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9화 (9/200)

# 9

9. 별로 안 궁금한데? (4)

성인 가슴께까지 오는 벼 사잇길을 앞장서서 걷던 주 팀장이 말했다.

“오면서 말한 대로 헌터님들을 따라다니며 몬스터 사체는 그 자리에서 매입합니다.”

상태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부수적으로 몬스터에서 나온 물품. 즉, 아이템들도 헌터의 의사에 따라 매입도 한다.

“무한평야는 쌀 생산이 가능한 곳입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쌀 생산 초대형 워프인데, 두 달에 한 번꼴로 몬스터가 나타나 먹어치웁니다.”

다양한 몬스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몬스터가 소와 돼지를 닮은 놈들이란다.

자신의 몸만 한 도끼를 들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젖소 모습의 카우엑스와 거대한 멧돼지 모랄보어가 그 몬스터였다.

카우엑스는 2미터로 크기가 같았지만, 모랄보어는 3미터에서 최대 6미터까지 덩치가 작은 산만 했다.

“대부분 1,000마리 내외로 오기는 하는데, 며칠 뒤 수확 시기라 더 올 겁니다.”

‘1,000마리도 많은데 더 온다고?’

“대충 10배 정도쯤.”

대답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듣자마자 없던 두통이 머리를 쿡쿡 찔러댔다.

쿠구구구궁.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땅이 들끓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

가죽이 터져나가는 소리에 이어 공기 중의 마나가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푸확! 퍼어어엉!

거친 폭발이 터지며 이번엔 5.0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다행히 근처군요.”

주 팀장은 서둘러 걸었다. 다가갈수록 묵직한 마나가 느껴진다. 성인 남자의 키만 한 모랄보어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압!”

덩어리와 대치 중인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끼에에엑!

익숙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나며 3미터의 모랄보어가 주저앉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헌터님, 하헌터님.”

도현을 대했던 것과 다르게 주 팀장이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괜찮습니다. 오신 김에 한 타임 끝났으니 정리 부탁드립니다.”

“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쉬고 계십시오. 도현 씨, 이쪽으로.”

‘도현 씨?!’

놀란 두 헌터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입을 뻐끔거리는 하지현을 향해 도현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 사이 주 팀장은 한 뼘 크기의 검은 막대기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스캔레이저라합니다. 여기 버튼을 누르며 마나를 흘려보내면.”

주 팀장이 버튼을 누르자 스캔레이저가 손전등처럼 불빛이 나왔다. 그 빛을 쓰러진 모랄보어에게 비췄다.

빛이 붉게 변했다. 빛이 닿은 모랄보어의 피부가 투명해지며 속이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장, 뼈, 근육.

깊게는 위장 속까지 보이며 모랄보어가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확인 가능했다.

주 팀장이 말했다.

“이렇게 확인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 손상 상태를 확인합니다. 당연하지만 손상이 적을수록 값이 더 비싸니까요.”

2차적으로 상태 이상 위협 감지였다. 독이나 폭발의 우려가 있는 몬스터들도 감지와 함께 가벼운 상태 이상은 제거된다.

그리고 스캔이 끝나면 스캔레이저에 스캔한 몬스터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상세 내용이 저장된다.

이 정보는 헌터에게 대금을 치를 때 유용했다.

주 팀장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가방을 도현에게 던졌다. 20센티 크기의 검은 가방이었다.

“열어 보면 스캔레이저와 캡슐이 있을 겁니다.”

캡슐을 켜고 스캔레이저를 비추면 스캔이 끝난 몬스터는 자동으로 캡슐로 들어간다.

“우선은 이 몬스터들을 스캔해보십시오.”

주 팀장은 사무적인 톤의 설명을 끝내고 도현을 지켜보았다.

‘설마 전부 다 나 보고 하라고?’

눈을 끔뻑이던 도현은 미간을 좁혔다.

***

“싸… 도현아, 너도 헌터였어?”

