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한율과 레스트(4)
레드 오크 워로드와 레드 오크.
한율은 몬스터를 토벌하고 게이트 핵을 파괴하기 위해 처음부터 전력을 개방했다.
정령을 소환해 레드 오크를 상대하는 팀원들을 지원했고, K-99와 마법으로 레드 오크 워로드를 공격했다.
심지어 거래창까지 전투에 이용했다.
보법을 사용해 적에게 접근했고, 범죄 조직, 아크럼의 각성 범죄자들을 상대할 때처럼 거래창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공격을 시도했다.
거래창을 이용한 공격에는 대량의 마나를 주입해 파괴력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보니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적의 시선을 돌리는 것은 가능했다.
레드 오크 워로드의 머리 위에 갑작스레 나타난 안전핀이 제거된 수십 개의 폭탄.
한율을 비롯한 헌터들이 보법을 밟아 거리를 벌렸고, 레드 오크 워로드가 추적을 위해 걸음을 떼는 순간 안전핀이 제거된 폭탄이 폭발했다.
콰앙!
적에게 육체적인 피해를 주는 수류탄이 아니다. 레드 오크 워로드의 머리 위에 떨어트린 것은 섬광탄.
“취이이익!”
대검을 떨어트린 레드 오크 워로드가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고, 미리 이야기를 듣고 눈을 감았던 헌터들이 눈을 번쩍 뜨고 다시 적에게 달려들었다.
쉬이익! 푸욱!
전투가 길어지자 헌터의 부상 위험도가 늘어났다. 하지만 전투가 길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헌터만이 아니었다.
레드 오크 워로드 또한 마나 소모 속도 상승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헌터의 공격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섬광탄이 바로 눈앞에서 터졌다. 눈이 멀고 귀가 먼 레드 오크 워로드는 황급히 양팔을 휘둘렀고, 헌터들은 다시 보법을 밟아 물러섰다.
회복 속도도 매우 뛰어나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고개를 휘휘 흔드는 레드 오크 워로드.
한율이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접근했다.
붉은 레드 오크 워로드의 눈동자를 통해 자세를 잡는 자신이 보였지만 한율은 멈추지 않았다.
빠르게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지척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것도 방아쇠를 당겨 마나를 주입한 총알을 발사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헌터들의 공격을 받아 내며 마나가 부족해지기 시작한 레드 오크 워로드는 뒷걸음을 치며 물러섰고, 이내 물러서는 자신의 행동에 굴욕감을 느낀 것처럼 이를 바득 갈며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부우웅!
몸이 커서 아주 빠른 속도로 양팔을 뻗어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아닌 바람을 뭉개는 소리가 일어났다.
바람을 뭉개는 소리를 일으키는 레드 오크 워로드의 주먹은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위축하는 힘을 갖췄다. 하지만 한율은 제자리에 서서 방아쇠만 당겼다.
혼자서 레드 오크 워로드와 싸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콰앙!
빠른 속도로 달려와 한율의 양옆에 선 이대한, 그리고 중국의 헌터가 방패를 들었다. 레드 오크 워로드의 힘이 너무나 강해 뒤로 주르륵 밀려나고 말았지만 한율을 지킬 수 있었고, 그렇게 이대한과 중국의 S급 헌터로 인해 한순간이나마 놈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한율이 보법을 밟아 물러섰고,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제이든이 나타나 검을 찔렀다.
홀로 레드 오크 워로드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한율과 가디언 팀(레드 오크 워로드 담당 팀)은 동료의 움직임에 맞추는 싸움, 협공에 집중했다.
물론 강력한 한 방이 아닌 가벼운 공격으로 레드 오크 워로드를 쓰러트리는 것은 매우 힘들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지만 가디언 팀의 목적은 시간을 버는 것.
사방에서 달려드는 레드 오크를 상대하는 일반 팀(일반 몬스터 담당 팀)이 레드 오크를 빠르게 토벌하고 합류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가디언 팀은 레드 오크 워로드의 시선을 끄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20분.
