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7화 (7/200)

# 7

7. 별로 안 궁금한데? (2)

리마스서울호텔. 고위급 인사도 예약하려면 최소 6개월 전에 해야 겨우 가능한 7성급 호텔이었다.

평일에도 붐비지만, 주말이라면 그 몇 배가 되는 이곳은 예식장으로도 꽤 유명했다.

예식홀이 있는 50층.

오늘 하루 한 층 전체가 두 사람의 예식으로 비워진 날이다.

공식 헌터 랭킹 부동 1위 차도식과 3위인 하지현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날.

한 층 전체를 비웠음에도 많은 헌터들과 유명인사, 지인들. 그리고 이 소식을 취재하려는 기자들로 예식장은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잔잔하고 활기찬 음악이 층 전체에 울리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특히, 신부대기실은 많은 여인들이 꽉 채우다 못해 입구 앞에도 가득 모인 상황이었다.

“아휴, 신부가 너무 곱네요. 차헌터님 입이 귀에 걸리셨어요.”

어느 하객의 한마디에 신부 측 어머니, 하미인은 입을 살짝 가리고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신부대기실은 밀려오는 다른 하객들로 사진 촬영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길 2시간.

미소지은 입가가 떨려올 때쯤, 예식장 직원이 신부대기실로 들어와 손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신랑님 입장할 시간이에요. 신부님은 대기해주세요.”

그녀는 살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시무룩해졌다.

“아. 도현인 왜 안 와? 사진 찍어야 하는데.”

신부, 하지현은 발을 동동 굴렀다.

사촌이지만 친구처럼, 남매처럼 지내던 도현이 행방불명된 지 5년.

암묵적으로 가망이 없다는 말에 충격받았던 그녀는,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헌터 일이 그렇게 쉽게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보고 싶었는데…

그랬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부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와작!

“앗!”

구겨지긴 했지만 다행히 손에 잡힌 부분만 홀쭉해졌다. 느슨하게 쥐면 티는 안 날 거라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는데, 신부대기실로 들어온 여직원이 그녀를 재촉했다.

“신부님 가시죠!”

하지현은 마지못해 일어났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뭉그적거리며 떼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후우, 찌롱 나왔다.”

아!

동그랗게 떠진 그녀의 눈이 신부대기실 입구로 향했다.

거기에는 뭔가 삐딱했지만 몇 년 만에 봐도 변함없는 얼굴이 있었다.

“싸가지!”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신부 입장!”

찰칵찰칵찰칵찰칵!

수십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서 하지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도현의 아버지, 우대성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우아하고 조신한 걸음이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듯했다.

이내 그녀의 손은 신랑인 차도식에게 넘겨졌다.

파바바바바박!

조금 전보다 세 배는 될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보석처럼 반짝이던 샹그릴라 조명조차도 빛을 잃을 정도였다.

제대로 눈을 뜨기에도 힘든 그 속에서 신랑, 신부는 정말 행복한 얼굴로 단상을 걸어 주례자 앞에 섰다.

뚱한 얼굴로 서서 예식을 보는 도현에게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시간 맞춰 왔네?”

“협박한 게 누구신데.”

삐딱한 대답에도 엄마는 호호,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안 올 생각이었잖아? 내 배로 나은 자식인데 설마 내가 널 모를까 봐?”

그래, 너무 잘 알아서 탈이긴 하다.

계속 뚱하게 있으니 엄마가 화제를 돌렸다.

“지현이 너무 예쁘지 않니?”

도현은 픽 웃었다.

“쟤가? 당연히 예뻐야지. 신부 화장 두께가 얼만데. 그거 하고도 못나면 진짜 못생긴 거잖아.”

계속 삐딱 선을 타는 아들을 빤히 쳐다보던 임혜정은 진지하게 말했다.

“도현아. 억지로 불러서 왔다지만 계속 이러고 있으면 지현이가 슬퍼할 것 같은데. 너희 둘 사촌이라지만 친남매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잖아?”

