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하이시스(1)
얼음 여왕, 송아연.
A급 헌터였던 그녀는 한율의 도움을 받아 마나 호흡법, 그리고 마법을 배우며 S급 헌터가 되었고, 다른 차원의 지원군이 합류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더욱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얼음 속성 마법으로 한정하면 한율보다 뛰어난 헌터.
그 헌터가 바로 송아연이었지만 그녀는 하이시스 토벌 부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못했다.
한율.
성벽을 무너트리면서 튀어나올 성 내부에 자리 잡은 몬스터.
그들을 상대할 사람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마법사?
아군을 지원하고 수십만이나 되는 언데드와 키메라를 상대해야 한다.
드래곤?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하이시스 토벌 부대에 참가하지 않는 드래곤들은 최소 스무 마리, 최대 서른 마리만 상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율은 송아연을 비롯한 기존의 S등급, 가르침을 받은 S등급을 하이시스 토벌 부대에 참전시키지 않았다.
한율의 제안이 없어도 하이시스 토벌 부대에 합류할 생각이 없던 S급 헌터들도 있었지만, 어쨌건 S급 헌터들은 모두 제안을 받아들여 성 밖 전투에 참여하기로 했다.
슈슈슉!
수십, 수백 대의 화살.
얼음 여왕, 송아연이 수십, 수백 대의 얼음 화살을 날려 적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순간, 그 순간을 노린 것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는 S급 헌터.
홀로 키메라를, 그리고 데스나이트를 상대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위험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초원에서 키메라를, 그리고 언데드를 상대했다.
그것도 홀로 상대하는 것이 아닌 뛰어난 헌터, 또는 다른 차원에서 방문한 실력자들과 팀을 맺고 상대했다.
다른 팀과 교대해 군사 기지로 복귀했을 때에도 남은 시간의 절반은 휴식을 취하는 데, 남은 시간의 절반은 훈련을 하는 데 사용한 것은 덤.
원거리 S급 헌터들이 적의 시선을 돌리고 근거리 S급 헌터들이 접근해 공격한다.
S급 헌터들은 빠른 속도로 몬스터를 토벌하며 진격했고, 그런 헌터들 못지않게 판타지, 무림, 그리고 정령계에서 넘어온 이들 또한 빠르게 키메라와 언데드를 토벌하며 진격했다.
흑색 거성과 가까워지자 포격이 멈췄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미사일을 투하하던 전투기도 복귀했다. 하지만 헌터, 그리고 다른 차원의 지원군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달려드는 언데드와 키메라를 토벌하며 흑색 거성과 가까워질 때, 무너진 성벽 뒤, 마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히 전투를 지켜보던 키메라와 언데드들이 움직였다.
쉬이익, 쿠웅!
날개가 없는 키메라는 높이 도약해 무너진 성벽을 뛰어넘어 헌터와 지원군 앞에 섰다.
크르르르.
날개가 달린 키메라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무너진 성벽을 통과,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며 헌터와 지원군 앞에 섰다.
철컥, 철컥.
데스나이트는 높이 도약하지도 공중으로 날아오르지도 않았다. 직접 걸어 무너진 성벽을 오르고 내려와 헌터와 지원군 앞에 섰다.
파앗.
리치.
놈들은 당연한 것처럼 이동 마법을 사용해 무너진 성벽을 통과해 헌터와 지원군 앞에 섰다.
“와……. 씨.”
“지금까지는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네.”
초원에 배치된 언데드와 키메라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등급으로 따지면 어떻게 되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사령관의 목소리.
능력을 사용해 허공에 띄운 수십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둘러 키메라의 피를 털어 낸 S급 헌터, 김강현, 그가 성벽을 넘어온 키메라와 언데드를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S등급입니다.”
-가능하겠나?
가능하냐.
사령관의 물음에 김강현이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초원에도 S등급 몬스터가 있었습니다.”
B등급부터 S등급까지.
초원에는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부터 합심해야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까지, 다양한 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헌터와 지원군은 멈추지 않고 진격했다.
“어렵지 않…….”
-군대를 보충할 수 있겠군.
