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9화 (19/200)

# 19

19.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3)

“필요 없―.”

도현은 당연히 필요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

알림만 없었다면.

띠링!

깨어난 하리오카 나무의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요리 도구 재료 리스트에 등록합니다.

깨어난 하리오카 나무 : 4+ 등급

요리 재료 리스트에 등록합니다.

깨어난 하리오카 열매 : 4+ 등급

거절하려던 도현은 오랜만에 뜬 리스트에 말을 바꿨다.

“진짜죠, 그 말?”

“예? 아, 예! 물론입니다!”

“이번 뒤처리는 잘 부탁합니다. 강혁 삼촌 안 엮이게.”

“아니, 협회장님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숲속으로 사라진 도현의 빈자리를 보며 모두가 황당한 얼굴로 주 팀장을 쳐다봤다.

설명이 필요했다.

***

도현은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다.

도착지는 워프에 입장해 첫발을 디뎠던 과수원이다.

도착하기 무섭게 달려드는 몬스터로 손가락이 바빠졌다.

팡, 팡! 퍼엉!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거대한 나무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하리오카 나무가 몬스터였다는 것은 입장할 때부터 알았지만, 일행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형태의 몬스터에서 열매를 얻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크게 상관없지만, 뭐.”

그에겐 개미가 한 마리냐, 개미집이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심드렁한 도현은 3차로 밀려오는 몬스터를 향해 다시 손을 튕겼다.

터져나가는 나무 파편으로 주변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옜다.

“흠, 이러면 재료로 건질 게 없는데.”

평소 같았으면 그냥 한 방으로 처리해버렸겠지만, 재료라 해서 특별히 신경 써 작업 중이었다.

‘방법을 바꿔 볼까?’

나무, 나무, 나무….

“아. 쪼개면 되겠네.”

마침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쩍!

장작 쪼개듯 반으로 갈린 몬스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도현의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음 좋긴 한데….”

역시나 귀찮다.

도현은 불평을 중얼거리면서도 끝없이 달려드는 하리오카 나무를 상대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무수히 펼쳐진 숲에 커다란 땜빵이 생겨버렸다.

도현은 그 땜빵 안으로 들어가 2차 작업을 시작했다.

땅에 떨어진 하리오카 열매 수거였다.

흐뭇한 표정으로 정성스레 줍던 그는 열매 하나를 잘 닦아 베어 물었다.

와삭!

토마토처럼 얇은 껍질을 씹으니 톡하고 터지며 과일의 아삭함이 느껴졌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과즙과 함께 멜론의 달콤함과 은은하면서도 상큼한 라임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다.’

계속 먹으라고 하면 밥도 안 먹고 한참 빠질 것 같은 중독성이 있는 열매였다.

도현은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끼다 문득 한 종족이 생각났다.

긴 귀를 가진 미의 끝판왕인 엘프.

“딱 그놈들이 좋아할 맛인데.”

풀만 뜯는 놈들이니 금상첨화일 것이다.

제브라드에서 처음 대면하자마자 엘프에 대한 기대감은 휴짓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생긴 것과 다르게 꼬장꼬장하고 속도 좁은 종족.

그놈들 때문에 물 먹은 적이 몇 번인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렸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순종적인 듯 타협은 잘했다. 결국, 수십 배로 벗겨 먹혔지만.

‘재수 없는 놈들.’

“그나저나 이 재료들이면 이번에는 뭔가 나올 것 같은데?”

하리오카 나무와 열매, 일주일 전 수집한 카우엑스와 모랄보어의 사체.

현재 도현이 워프에서 구한 것들이었다.

거기에 집 냉장고에 잠들어있는 재료까지 더하면 괜찮은 거 하나는 나올 것 같았다.

“좋아.”

갑자기 의욕이 돋았다.

즐거운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쯤, 둠고불린 무리 쪽에서 두 기척이 빠져 나왔다.

도현은 열매를 줍던 손을 잠시 멈췄다.

주 팀장이 다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욕심부리다 배탈 나면 안 되지.”

황제까지 해 먹었던 친구 놈이 말했었다.

