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5화 (5/200)

# 5

5. 그 헌터의 자취방 문은… (5)

“콜록, 콜록!”

1리터 우유를 다 비우고서야 입안의 불을 끈 헤미오르는 치를 떨었다.

‘무슨 음식이…!’

가세가 기울었다 한들 매운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매울 줄은. 아니, 이런 걸 먹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지만….

‘너, 너무 맛있었어!’

이것이 그가 말했던 치킨… 아니, 치느님이란 것인가.

도현이 흘리듯 했던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좋은 그녀는 단번에 기억해냈다.

“영접…….”

감히 음식에 붙일만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먹으면 끊을 수 없는 마력을 가진 음식.

‘이런 음식을 누가 만든 걸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요리사라거나 당연하게 있어야 할 사용인 하나 없는 곳.

그러고 보니 집사라든지, 시종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치느님이라는 이 음식의 그릇 또한 특이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딜까?’

순간 도현이 사는 이곳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노르세아스는 어떻지?”

여태 말없이 지켜보던 도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헤미오르는 도현의 똑바로 응시했다. 무례하다 할지 몰라도 무슨 의도인지 알아야 했다.

협박? 경고?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그의 마음을 읽기엔 그녀의 인생 경험이 얕아 알 수 없었다.

누그러진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호의가 묻어나왔다.

“가문을 아시나요?”

“뭐 조금은.”

그를 알게 된 지 이제 1시간.

책에서 다뤘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그 힘은 책에 나온 대로 같지만….’

상황이 어떻든 이쪽이 침입자이니, 그 정도로 끝난 걸 다행인 거다.

‘그리고 치느님.’

이렇게 황홀한 음식까지 나누어주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혼자서 한 상자를 다 먹어버렸던 것까지 함께 떠올랐다.

헤미오르는 부끄러움에 자신의 치맛자락을 작게 움켜쥐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무가(武家) 노르세아스.

가문의 역사는 700년에 달했지만, 실제 전성기는 450년 전 페론드 카 노르세아스가 왕권을 쥐었을 때였다.

그가 죽은 뒤 소드마스터는 배출되지 못했다. 몰락은 당연했다.

무력으로 흥했던 나라는 그렇게 무력으로 망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허울뿐인 작위와 남작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지가 전부.

그마저도 몬스터와 척박한 땅으로 매년 죽어가는 곳이었다.

주변 귀족들은 조롱을 담아 말했다.

몬스터를 달래기 위한 먹이 창고라고.

머지않아 노르세아스 가는 지워질 거라고.

한참이나 주저하던 그녀는 틀어막힌 목을 겨우 쥐어짰다.

“…… 그저 작은 영지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머리면 머리, 장사면 장사, 건강한 육체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할 정도로 뛰어난 가문이었지만, 제일 큰 문제가 있었다.

오러로드.

무가이면서 태생적으로 오러로드가 망가진 가문이었다.

저주받은 피의 무가.

왕족이었던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검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헤미오르는 자신이 책에서 본 그 사람이 이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면.

그 힘도 사실이라면, 당장에라도 도현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고 싶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집어 던지고 말이다.

하지만…

‘빌린 힘은 가문의 힘이라 할 수 없어.’

모든 인내심을 끌어올려 꾹 눌렀다.

가문을 온전히 지키면서 영지를 발전시켜야 한다. 몬스터도 몰아내고 귀족 사회에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에는 일시적인 힘이 아닌 유지할 수 있는 가문의 힘이어야 했다.

‘페론드 조상님의 자손들만 있었어도…’

감쪽같이 사라진 그들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무너지진 않았을 텐데.

하나하나가 아쉬운 그녀는 지금이라도 도현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겨우 잡은 이성이 현실을 직시하라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다양한 지식을 쌓아 그것을 바탕으로 가문과 영지민을 지키는 것.

미래가 불안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선대가, 선 선대가 그랬듯이.

조용히 입술을 씹는 헤미오르의 눈이 붉어졌다.

“아직 저주를 풀지 못했나 본데.”

“어, 어떻게 그걸…?.”

동그랗게 떠진 헤미오르 눈에서 맺히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걔도 그랬지.”

‘…선대와 친분이 있었단 말이야?’

아아, 선대님!

그녀는 충격으로 힘이 빠져나가며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이 사실이 제브라드에 알려지면 자신의 가문은 그대로 지워질지도 모른다.

어차피 무너지기 직전인…

‘아니야, 내가 꼭! 꼭….’

초 단위로 표정이 변하는 헤미오르를 보던 도현은 인상을 썼다.

귀찮고 거슬렸다. 그런데도 짜증보단 한숨이 먼저 나왔다.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 저주를 해결했다 들었는데.’

10년 묵은 체중이 내려간 듯 환하게 웃던 친우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실이라도 된 걸까….’

1분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빽 짓 좀 하지.”

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엄지 크기의 병 하나를 꺼내 헤미오르에게 던졌다.