서쪽을 담당한 일반 팀이 가디언 팀과 합류했고, 다시 10분이 흐르자 북쪽을 담당하던 일반 팀을 비롯한 모든 팀이 가디언 팀과 합류했다.
“한율 님!”
황급히 몸을 비틀어 레드 오크 워로드의 주먹을 피한 제이든이 보법을 밟아 뒤로 물러서며 외치자 한율이 공격을 멈추고 주문을 외웠다.
“탐지.”
화아악!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
한율은 레드 오크 워로드는 팀원들에게 맡긴 채 탐지 마법에 집중했다.
거리가 매우 떨어져 있음에도 정확하게 레드 오크 워로드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는 레드 오크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리가 아닌 능력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사실은 지금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율은 놈들의 이동 속도와 거리를 계산해 도착 시간을 예측, 확인하고 다시 총을 들었다.
“10분!”
“미친!”
팔을 자른 것도, 다리를 자른 것도 아니다.
대량의 마나 소모?
분명 대량의 마나를 소모시켰다. 하지만 모든 마나를 소모한 것이 아니었다.
“레드 오크 워로드의 마나량!”
러시아 헌터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40%!”
탐지 마법을 사용해 확인한 것은 달려오는 레드 오크만이 아니었다. 한유라는 레드 오크 워로드도 확인했기 때문에 바로 대답했다.
콰앙! 콰앙!
충돌할 때마다 폭발음이 발생하는 전투.
가디언 팀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레드 오크 워로드의 마나를 전부 소모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율이 언덕 너머에서 느껴지는 마나를 감지하고 제이든을 확인했다.
눈앞에 있는 레드 오크 워로드에 집중한 탓에 달려오는 레드 오크 무리를 감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
“적의 지원군 도착!”
일반 팀에 속해 있던 헌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한율의 곁을 스쳐 가며 그가 거래창에서 꺼낸 영초를 입에 넣었다.
“가디언 팀 2조로 나눠 마나 회복.”
한율이 가디언 팀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가디언 팀 중 일부가 뒤로 물러섰고, 일부가 전력을 다해 레드 오크 워로드를 공격했다.
뒤로 물러선 헌터, 그들이 빠르게 한율의 곁으로 이동해 바구니에 담긴 영초를 꺼냈다.
마나 호흡법을 돌릴 시간은 없다. 그들은 값비싼 영초를 한입에 삼킨 후에 레드 오크 워로드에게 달려들었고, 그렇게 영초를 복용해 마나를 회복한 이들이 전투에 합류하자 이번에는 레드 오크 워로드를 압박하던 헌터들이 교대를 하듯 뒤로 물러나 한율에게 달려갔다.
한율도 다른 가디언 팀 소속 헌터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량의 마나를 소모했기 때문에 영초를 씹어 마나를 회복한 후에 방아쇠를 당기고 마법을 사용했다.
레드 오크 워로드.
놈은 분명 강했다. 하지만 헌터들도 약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콰앙!
제자리에 서서 이대한의 공격을 막아 냈던 레드 오크 워로드가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체력, 그리고 마나 소모가 커진 게 분명하다.
헌터들은 다시 한 번 집중력을 높여 레드 오크 워로드를 공격했고, 놈의 마나가 전신을 덮지 못하는 순간, 그 순간 은신을 하고 있던 김세혁이 다시 화살을 쏘았다.
쉬이익! 푸욱!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몸에 박힌 화살.
김세혁이 마나를 움직여 허리띠에 부착한 버튼 리모컨을 건드렸다.
콰앙!
“취이이익!”
몸에 박힌 화살의 화살촉이 폭발.
바깥이 아닌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에 의해 한쪽 팔이 날아간 레드 오크 워로드가 비명을 질렀고, 헌터들이 기회라 판단해 전력을 다해 놈의 육체에 자신의 무기를 박아 넣고 물러섰다.
