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 별로 안 궁금한데? (5)
차도식이 신음을 흘렸다. 순식간에 오른 난이도에 암담해졌다.
자신들은 3등급. 둘이서는 비벼보기는커녕 즉사다.
주기를 맞은 워프는 일시적으로 등급이 오른다.
최소 한 등급이나 두 등급 이상.
정보가 없던 초기에 헌터들의 목숨과 맞바꾼 정보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보에는 워프 등급이 높아질 수록 아래 등급의 헌터는 비벼볼 기대보다 생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도식은 사냥을 빠르게 포기했다.
“피해야 합니다! 어서!”
차도식이 재촉했다.
보스몬스터가 나타나면 이놈들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탈출은 불가능했다.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다행이 입장은 가능하기에, 살아남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돌아갈 수는 있다.
“워프 색이 바뀌었을 테니 빨리 눈치채길 바랄 수밖에….”
하지현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특대농경지 워프에는 끝없는 넓은 벌판 형태의 워프다.
오로지 평지만 존재하는 이곳에 숨을 곳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기 위해 발악은 해야만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끝을 숨겼다. 자신과 차도식이 흔들리면 저 둘도 휘둘릴 수밖에 없다.
‘싸가지….’
불안한 눈이 도현을 향했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심드렁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몬스터를 수거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늘 엉뚱하긴 했지만, 지금도 저럴 줄이야!
“싸가지!”
목소리를 높여 부른 게 화근이었다.
두 보스몬스터가 제일 가까운 거리의 도현에게 꽂혔다.
어이가 없는 건, 그럼에도 도현은 사체 수거를 멈추지 않았다.
“우도현!”
다급하게 다가온 하지현이 도현의 팔을 잡고 당겼다. 귀찮음이 잔뜩 묻어난 얼굴이 느리게 그녀를 본다. 좁혀진 미간이 왜 방해하냐 묻고 있었다.
‘설마… 워프가 처음?’
초보자가 틀림없다. 지침도, 위험상황 대처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더 화가났다.
“너 지금 무슨 상황인 줄 몰라?! 보스몬스터라고! 지금 널 보고 온… 꺄악!”
순식간에 눈앞에 두 보스몬스터가 보였다. 질겁한 하지현이 비명처럼 주문을 외우고 지면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무너져라!”
사냥 때와 달리 절반밖에 안 되는 대지가 들썩이며 쩍쩍 갈라져 내렸다.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던 모랄보어도,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려던 카우엑스도 휘청거리며 몸이 뒤집혔다.
“가자! 도망쳐야 해!”
“지현아!”
“도현 씨!”
나머지 두 사람까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다급한 하지현과 다가오는 두 사람의 얼굴은 험악했다.
“도현 씨, 지금 저 보스몬스터 안 보여요? 왜 버티고 있습니까!”
차도식이 그녀를 끌어안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 저 얼굴 식장에 봤던 얼굴이다.
‘질투인가?’
도현은 픽 웃었다. 이어 주 팀장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서 초짜는.”
이 사람은 속 긁는 게 취민가 보다.
“도현아, 어서 가자니까! 우리 모두 죽어!”
차도식의 품에서 버둥대는 하지현이 보였다.
오직 그녀 하나만 도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쩝.
도현은 느리게 몸을 일으켜 앞을 봤다.
무너져 내린 대지 위에 몸을 일으키는 두 몬스터가 보였다.
성난 두 쌍의 눈이 마지막으로 공격을 했던 하지현에게 향했다.
“싸가지!”
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초토화된 대지 때문에 수거해야 할 몬스터들이 파묻혔다.
아직 100마리 정도 더 남았는데 말이지.
스멀스멀 짜증이 치솟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현 때문에 우물쭈물하는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다가온 보스몬스터 2마리가 그들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차도식은 하지현을 들쳐 업고 그대로 몸을 뺐다.
주 팀장은 이를 갈더니 인벤토리에서 캡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 안돼! 싸가지이이이!”
하지현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하, 다 짜증나.”
도현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눈앞에 동굴처럼 길게 뚫린 몬스터의 입안이 보였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에 악취 섞여 도현을 스쳤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도현은 주먹을 들어 냅다 휘둘렀다.
