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2화 (2/200)

# 2

2. 그 헌터의 자취방 문은… (2)

짧게 혀를 차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미도론은 설거지를 하는 도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 우도현님의 소문이 거짓이라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손에 물기를 닦을 때쯤, 미도론이 말했다.

희한한 놈이다.

그가 떴다 하면 마왕조차도 치를 떨며 맨몸으로 도망칠 정도였다.

모든 악의 수식어를 달고 살았고, 제브라드의 모든 종족이 그로 인해 몸살을 앓았을 정도였다.

그 이야기가 몇백 권은 될 텐데.

그에 비해 미도론의 반응은 신선 그 자체였다.

“제브라드께서 우도현님을 ‘악’으로 명명하셨다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우도현님이 강림하신 신이십니다!”

“허… 너 그러다 신벌 받는다?”

이해는 됐다. 모두가 죽고 마을은 불탔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제브라드를 부르짖었겠지. 하지만 생뚱맞게 나타난 건 도현이었으니.

아무리 그래도 저건 위험했다.

제브라드의 신을 불러내기 위해 깽판 쳤던 그때.

몇백 년을 살아도 늙지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마왕도 한 손가락으로 없애는 강함을 동경한 이들이 모여 종교를 창설했다.

‘우도현교’는 이교도라 불렸지만, 제국을 능가할 정도의 무력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살아있는 신으로도 유명했던 도현은 미도론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았다.

동경과 맹신, 신도 입문의 첫 단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도현은 검지를 퉁겼다.

미도론의 몸이 의지를 배신하고 벌떡 일어났다.

얼떨떨한 미도론의 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걸레 두 개가 날아와 쥐어졌다.

“바닥 닦아. 싹싹.”

우선 눈에 씌워진 콩깍지부터 벗겨야 했다.

‘몸이 힘들어지면 살기 위해서라도 의심하기 시작하겠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저 순수한 눈빛이 부담스러워서라도 빡세게 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은 울창한 숲과 숲 옆으로 성벽이 보였다.

“호르젠?”

로거트 마을에서 일주일 정도 떨어진 마을이었다.

미도론은 동그란 눈으로 걸레와 문과 도현을 번갈아 봤다.

“가 봐.”

도현은 속으로 ‘나이쓰!’를 외쳤지만, 겉으론 덤덤하게 문을 향해 턱짓했다.

“우, 우도현님 아니, 주인님! 전 주인님을 모시….”

“시끄럽고. 가 봐.”

언제 주인님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건 치워두고 갈등하는 미도론의 등을 떠밀었다.

“큽!”

날아가다시피 문밖으로 떨어진 미도론은 지렁이처럼 고통에 꿈틀댔다.

‘힘이 좀 과했나?’

아니, 저 녀석이 너무 약골이라 그런 거다.

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주인님! 강해지겠습니다! 주인님님에 비해 한없지 부족하겠지만, 강해져서 반드시 다시 모시러…!”

‘아서라… 백수 패션으로 그런 말 뱉어봤자다.’

달칵.

문은 완전히 닫혔다.

오랜만에 시끄러웠던 집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전혀 움직이지 않던 도현은 눈앞에 뜬 창에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미도론

17세/남

용사가 될 사내 → 도현교 대신관

체력 SSS+

힘 SS+

민첩 S

행운 A

마나 SS+

신앙 SSS+

가상현실 게임에서나 익숙하게 봤을 반투명 상태창.

“하아.”

뚫어지라 쳐다보던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번 생은 글렀네.”

안빈낙도, 백수의 꿈 말이다.

***

도현은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휴대폰 알람을 끄며 부스스 일어났다.

아침 7시.

오늘은 강의가 있는 날.

그러므로 등교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아… 쉬고 싶다.”

그의 꿈은 평범했다. 아니, 무척 소박했다.

그저 백수로 여생을 보내는 것.

