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마지막 준비(2)
이후, 언소월도 회의 시작까지 3분 정도 남았을 때 군사 기지에 도착해 한율에게 다가왔지만 그 또한 먼저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 시작까지 30초.
파앗.
이동 마법진이 다시 활성화됐다.
한율을 기다렸고 빛의 폭발이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유일하게 활성화된 이동 마법진, 그 위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검은 가면, 회색 가면을 착용한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유일한 붉은 가면을 착용한 사람과 푸른 도복을 입은 사내.
허리를 꾸벅 숙여 푸른 도복의 사내, 팽호진을 향해 인사를 건넨 한율이 작은 미소와 함께 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부드러운 미소로 한율의 말을 받은 팽호진이 힐끔 옆에 서 있는 가면의 사내들을 바라본 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피곤해서 먼저 회의실로 향하겠네. 저기 있는 큰 건물 1층이라고 들었는데. 맞나?”
“맞습니다.”
“그럼 부탁하네.”
“예.”
팽호진이 떠났다.
이동 마법진이 설치된 구역에 남은 사람은 가면을 착용한 사람들과 한율.
가면을 쓴 사람들, 아크럼 소속 각성 범죄자들을 바라보던 한율이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 시작까지 10초도 남지 않았다.
팽호진, 그리고 발언권은 약하지만 뛰어난 실력을 갖춰 몽골, 하이시스 토벌 작전에 참가하는 아크럼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바로 시작하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회의 끝나고 대화 좀 나누죠.”
“알겠습니다.”
한율이 제안을 한 후에 몸을 돌렸고, 붉은 가면이 대답을 하고 걸음을 옮겨 그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
회의 한 번으로 작전을 구상하고 결정까지 내리는 것은 안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이번처럼 모든 전력이 모였기에 단 한 번의 전투로 승패가 갈리는 전쟁이라면 더더욱.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는 부대 또한 사흘 내에 합류할 터이니 그들의 합류까지 예상해 새롭게 조를 구성해 주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허리를 꾸벅 숙여 회의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김환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한율의 모습에 측근들과 함께 회의실을 벗어났다.
김환성을 시작으로 각국의 협회 대표를 비롯해 헌터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한율과 그의 일행, 그리고 아크럼을 힐끔 훔쳐봤지만 자신들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아무 말 없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회의실.
붉은 가면의 사내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율, 그리고 그의 양옆에 앉아 있는 레스트, 언소월을 확인하고 그들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무언가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팽호진이 보였고, 자신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붉은 도복을 착용한 사내가 보였다.
검은 도복을 입은 사내도 있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들을 한 번.
의자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한율과 그의 동료들을 한 번.
번갈아 회의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던 붉은 가면이 무언가를 깨닫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은 사람들이 무림 차원에서 방문하신 분들이군요.”
회의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판타지 차원에서 방문한 이도 있었고, 정령계에서 방문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회의실에 남은 사람들은 무림 차원의 사람들뿐이었다.
“쯧.”
혀를 찬 한율이 아크럼 소속 각성 범죄자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무림 쪽에서 한 가지 제안이 왔습니다.”
각성 범죄자, 아크럼의 시선이 한율을 따라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붉은 도복을 착용한 중년의 사내, 그가 아크럼 소속 범죄자들이 모이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일단 내 소개를 하지. 혈사회(血蛇會)의 부맹주, 사마독회라고 하네.”
“혈사회…….”
붉은 가면의 사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혈사회의 부맹주, 사마독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사지간에 위치한 문파, 그리고 무인들이 소속된 연합체일세.”
“정사지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팽호진이었지만 사마독회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각성 범죄자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네. 범죄자로 각인된 이곳을 벗어나 무림에 소속된 생각이 있는가?”
“……정확하게는 무림, 혈사회에 소속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십니까?”
“그렇다네.”
“…….”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붉은 가면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절 왜 봐요?”
“어, 음. 그 괜찮겠습니까?”
“문제는 없죠. 오히려 지구의 상황을 생각하면 나쁜 이야기는 아니고.”
각성 범죄자들을 치울 수가 있다. 그것도 최악이라 불리는 각성 범죄자 집단, 아크럼을 지구에서 치워 버릴 수 있다.
문제는 무림인데…….
그 또한 문제가 없었다.
각성 범죄자, 아크럼의 시선이 팽호진에게 향하는 순간, 그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이능의 힘을 갖췄다고 해도 그대들은 무림인들을 기준으로 하면 일류, 그리고 절정에 불과하네.”
“일류, 그리고 절정?
“상위 내공심법을 배웠다면, 그리고 무공을 익혔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그대들은 중상위 등급으로 분류되는 내공심법도, 무공도 배우지 못하지 않았는가.”
