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총공격(1)
사마독회를 비롯한 혈사회 소속 무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아크럼 헌터들.
“혈사회에 소속된 건가요?”
그런 그들을 구경하던 한율의 옆에 서서 식혜를 마시고 있던 언소월이 대답했다.
“예. 사마독회 부맹주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팽호진 부맹주님은 뭐라고 하시고요?”
“어쩔 수 없다고.”
어쩔 수 없다.
정사마 연합은 오랫동안 연합을 맺어 요괴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니 연합 중 한 곳이 무너져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분명 그 틈을 정파, 마교가 노릴 테고, 그렇게 되면 연합은 무너져 정파, 사파, 마교, 그리고 요괴가 서로를 공격하는 최악의 상황이 찾아올 테니까.
“뭐, 우리야 좋지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여유로운 언소월의 표정을 확인하고 다시 아크럼 헌터들을 바라봤다.
“저들이 이번 전투에서 무공을 활용할 수 있을까요?”
“몇 명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요?”
“도를 다루는 검은 가면.”
한율이 인상을 화악 찌푸렸다.
하필 도를 사용하는 검은 가면이라니.
각성 범죄자들이 지구를 떠나 다른 차원에 정착하는 것에 속이 시원했던 한율은 속이 시원했었던 한율이 되어 검은 가면을 바라봤다.
무공이라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검은 가면은 자신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무공을 배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차원의 문은 우리들이 관리하니 문제는 없겠지만.”
차원의 문을 통해 지구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언소월이 막을 테니까.
문제가 생겨 그들이 차원의 문을 넘어도 언소월이 연락을 줄 터이니 바로 대비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 한율은 바로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언소월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찾은 곳은 군사 기지 대장간.
까앙! 까앙!
장비를 생산하고, 장비를 수리하고.
한율이 조용히 장비 제작자들을 지켜볼 때였다. 언소월이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고 말했다.
“아, 교대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아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네. 몸조심하세요.”
“예. 그럼.”
포권을 취한 언소월이 몸을 돌렸다. 그는 언가의 무인들과 함께 떠났고, 홀로 남은 한율은 다시 대장간 앞에 서서 장비 제작자들을 지켜봤다.
“장비라.”
무기를 바꿀 생각은 없다.
문제는 갑옷.
“바꿀 필요는 없겠네.”
S급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 S등급 장비 제작자를 찾아가 새로운 갑옷을 제작했다. 그것도 A등급 게이트, 아룡의 대지에서 튀어나온 가디언 드레이크를 토벌하고 확보한 드레이크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었다.
한율이 몸을 돌렸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나려 했던 그였지만 대장간 구석,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네 사람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 마스터.”
“수고하십니다.”
장비 제작자 겸 게이트에서 활동하는 헌터, 문장현과 이지현이 인사를 받았고, 문수원과 이대한이 손을 살짝 들어 한율의 인사를 받았다.
“저는 수원이.”
“저는 대한이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대화 중이었어요.”
A등급 헌터다. 하지만 특이한 무기를 제작하는 장비 제작자이기도 했기에 문장현은 한율과 함께 몽골을 찾았다.
이지현,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헌터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녀도 한율의 의뢰를 받아 그와 함께 몽골을 찾았다.
한율이 장비 제작자인 두 사람을 바라본 후, 마탑 소속 헌터인 문수원과 이대한을 바라봤다.
“장비 업그레이드?”
“네.”
고개를 끄덕인 문수원이 자신의 쫄쫄이 갑옷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기는 괜찮은데 갑옷은 바꿔야 할 거 같아서요.”
“대한이 너도?”
“나는 방패다.”
이대한의 대답에 한율이 고개를 돌려 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방패를 바라봤다.
“업그레이드?”
“아니. 추가 제작. 상대가 상대이니까.”
S등급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다. 정면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는 이대한은 방패가 파괴될 것을 대비해 새로운 방패를 준비해야 했다.
“어벤져에 잠깐 나오는 장착형 방패를 준비할 생각이다. 기존 방패가 파괴되어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
정말 갑작스럽게 방패가 파괴될 때를 대비해서일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대한을 바라보던 한율이었지만 이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진짜 이유가 뭐가 되었든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거니까.”
“한율 씨는 장비 업그레이드 안 하세요?”
“네. 저는 아직 괜찮아요. 대신 다른 준비를 하고 있고요.”
“다른 준비?”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볼 때,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군사 기지 건물 입구를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시선.
네 사람은 군사 기지 건물 입구, 그 앞에 서 있는 레스트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서클 업.”
***
모두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할 때, 김환성 또한 수많은 전략가들과 함께 마지막 작전을 준비했다.
“솔직히 작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휴식 시간.
피식 실소를 터트린 김환성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빔 프로젝터 화면을 바라봤다.
대상 지정.
김환성과 전략가들은 몬스터를 분석, 연구하고 헌터들의 신체 능력, 이능을 검토했다.
몬스터를 상대로 유리한 전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문제는 하이시스인데.”
흑색 거성에서 꿈쩍도 않는 리치, 하이시스.
언데드인 리치이기 때문에 분명 신성력이 약점인 몬스터일 것이다. 하지만 하이시스는 언데드이지만 드래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마법사였다.
