서 말입니다.”
엄마가 또.
미간을 좁히던 도현은 턱을 까딱였다. 더 말 해보란 의미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압니다. 하지만 그만큼 혜택도 많습니다. 가령 워프에 한 번 다녀오면 한 달 수업 면제라던가.”
‘두 달에 세 번 다녀오면 한 학기 수업 면제도 가능합니다.’라는 말이 이어지자 도현의 얼굴이 펴졌다.
“그뿐이겠습니까, 한 워프 당 최소 4일이란 시일이 주어집니다. 도련님의 실력이라면….”
뒷말을 붙이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도현은 처음의 불쾌함은 사라지고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능하시군요.”
그저 두 헌터의 매니저로만 보이던 주 팀장이 썩 괜찮은 비서로 보인달까.
“아닙니다. 그저 도움이 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쁩니다. 도련님.”
자본주의의 미소가 주 팀장 입가에 그려졌다.
“언제쯤 테스트를 보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예…?”
“안 됩니까?”
“아니요!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주 팀장의 눈이 반짝였다.
도현은 의자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은 탓에 그런 주 팀장을 확인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