“…….”
각성 범죄자들이 배울 수 있는 마나 호흡법은 기초, 그리고 초급 마나 호흡법에 불과했다.
무공 또한 마찬가지다. 각성 범죄자들이 배울 수 있던 무공 또한 등급이 낮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무공이 전부였다.
한율이 각국에 제공한 무공을 빼돌리지 못한 결과였다.
“팽가놈이 말한 대로 그대들인 일류, 그리고 절정에 해당되네. 혈사회 소속 무인들로 보면 중상위권에 해당되지. 하지만 혈사회에 소속될 경우, 우리는 그대들에게 무공을 전수할 생각이고, 그 무공을 배우면 그대들은 혈사회 소속 무인들 중 상위, 잘하면 열손가락 안에 들 수도 있네.”
사파가 제안하고 정파가 침묵한다.
각성 범죄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교 측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천천히 눈을 뜬 마교의 장로, 검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즉시 전력감이 필요하지. 사파처럼 시간을 들여 키울 수 있는 무인은 필요없다.”
“…….”
붉은 가면의 사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다시 혈사회의 부맹주, 사마독회를 바라봤다.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가능하네. 하지만 사흘, 사흘밖에 줄 수 없네.”
“……예?”
“이유는 그대들에게 속성으로나마 무공을 가르쳐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서일세. 그럼 한율 공.”
사마독회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쩝. 네.”
“자네도 생각해 보게.”
“저는 아시다시피 언소월 님의 친구라서.”
“허허허, 아까도 말했다시피 혈사회는 정사지간일세.”
“아, 네.”
한율이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린 사마독회가 아크럼 소속 범죄자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미소를 보여 주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팽호진, 검마도 그 뒤를 따라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러자 각성 범죄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직 회의실에 남아 있는 한율 일행에게 향했다.
대체 무슨 말을,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 아크럼 소속 헌터들이 입만 벙긋거리고 있을 때, 한율의 옆에 앉아 있던 언소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
“혈사회는 현재 사람들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사람이 부족하다?”
“예. 요괴들이 정순한 내공을 품은 무인들보다는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지만 그 탓에 정순하지 않은 내공을 품은 무인들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요괴들이 등장했을 때, 요괴들은 사파의 영역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무인들이 사망했습니다. 뭐, 초절정 경지에 위치한 무인, 화경 경지에 위치한 무인들의 사망률은 매우 적었지만 일류 이하 무인들은 많이 죽었지요.”
“……무공 소실(消失)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사파는 요괴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가 없는 상황이군요.”
“예. 그래서 외부에서 무공을 전수받을 사람, 무공을 이어받을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때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
“…….”
침묵이 찾아왔다.
무공이 소실될 것을 방지해 제자를 찾는 사파의 상황.
“하나만 묻겠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침묵을 하던 각성 범죄자 집단, 아크럼의 수장인 붉은 가면이 언소월을 바라봤다.
“예. 말씀하시지요.”
“정파는 왜 그런 사파의 행동에 침묵하는 것입니까.”
“정사마는 분명 서로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목적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예전 이야기입니다.”
“……요괴.”
“예. 요괴입니다. 하이시스를 쓰러트려도 차원의 벽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물론 요괴들의 힘이 약화되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요괴들이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고, 정사마 연합은 그런 요괴들을 막기 위해 연합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침묵했습니다. 사파는 무너져서는 안 되니까. 그럼 설명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언소월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율과 레스트가 그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참고로.”
아크럼 소속 헌터들의 시선이 다시 언소월에게 향했다.
“분명 여러분들의 성격, 행동 등은 사파와 맞습니다.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사람의 목숨이 동전 하나보다 못한 곳이 무림이라는 곳이니까요.”
각성 범죄자들이 다시 침묵했다.
***
저벅저벅.
“그래서.”
한율이 고개를 돌려 언소월을 돌아봤다.
“정말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무인으로 성장합니까?”
“한두 명 정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중상위권에 위치해 중소문파에 소속되어 무공을 전수받을 것입니다. 이능이 한 가지 변수가 되겠지만.”
“…….”
“그래도 매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왜요?”
“너무 늦었고.”
“네.”
“그들이 배운 내공심법, 그러니까 마나 호흡법은 정파의 내공심법에 해당되는 정순한 마나(내공)를 모으는 마나 호흡법이니까요.”
“즉, 새롭게 배우는 내공심법과 맞지 않다?”
“네. 기초, 초급에 해당되기 때문에 내공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내공심법을 배우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흐음, 그걸 혈사회도 알고 있죠?”
“알고 있죠.”
“그런데도 그들을 받아들여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혈사회는 사람이 부족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