퍼버벅! 키엥, 꽤액!
두 보스몬스터가 연타로 맞고 얼굴이 홱 돌아갔다.
두 마리는 중심을 못 잡고 다시 무너진 흙에 다시 머리가 처박혔다.
“아…?”
주 팀장이 반사적으로 멍청한 소리를 냈다.
도망치던 차도식도 그 자리에 서서 멍한 얼굴로 처박힌 보스몬스터를 봤다.
도현은 풀쩍 뛰어 빅카우엑스의 배 위에 올라탔다.
“니들은 왜 나타나서!”
쾅!
빅카우엑스의 몸이 반동에 땅에 박혔다. 놀란 빅모랄보어가 몸을 일으켜 도현을 향해 어금니를 들이밀었다.
“어디서 썩은 입을 들이밀어!”
도현은 주먹을 연타로 내리꽂았다.
쾅쾅!
두 방으로 어금니가 땅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빅모랄보어는 얼굴을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음뭐어어어!
빅카우엑스가 도현에게 달려들었다. 도현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도끼를 주먹으로 쳐냈다.
후우웅, 콰앙!
굉음을 내며 평야에 박힌 도끼에 지면이 들썩였다.
“이 소새끼가!”
도현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도끼를 잃은 빅카우엑스의 발길질이 아슬아슬하게 도현을 지나쳤다. 그 순간 보이는 빈틈을 향해 도현의 주먹이 날아갔다.
머리, 가슴, 배!
쾅! 쾅! 쾅!
도현의 주먹이 꽂힌 부위의 뼈와 근육을 타고 충격이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고통에 정신이 혼미한 빅카우엑스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조용히 좀 살려는데! 왜! 가만두지 않냐고!”
퍽억!
도현의 어퍼컷이 빅카우엑스의 턱에 꽂혔다. 반동으로 몬스터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도현의 손이 잔상을 남기며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를 향해 휘둘러졌다.
드다다다다―
따발총 소음 같은 타격음이 공기를 터트리며 평야에 넓게 퍼졌다.
쿠우우웅.
한참 동안 이어진 소리가 뚝 끊겼다.
잘 다져진 소고기… 아니, 숨통이 끊어진 빅카우엑스의 몸뚱이가 땅에 떨어지며 잔 지진을 일으켰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도현이 손바닥을 털고 깔끔하게 착지했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스캔레이저와 캡슐을 꺼낸 도현은 아무일 없다는 듯 이어서 흙에 파묻힌 사체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세 사람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너, 너, 너!”
먼저 정신을 추스린 건 하지현이였다.
그녀가 차도식의 품에서 벗어나 다가왔을 땐, 사체 수거가 끝난 직후였다.
도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가방째 주 팀장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든 주 팀장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야, 싸가지! 어떻게 날 속일 수 있어?!”
“뭘 속여?”
“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서 물어?!”
옆에서 주 팀장이 침을 삼킨다. 방금까지 빈정대고 긁던 사람은 어디 갔나.
도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귀찮아. 일도 끝났으니 난 집에 간다.”
“야! 헌터가 어떤 직업인지…”
“별로 안 궁금하거든.”
“우도현!”
소리를 빽 지르는 하지현을 보고 도현은 손사래를 쳤다.
이래서다. 이래서 조용히 있고 싶었다.
얘가 이 정도면 부모님은…
“어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뭐?”
“아니다, 아니야. 주 팀장님.”
“예, 예! 헌터님!”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눈치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
아무튼.
도현은 왼손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잘 다져진 두 마리의 보스몬스터가 있는 위치였다.
“저건 내 겁니다.”
“예?”
“내가 잡았잖아요.”
“예, 예! 당연하죠!”
픽 웃었다. 어디든 변하지 않는 파워게임. 그는 보스몬스터를 향해 손을 뻗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빅카우엑스의 사체를 습득하셨습니다.(1++ 등급)
빅모랄보어의 사체를 습득하셨습니다.(1++ 등급)
다시 펴진 손이 내려졌을 땐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남아있었다.
끔뻑대는 세 명을 보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웃어버렸다.
