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 그렇다고 한다. (1)
“아들아 아침은?”
“아직.”
도현은 차에 올라타며 자신을 반기는 우대성과 마주 앉았다.
중앙에 좁고 긴 테이블을 두고 자리 4개가 마주 보는 형태다. 5년이 지난 지금, 차 형태는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인공지능이 운전자를 대신하고 에너지를 마나석으로 대체했다. 그렇게 보완, 발전한 자동차는 진정한 신세계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도현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부드럽고 푹신한 것이 의자라기 보단 소파에 가까웠다.
‘아아, 좋다.’
가만히 있으면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한 것 같은데, 창밖의 풍경은 흐려진 잔상이 훅훅 지나간다.
그런데도 차체의 떨림이나 엔진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무중력 상태가 이럴까.
“도착하면 같이 먹자.”
도현은 눈을 떠 우대성을 빤히 바라봤다.
통화에서부터 주어가 빠진 느낌인데 의도적으로 숨기는 모양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어딘데?”
묻기 무섭게 우대성은 모르는 척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미 가는 중이잖아. 설마 내가 이대로 튀겠어?”
고개를 돌려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임이야. 헌터 모임.”
“아빠도 헌터였어?”
“업종이 업종이다 보니.”
‘왜 생각을 못 했지?’
아빠는 매일 잘 시간도 없이 갈린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 3시간.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무한으로 돌아가는 챗바퀴에 피곤한 기색이 없다.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병원에 실려가도 실려갔을 살인적인 스케쥴인데…
“설마 엄마도?”
“음, 솔직히 세상이 바뀌고 각성자가 더 많아.”
“헐.”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그럼 엄만?”
“솔직히 아빠도 일만 아니었으면 안 갔다.”
아아.
‘그럼 난 왜?’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조금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너 아빠 일 배울 생각 없니?”
“어.”
도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왜?”
“말했잖아. 내 꿈은 백수라고.”
우대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깊은 한숨을 쉬더니 진지한 얼굴로 도현을 바라봤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돌아왔을 때조차 묻지 않던 질문이 이제 돌아왔다.
‘몸만 건강하면 된다더니.’
벌써 유통기한이 다 됐나 보다.
도현은 심드렁한 얼굴이 우대성과 마주했다.
“말해주면 믿겠어?”
우대성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아들의 얼굴이 이유 없이 건조하게 느껴져서다.
도현은 씁쓸하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을 입에 걸었다.
제브라드 일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사심 없이 믿어줄지가 문제였다.
‘엄마가 함께 있을 때 말할 생각이었지만.’
뭐, 사내들만의 대화도 나쁘지 않으니까.
도현은 머릿속으로 할말을 정리했다. 벌써 500년을 넘긴 첫 시작 부분을 꺼내려니 뭔가 생소했다.
어색한 웃음이 입가에 피어나며 도현은 말을 이어갔다.
“게임에서 난공불락 에피소드에 도전하고 천 번째 죽었을 때였어.”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몇 가지 사건만 나열했음에도 1시간 반이 그냥 지나갔다.
“허어…….”
가감 없이 다 들은 우대성은 낮은 탄식 밖에 안 나왔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면 마약이라도 한 게 아닌지 의심했겠지만, 이미 자신만 봐도 생각하던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나.
“지현이한테 들었을 때만 해도 같이 헌팅하려고 투정 부린 거로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구나.”
우대성의 소감은 그게 끝이었다.
덧붙이자면 더 이상 헌터니 백수니 말을 꺼내지 않았다는 것 정도. 침묵하며 창밖을 보던 그가 입을 연 건 차에서 내릴 때쯤이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래서 만족한다면 그거로 됐다.”
오히려 당황한 건 도현이었다.
***
“우대성! 얼마 만이야! 왜 이제야 왔어?”
건장한 30대 사내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아빠를 힘껏 껴안았다.
백지장같이 하얀 피부, 대조되는 새카만 머리 색이 인상적이다.