총 87마리. 모랄보어의 스캔과 수거가 끝나자 하지현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뭐, 그렇네.”

“뭐 그렇네? 왜 말 안 했어?”

“말해서 뭐?”

“그야, 헌터로 뛰면 되잖아. 이렇게 있지 말고.”

이것도 하기 싫은데 헌터를 하라고?

‘하아, 제발 좀 가만두면 안 되나?’

들들 볶는 하지현 때문에 도현은 피로로 어깨가 축 늘어졌다.

“됐어, 난 귀찮은 거 딱 질색이야.”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입을 열려던 찰나에 주 팀장이 다가왔다.

“끝났습니까?”

“예.”

성의 없는 대답임에도 주 팀장은 별말 하지 않았다.

“차헌터님 하헌터님 움직이시죠.”

“예.”

몸을 돌리던 차헌터가 도현을 향해 살짝 눈인사를 건넸다. 도현도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모습에 하지현이 입을 삐죽거리더니 차도식을 따라 앞장선다.

뒤로 이어진 건 반복 작업밖에 없었다.

두 헌터가 몬스터를 찾아 사냥한다. 멀리서 주 팀장과 도현이 대기하다 사냥이 끝나면 수거한다.

조금 신선하다면 차도식과 하지현의 사냥법이었다. 해치우는 속도만 봐도 워프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같이 왔다는 건…

‘신혼여행인가?’

차도식이 자신의 몸 크기만 한 대검을 들어 몬스터를 두드려 팬다. 적으면 세 번, 많으면 다섯 번.

오히려 몬스터가 대검에 몸을 던지는 것 같다. 빠르게 잡아들이지만, 몰려오는 수가 더 많다.

“불태워라!”

때마침 하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으로 뻗어진 양손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지면에 직경 20미터에 달하는 붉은 마법진이 폭사했다.

주위에 몰린 몬스터가 일순간에 타올라 숯덩어리가 되어 쓰러졌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몬스터에서 익숙한 냄새가 피어오랐다.

‘그래, 찌롱은 범위 특화였구나.’

혼자보단 팀으로 함께하면 좋을 능력이다.

범위가 넓은 것 치고 화력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능력에 맞는 워프였다면 마지막 한 수가 부족할 듯 했다.

‘그래서 저놈이랑….’

도현의 이을 차도식에게 향했다.

무식할 만큼의 큰 대검은 공격만이 최고의 방어를 외치듯 몬스터를 후두려 팬다. 뭣 모르고 봤다면 미친놈이 따로 없을 모습이었다.

패기만 하는 이유는 이곳의 몬스터가 그렇게 인기가 좋단다.

“구워진 몬스터는 녹색 캡슐에 수거하십시오.”

이유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빠른 퇴근을 위해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워어어어!

카우엑스가 괴성을 지르며 양손에 쥔 양날도끼를 휘둘렀다.

차도식의 대검의 면으로 몬스터 머리를 쳤다. 몬스터 머리가 홱 돌아간다. 다시 대검이 위에서 떨어졌다.

패대기쳐지는 몬스터 뒤로 끝없는 몬스터가 대기 중이었다.

꽤 깊이 들어왔음에도 그 끝이 안 보이는 워프. 그리고 아직 가득한 몬스터까지.

처음에는 장관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지겨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몬스터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았다는 것 뿐이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사냥에 주변은 몬스터 사체로 산이 쌓일 지경이었다.

“정리하죠.”

‘사냥 중인데?’

반문하는 시선에 주 팀장의 눈에 살짝 비웃음이 서렸다.

“설마, 7등급입니까?”

쪼려서 못 끼어드냐고, 비웃었다.

도발했지만 도현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도현을 긁은 건 뒤에 이어진 말이었다.

“가득 찬 캡슐 주고 가세요. 확인 작업 해야 합니다.”

혼자 하란 소리였다.