“…….”

도현은 입을 다물고 주례사 앞에 서 있는 둘을 계속 보고 있었다.

솔직히 도현은 기분이 나쁜 건지, 짜증 난 건지, 들뜬 건지 알 수 없었다.

제브라드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긴 탓이었을까, 살기 위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바빴던 그 시절. 솔직히 집 생각은 희미해져 버렸다.

페론드를 보내고, 그 슬픔으로 보냈던 200년.

새로운 힘의 경지에 들어서고 물밀 듯 밀려오는 자신의 본래 기억에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던 도현은 깽판을 치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지구, 대한민국에 돌아왔지만….

사실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서툴렀다.

짝, 짝짝짝짝!

멍하니 자아 성찰을 하던 도현은 홀을 울리는 박수 소리에 신랑, 신부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보았다.

“고태환 대통령님의 뜻깊은 주례사,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라앉은 눈으로 도현을 보던 임혜정은 사회자의 목소리에 단상으로 향했다.

“그럼, 이제부터 신부를 향한 신랑의 뜨거운 마음을 알아볼 차례군요? 먼저 체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눈을 반짝이며 악동 같은 웃음을 입에 걸쳤다.

“평범한 스타일은 가라! 헌터 부부를 위한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자, 들어오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상 양옆으로 반짝이는 투명한 돌을 든 사람들이 들어왔다.

워프에서 캘 수 있는 광석중 하나인 스타스톤이었다.

“예, 스타스톤입니다. 무병장수의 대표적인 돌로 더럽… 흠흠, 무척 무거운 게 흠이죠.”

스타스톤은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하면 100톤까지 무게가 늘어나는 단점이 있었다.

“신부님? 스타스톤 위에 앉아 주시겠습니까?”

무엇을 하는지 몰랐던 사람들의 눈에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쳤다.

거무튀튀한 판 위에 스타석판이, 그 위에 신부가 수줍어하며 엉덩이를 살짝 걸쳐 앉자 사회자가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었다.

“자, 신랑은 석판째 들고 다리 굽히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나에 굽히며 ‘남자의 생명은!’, 둘에 일어서며 ‘허리!’를 외쳐주셔야 합니다. 마나 쓰시면 반칙인 거 아시죠? 시작합니다, 하나!”

신랑이 무거운 석판을 들고 무릎을 굽혔다. 둘에 번쩍 일어난다.

오오오!

하객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아, 이거 안 되겠군요. 너무 강하니 재미가 없습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도와주실 분들을 모셨죠! 어서 나오세요!”

신부 측 하객 쪽에서 여성 두 명이 일어서 나왔다.

“헌터계의 걸크러쉬! 박효린 헌터님과 이수이 헌터님! 중력을 다루는 헌터님들이시죠! 자, 다시 가겠습니다!”

신랑의 몸에 압력을 가했다. 방금까지 환한 웃음을 짓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번에도 세 번까지는 수월하게 했지만, 그 뒤부터 신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부들부들. 떠는 다리와 끙끙대는 소리에 하객들이 와하하 웃어댔다.

그걸 뚱한 얼굴로 보던 도현의 표정은 비틀렸다기보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웃고 축복하는 이 풍경이 자신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이 분위기?

모두가 웃고 있는 모습이?

신부가 어찌할 줄 몰라, 사회자에게 눈치를 팍팍 준다.

그 모습조차 하객들은 웃긴지 고개를 끄덕이며 몇몇은 다음을 외친다.

당황하는 신부, 하지현의 얼굴이 도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너 여동생 뺏겼다고 생각하는구나?”

웃음기 가득한 임혜정의 목소리에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여동생?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 아들, 시스콤이 있는 줄 몰랐는데?”

꺄르륵 웃는 엄마의 모습에 도현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사촌이라서, 자신이 6개월 생일이 빨라 오빠, 동생 하는 것이지 어차피 동갑인데, 시스콤이라고?!

