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하이시스(2)
후방에 자리 잡은 데스나이트, 리치, 그리고 키메라를 막기 위해 토벌 부대원 중 몇몇이 입구 앞에 남았다.
진입과 동시에 부대원 중 일부가 작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 또한 예상한 상황이다.
끼이익. 쿠웅.
마법으로 거대한 문을 닫고.
파아앗.
마법으로 문을 봉인하고.
“충격이 쌓이면 파괴되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마법을 사용해 문을 닫고 문을 봉인한 크라이스가 손을 내리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적은 없다. 적이 나타나도 바로 알려 줄 터이니 마나 소모를 최소화하도록.”
고개를 끄덕인 토벌대가 천천히 마나를, 정령력을, 내공을 회수했다.
자세는 풀지 않았다.
“진짜 성이네요.”
전방으로 총구를 향하게 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던 한율의 말에 토벌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성이었다.
밖에서 볼 때에는 불길한 느낌을 주던 성이었지만 내부는 달랐다.
판타지 차원의 토벌대원은 영주성을 떠올렸고, 무림 차원의 토벌대원은 황궁을 떠올렸다.
저벅, 저벅.
“계단을 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층에 감지가 되지 않는 방이 있다.”
걸음을 옮겨 선두에 선 크라이스의 말에 2층을 경계하던 이들이 전방을 바라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적은 없다. 하지만 함정…….
“함정 또한 감지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토벌대원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신의 기운을 회수할 때, 한율이 크라이스에게 물었다.
“함정도 감지할 수 있어요?”
“하이시스가 만든 함정이라면 감지하지 못할 거다. 그러니 감지할 수 없는 공간을 발견하면 그곳이 함정이 설치된 곳이지. 하이시스가 설치한 함정이 아니라면 내가 감지할 수 있고.”
감지할 수 없기에 알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다시 주변을 경계하며 크라이스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도착했군.”
몬스터도, 함정도 없다.
걸음을 멈춘 크라이스의 말에 주변을 경계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커다란 문을 바라봤다.
“회의실?”
“대전.”
한율의 말을 정정한 크라이스가 손을 내밀었다.
끼이익.
천천히 열리는 문.
토벌대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기운을 끌어올린 채 천천히 열리는 문 안쪽을 바라봤다.
사각사각사각.
로브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대전 중앙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펜?’
펜을 이용해 무언가를 작성하는 소리.
아주 작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린 상태였기에 귀에 들어왔다.
저벅. 저벅.
크라이스가 다시 발걸음을 뗐고, 그를 따라 토벌대원이 문을 통과해 대전 안에 진입했다.
거대한 대전.
아무것도 없던 입구와 복도처럼 아무것도 없는 대전.
정확하게는 낡은 의자와 대전 중앙에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전.
익숙했던 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다시 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누군가가 대전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게 뻔한데도 자신의 할 일만 하는 검은 로브의 사내, 아니 검은 로브의 리치.
탁.
책상 위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대전에서 사라지자 ‘드르륵’ 하는 의자 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검은 로브의 리치.
리치, 하이시스가 몸을 돌렸다.
일반적인 리치와는 달랐다. 흑색 뼈로 이루어진 신체와 안구가 자리하는 공간에는 회색 불꽃이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백색 불꽃이 타올랐다.
흑색 뼈 너머에는 고체화된 마나 구체가 존재했다.
‘라이프 베슬.’
모두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불사의 존재라 불리는 리치의 약점.
리치, 하이시스가 입을 열었다.
“이미 예상을 했고.”
9서클일까.
“확인을 했지만.”
10서클일까.
하이시스의 입이 열릴 때마다 대전 안을 가득 채우고 사라지는 마나.
몸을 흠칫흠칫 떨던 토벌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상대를 노려봤다.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한 광경이군. 차원의 벽이 무너지며 차원과 차원이 연결된 것인가. 아니, 그 정도로 차원의 벽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던 하이시스의 시선이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에게 향했다.
리치, 하이시스와 눈이 마주친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가 입을 열었다.
“파이어 캐논.”