하지만 그 꿈은 시작하기도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행방불명이었던 그가 5년 만에 돌아온 게 문제였는지, 부모님은 자신을 7살짜리 아이로 대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넘어지면 뼈가 부러질까.

늘 노심초사하시더니, 시간마다 전화가 왔다. 그것도 번갈아 가며.

그런 날은 종일 전화만 붙잡고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간다면 못다한 효도를 해드리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다짐은 한 달 만에 무너졌고, 도현은 미련 없이 휴대폰을 버렸다.

좁쌀 같은 인내심의 한계였다.

그 뒤 모든 가면을 집어치운 그는 자신의 본연 모습 그대로를 보였다.

먹고, 놀고, 자고, 싸고.

집에서 숨만 쉬며 꼼짝없이 10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11개월이 된 어느 날.

얼굴을 때리는 종이 쪼가리 하나에 소파에 길게 누운 몸을 일으켜 확인했다.

대학 등록금 완납 영수증.

대학 입학 신청서도 아닌 등록금 완납 영수증이었다.

그것도 4년 치를.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도현은 500년 하고도 11개월 만에 가장 충격적인 날을 보냈다.

대학이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입학이 가능한 곳이었나?

왜 수능은 안 봐?

부조리한 세상에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며 좌절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었다.

대학교의 주소가 서울특별시였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학생들의 워너비 대학, 한국대학교.

영수증을 던진 그 시각부터 도현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독립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

엄마가 던지는 서류들 사이로 엄지를 내보이는 아빠와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도현은 마치 어명을 받드는 신하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서류를 받고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그렇게 도현은 서울로 상경했다.

그래 봤자 집과는 3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도현은 3분 만에 샤워를 끝내고 나와 머리를 털었다.

앱으로 택시 드론을 신청하고 손에 잡히는 옷을 대충 꺼내 입었다.

[10분 뒤 택시 드론이 도착합니다.]

안내 메시지를 확인하며 자신의 은신처를 나섰다.

이제 도착할 택시 드론을 타고  등교만 하면 아침 일과는 끝이다.

[도착까지 1시간 30분 남았습니다]

익숙한 알림음을 듣고 1인 좌석에 편하게 몸을 실었다.

사실 도현이 뛰어간다면 10분도 채 안 걸릴 거리였지만 귀찮았다.

‘그냥 타기만 하면 데려다주는데 굳이 왜?’

비싼 택시 드론요금은 통장으로 또박또박 들어오는 용돈으로 충당하고도 여유로웠다.

사귄 친구들과 놀라고 두둑이 넣어주시는 돈이었지만 딱히 쓸 곳이 없었다.

그저 등하교 셔틀 비용과 가끔 장 보는 것 정도. 이외에 도저히 쓸 곳이 없었다.

그렇다. 도현은 아웃사이더였다.

물론 자의적인 아싸였지만 말이다.

돈 많은 아싸.

전혀 조화롭지 않은 단어의 나열이었지만 그를 대표하는 말이기도 했다.

대학생 중 택시 드론을 이용하는 학생은 5%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도현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관심 없지만.’

도현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강의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드문드문 학생들이 보였지만, 누구 하나 도현을 신경 쓰지 않았다.

도현은 이제 지정석이 된 강의실 제일 뒤 사각지대에 자릴 잡고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강의 시작 20분 전.

오늘은 3시간짜리 강의가 무려 두 개나 있는 날이었다.

그나마 나은 점은 같은 강의실이라는 것 정도.

푹 퍼질러 잘 생각으로 양팔을 포개어 머리를 얹었다.

대충 끝날 때쯤 휴대폰 알람이 울릴 거다.

엄마라는 알람이.

***

도현이 제브라드에 떨어졌을 때, 지구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한밤중에 달이 폭발해버렸다.

이후 세상 곳곳에서 발견된 달은 우리가 알던 익숙한 달이 아니었다.

수만 개 혹은 수억 개로 조각난 달은 운석처럼 떨어져 지면에 박혔다.