한마디 더 하려다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신랑, 신부가 부둥켜안고 애쓰고 있었다.

품 사이에 바둥거리는 슬라임 한 마리가 보였다.

신랑의 차가운 시선이 아주 찰나에 도현과 부딪혔다.

“하아?”

엄마와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나?

헌터니까 들렸을지도.

‘그렇다고 그런 썩은 눈으로 날 봐?’

도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진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현이 봤다면 몸을 부르르 떨며 ‘걸린 놈은 죽었다!’라고 외칠 그런 웃음이었다.

***

하지현, 그녀가 도현과 남매로 불리게 된 건 어렸을 적 사고 때문이었다.

10살의 가을. 그러니까 친척들과 시골에 벌초하러 갔을 때였다.

날짜를 맞춰 마을 전체가 함께 움직이게 됐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마을 어른이 건네는 술을 거절 못 하고 먹었다. 그게 농약이었던 거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을 어르신들, 하지현의 아버지까지…

8명이 사망한 사고로 밤 9시 뉴스에도 몇 번이나 나올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하지현의 아버지도 돌아가시게 되었다.

생계가 어려워진 그녀의 집을 도운 건 도현의 부모님이었다.

도현의 가족만 무사했었는데, 벌초 당일 급성 식중독으로 참석하지 못한 게 천운이었다.

그래도 도현은 하지현에게 늘 미안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장남인 도현의 아버지가 참석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만 같았으니까.

사고 이후 하지현은 빨리 철이 들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라서일까,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미친 듯이 공부했고 전교 5등 안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도현은 늘 자신을 하지현에게 비교하려는 부모님 때문에 기회만 있다면 양가 부모님들과 함께 놀러 다니자며 부추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도현의 행방불명으로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돌아온 도현에게 들린 소식은 그녀가 헌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꽤 잘 나가는 헌터 말이다.

한 번쯤 만나고 싶어서 시간을 맞춰보려 했지만, 하지현은 정말 더럽게 바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 땅덩어리에 생겨난 워프가 너무 많은 탓에, 돌릴 수 있는 인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결국 있는 인력만 죽어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헌터들의 노력으로 현실은 달이 사라진 것 외에 딱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없었다.

예식이 끝나자마자 호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긴 도현 가족은 나오는 코스메뉴를 먹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가본 예식장.

그것도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은 그에게 있어서 꽤 충격적이었다.

화려함이나 성대함은 제브라드에 비하자면 조촐할 정도였지만, 그때는 흐뭇했다면 지금은 마음이 한 곳이 텅 빈 느낌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에게 아빠가 뜬금없이 물었다.

“아들아. 넌 어쩔 거니?”

막 웨이터가 빈 접시를 가져가며 새로운 요리를 두고 갔다.

성인 머리 크기의 두툼한 스테이크. 그 위로 뿌려진 붉은 소스가 뜨거운 김을 타고 코를 매콤하게 울렸다.

도현은 바쁘게 스테이크를 썰어 한 점 입에 넣고는 열심히 우물거리며 눈을 끔뻑였다.

아빠의 시선이 도현 뒤를 향했다 돌아왔다.

식이 끝나고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던 헌터들은 코스 상관없이 모든 음식을 다 내오라고 했었는데, 그 음식의 절반의 절반도 먹지 못하고 서둘러 빠져나가 버렸다.

그 덕에 사람은 없고 모든 테이블 위는 온전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그 소란통에 빠져나가는 헌터들을 보며 자신은 절대 저렇게 안 살 거라 다짐했었는데.

도현이 혹시나 하며 아빠에게 되물었다.

“헌터?”

아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말없이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무척 기대하는 것 같지만 도현의 꿈은 확고했다.

“난 그냥 소박하게 살 건데.”

“소박하게?”

“백수.”

엄마, 아빠의 표정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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