적당함 속의 공범을 만들라.

물질적 유대감은 늘 이어져 있어야 내 사람이라고.

“그러던 새끼가 나한테는 입 싹 닦고.”

투덜대던 도현은 입맛을 쩝 다시며 은근한 눈빛으로 하리오카 열매를 바라봤다.

“조금만 더 챙겨야지.”

그렇게 100개를 만들고서야 모두가 모인 곳으로 향했다.

“싸가지!”

“처남!”

도현이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헌터가 도현을 찾았다. 걱정 가득한 얼굴들이었지만, 도현이 볼 때 정말 걱정한 사람은 하지현 하나 뿐이다.

“거기서 얘기해.”

좀 전에 진 박사가 달려오던 그 모습이 겹쳐지자 도현이 거부했다.

다가가려던 하지현이 의아해하다 고개를 핵 돌려 진박사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미 도현이 도착한 시점부터 눈이 박힌 채 음침하게 웃고 있었다.

진 박사의 최대 단점인, 강한 남자 금사빠가 도진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하지현이 화를 내려던 타이밍에 차도식이 먼저 말했다.

“다 모였으니 말하지.”

차도식은 둠고블린 무리에서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결하게 말했다.

“이미 봤겠지만, 하리오카 나무가 몬스터로 변했다. 둠고블린은 전부 하리오카의 양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둠고블린 무리는 하리오카 나무에 점렴 당했다. 둠고블린의 것으로 예상되는 검은 뼈들이 하리오카 나무 뿌리 부근에 널브러져 있었다.

워프의 이름처럼 정말 ‘하리오카 과수원’이 된 것이다.

주 팀장과 진 박사는 탄식했고 학생들은 불안한 눈으로 주변 나무들을 훑었다.

5년이 흐르면서 많은 워프가 1주기를 넘겼지만, 이런 현상은 처음이었다.

“이상한 점은 나무 전부가 몬스터는 아니라는 거다.”

둠고블린 무리에 있던 하리오카 나무는 총 20그루였다. 그중 8그루고 몬스터였고, 12그루는 나무였다.

말이 끝나기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현재 위치는 숲의 경계다.

탐사를 위해서라도 다시 숲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몬스터는 좋지 못했다.

“진 박사님, 정령이 몬스터의 기척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

“음… 가까워지면요.”

“거리는요?”

“3미터 안 쯤?”

대화를 끝으로 차도식은 잠깐 고민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탐사는 하지 않겠다. 최대한 빠르게 1주기 몬스터인 네임드를 처리하고 워프에서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

“네임드에 대한 단서는 있나요?”

진 박사가 정보를 물었지만 두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이 상태로는 하리오카 나무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현의 추측에 세 명의 워프 경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예상 기간은 어떻게 됩니까?”

주 팀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3일을 예상하고 4일 뒤 워프 일정을 잡은 탓이었다.

“적어도 이틀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차도식의 대답에 주 팀장이 수긍했다.

오히려 일주일 안에 끝날 수 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기간을 허용 못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6일?”

도현이 삐딱하게 되물었다.

한 주 동안 워프에 드나들었던 도현에게는 하루, 워프 하나씩 끝냈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그것조차도 불평했던 그에게 일주일은 너무나도 가혹한 시간이다.

1주기를 맞이한 워프라지만, 어쨌든 4등급이다.

무엇보다,

‘저 변태 팬더녀는 사양이야.’

불독에 이어 팬더녀라니.

도현이 진저리쳤다.

왠지 리포트위크 동안 저 팬더녀가 계속 따라붙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렇게 되면 무려 2주 동안 부대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리포트위크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휴식. 휴식이 필요해!’

모든 걸 빨리 끝내고 합당하게 쉴 수 있는 시간 말이다.

“도현아, 미안한데 시간은 어쩔….”

“주 팀장님이 아직 그 말 유효하죠?”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주 팀장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 드리겠다.’던 그 말을 언급한 게 분명했다.

두 헌터가 상반되는 얼굴로 주 팀장을 향했다.

꿀꺽….

“하하, 상황이….”

