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회의(1)
달칵, 달칵.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조작하던 한율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상황은 비슷하네.”
대한민국, 다른 차원의 지원군이 주둔한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나마 좋은 것이었다.
모든 국가가 하이시스가 소환한 언데드, 키메라의 습격을 받았다. 물론 이동 마법진과 빠른 이동, 전투 지원을 통해 몬스터를 토벌했지만 실패한 국가가 많았다.
다행히 각국의 수도, 상위 등급 헌터들이 자리한 수도에서 토벌에 실패한 국가는 없지만 지방에 소환된 몬스터를 토벌하지 못해 도시를 포기하고 후퇴한 국가가 많았다.
“아프리카라.”
아프리카 대륙.
처음 김환성에게 멸망한 국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당연했다. 반나절 만에 국가 하나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탑으로 복귀하자마자 인터넷을 이용해, 그리고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이어 준 각국의 헌터들을 통해 정보를 모아 확인하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지도에서 사라진 국가, 그 국가가 과거 A급 게이트의 폭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수많은 국가가 지원을 했다지만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런데 그 땅에 키메라와 언데드가 소환됐다.
그것도 운이 너무 나빠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에 수십 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소환됐다.
아프리카 연합군?
당연히 이동 마법진을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일반적인 S등급 키메라와 언데드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일반적인 언데드가 아니었다.
리치.
그것도 네크로맨서로서의 힘을 가진 리치였고, 하필 그 리치가 피난민들이 대피한 지하 벙커 인근에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의 군세만으로 도시 하나를 집어삼킬 수 있던 네크로맨서 리치였다. 그런데 그런 놈이 지하 벙커를 공격해 자신의 군세를 키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활동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여겼는지 이동 마법진을 설치해 몽골에 남아 있던 다른 네크로맨서 리치를 소환했다.
그다음?
네크로맨서 리치는 이동 마법을 사용해 흩어져 자신의 군세를 소환하고, 국가를 공격해 자신의 군세를 키웠다.
다른 차원의 지원군?
그들이 도착할 때에는 피난민들과 함께 후퇴해야 할 정도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다시 마우스를 조작해 하이시스와의 전쟁에서 첫 번째로 패배한 국가, 그 국가와 관련된 뉴스를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 위에서 찍은 언데드 군단.
한율이 마우스 휠을 움직여 화면을 내렸다.
하늘에서 찍은 언데드 군단 사진, 그 아래에 첨부된 사진은 도시를 공격하는 언데드였다.
“키메라 좀비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좀비 키메라라고 해야 하나.”
일반적인 몬스터, 또는 인간의 사체로 만들어진 언데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출현한 키메라와는 조금 다른 두 개의 머리와 한 쌍의 거대한 날개를 가진 키메라의 사체로 만들어진 언데드.
크기는 15층 아파트보다 컸다. 스켈레톤이 아닌 좀비였기에 기존의 능력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두 개의 머리 중 하나는 브레스를 뿜었다.
한율이 다시 마우스 휠을 움직여 스크롤을 내렸다.
사진 아래에 글이 적혀 있다.
문제는 특종이라고 생각한 건지, 해외 뉴스를 인터넷 번역으로 번역해 올려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는 것.
한율이 키보드 옆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김환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율: 키메라 좀비, 리치와 언데드 군단은 움직이고 있습니까?]
……띠링.
[김환성: 아니, 일반인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유인 작전을 펼쳤던 헌터들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인지 자신들이 멸망시킨 나라를 돌아다니며 언데드를 생성하고 있다.]
자신의 병력을 다시 보충시킨다.
분노를 해야 하는 건지, 안도를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끄러미 김환성의 문자를 바라보던 한율이 깊은 한숨을 내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실을 나와 입구에서 대기하던 호위들과 합류해 엘리베이터에 탑승.
1층으로 내려온 한율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눈이 마주친 마법사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건물을 나왔다.
-상황이 정리되기 전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드래곤님들이 빠르게 마법진을 설치해 안정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
커다란 스피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동 마법을 통한 몬스터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가 사용하는 이동 마법진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드래곤들은 놈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이동 마법진을 관찰, 연구하는 중이었다.
파악이 끝나면 이동 마법진을 봉인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지구의 헌터들과 다른 차원의 지원군들은 계속해서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야 했다.
“식사를 하지 못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식사를 하지 못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300번대부터 600번대까지입니다! 다시 한 번 전파합니다! 식사를…….”
마법사의 탑 소속 일반 직원이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식당으로 향했다. 수백 명을 수용하는 식당이기 때문에 전부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숫자를 적은 작은 종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순서대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실내 훈련장의 상황은요?”