그리고 그 달조각 속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다른 세상. 차원과 이어지는 입구. UN에서는 그것을 워프(Warp)라 명명했다.

세상은 워프로 떠들썩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영상매체로만 접하던 초능력자들이 현실에 나타난 거다.

세상이 변했다.

초능력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능력의 강약을 두어 등급을 나누었다.

일정 등급 이상의 각성자는 헌터가 될 수 있었고, 헌터가 된 이들은 달의 파편을 통해 다른 차원을 탐험하며 다양한 물자들을 지구로 들여오는, 막대한 기염을 토했다.

그로 인해 달의 파편이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워프’라 명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대한민국도 서둘러 발을 맞췄다. 그중 한 곳이 한국대학교였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명성이 자자한 한국대학교.

학생이라면 당연하게 목표로 삼는 그런 명문대는 전체 학과의 절반을 워프에 맞춰 교육 시스템을 바꾸었다.

다양한 학과 중에 도현이 입한 곳은 헌터 사무공무원과.

워프를 파괴하거나 워프 안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없애는 헌터들을 돕고 워프를 관리하는 사무직 공무원과정의 학과였다.

도현은 이 사실조차 첫 수업을 참석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자는 새끼들 빨리 일어나라.”

교수의 말투라기에는 거친 말이 강의실을 울렸다.

조용했던 아침 강의 뒤로 오후 강의 시간이었다.

점심도 거른 채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자고 있던 도현은 몸을 찌르는 기운에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뭐야 저건?’

비쩍 마른 연구원은 어디 갔는지, 근육질의 군복을 입은 사내가 분위기를 잡고 도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불독 새끼는 뭐야?’

몹시 불쾌했던 도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뭣도 모르고 짖어대면 되갚아 줄 생각과 달리, 불독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쭉 훑었다.

“문자 갔으니 알고 있겠지? 오늘은 예정대로 워프 견학 학습이다. 빠진 놈들은 F. 무사히 견학을 마치면 A다.”

‘며칠 전에 문자 알림이 울리더니 그게 이거였나?’

도현은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앞에 앉은 학생만 봐도 옷차림이 평소와 달랐다.

얼굴만 내놓은 쫄쫄이 옷 위로 조끼와 힙색 가방까지 단단히 준비한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도둑놈처럼 머리 전체를 덮는 복면을 착용하는 걸 보자 헛웃음이 났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늘 강의실에서 잠만 자는 도현만 모를 뿐, 워프 실습 때 착용을 권장하는 학과전용 슈트였다.

모든 학생이 같은 복장으로 몸을 일으켰다.

때맞춰 불독이 외쳤다.

“앞줄 오른쪽부터 천천히 나온다. 워프까지 40분 거리, 모두 도보로 움직인다.”

어후.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늘 책과 씨름하는 게 익숙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지금부터 모든 행동은 학점에 반영된다는 걸 명심하도록.”

학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했다.

모두가 빠져나기까지 기다리던 불독은 자신을 지나쳐가는 학생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제일 뒷줄 구석에 앉는 도현이 맨 마지막이었다.

좍좍, 좍좍.

어슬렁거리는 걸음을 따라 슬리퍼가 강의실을 쓸었다.

대충 걸친 흰 티에 청바지.

몹시 귀찮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도현에게 시선이 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묵묵히 보던 불독이 스쳐 지나가는 도현을 보며 말했다.

“우도현 학생이었나? 적어도 담 하나만큼은 인정해주지.”

씩 웃는 불독과 무표정한 도현의 시선이 마주치고 멀어졌다.

“하지만, 그 담이 언제까지 이어지나 지켜보겠다.”

뒤통수에 들리는 말에 도현은 픽 웃었다.

제 딴엔 경고라고 한 말이겠지만 간지럽지도 않다.

‘졸업까지 3년 6개월인가.’

아직 그만큼 남은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귀찮다.

하나하나 반응하기에는 그가 겪은 풍파가 더 깊은 탓이다.

그런데도 조용히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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