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S등급(4)
함께하는 헌터의 숫자가 적었다면 머리를 하나씩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의 탑, 백호 길드, 그리고 헌터 협회의 연락을 받아 가까운 헌터 길드가 합류했다.
토벌 작전에 참가한 헌터가 많다.
민간인의 피난도 끝났다.
헌터들은 키메라 드레이크의 머리 세 개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힘이 분산되는 것이니 토벌 속도가 빨라진 만큼 위험도도 높아졌지만 헌터들은 동시 공략을 진행했다.
서울에 출몰한 몬스터는 키메라 드레이크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마리, 두 마리 등 숫자는 적지만 등급이 높은 스켈레톤 및 키메라가 계속해서 쏟아졌기 때문이다.
위험도가 높은 작전을 진행함으로써 찾아오는 헌터들의 불안?
없었다.
보조, 방어, 치유 마법에 한정되어 있지만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가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이스의 능력?
모른다. 하지만 드래곤이 어떤 종족인지는 알고 있다.
“흐읍!”
가볍게 발을 굴린 이대한이 투포환 선수처럼 방패를 던졌다.
타악!
가볍게 땅을 찬 것과는 달리 잔상과 함께 사라진 문수원이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망치를 던졌다.
쉬이이익!
건물 옥상, 활시위를 잡아당기고 있던 김세혁이 두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화살을 날렸다.
“아이스 애로우.”
2서클 마법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스 컨트롤이라는 능력을 각성해 S급 헌터에 오른 송아연이 사용한 2서클 아이스 애로우다.
송아연의 주변에 생성된 얼음 화살 수백 발이 날아갔다.
김건우를 필두로 한 백호 길드의 공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녹색 머리를 잃어버린 키메라 드레이크.
푸욱!
이대한이 던전 방패가 정확하게 비늘이 떨어져 나간 드레이크의 머리에 박혔다. 던지기 직전에 방패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 칼날을 세운 것이다.
콰아앙!
문수원이 던진 망치가 푸른 머리의 눈과 눈 사이에 떨어졌다. 이미 체력과 마나 소모가 컸던 키메라 드레이크였다. 놈은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고, 그 결과 빠른 속도로 떨어진 망치를 견디지 못해 ‘콰드득’ 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했다.
푸우욱!
김세혁의 화살은 이대한, 문수원과는 다르게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격보다 더 큰 피해를, 그리고 더 큰 고통을 일으켰다.
폭발한 녹색 머리.
김세혁의 화살이 녹색 머리가 날아간 목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비명?
키메라 드레이크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너무나 큰 고통이 연달아 찾아왔기에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문제는 아직 헌터의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푸부부부북!
수백 개의 화살이 드레이크의 전신에 박혔다. 정확하게 비늘이 떨어져 나간 부위만 노린 것이 아닌 전신을 찔렀다.
당연히 비늘을 파괴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는 화살이 많았지만 수백 대의 얼음 화살 중 수십 대의 화살이 비늘이 떨어져 나간 부위에 박혔다.
얼음 화살의 크기가 매우 작으니 고통도 적다?
맞다. 이대한, 문수원, 김세혁의 공격과는 다르게 고통은 적었지만 송아연은 아이스 컨트롤이라는 이능의 힘을 각성한 헌터였다.
송아연이 얼음 화살을 막아 내지 못한 키메라 드레이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적.
살가죽을 파고든 화살에 균열이 일어났다.
송아연이 앞으로 뻗은 손을 천천히 오므려 주먹을 쥐었다.
파앙!
얼음 화살이 깨져 얼음 조각이 되었고, 얼음 조각은 그대로 키메라 드레이크의 상처를 파고들어 놈에게 내상을 입혔다.
이대한, 문수원, 김세혁이 외상을 입혔다면, 송아연은 내상을 입힌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율이 움직였다.
“라인데인.”
4서클 마법사일 때부터 사용했던 마법이다. 빠르게, 그리고 익숙하게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는 만큼, 그만큼 파괴력을 높일 수 있다.
콰과과광!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의 창이 드레이크의 몸을 관통했다.
“…….”
침묵.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헌터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라인데인, 벼락의 창이 떨어진 장소를 주시했다.
헌터들의 연계에 이어 벼락의 창이 떨어졌다. 푸른 마나 연기는 사라질 생각이 없어 한율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주문을 외우려 할 때였다.
쿠웅.
“……꿀꺽.”
누군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쿵.
“하. 씨…….”
누군가는 미래를 예지한 것처럼 자세를 바로하며 작게 욕설을 뱉었다.
쿵.
“후우! 전투 준비.”
발소리와 함께 마나 연기 속에서 튀어나오는 거대한 다리.
마법사, 한율이 작은 목소리로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자세를 잡고 마나를 끌어올리는 순간, 그 순간 키메라가 마나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날개가 사라졌다. 얼음 화살에 박혀 큰 상처가 일어난 상태였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벼락의 창 때문에 그 상처가 벌어져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세 개의 머리 중에 두 개의 머리를 잃었다. 남은 머리는 화염의 브레스를 쏘는 붉은 머리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 역시 라인데인이 헌터들이 만들어 낸 상처를 악화시켰고, 그 결과 왼쪽 날개와 마찬가지로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측됐다.