“그리고 마법사이기에 호위가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아공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오로지 자신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지키는 기사가 있을 수가 있다.
“지혜야.”
“네. 회장님.”
“하이시스의 정보 좀 띄워 봐.”
저벅저벅.
갑작스레 변수가 발생해 군사 기지에서 전투가 일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양복이 아닌 갑옷을 입은 임지혜가 노트북 앞으로 이동해 하이시스의 정보를 띄웠다.
이름: 하이시스.
직업: 마법사.
추정 서클: 9서클.
변수(1): 수호 기사. 기존에 생성, 유지하고 있는 두 개의 아공간을 제외하고 새로운 아공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음.
변수(2): 차원의 돌을 흡수해 9서클 마스터가 아닌 10서클 마법사일 가능성이 있음. 크라이스를 비롯한 드래곤들의 설명에 따르면 10서클 마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9서클 마법 또한 공개된 적이 없으니 하이시스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은 8서클일 가능성이 크지만 9서클 마법을 습득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9서클 마법은 드래곤들이 습득하고 있는 9서클 마법이 아닌 직접 창조한 마법일 가능성이 크다.
변수(3):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 그의 왼쪽 가슴에 고체화된 마나구가 존재한 것으로 보아 그 마나구체 내부에 라이프 베슬이 있다고 추측되나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다. 흑색 거성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있으나 상대의 능력을 생각하면 직접 품고 있을 가능성이 85%에 해당됨.
“흐음.”
변수는 총 세 가지.
수호 기사의 존재.
직접 만든 9서클 마법.
라이프 베슬.
가만히 하이시스의 정보를 읽던 김환성이 고개를 돌려 자신처럼 회의실에 남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크라이스에게 물었다.
“9서클 마법 창조, 가능할까요?”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아니, 창조했을 거다.”
‘창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가 아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 크라이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9서클, 10서클 마법이.”
“예.”
“공격 마법이 아닐 가능성이 있지.”
“……공격 마법이 아니다?”
“하이시스는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자신의 사후(死後)까지 건 마법사니까.”
“놈이 창조해 낸 마법이 이동 마법이라는 겁니까?”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차원의 벽을 파괴했으니까.”
“아.”
거대한 오러 소드를 만들어 벽을 파괴했을까?
정령의 힘을 빌려 벽을 파괴했을까?
마법사가 차원의 벽을 파괴한 것이다. 당연히 마법사가 차원의 벽을 파괴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마법, 그것도 공격 마법일 가능성이 컸다.
“즉, 하이시스는 9서클, 또는 10서클 이동 마법 하나와 공격 마법 하나를 습득했다고 봐야겠군요.”
“그렇지. 그러니 우리 드래곤 일족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하이시스를 상대해야 한다. 당연히 정령왕들도 하이시스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고.”
“또 하이시스를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있습니까?”
“수호 기사라는 변수를 대비해 오러 마스터, 그리고 무림 쪽에서 말하는 화경에 오른 무인들도 참가해야겠지.”
“거성 밖 전투가 조금 힘들어지겠군요.”
“10서클로 추정되는 적이니까.”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하이시스가 곰방대를 툭툭 두들겨 담뱃재를 털어 내고 다시 입에 물었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세 명.”
셋?
김환성, 그리고 노트북 앞에 자리한 임지혜가 고개를 들어 크라이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크라이스는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다.
회의실은 1층.
크라이스는 고개를 돌려 창밖, 합류와 동시에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한율과 레스트, 그리고 뒤늦게 입구로 향하는 언소월과 정령왕 에리얼을 바라봤다.
***
흑색 거성 내부.
아공간을 열어 책상을 설치하고 리치들이 보낸 펜과 노트라는 지구의 물건을 꺼내 연구 결과를 기록하던 하이시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대전 중앙에 책상을 설치했고, 그 책상 앞에 수십, 수백 개의 매직 아이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
갑작스레 나타난 수천, 수만의 인간.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쇳덩어리.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던 하이시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펜을 움직여 노트에 연구 결과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
빠른 후퇴를 대비해 군사 기지에서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탱크가 이동했고, 인근 군사 기지에서 출발해 매일같이 폭탄을 투하하던 전투기가 다시 상륙했다.
전투용 헬리콥터도 움직였다.
총공격이다.
하이시스를 토벌하고 놈이 소환한 언데드와 키메라를 토벌하는 전투다.
“후우.”
선두에 선 헌터, 호흡을 고른 김환성이 거대한 망치를 들고 기다렸다.
협회장에서 잠시 물러나 S급 헌터로 복귀했다.
작전 지휘권?
처음부터 작전 지휘권은 김환성에게 있지 않았다. 작전 지휘권은 미합중국, A급 헌터이자 최고 사령관이 가지고 있었다.
김환성은 협회를 운영하는 협회장이자 전투 능력을 각성한 헌터, 전략 전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럼…….
이어폰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최고 사령관의 목소리.
김환성이 자연스럽게 무기를 들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언데드, 그리고 키메라를 바라봤다.
-바실리스크 작전을 실행하겠습니다. 전군 공격 준비.
투두두두두두
언데드들이 달려오고 키메라들이 달려왔다. 하지만 최소 등급이 A등급인 전투 부대였다.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적들이 몰려오고 있음에도 최고 사령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화력 부대 공격!
퍼어엉!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