일반인들을 기숙사로 수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백호 길드와 나누고 지하 벙커와 나누어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의 탑으로 대피해 실내 훈련장을 대피한 일반인들을 수용하는 숙소로 바꿨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해도 다른 차원의 지원군은 물론 완벽한 전투 요새로 탈바꿈한 마법사의 탑보다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헌터 또는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집으로 복귀해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챙길 수 있다.
“실내 훈련장으로도 부족해 본관에도 일반인들을 이동시켰습니다.”
헌터 협회에서 방문한 협회 소속, 일반 직원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자신의 마나에 잡힌 다른 이의 마나를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입구를 통과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 다시 입구 밖으로 나가 물 속성, 바람 속성, 그리고 불 속성 마법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입구를 통과하는 헌터들이 보였다.
헌터 중 한 명,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여성이 한율의 시선을 느꼈는지 뒤를 따르던 헌터들을 해산시키고 다가왔다.
“상황은요?”
고개를 꾸벅 숙였던 한율이 헌터들과 함께 출동한 여성 헌터, 양 리리에게 물었다.
“지금의 상황을 기회로 여긴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요?”
“문제는 등록된 각성 범죄자만이 아니라 일반 헌터, 또는 마법 아니면 무공을 배운 이들도 있다는 점.”
몬스터의 위협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한율은 마법과 무공을 공개했다. 하지만 그렇게 공개된 무공과 마법을 악용하는 이가 있다.
“쯧.”
예상은 했다. 아무리 무공과 마법을 습득해도 그 기술을 악용하기에는 치안이 너무 좋은 대한민국이었기에 악용하지 못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마법, 무공을 악용하려하는 이가 나타날 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하더라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처리는요?”
“각성 범죄자는 사살, 기술을 악용한 이들은 제압 후에 함께 움직인 마법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청으로 이송했습니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양 리리는 제대로 무공을 배우기 전에도 A등급에 올라 있던 헌터였고, 제대로 무공을 배운 지금은 공식적으로 등급 재조정 심사를 받지 않았을 뿐, S등급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은 헌터였다.
파아앗!
건물 안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파동.
한율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양 리리에게 보고를 받았고, 마나의 파동이 가라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마나를 느낀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
“으아.”
“후우.”
생각보다 힘든 전투를 치렀는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걸어오는 사람들.
건물 입구를 통과하기 직전이었다. 정확하게 편의점 앞에서 멈춰 선 사람들 사이,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금발의 사내가 몸을 돌려 함께 움직였던 기사,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피난을 온 일반인들이 많은 것을 보아 편의점을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사, 마법사들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넨 후에 편의점으로 향했고, 그들의 인사에 똑같이 고개를 꾸벅 숙였던 금발의 사내가 허공에서 캔 음료를 꺼내 들고 건물을 나와 한율에게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피해는요?”
“있었습니다.”
있었다.
피해는 있었지만 그 피해를 빠르게 회복했다는 말이다.
“아, 신전 측이 전장에 남은 건가요?”
레스트와 함께 지구를 방문한 신전 연합.
차원의 벽이 무너진 덕분인지 그들은 지구에서도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의 힘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네. 그리고 치유 마법을 전문적으로 습득한 엘프 마법사분들도 남았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면 무림 지원군들을 지원한 후에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무림인들은 내공을 불어넣어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술만으로는 전투에 참가해 부상을 입은 모든 이들의 부상을 치유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크라이스 님과는 만나셨어요?”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했습니다.”
아직 거래창을 열어 둔 것인지 레스트가 스마트폰을 꺼내 좌우로 흔들면서 대답했다.
“전력을 다해야 상대할 수 있는 적이라…….”
지구가 맞이한 적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레스트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건물 밖, 대형 천막이 수십 개나 펼쳐져 있는 실외 훈련장을 바라봤다.
조용히 캔 콜라와 초코바를 섭취한 레스트가 고개를 돌렸다. 한율은 어느 정도 정보 공유가 끝나자 다시 양 리리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레스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한율에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뒤를 따라 건물을 나온 이들, 태블릿 PC를 조작하거나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이들을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건 아니다.
계속해서 모니터를 주시한 탓에 눈이 피로해 잠시 고개를 들었던 일반인,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레스트를 발견하고 미소를 그렸다.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장소가 있습니까?”
“…….”
잠시 침묵했던 일반인, 협회 직원이 한율의 눈치를 힐끔 보았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레스트의 시선에 마음을 놓고 그의 옆으로 다가와 태블릿 PC 화면을 보여 줬다.
“광주라는 도시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