체력 회복 속도도 일반 몬스터, 레드 오크보다 월등히 뛰어난 레드 오크 워로드다. 거기다 최후의 발악이라 해도 무방한 비장의 기술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헌터들이 놈의 육신에 자신의 무기를 박아 넣는 것을 끝으로 뒤로 물러났을 때, 그때 한율, 송아연, 그리고 김세혁이 움직였다.
푸우욱!
김세혁은 전력을 다해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다.
푸우욱!
송아연은 크기와 길이를 무시한 아주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 날렸다.
마지막으로 한율.
“어스 랜스.”
한율은 흙을 끌어모아 거대한 창을 만들었고, 빠른 속도로 형태를 변화시켜 크고 뭉뚱한 창을 작고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어 날렸다.
푸우욱!
화살에 꽂히고 얼음창과 흙으로 만들어진 창에 박힌 레드 오크 워로드.
“취이이…….”
놈이 다시 한 번 마나를 개방해 화살과 두 자루의 창을 강제로 꺼내려고 할 때, 세 사람이 다시 마나를 움직여 화살과 창을 폭발시켰다.
콰아앙!
바깥에서 일어난 폭발이 아닌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
황급히 마나를 개방했지만 지금까지 소모한 마나가 있었고, 가벼운 공격이지만 계속해서 쌓인 헌터의 공격으로 입은 부상이 있어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은 레드 오크 워로드의 상반신을 날려 버렸다.
“……후우.”
하반신만 남아 버린 레드 오크 워로드를 관찰하는 것도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율이 게이트 핵을 향해 걸어가는 대신 몸을 돌렸다.
레드 오크 워로드.
분명 가디언 팀은 놈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아직 놈의 명령을 받고 달려오는 레드 오크가 있었다.
“빠르게 레드 오크를 정리하고 게이트 핵을 파괴합니다!”
***
언데드 드래곤.
분명 언데드 드래곤 차원의 조각을 흡수해 더욱더 강력한 힘을 얻었다. 하지만 놈의 차원의 조각 흡수는 현재 진행형.
“…….”
틈은 많았다.
강력한 힘을 손에 넣으면서 생겨난 자만심.
라이프 베슬만 파괴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상식.
-이, 이게 무슨…….
“이거 정말 쓸 만하구만.”
크라이스가 투명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레스트는 그 틈을 노렸다.
놈의 자만심을 이용해 언데드 드래곤의 공격 방식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산성력이 강한 포션을 조금씩 사용해 라이프 베슬을 노리는 척, 놈의 육체를 녹였다.
“…….”
녹아내린 언데드 드래곤.
뼈까지 녹여 버리는 산성력이 높은 포션에 의해 몸의 절반이 녹아 버린 언데드 드래곤을 빤히 바라보던 레스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놈에게 다가갔다.
다리가 녹았다.
날개가 녹았다.
남은 몸은 머리와 가슴.
탁.
머리 앞에서 걸음을 멈춘 레스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명 뼈가 있으면, 라이프 베슬이 파괴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있겠지.”
맞다.
라이프 베슬만 파괴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회복을 위해서는 한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회복하기 위해서는 뼈가 필요하다."
뼈.
리치는, 아니 언데드는 자신의 육체가 파괴되어도 주변에 뼈가 있으면 몸을 회복할 수 있다.
동물의 뼈로 만든 언데드라면 동족의 뼈가 필요하다.
인간의 뼈로 만든 언데드라면 인간의 뼈가 필요하다.
당연히 드래곤의 뼈로 만든 언데드라면 드래곤의 뼈가 필요하다.
레스트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마나로 둘러싸인 라이프 베슬을 바라봤다.
-큭, 큭큭. 육체를 잃어도 라이프 베슬이 살아 있다. 당연히 내 마나는 육체가 아닌 라이프 베슬에 있고. 과연 저 마나를 제거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지.”
바로 대답한 레스트가 아직 열어 둔 거래창에서 푸른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이건 내 제자이자 은인이 조제한 포션이다. 이름은 마나 배출 포션.”
-…….
“이름 그대로 마나를 배출하는 포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