파아앗!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의 머리 위에 화염으로 이루어진 포대가 소환됐고, 소환된 포대는 크라이스의 손짓에 따라 하이시스를 향해 거대한 화염 구체를 쐈다.
“실드.”
1서클 방어 마법, 실드.
콰아앙!
화염 구체와 실드의 충돌.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대전을 가득 채웠고, 하이시스가 서 있던 장소 주변에 붉은 마나 안개가 생성됐다.
“윈드.”
마나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하이시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 창문도 없는 대전 안에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마나 연기를 거뒀고, 대전 안을 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1서클 방어 마법으로 드래곤의 공격 마법을 막아 낸 리치, 하이시스가 다시 크라이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원의 벽은 무너졌다. 하지만 수십,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올 정도로 무너진 것은 아니지. 대체 어떻게 차원 이동을 한 것이지?”
“아, 그건…….”
처음과는 다르게 하이시스의 말을 받은 크라이스가 놈의 안구, 붉은 화염이 순간적으로 화르륵 타오르는 순간 말을 이었다.
“레이저.”
오로지 리치, 하이시스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마법, 빛 속성 7서클 마법, 레이저.
크라이스의 머리 위로 거울이 나타났다.
우우웅.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나,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 위력은 매우 뛰어나다. 문제는 어둠의 마나를 품은 언데드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마법이라는 것이었지만 크라이스는 ‘리치, 하이시스’를 상대하기 위해 7서클 마법, 레이저를 만들었다.
처음에 날아온 화염 구체, 파이어 캐논과는 다르게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하이시스가 거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다크 실드.”
빛 속성 공격 마법과 어둠 속성 공격 마법의 충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크 실드는 빛을 잡아먹었고, 레이저는 어둠을 꿰뚫었다.
결과?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는 9서클 마법사.
리치, 하이시스는 최소 9서클 마스터로 추정하고 있다.
다크 실드의 어둠이 거울에서 쏘아진 빛의 선을 타고 접근, 크라이스는 황급히 레이저 마법을 취소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어둠을 중간에 끊어 버렸다.
“후우. 10서클.”
작게 숨을 뱉은 크라이스가 하이시스의 경지를 예측해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최악 중에 최악.
많은 이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하이시스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대화를 제안하려는 순간, 크라이스를 비롯한 후방에 숨어 있던 대마법사들이 동시에 마법을 발동했다.
“레이저.”
하늘 위에 소환된 수십 개의 거울.
거울의 빛, 레이저가 다시 한 번 다가오자 하이시스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검은 불꽃으로 바뀌었다 다시 백색 불꽃으로 돌아왔다.
“짜증나는군.”
마법명을 외친 것은 아니지만 마법은 발동했다.
파아앗.
돔 형태의 검은 실드가 레이저를 다시 집어삼키기 시작했지만 크라이스와 대마법사는 오히려 마력을 더 주입해 화력을 높였다.
“일단 제압을 하고 시…….”
백색과 검은색.
번갈아 불꽃이 바뀌던 하이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빛 속성 공격 마법에 집중한 나머지 조금 늦고 말았다.
후방, 좌측, 우측.
검은 옷을 입은 검은 세 사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자신에게 접근한 7서클 마스터 경지에 오른 마법사 한 명, 갓 7서클 경지에 오른 마법사 한 명, 그리고 5서클 마스터 경지에 오른 마법사 한 명.
……5서클 마스터?
위협적이지 않은 세 사람의 접근에 의구심을 품은 하이시스가 다크 실드 마법을 유지한 상태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암살자들의 도움을 받아 접근한 레스트, 한율, 언소월, 그리고 바람을 타고 놈의 머리 위에 나타난 에리얼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거래창.”
***
전 세계 S등급, A등급 헌터들이 몽골로 향하고.
타국으로 향한 다른 차원의 지원군이 몽골로 향하고.
이동 마법 봉인진을 설치하기 위해 2차 다른 차원의 지원군이 바쁘게 오가고 있을 때, 몽골 군사 기지에서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던 차원 거래 대상자와 차원 거래 능력자, 한율의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차원의 벽: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이시스 토벌 전에 차원, 차원의 벽을 방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차원 거래 능력 중 하나 대화방을 통해 찾아온 차원의 벽이 보낸 메시지.