차도식은 침음을 삼키며 이마를 집었다. 이해되지만 이해하기 싫은 상황이랄까.

주 팀장의 목을 잡고 탈탈 털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저 빌어먹을 놈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 거기에 더해 얼굴까지 구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억지 미소를 짓은 차도식의 한쪽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오직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4명만이 묘한 분위기에 혼란스러웠다.

“하아, 처남. 위치는 알고 있나?”

결국, 모든 걸 내려놓은 척 차도식 물었다.

도현을 달래어 베이스캠프를 만든 뒤 도현에게 위치를 묻고 하지현과 다녀올 생각이었던 그는, 생각했던 계획은 보기 좋게 빛나갔다.

“금방 다녀오죠.”

“뭐?”

그걸 눈치 못챌 도현이 아니었다.

“주변엔 몬스터도 없으니 안전할 겁니다.”

남은 시간 동안 놀지 말고 진 박사와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라도 하란 말이었다.

“겸사겸사 여기저기 떨어진 열매도 수거하고요.”

선심 쓴 거라 생색은 당연했다.

“그럼.”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도현은 지면을 박찼다.

***

도현이 땅을 한 번 박찰 때마다 화살처럼 수십 미터를 쏘아져 나갔다.

사방이 나무인 숲에서 그는 망설임 없이 오직 한 지점을 향해 뛰었다.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숲이 댕강 잘린 듯 끊어진 절벽.

그 아래는 강한 햇볕으로도 구분하기 힘든 깊은 구멍이 있었다.

새카만 물감을 때려 부은 모습이랄까.

“딱 뭔가 있을 분위기지.”

도현의 입에 즐거움이 번졌다.

성큼성큼 걸어 절벽 앞으로 다가갔다.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이 절벽은 지름만 1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후우우우우웅!

폭풍처럼 세찬 바람이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치솟았다.

덤프트럭도 날려버릴 정도로 강한  칼바람.

아니, 날리자마자 찢겨 잔해가 우박처럼 쏟아질지도 몰랐다.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싱크홀로 한걸음 내디뎠다.

기다렸다는 듯 칼날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도현의 옷과 머리카락이 세차게 나부꼈다.

도현는 아무렇지 않게 밀어내는 바람을 뚫고 깎아지는 절벽을 평지처럼 걸어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거센 바람이 사라지고 온통 어둠밖에 없는 절벽의 바닥이 나타났다.

“빛.”

한마디에 밝은 빛 덩어리가 도현의 머리 위로 생겨났다.

싱크홀 내부가 대낮처럼 밝아지며 주변이 또렷하게 보였다.

거친 벽이라 생각했던 곳에는 낡고 깨진 벽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닥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게 뭐야?”

원숭이 조각상이었다. 3미터의 우락부락한 몸만 봤다면 고릴라로 착각했을 정도로 컸다.

망치를 들고 있거나 검, 방패, 장신구 등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이 역사를 기록해둔 것 같다.

“무덤인가?”

제브라드의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현은 주변을 훑으며 중심부로 걸어갔다. 자신이 느낀 ‘강한 힘’이 그곳에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조각상의 끝엔 돌을 높게 쌓아 올린 벽이 도현을 반겼다.

벽 중심의 단단한 철문을 아무렇지 않게 뜯고 들어가자 긴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양쪽으로 뚫린 입구들이 적어도 10개가 넘었다.

“일단 기운 좀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복도를 걸었다. 문이 달리지 않은 입구들은 지나가기만 해도 무엇이 들어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50평은 될 것 같은 방들. 각 방마다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금화 등의 제물들이 가득했다.

다른 누군가 봤다면 복도를 다 들어가기 전에 홀렸겠지만, 도현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복도 끝에는 붉은 보석의 바다가 펼쳐졌다.

어림잡아도 싱크홀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 어린아이 머리만 한 붉은 마나석으로 가득했다.

그 중심에는,

“돌?”

돌이었다. 알처럼 깎은 매끈한 돌은 1미터 크기의, 알치곤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했다.

그런 돌이 제단처럼 보이는 곳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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