그와 반대로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부스스한 머리와 세트로 듬성듬성 난 수염이, 무척 자유분방하달까.
‘누구였더라?’
도현은 낯익은 사내를 뜯어보았다.
생각이 날듯 말듯 하는 사이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강혁, 야 이 자식아! 이것 좀 놔! 숨 막혀!”
버둥대는 아빠를 놓을 줄 모르는 굵은 팔은 웬만한 보디빌더 조차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였다.
‘근데 강혁? 아빠 친구… 강혁삼촌?’
“삼촌?”
찐하게 인사를 나누던 강혁의 얼굴이 홱 하고 도현에게 꽂혔다. 한참을 보더니 함박웃음을 짓는 강혁 눈에 반가움이 듬뿍 담겨있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도현이잖아? 너 언제 이렇게 컸냐? 돌아왔단 말도 안 하고!”
곰 같은 덩치가 날렵하게 도현에게로 갈아타기를 시도했다.
어깨를 덥썩 잡히려던 찰나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나 피했다. 강혁 눈에 잠시 놀라움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풀려난 아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한발 늦게 강혁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 덩치로 내 아들 위협하지 말고 떨어져라 이 자식아. 도현아, 여기 뷔페식이니까 먹고 있어. 금방 올게.”
도현은 궁금했지만, 아빠한테 잡혀 끌려가면서 손을 흔드는 강혁을 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아주 조용한 소음이 들려왔다.
도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테이블이, 왼쪽에는 뷔페가 시작되는 입구가 보였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대략 50명 정도. 작게 무리를 이룬 이들이 힐끗 도현을 확인했지만, 금방 시선을 돌렸다.
“대부분이 헌터네.”
휑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뷔페 내부는 일반적인 음식점이었다면 적자였을 분위기였다.
도현은 사람마다 느껴지는 마나가 다르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와 삼촌의 마나량에 비해 이곳 헌터들의 마나량이 턱없이 적었다.
그리고 삼촌에게서 느껴진 마나는 좀 더 특이했다.
다른 헌터들의 마나가 주먹만 한 고무공이라면 삼촌의 마나는 볼링공처럼 크고 단단했으며 묵직했다.
완전히 상반되는 마나에 도현은 자신이 놓친 걸 깨달았다.
‘아는 게 없구나.’
정보. 변한 지구에 대한 정보가 없다.
“이거 너무 무신경했네.”
돌아왔단 생각에 너무 나태해져 버렸나 보다.
그러고 보니 제브라드에서 딱히 움직이지는…
‘아. 주위에서 알려주었구나.’
움직였다면 사사건건 시비였으니 대부분 틀어박혀 있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놈들이 소식을 물어다 왔다.
“좀 움직여야겠네.”
백수로 살고 싶은 거지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건 아니니까.
도현은 익숙하게 접시를 찾았다. 헌터들이 주 고객인 탓에 접시의 크기는 쟁반이라 봐도 무색할 정도였다.
일반인 봤다면 접시만으로도 배가 부를 판이었지만, 오히려 도현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텐드 바처럼 길게 이어지는 음식 행렬은 화려했다. 하나하나 구경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항의성 짙은 꼬르륵 소리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먼저 들른 곳은 스시 코너였다.
제브라드에 가기 전, 도현의 주식은 고기였다.
아침을 삼겹살로 시작해 저녁은 가볍게 스테이크를 먹는 그런 생활 말이다.
생선요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고기가 더 좋았다. 그런 식생활이 제브라드에서도 100년 넘게 이어지니 물리다 못해 거들떠보기도 싫어졌다.
제브라드는 육지의 세계다. 비율로만 따져도 70퍼센트가 육지고 30퍼센트가 바다였다.
그래서였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선과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굳어져 지구에 돌아오고서도 바뀌지 않았다.
물론 고기 맛이 제브라드와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눈을 뒤집고 먹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선과 채소의 조리법이 더 다양해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도현은 접시에 모든 종류의 스시를 산처럼 쌓아 올렸다. 놀란 요리사들의 시선이 도현을 따라다녔지만, 그는 다음 생선요리를 찾아 사냥감을 찾는 짐승처럼 눈을 번뜩이고 있을 뿐이었다.