눈이 마주친 차도식이 시선을 돌린다. 귀가 빨간 걸 봐서 자존심이 좀 상했나?
“그럼 전 들어갑니다.”
도현은 지면에서 발을 뗐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하지현이 보였다. 그녀의 손이 도현의 옷자락을 움켜쥐었을 땐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띠리리, 띠리리!
침대에 엎어져 자던 도현은 손만 더듬거려 휴대폰을 쥐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알람이 꺼졌지만 10분 뒤 알람으로 다시 맞춰진다.
그러길 다섯 번.
“으아아아! 잠 좀 자자! 잠 좀!”
한 시간 가까이 휴대폰과 대치하던 그는 발악적으로 일어났다. 이대로 휴대폰을 없애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며 휴대폰을 죽일 듯 노려봤다.
다시 울려댄다. 이번엔 알림이 아닌 전화다. 아빠 전화.
“어, 아빠.”
(왠일로 깨 있냐, 아들아?)
“왜?”
학교에 가기 위한 알람을 끄지 않은 탓에 의외의 테러를 받은 도현은 퀭했다.
(오늘 워프 대신에 아빠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디…?”
흐리멍텅하던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1초도 안 돼서 게슴츠레 해졌다.
“몹시 귀찮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풍기는데?”
(아―냐! 그냥 갔다 오기만 하면 돼. 2시간! 그거면 돼.)
갈까? 말까?
첫날 폭탄 이후로 큰 사고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부모님은 조용했다.
반대로 주팀장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쩔쩔맨다.
귀찮게 하는 건 하지현이었다.
차도식은 그날 꺾인 자존심 때문인지 계속 높은 등급의 워프에 가자며 하지현을 꼬드겼고, 그게 고스란히 도현에게 온 거다.
하소연을 하는 건지, 같이 헌터 하자고 조르는 건지.
6일 동안 고정으로 같이 다니니 죽을 맛이다.
(아들아?)
“정말이지?”
(뭐가?)
“두 시간.”
(그러어엄!)
좀 미심쩍긴 하지만 그 셋보단 아빠가 낫다.
(준비하고 있어, 아빠가 데리러 갈게.)
도현은 아빠의 전화를 끊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루종일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와서인지 적막한 집이 더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오는 놈들이 없네.’
이번 주라 해봤자 몇 시간 안 남은 오늘과 내일이 끝이다.
노르세아스 여식이 다녀간 뒤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방인은 없었다.
저번 주에 다녀갔던 제브라드 인간은 둘. 아니, 셋인가?
상태창을 기준으로 하면 둘.
‘거기에 한명이 더 추가된다 했으니 셋이네.’
남은 날을 생각하니 절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째까진 몰라서 넘어갔다지만 세명이 찾아와 구구절절한 하소연을 들어주며 밥을 먹인다면…
“그건 좀 아닌데.”
무슨 인생상담소도 아니고.
물론 방문자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힘을 회복했다지만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집이, 가족이 그리워서 돌아온 것일 뿐.
그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가족 때문이었다.
제브라드에서 돌아갈지 말지 오랜시간 고민 했었다. 자신의 정신은 이미 닳고 닳은 상태였으니까.
그런데도 돌아왔던 이유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걱정과 다르게 돌아오니 정신머리가 행방불명 되기 전과 비슷해졌다.
다행이지만.
“가족이라….”
자신이 허물없이 온전한 자신을 보여도 될 존재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도현에게는 그런 존재가 가족밖에 없었다.
‘페론드.’
잊었던 친우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니 방문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 옅어진 건 사실이다.
지구의 몇십 배의 시간을 보냈던 제브라드.
불쾌했던 마음을 비짓고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떠올랐다.
지구로 돌아온다는 기대감에 들떠 생각도 못 했던 녀석들인데.
언젠가 그 녀석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니 방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나 밥 한끼 하는 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뭐 요리야 배달음식 시켜도 되고.”
정 안 되면 내킬 때만 해도 될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도현은 픽 웃었다.
“이런 생각도 하는 걸 보면 정말 여유가 생겼나 보네.”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런지 미친놈 같던 성격이 조금 수그러든 것 같다.
“준비나 해야겠다.”
도현은 한껏 기지개를 피며 욕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