그가 제브라드에서 깽판을 쳤을 때 시비가 붙었던 천사의 피였다.

“이게 뭐죠?”

“성혈.”

“성혈?”

“천족의 피. 모든 저주를 풀어주지.”

……!

‘저, 저주를 안다고?’

그녀는 손에 쥔 작은 포션을 살폈다.

유리로 된 병 안은 투명했다. 흔들림에 따라 반짝이지 않았다면 빈 병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받아도 될까….’

고작 이 한 병이 저주를 풀어준다니.

말도 안 된다.

“마시면 돼.”

그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역시 악마야.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돼!’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흔들리는 가운데 데린이 그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아가씨.”

부드럽게 웃는 미소와 따뜻한 체온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그래,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었잖아?’

헤미오르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여성이 진출할 수 없는 사회. 출세했다 한들, 어느 왕의 첩으로 팔려가면 그게 여성이 설 수 있는 제일 높은 자리였다.

그럴 바에야 혀를 깨물고 죽겠다고 생각했었다.

헤미오르는 마음을 다잡았다.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병뚜껑을 열어 입에 댔다.

꼴깍.

미적지근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맛도 향도 없었다.

아무 효과도…?

“읏!”

뱃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거웠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허공을 부유하는 듯했다.

‘아…!’

눈앞에 시리도록 밝은 은하수가 펼쳐졌다.

강하게 박동하는 심장이 느껴졌다. 뜨거운 피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거침없이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눈을 한 번 깜빡일 사이, 그렇게 치솟은 피는 어느새 심장으로 돌아왔다.

“오러로드…….”

그려보라면 당장에라도 그릴 수 있는 그 길이 아무런 고통도 없이 18년 만에 개방되었다.

헤미오르는 한참이나 숨죽여 울다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감사드려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성의를 담아 도현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도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혈은 네 대에서부터 저주를 씻어줄 거다. 그 위는 어쩔 수 없어.”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노르세아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니!

뒤섞인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올라왔다.

악마라 지칭하던 그가 사실은 은인이었니!

‘실은 악이 아닌 건 아닐까…?’

제브라드에 알려진 악의 화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쩌면 제브라드 때문에 추락한 신인 건?

‘잠깐, 은인의 성함이….’

헤미오르는 그가 누군지 추측했을 뿐, 이름을 직접 들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성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시선을 마주하고 있지만 도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녀는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끼이익.

적막한 가운데 방문이 열렸다.

문밖은 깊은 밤 숲속의 작은 공터였다. 타오르는 모닥불 옆으로 마차와 어벙벙한 얼굴의 마부가 보였다.

“아, 아가씨?”

갑옷이 부딪혀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 2명이 사색이 된 얼굴로 문밖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헤미오르는 눈을 감았다 떴다.

‘돌아갈 시간이구나.’

아쉬운 시선이 도현을 향했다.

아직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는 그가 야속했다.

그녀는 도현에게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데린이 다가와 옆에 섰다.

‘이 문을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

잠시 머문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묵묵히 앉아 자신을 보는 도현도, 도현 옆 테이블에 놓인 빈 상자도…

‘치킨….’

그리울 거다. 한 번만 더 먹고 싶다며 타는 갈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도 절대 잊을 수 없다.

‘돌아가야지.’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있다.

예전이라면 그 무게에 질려버렸겠지만 지금은…

그녀는 처음으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몸을 가득 채우는 이 힘.

오러로드는 이 시간에도 쉼 없이 돌고 있었으니까.

‘이제 시작이야.’

마음을 다잡고 문밖으로 한 발 내디뎠을 때, 등 뒤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이든 마법이든 게을리 하지 마. 제국은 되찾아야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시선을 마주하며 씩 웃는다.

“내 이름은 우도현. 한때 트론이라 불리기도 했지.”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트론! 페론드 카 노르세아스의 둘도 없는 친우이자 황제의 검!

“동일인물?!”

당황한 얼굴로 몸을 돌려 도현에게 다시 가려고 했다.

“아가씨!”

데린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발을 떼자마자 문밖의 풍경이 흐려진다. 다시 발을 딛자 선명해졌다.

헤미오르는 입술을 씹었다.

“당신… 아니, 트론님! 가문의 백부로 모시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꺅!”

그녀의 몸이 무형의 기운에 밀려 문밖으로 떨어졌다.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멍하니 있던 그녀를 뒤로하고 문이 닫혔다.

달칵.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

18/여

파자트 카 아도노스의 7번째 첩 -> 아도노스제국의 최초 여황

소드마스터, 물의 정령왕 헤튜노누스의 반려.

체력 SS

힘 S

민첩 S

행운 S

마나 SS+

친화력 SS

신앙 SSS+

특이사항 : 아도노스제국의 개국 신교로 우도현교를 지정합니다.

“뭐?”

도현은 새롭게 뜬 창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어서 뜬 알림창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음 주부터 한 주의 방문자 수가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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