등 뒤에 있는 적을 노리던 거대한 칼과 같던 꼬리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꼬리 또한 큰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떨어진 벼락 때문에 신경이 끊어진 건지, 아니면 뼈가 완전히 부서진 것인지 축 늘어진 상태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
문수원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다른 헌터들도 고개를 끄떡였다.
크와아아앙!
키메라가 마나를 담아 커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키메라의 피어는 헌터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지 못했다.
오랜 전투가 있었고, 그 끝에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입은 키메라가 지금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
촤아악!
쿠웅!
마나 소드 각성자, 김건우의 공격에 붉은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후아.”
“으아아아!”
모 헌터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모 헌터는 ‘승리’했다는 것을 깨닫고 함성을 질렀다.
“상황은요?”
키메라의 숨통을 끊은 모 헌터, 김건우는 바로 무전기를 조작하고 누군가에게 상황 보고를 들었다.
저벅저벅.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일단 메모라이즈 마법을 외워 마법을 저장하던 한율이 바로 옆에 서 있는 동료의 움직임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
저벅저벅.
골드 드래곤, 크라이스는 휴식을 취하거나, 기뻐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는 헌터들과는 다르게 걸음을 옮겨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한율이 키메라 앞에서 멈춰 선 크라이스를 보고 뒤늦게 걸음을 떼 그의 곁으로 이동했다.
키메라를 관찰하는 크라이스였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떨어져 나간 머리, 그리고 키메라의 육신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필요하세요?”
“아니. 오히려 자네와 같은 헌터들에게 필요할 거 같아서.”
키메라의 사체를 가공해 장비 제작 재료로 만든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메모라이즈 마법을 사용해 마법을 저장하던 한율이 작업을 멈추고 크라이스에게 물었다.
“가능할까요?”
“일단.”
“예.”
“그 각성으로 이능의 힘을 얻은 헌터들은 어렵다.”
“……왜요?”
“기술력이 부족하니까.”
“…….”
장비 제작 능력자들은 이능의 힘을 사용해 가공을 마친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고 방어구를 만든다.
“고위 등급 헌터들은 제작술을 배우는데요?”
“그래 봤자 몇십 년에 불과하지.”
이능, 그리고 몇십 년 동안 배운 기술만으로는 장비를 제작할 수 없다. 그 말은 몇십 년이 아닌 최소 일백 년 이상 기술을 배우고 사용한 장인만이 장비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몇백 년간 기술을 배우고 사용한 장인은 누구일까.
“……드워프?”
“그래. 뭐, 우리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족이 몇 명 없거든. 아, 엘프도 가능하겠군.”
“엘프 중에도 대장장이가 있어요?”
“대장장이는 없지. 하지만 재봉사는 있지.”
키메라의 뼈는 드워프족 대장장이에게 맡기고, 가죽과 깃털은 엘프족 재봉사에게 맡긴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등급으로 분류하면 어떤 등급이 나올까요?”
한율의 물음.
키메라의 사체를 관찰하던 크라이스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대답했다.
“최소 S등급.”
“오.”
“일단 사체를 내가 가지고 있으마.”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대는 골드 드래곤이다. 한율은 바로 대답했고, 크라이스는 관찰을 마친 것처럼 가볍게 손을 흔들어 아공간을 열고 그 아공간에 키메라의 사체를 이동시켰다.
거대한 아공간이 열리고 그 아공간 안으로 키메라의 사체가 이동하는 중이었다. 한율은 고개를 돌렸고, 몬스터 사체에 욕심이 있던 헌터들 몇몇이 눈에 들어오자 바로 그들에게 다가가 설명했다.
장비 제작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최소 일백 년 이상 기술을 배우고 사용한 장인만이 가능해 크라이스의 도움을 받아 드워프, 엘프에게 장비 제작을 의뢰했다.
장비 제작을 의뢰하는 이가 골드 ‘드래곤’이었기 때문일까, 헌터들이 걱정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몬스터 사체는 크라이스가 회수한다.
헌터들의 걱정도 덜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하나다.
“거래창.”
한율이 거래창을 열고 그 안에 보관해 둔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고했다.
세 번의 신호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김환성의 목소리.
“다른 지역은 어때요?”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 곳이 있지만 1시간 내에 전투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거 다행이네요.”
-문제는 해외다.
“실패한 국가가 있군요?”
-사라진 국가가 있다.
“……예?”
-사라진 국가가 있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요?”
한율이 눈을 깜빡였다.
지구의 게이트화를 대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동 마법진을 설치했다. 지구의 헌터만이 아닌 다른 차원의 지원군들도 함께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위험에 처하거나 토벌에 실패해 후퇴한 국가는 있어도 멸망하는 국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일 아침 9시까지 헌터 협회로 와라. 그때 알려 주마.
“협회장님?”
-일단 쉬라고. 또 언제 국내에 몬스터가 소환될지 알 수가 없으니까.
“…….”
김환성의 말은 틀리지 않다. 또 언제, 어디에서 몬스터가 소환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휴식을 취할 시간이 있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휴식만 취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