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도시 계획(1)
“차원의 문.”
바로 눈앞에 생성된 차원의 문.
“오늘은 내 방이냐.”
자신의 집, 자신의 방문과 똑같았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오늘은 연구실 안쪽에 자리한 휴게실에서 차원의 문을 사용한 게 아닌, 자신의 방에서 차원의 문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화악.
한 걸음.
딱 한 걸음 내디뎌 차원의 문을 건너는 순간 시야가 달라졌지만 한율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봤고,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마법을 사용해 테이블, 의자를 만들었다.
“잘 지냈어요?”
[차원의 벽: 어서 오십시오. 한율 님.]
차원 거래 능력 중 하나인 대화 시스템을 응용한 것으로 예상되는 홀로그램.
한율이 이름, 그리고 내용이 적힌 홀로그램이 눈앞에 떠오르자 실소를 터트리고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차원의 벽: 정확한 질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번, 그러니까 처음 차원의 벽을 방문했을 때 제안했던 이야기요.”
홀로그램이 바뀌지 않았다. 한율은 정확한 질문을 바란다는 이야기가 적힌 홀로그램을 빤히 바라보며 바뀔 내용을 기다렸다.
[차원의 벽: 20%입니다.]
“뭐가요?”
[차원의 벽: 안전성. 안전성이 20%에 불과합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면요?”
[차원의 벽: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되었습니다. 80%입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 게이트를 이동시킨다면?”
[차원의 벽: 그래도 80%입니다.]
“흐음…….”
짧은 신음을 흘린 한율이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게이트 이동 지역. 그러니까 지구로 넘어오는 게이트의 생성…… 아니지. 생성이 아니지.”
지구에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차원의 벽을 넘은 공간이 게이트가 되어 차원의 벽에 안착하고, 그렇게 안착한 게이트를 차원의 벽이 지구로 이동시킨다.
“이동. 그래, 이동이 맞네. 이동 지역을 고를 수 있어요?”
[차원의 벽: 없습니다.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마나의 흐름을 타고 이동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조금 아쉽다.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찬 한율은 다시 질문을 던졌고, 차원의 벽이 해주는 대답을 기반으로 조금씩, 조금씩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파앗.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 발생한 빛의 폭발.
한율이 저 멀리, 시간으로 계산하면 대략 10분쯤 걸리는 거리에서 일어난 빛의 폭발, 그리고 마나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타다다다닥.
자신이 상대방의 마나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린 것처럼, 상대방도 자신의 마나를 감지한 것 같았다. 한율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언소월을 바라봤고, 천천히 속도를 줄인 그가 자신의 앞에서 멈춰 서자 손을 가볍게 들어 인사했다.
“오셨어요.”
“이건 조금 아쉽네요.”
“차원의 문 생성 장소요?”
“예. 잘 지내셨습니까?”
“네. 조금 귀찮은 일이 있었지만 잘 해결했습니다.”
프랑스에 나타난 A+등급 게이트, 레드 오크 게이트.
고생했던 게이트 소멸 작전을 떠올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는 언소월을 확인하고 화제를 돌렸다.
“이야기는 들으셨죠.”
“어떤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레스트 님.”
“아, 예. 들었습니다만…….”
말끝을 흐린 언소월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화방에 함께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 일이 생겨서 대화방 홀로그램을 축소화시켰거든요.”
“아아.”
레스트가 언데드 드래곤을 토벌할 때, 한율은 프랑스의 의뢰를 받아 레드 오크 게이트를 소멸시켰다. 그래서 토벌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해 게이트 소멸 작업을 마친 후에 다시 한 번 물어 토벌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파앗.
다시 한 번 일어난 빛의 폭발.
이번에는 꽤 가까웠다.
고개를 돌린 한율이 산책을 하듯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여인, 에리얼을 확인하고 거래창을 열었다.
“여기요.”
“오!”
밝은 미소와 함께 양손을 뻗은 에리얼이 한율이 건넨 민트 초코맛 아이스크림 통을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은 그녀가 뚜껑을 연 후, 통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푹 펐다.
“다음은 에리얼 님이죠?”
“넴.”
입안에 가득한 아이스크림 때문에 짧게 대답한 에리얼이 입안이 깨끗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레스트 씨가 말한 것처럼 레스트 씨와 협력자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혼돈의 정령왕.
빛의 정령왕, 어둠의 정령왕을 흡수해 두 왕의 힘을 이어받은 정령왕.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보셨어요?”
“넴.”
생각에 잠겨 잠시 침묵하자 에리얼은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한율과 언소월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다시 침묵했고, 방해 없이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가 있자 방긋방긋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파앗.
세 번째 빛의 폭발.
한율이 이동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옆에 도착한 레스트,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네고 있는 레스트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
“언데드 드래곤을 토벌한 직후였습니다. 저는 바로 차원 거래 능력을 사용해 거래창을 열었고.”