롤, 샐러드, 파스타, 회.
싹싹 쓸고 지나간 자리는 텅 빈 접시를 교체하느라 바쁜 요리사들이 줄을 이었다.
도현은 다시 새 접시를 꺼내며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확인했다. 손이 부족해 들지 못해 나열한 접시만 해도 이미 다섯 접시가 넘어갔다.
양손으로 들어도 손이 부족했다.
‘귀찮아.’
테이블에 갖다 놓고 올지 잠깐 고민하던 도현은 손가락을 튕겼다. 접시들이 일사불란하게 그의 주변으로 떠오르며 함께 움직였다.
슬쩍슬쩍 구경하던 시선들 사이로 감탄이 터졌다.
그러든 말든.
이어서 도현은 양념을 챙겼다. 고추냉이와 간장, 초고추장.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삼총사였다.
락교와 초생강을 담고 근처 한산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젓가락으로 스시 하나를 집었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작은 밥 위로 두툼한 생선 살이 유혹하듯 조명에 반짝였다.
아랫입술을 혀로 축이며 고추냉이를 작게 올리고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두툼한 살이 탱글탱글하게 씹히며 고추냉이가 코를 찔렀다. 엇박자로 간장 향이 생선 살과 밥알을 한데 어우른다.
쫀득한 식감 뒤로 목 넘김과 함께 허탈이 몰려왔다. 잠깐 느낀 맛에 더 큰 갈증이 몰려와 바로 스시 하나를 집었다.
지구에 돌아오고서 오랜만에 갔던 뷔페는 별 천지였다. 부모님만큼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벨트를 풀고 쓸어 담다보니 어느새 뷔페를 거덜내다 쫓겨날 뻔 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네.’
한 점씩, 다 씹고 여운을 즐기고 다시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이런 여유에서 제브라드에서 허 했던 마음이 조금씩 차오름을 느꼈다.
“이런 음식이 제브라드에 있었으면 뒤집어졌겠지?”
문득 방문자들이 생각났다.
별것 아닌 밥상에도 감격하며 먹어치우던 그 모습. 사실 밥상도 아니다. 그저 귀찮음이 묻어난 끼니 때우기에 불과했다.
누군가에 내보이기엔 부끄러운 차림.
그런데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감사해했다.
“신까지 욕보면서 말이지.”
픽.
신선하다면 신선한 경험.
그만큼 제브라드는 빈부격차가 심했다. 밑바닥으로 노예가 있다면 최상에는 왕과 귀족이 있었다.
빈부격차가 당연한 세상.
누릴 수 없기에 더 절실히 느끼는 박탈감.
‘그렇다면 그 기회를 누리게 해주는 건 어떨까?’
왕이나 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끼라도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3명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뭐,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어차피 배달음식이란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가끔 밥 시간에 맞춰 누군가 온다면 같이 먹어도 될 일.
“그러고 보니 엄만 어떻게 요리를 하지?”
마트에 가고서 세상이 변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생소한 재료, 그것들이 기존의 재료와 섞여 같은 맛을 내는 것도 신기했다.
‘아니,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걸지도.’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엄마가 알려준 대로 만들어 봤지만, 대 실패를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실력. 다른 말로 재능.
도현에게는 요리에 대한 특출난 재능은 없었다.
“이참에 요리나 배워볼까?”
몬스터 고기에 절어버린 미각도 돌아오는 듯 했다.
제일 중요한 미각이 살아나니 괜스레 자신감도 따라 솟았다.
‘노력을 안 해봐서 그렇지, 하면 잘 할 자신 있는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스시를 찾아 젓가락을 놀리는데, 잡히는 게 없다. 멍한 시선이 접시로 향했다.
빈 접시 위에 젓가락이 춤추고 이있었다.
“허…”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다 비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