“…….”
맞은편.
키메라와 언데드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김강현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스켈레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스켈레톤이 데스나이트의 호위를 받으며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어려울 것 같군요. 지성을 갖춘 몬스터입니다.”
초원에는 B등급부터 S등급까지, 정말 다양한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 지성을 갖춘 몬스터는 없었다.
몇 번의 전투 끝에 후방으로 물러났었으니까.
걸음을 멈춘 스켈레톤이 헌터, 그리고 지원군을 쭉 둘러본 후,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쿵!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어둠의 마나.
헌터와 지원군이 마나를 끌어올려 대항하려 했지만 그런 그들보다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다.
파앗!
빛의 폭발과 함께 나타나.
쿵!
진각을 밟는 승복을 입은 노인.
전방에서 몰려오던 악의가 가득한 마나가 정순한 내공과 충돌해 소멸했다.
“허허.”
승복을 입은 노인, 염주를 굴리며 웃음을 터트린 노인이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저것도 리치라고 하는 몬스터입니까?”
파앗.
빛의 폭발과 함께 나타난 뾰족한 귀와 아름다운 외모의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리치입니다.”
“초원에 있던 리치라는 몬스터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그들은 스켈레톤 메이지입니다. 리치도 있었지만.”
언데드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암살을 나서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무림 차원에서 방문한 무인과 판타지 차원에서 방문한 전사.
선두에 서서 악의가 가득한 마나를 소멸시키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김강현이 작은 목소리로 사령관의 물음에 다시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잠시 잊고 말았다.
성벽 안쪽에 배치된 몬스터들이 움직이는 순간, 후방에서 아군을 지원하는 데만 주력하는 실력자들이 움직인다는 것을 말이다.
“…….”
-…….
짧은 침묵.
그 끝에 통역 마법까지 사용해 헌터와 지원군에게 말을 걸었던 리치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크와아아앙!
머릿속으로 리치의 명령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키메라.
타악!
엘프 전사가 그런 키메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것처럼 똑같이 앞으로 튀어나가 거대한 오러를 씌운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콰아앙!
중앙에서 부딪친 키메라와 엘프 전사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그 순간 성벽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언데드와 키메라, 헌터와 지원군이 움직였다.
***
“헌터들도 얕볼 수는 없군.”
전투를 지켜보던 무림맹의 부맹주, 팽호진의 중얼거림에 한율이 바로 대답했다.
“헌터는 몬스터와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으니까요.”
“몬스터……. 그러니까 우리 차원으로 말하면 요괴?”
“네. 몬스터를 사냥해 경험을 쌓고, 몬스터를 사냥해 돈을 버는 이들이 헌터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실력이 조금 떨어질 뿐이다. 헌터, 그것도 이번 전투에 참여한 헌터들은 전부 오랜 기간 게이트 활동을 하며 몬스터와의 전투에 이골이 난 이들이었다.
짧은 전투로 상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자신보다 더 거대한 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키메라는 헌터가, 언데드는 우리들이 상대하는 거군.”
최선의 방법으로 최소의 피해만으로 적을 쓰러트려야 하기 때문에 키메라는 헌터들이, 언데드는 다른 차원의 지원군이 맡았다.
고개를 끄덕인 팽호진이 다시 전장을 살폈다.
거대한 적이 괴이한 능력을 사용했지만 헌터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빠르게 놈의 공격을 피했다.
-사자 머리를 한 두 쌍의 날개가 달린 키메라. 속성 불. 특징 화염 속성 브레스와 독 속성 발톱. 해독 능력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머리 두 개 트롤. 속성 없음. 특징 재생. 약점을 노려 일격에 쓰러트려야 하니 은신 능력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헌터의 지원 요청.
“한율 경. 나중에 헌터들과 자리를 만들어 주게.”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와 요괴를 상대해야 하니 요괴 사냥에 특화된 헌터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가르침을 내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르침을 받는다.
선순환이라는 말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렸던 한율이 다시 전장을 살폈다.
헌터는 키메라를 상대로 크게 활약하고 있었고, 다른 차원의 지원군은 지성을 갖춘 언데드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동 마법 봉인진을 설치하기 위해 강제 복귀한 대마법사.