설명 도중에 ‘차원 거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인지 거래창이 열렸다.
거래창을 열어 물건을 꺼내려했다.
레스트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거대한 보석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검은 보석.
세공이 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광석처럼 보였다.
“크기가 크기여서인지 차원의 조각이 아닌 차원의 돌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이 차원의 돌이 거래창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한율, 언소월, 에리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시 손을 뻗어 차원의 돌을 집은 레스트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테이블 위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이건 저번에 차원의 벽이 조언한 대로 마지막에 가서 납품하겠습니다.”
차원 이동 인원 제한.
[차원의 벽: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네 개의 차원의 돌을 전부 납품할 경우, 동시 이동 인원은 얼마나 줄어드는 겁니까?”
[차원의 벽: 50명입니다.]
50명.
세 사람, 그리고 정령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400명에서 50명으로 줄어든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린 한율이 차원의 벽에게 물었다.
“스킬, 차원의 문의 유지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죠?”
[차원의 벽: 저번에 말씀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차원의 벽이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보는 레스트, 언소월, 그리고 에리얼.
한율은 그들의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실제로 가장 먼저 차원의 벽에 도착하면 테이블과 의자를 생성한 후에 차원의 벽과 대화를 나눠 계획을 구체화했고, 그 대화 도중에 차원의 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다른 분들은 모르잖아요.”
[차원의 벽: 반복 설명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해도 바로 이야기를 정리해 대답하던 차원의 벽이었다. 세 사람과 정령왕은 시간이 지나도 홀로그램에 적힌 글이 바뀌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며 기다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음?”
테이블 위를 올려보고 있던 한율의 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요청을 확인합니다.]
[요청을 수락합니다.]
[차원의 문, 차원의 문(진)의 내용을 수정합니다.]
[스킬, 차원의 문의 수정 내용은 퀘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킬, 차원의 문(진)의 수정 내용은 스킬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나타나 계단처럼 쌓이는 홀로그램.
“스킬창.”
세 사람과 정령왕이 동시에 스킬창을 열어 변경된 내용을 확인했다.
이름: 차원의 문(진).
설명: 차원 거래 대상의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을 생성합니다.
이동 차원: 레스트(불가), 에리얼(불가), 언소월(불가). 차원의 벽(가능).
동시 이동 인원: 400명.
지속 시간: 30분.
재사용 시간: 1인당 1분.
“1인당 1분?”
한율이 다시 차원의 벽의 홀로그램을 올려 보며 물었다.
[차원의 벽: 차원을 이동하는 것입니다. 부서진 차원의 벽의 틈새를 이용한다고 해도 동시에 이동하는 인원이 늘어나면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400명이 동시에 차원의 문을 이용해 차원을 이동하면, 차원의 문을 다시 사용하는 데 400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이해 못할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진 한율을 비롯한 두 사람과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레스트 님.”
“예. 한율 님.”
“이번에 언데드 드래곤을 토벌해 차원의 돌을 확보한 후에 스킬의 변경이 생겼을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거래창.”
자세한 설명을 위해 레스트가 다시 거래창을 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지만 작은 문제점을 발견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리고 차원의 벽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원의 벽은 변경된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차원의 벽: 알고 있습니다.]
“한율, 언소월, 그리고 에리얼 님의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도 알고 있습니까?]
[차원의 벽: 알고 있습니다. 언어를 번역해 한율, 언소월, 에리얼의 앞에 홀로그램을 만들면 되겠습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차원의 벽: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한율, 언소월, 에리얼의 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이름: 차원의 문(진).
설명: 차원 거래 대상의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을 생성합니다.
이동 차원: 한율(가능), 에리얼(가능), 언소월(가능). 차원의 벽(가능).
동시 이동 인원: 400명.
지속 시간: 30분.
재사용 시간: 1인당 1분.
바뀌었다.
“전부 열렸네요.”
레스트의 스킬, 차원의 문(진)을 빠르게 살핀 한율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이동 차원이 전부 열렸다. 이동 차원, 차원의 벽을 제외하고 전부 닫혀 있었는데 언데드 드래곤을 토벌해 퀘스트를 완료하자 모든 차원이 열렸다.
“예. 뭐, 퀘스트 또는 도움이 필요할 때에만 사용할 생각이지만요.”
“흐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킬을 남발할 생각이 없다. 그런 레스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다시 레스트의 스킬, 차원의 문(진)을 살핀 후에 퀘스트 창을 열었다.
확인해야 하는 것은 퀘스트 내용이 아니다. 보상란에 생성된 차원의 문이라는 스킬이다. 그래서 한율은 보상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달라진 건 없네.”
차원의 문(진)과 마찬가지로 동시 이동 인원, 지속 시간, 재사용 시간이라는 항목이 추가된 게 전부다. 달라진 건 없다.
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말을 해야 할까.
아직 완벽하게 계획을 구상한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