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한율과 레스트(2)
정면을 바라보던 제이든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오크들이 뚝 떨어지자 땅을 가볍게 차 공중으로 도약했다.
거대한 구덩이.
갑작스레 생겨난 구덩이로 인해 바닥을 뒹굴고 있는 레드 오크.
-레인 포그.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던 제이든이 이어폰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한율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구덩이 아래를 확인했다.
호수도, 강도, 바다도 없는 초원에 나타난 물안개.
물안개가 구덩이 안을 가득 채웠다.
-라인데인.
콰르르릉!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물안개를 생성해 전도율을 높인 후에 파괴력만 보면 5서클 마법 중 가장 강력하다는 번개 속성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한율의 마법 연계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했겠지만 상대는 레드 오크였다..
제이든이 순식간에 증발한 물안개, 그로 인해 마나만 끌어올려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구덩이 아래를 살폈다.
사망한 레드 오크는 없다.
갑작스레 찾아온 엄청난 고통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레드 오크는 있었지만 사망한 레드 오크는 없다.
타악!
분노한 레드 오크들이 거칠게 땅을 박차 공중으로 도약해 구덩이를 탈출했고, 놈들의 탈출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착지한 제이든과 휴식을 마친 헌터들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남은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레드 오크 열다섯 마리를 경계하던 제이든이 아직 전투 중인 헌터들에게 물었다.
-20분 정도 필요합니다.
“한율 님을 비롯한 후방 지원 팀 절반이 붙으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10분이면 됩니다.
10분.
고민하던 제이든이 다시 레드 오크 열다섯 마리를 살폈다.
구덩이, 물안개, 벼락이라는 쓰리 콤보 때문인지 동족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오던 놈들은 마나를 끌어올린 채, 그리고 사방을 경계하면서 아주 천천히 진격해 오고 있었다.
이 정도 속도면…….
“한율 님, 그리고 후방 지원 팀 1조는 기존의 적을 빠르게 섬멸하고 2조는 9시 방향에 나타난 놈들을 상대합니다.”
***
전투가 끝나면?
헌터들은 마나 호흡법을 사용했다. 열에 일곱이 휴식 시간이 되면 마나 호흡법을 통해 마나를 회복했고, 체력을 회복했다.
“크네요.”
“크군요.”
기존 30마리.
추가 15마리.
레드 오크 총 45마리를 쓰러트리고 찾아온 휴식 시간.
자연스럽게 팀을 나눠 번갈아 가며 마나 호흡법을 통해 마나를 회복하고 체력을 회복한 소멸 작전 팀은 복귀하지 않고 진격했다.
레드 오크 게이트를 찾은 팀은 팀 이름 그대로 게이트를 소멸시키기 위해 게이트를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오래 걸렸다.
레드 오크 무리를 피해 게이트의 핵에 당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0마리, 15마리, 때로는 50마리, 때로는 3마리.
“얼마나 걸렸죠?”
언덕 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던 한율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손목시계를 확인한 한 헌터가 대답했다.
“14시간입니다.”
“오래 걸렸네요.”
“이번이 첫 번째라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소멸 작전 팀을 구성해 작전을 실행한 적이 있다.
S급 헌터 두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꾸린 소멸 작전 팀은 작전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꾸린 소멸 작전 팀의 이야기였다.
각국의 S급 헌터, 그리고 A급 헌터로 꾸려진 소멸 작전 팀의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전투가 30마리였죠?”
“예.”
“얼마나 걸렸죠?”
“1시간입니다.”
“마지막 전투는…….”
“운이 좋았습니다. 30마리입니다.”
“시간은요?”
“30분입니다.”
레드 오크에 대한 약점을 파악했다. 주의해야 할 놈들의 능력을 확인했다. 휴식 시간마다 마나 호흡법을 돌리는 동료들을 대신해 주변을 경계할 때마다 침묵하며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 아닌 레드 오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입을 꾹 다물었던 한율이 고개를 돌려 프랑스의 헌터, 제이든에게 물었다.
“가디언은 당연히 토벌하고 게이트 핵을 파괴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이미 확인한 이야기지만 만약을 대비해 다시 브리핑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물러나겠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게이트 핵을 지키는 레드 오드 가디언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제이든은 팀원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팀원들을 바라보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사체를 감정했습니다. 그 결과 놈의 이름이 레드 오크 워로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워로드?”
“예. 워로드(War Lord)입니다.”
전쟁의 군주.