마지막 준비를 수련으로 선택해 레스트, 언소월과 함께 마법 수련에 들어가려 할 때에 날아온 차원의 벽의 메시지였다.
에리얼 또한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마지막 전투를 위해 몽골에 도착한 상황.
네 사람은 바로 차원의 문(진) 능력을 사용해 차원, 차원의 벽으로 넘어갔고, 차원의 벽은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방문한 네 사람의 거래창에 물건을 하나 올렸다.
[차원의 벽: 차원의 조각의 힘을 회수하는 물건입니다.]
이름: 차원의 조각(흡기).
설명: 흡기(吸氣)의 힘이 부여된 차원의 조각.
효과: 차원의 힘 흡수.
***
손에 딱 들어오는 차원의 조각, 아니…….
“보석이라고 해야 하나. 돌덩어리라고 해야 하나.”
벽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러니 돌덩어리, 아니 돌멩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지만 차원의 벽이 반대했다.
[차원의 벽: 이름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군요. 보석으로 봐 주십시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율, 레스트, 언소월, 에리얼 님에게 드린 것은 제 힘이 담긴 차원의 조각입니다. 빼앗긴 기운을 회수하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이 차원의 조각을 이용해 하이시스가 빼앗아간 힘을 회수하라는 거군요?”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차원의 조각(흡기)을 바라보던 이들이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차원의 벽: 일부러 떼어 낸 것입니다.]
“예?”
[차원의 벽: 하이시스에 의해 파괴된 파편, 차원의 조각이라 불리는 파편에 힘을 담은 것이 아닙니다. 힘을 담기 위해 정상적인 부분을 떼어 낸 것입니다.]
“…….”
잠깐의 침묵.
해석을 위해 메시지창을 바라보고 있던 한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부러 벽을 부쉈다는 건가요? 힘이 담긴 차원의 조각을 떼어 내기 위해?”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벽을 부쉈습니다. 한율 님이 말씀하신 대로 흡기의 힘이 담긴 파편을 떼어 내기 위해 일부러 벽을 파괴했습니다. 물론 힘이 부여된 파편을 제외한 모든 파편을 다시 회수해 복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만 저의 힘이 담긴 파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드린 파편이 제게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차원의 벽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현상이 강해질 겁니다.]
“공간 이동 현상의 발생률이 증가하고 몬스터가 강화된다는 것이군요. 지구는 게이트의 발생률이 증가하고. 다른 분들이 자신의 차원에서 겪고 있는 현상도 마찬가지로.”
레스트가 자연스럽게 입을 열어 차원의 벽의 이야기를 받았다.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설명을 위해 잠시 건네 드린 것입니다. 차원의 조각(흡기)을 앞으로 내밀어 주십시오.]
차원의 벽의 요청에 따라 차원의 조각(흡기)을 내밀자 손바닥 위에 놓여 있던 차원의 조각(흡기)이 사라졌다.
[차원의 벽: 토벌 시작과 동시에 다시 건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회수를 해야 차원의 벽이 파괴되며 발생한 현상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언소월이 차원의 벽에게 물었다.
[차원의 벽: 3시간. 길어도 5시간 내에 회수해야 합니다.]
최소 3시간, 최대 5시간 안에 하이시스를 쓰러트려야 한다.
하이시스는 골드 드래곤조차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리치.
“늦으면 어떻게 됩니까?”
한율이 물었다.
[차원의 벽: 3시간이 넘어가면 각 차원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5시간이 넘어가면 다섯 배로 증가합니다. 3시간에서 5시간 사이, 그 사이에 차원의 조각(흡기)을 회수하면 각 차원에 발생한 현상의 강화를 빠르게 약화시킬 수 있지만 5시간이 넘어가면 약화하는 데 최소 180일 정도 소요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5시간 내에 하이시스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거네요.”
에리얼, 그녀가 말했다.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뱉은 그녀였지만 차원의 벽은 혼잣말에 답해 메시지창을 새로 띄웠다.
[차원의 벽: 예. 그렇습니다. 5시간. 여러분들은 5시간 내에 하이시스를 토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