그나마 도현이 참고 일을 하는 이유는 지금 잡는 몬스터들이 마지막 웨이브라는 것이다.

‘끝이 보이니까 참자!’

도현은 좁쌀의 인내심이 부르르 떨었지만 꾸역꾸역 참아냈다.

하루 6시간씩, 일주일.

빡센 굴림이라지만, 이정도로 끝난다면 감지덕지다.

역시 엄마란 이름은 위대하다.

수거 작업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냥 범위에서 50미터나 벗어난 곳부터 시작했는데, 주변 것만 해도 3,000마리가 넘었다.

도현은 빠른 작업을 위해 낭비 없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캡슐을 켠다 스캔한다. 스캔한다. 스캔한다.

삐빅!

캡슐이 다 찼다는 신호다.

새로운 캡슐을 꺼내 켠다. 다시 스캔, 스캔, 스캔….

‘이렇게 움직인 게 언제였더라?’

최근 이사를 제외하고 몸을 크게 움직인 적 없던 도현이었지만, 그렇다고 몸이 둔해질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아. 침대에 뒹굴고 싶다. 격하게 침대에 뒹굴고 싶어!’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마음속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못하겠다고 이대로 드러누워 버릴까? 아니면 이대로 튀어버리고 잠수 탈까?’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헝크러트리지만, 결국 깊은 한숨만 나왔다.

엄마를 생각하면 한순간의 편의보단 미래를 봐야했다.

‘무엇 때문에 개고생하며 지구에 돌아왔는데.’

참고 참는다. 하지만 좁쌀 인내심에 있어 일주일이란 시간은 정말 애매했다.

참기도. 그렇다고 헌터를 결심하기 뭐한 그런 시간.

‘그냥 헌터 할까…?’

도현의 입에서 작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것이야말로 엄마, 아빠의 빅피쳐가 아닐까?

차라리 일주일을 버티는 게 낫다.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나.’

염불처럼 그 말만 되뇌던 도현은 이 일만 끝나면 헌터에 헌자도 보고 싶지 않다.

절대! 네버!

하지만 다짐하는 도현 눈앞에 다시 홀로그램 창이 떴다.

카우엑스와 모랄보어의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요리 재료 리스트에 등록합니다.

카우엑스 : 1++ 등급

모랄보어 : 1+ 등급

카우엑스와 모랄보어에서 요리 재료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뭐?”

황당했다.

집에 제브라드 인간들이 들이닥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죽겠는데, 이젠 몬스터가 식재료라고?

“정말 식당이라도 하라는 거냐.”

짜증으로 다물어진 이 사이로 씹듯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뭐라 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몇 초 뜨거운 주 팀장의 시선이 머물렀지만 도현은 무시했다.

다시 손은 바삐 놀리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둥둥둥둥!

작업의 끝이 보일쯤 도현의 귓가에 북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고된 작업으로 불만 가득한 얼굴이 주변을 살폈다.

[무한평야의 지배자 빅카우엑스와 빅모랄보어가 등장합니다!]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기 무섭게 땅이 흔들렸다.

도현을 제외한 셋의 얼굴은 당연하게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워프가 왜 이러죠?”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혹시, 오늘이 워프 3주년 아닙니까?”

주 팀장의 날카로운 추리에 차도식과 하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달이 사라지고 나타난 워프는 홀수 주기마다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 주기가 되지 않았음에도 그런 상황이 지금 이 워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쿵, 쿵, 쿵.

방금까지 사냥한 몬스터들과 체급부터가 다른 몬스터 두 마리 나타났다.

1주기 워프에서 네임드가 나온다면, 2주기인 워프에서는

“보… 보스 몬스터….”

차도식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쿠워워워어!

키이이이익!

몬스터의 두 괴성이 불협화음처럼 무한평야를 흔들었다.

5미터의 카우엑스와 8미터의 모랄보어였다. 검은 피부에 지렁이처럼 이어지는 푸른빛이 문신처럼 특이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몬스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2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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