잠시 입을 다물어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제이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놈은 강합니다. 또한 적이 나타나면 커다란 울음을 터트려 주변에 있는 레드 오크를 부릅니다. 1차 소멸 작전 당시에 큰 피해를 입은 것도 갑작스러운 워로드의 외침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온 레드 오크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 강하다고 하셨는데 그건 능력입니까, 무력입니까?”
한율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능력, 무력 둘 다입니다. 놈은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갖춘 것은 물론 개인의 무력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일반 레드 오크와 비교하면 세 배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몇몇 헌터들이 혀를 찼다.
일반 레드 오크도 쉽게 쓰러트릴 수 없는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무속성입니까?”
한율이 다시 물었다.
“예. 1차 소멸 작전 당시, 사방에서 몰려오는 레드 오크들 때문에 전투가 길어졌습니다. 당연히 레드 오크를 상대하는 시간도 매우 길었는데, 그 당시 워로드는 그 어떤 자연의 힘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무속성.
상극의 힘을 사용해 적을 손쉽게 쓰러트리는 마법사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몬스터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왼팔을 들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제이든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30분 후. 30분 후에 다시 이동, 워로드를 쓰러트리고 게이트 핵을 파괴하겠습니다.”
***
거래창을 열어 에리얼, 언소월, 그리고 한율이 보낸 물건을 확인한 레스트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잠시 휴식 시간이 생겼다면서 저번에 부탁한 물건을 보냈다.
한율의 물건이 도착하면 바로 작전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레스트는 바로 진행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작전을 점검했다.
작게 호흡을 고른 후에 눈을 감은 레스트, 그는 지금까지 모은 정보, 그리고 그 정보를 토대로 구상한 작전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그린 다음에 눈을 떴다.
드래곤, 이종족, 그리고 각국의 마스터 및 대마법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나?”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을 대표하듯 드래곤 종족 대표, 크라이스가 물었다.
“예. 끝났습니다.”
“그렇군.”
곰방대를 톡톡 두들긴 크라이스가 자신의 아공간을 열어 곰방대를 집어넣고 고개를 돌렸다.
언데드 드래곤의 아공간은 이미 파악한 상태.
크라이스는 드래곤, 그리고 엘프족 대마법사와 제국의 대마법사가 거대한 마법진 바깥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천천히 손을 뻗어 레스트의 등을 밀었다.
“자네가 하게.”
“예?”
“자네가 하라고. 자네가 찾아냈고, 자네가 모은 사람들이지 않은가.”
“…….”
자연스럽게 크라이스를 돌아보며 반문했던 레스트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거래 대상자이자 자신의 제자 겸 은인인 한율을 만나 신체를 회복한 레스트는 마탑에도,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대륙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간 이동 현상이라는 기괴한 현상에 대해 알게 되고, 차원의 조각이라는 물건을 알게 되고, 한율과 대화를 나누며 공간 이동 현상과 게이트의 관계를 추리하면서 그의 여행은 달라졌다.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몬스터를 토벌해 사람들을 구하는 여행이 되었고.
위험에 처한 각국에 요청을 받아 몬스터를 토벌하는 여행이 되었다.
국가만이 아니다. 차원의 조각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이종족을 만났고, 이종족의 요청을 받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행이 되었다.
여기서 끝이냐.
아니다.
“…….”
천천히 고개를 돌린 레스트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고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오러 마스터.
은퇴를 했다고 해도 그의 경지에, 그의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니 각국에서 모셔 가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선택하게 만든 아주 심각한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각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레스트의 지원 요청을 기다렸다.
은퇴를 선택하게 된 아주 심각한 문제.
그 누구도 고치지 못한 손녀의 병을 레스트, 차원 거래 능력을 이용한 그가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레스트에게는 큰일이 아니었다. 그 병은 지구에서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아니었고, 그래서 그는 수많은 국가가 찾아와 자신을 데려가려 했지만 그 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레스트의 지원 요청을 기다렸다.
“…….”
다시 고개를 돌린 레스트가 이번에는 활시위를 튕기며 무기를 점검하고 있는 엘프족 여성을 바라봤다.
레스트에게 그녀의 문제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드워프 전사, 왕국의 대마법사, 소년 정령사도 마찬가지다. 차원 거래라는 능력을 가진 레스트에게는 큰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은퇴한 오러 마스터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입장에서 레스트의 도움은 아주 큰 은혜였기에 그의 지원 요청을 기다렸다.
실력을 기르며.
“그럼 언데드 드래곤 토벌을.”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고 있던 이들이 바로 무기를 들고 마법진을 바라봤다.
“시작하겠습니다.”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