후방에 배치된 대마법사들이 정확한 타이밍에 방어 마법을 걸어 주고, 그래도 부상을 입은 이들은 이동 마법을 사용해 부상자를 전장에서 빼냈기 때문이다.
“준비하게.”
옆에서 들려오는 크라이스의 목소리.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던 크라이스의 말에 사람들이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성 내부는 이미 하이시스의 마나가 지배하는 상태. 성 바로 앞으로 이동할 거다. 리치들이 문제가 되지만 놈들도 지금은 매우 바쁜 상황이니…….”
콰아앙!
무인의 공격을 피해 이동 마법을 사용하고, 전사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언데드를 소환하고, 후방에 배치된 대마법사의 공격을 막기 위해 똑같이 공격 마법을 사용해 상쇄하거나 방어 마법을 사용해 막고 있는 리치.
우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토벌 부대가 침입할 수 있도록 거센 공격을 이어 가 아주 잠시나마 우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후방에 배치된 대마법사들이 아군을 지원하는 것처럼 리치 몇몇이 후방으로 물러나 토벌된 언데드를 재생시키고 있었으니 전투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군에게 불리해질 것이 분명했다.
“13초, 아니 8초 후.”
전장을 살피던 크라이스의 말에 토벌 부대원들이 속으로 숫자를 세며 이동 마법진이 활성화되는 것을 기다렸다.
5초.
소림의 무승이 높이 도약했다. 그것도 정순한 내공을 사방에 퍼트리며 도약했다.
4초.
“아이스 캐논!”
빙결 속성에 한정하면 헌터 중 가장 뛰어난 얼음 여왕, 송아연이 아이스 캐논 마법을 사용했다.
3초.
“흐읍!”
엘프 전사가 아공간을 열어 거대한 대검을 꺼냈다. 그는 맞은편에서 검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 앞으로 달려갔다.
2초.
슈슈슈슉!
최상급 바람의 정령이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 수백 자루를 만들었다.
1초.
전력을 개방한 네 명의 실력자가 리치, 후방에서 언데드를 재생하고 있는 리치를 공격했고, 그 순간 크라이스가 크게 손을 흔들어 텔레포트 마법진을 활성화시켰다.
파아앗!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만드는 빛의 폭발.
눈을 감았던 한율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악의가 가득한 마나를 감지하고 몸을 돌렸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실드!”
“실드!”
6서클 마스터, 아니 7서클 마법사 한율과 7서클 마스터 레스트의 실드가 생성되었다.
콰아앙!
실드 바로 앞에 서 있는 데스나이트.
양손으로 검을 쥐고 있는 데스나이트는 뒤로 튕겨 나가지 않았다. 실드를 파괴할 생각인지 실드에 막힌 흑색 롱소드에 씌운 오러를 더욱더 키웠다.
“오러 마스터가 데스나이트가 되었군.”
후방에 배치된 리치, 그들을 지키는 데스나이트가 대마법사의 마법을 베고 은밀하게 접근하는 암살자들의 공격을 막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김환성에게 가르침을 내리던 노인, 오러 마스터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 한율, 그리고 레스트 앞에 섰다.
오러 마스터 노인만이 레스트, 한율 앞에 선 것은 아니었다.
“끄으응. 약한 놈이었으면 했는데.”
혈사회의 부맹주, 사마독회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노인의 옆에 섰다.
저벅, 저벅.
일월신교, 정파와 사파는 마교라 불리는 집단의 대표로서 지구를 방문한 검마도 노인의 옆에 섰다.
달려든 데스나이트는 둘이었지만, 공격이 실패하자 리치를 호위하던 데스나이트 셋 중에 하나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데스나이트 셋을 상대하기 위해 셋이 남았다. 하지만 흑색 거성 앞에 토벌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데스나이트뿐만이 아니라 리치, 그리고 키메라 중 일부도 몸을 홱 돌린 상태였다.
저벅저벅.
레드 드래곤, 그리고 최상급 정령들이 한율과 레스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