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드래곤(2)
“어디 보자. 지금 창고에 있는 아페스의 수량이.”
연구에 쓰인 걸까. 아니면 누가 몰래 빼돌린 걸까.
창고에 보관 중인 아페스의 수량이 생각보다 적었다.
“일천육백 병입니다.”
“생각보다 적네요.”
“…….”
감사라도 할 생각인 걸까.
눈을 가늘게 뜬 과학자가 아페스 외 창고에 보관 중인 다른 약품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한 번 뒤집어 엎어야겠구만.”
각성 범죄자.
약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각성 범죄자들이 과학자들이 빼돌린 약품을 구입한 것이 분명했다.
몬스터의 사체를 처리하는 약품부터 치료약과 소독약까지.
과학자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창피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 연구소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페스는 일천육백 병 정도입니다.”
“그럼 일단 일천육백 병을 구입하겠습니다. 그리고 실례가 안 된다면 다른 연구소에도 연락해 창고에 보관 중인 아페스 수량을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거래를 주선해 주신다면 중개비를 드리고요.”
“흐음, 대략적인 수량을 알 수 있을까요?”
“흐음.”
과학자를 따라하듯이 신음을 흘린 한율이 고민에 잠겼다.
얼마나 필요할까.
언데드 드래곤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물론 비교 대상은 있다.
“드레이크.”
“……예?”
“그 아룡의 대지에서 나타난 가디언 드레이크에 두 배 정도 되는 몬스터를 녹일 정도로?”
“어, 어마어마한 양이군요.”
“네. 어마어마한 양이죠.”
“그 정도면 대한민국 연구소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연구소에도 연락해 확인을 해 봐야 합니다. 아니, 그래도 부족할 가능성이 있으니 과학자 아페스에게 요청해 생산을 해야 할 수도 있군요.”
대한민국 연구소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연구소, 그리고 과학자 아페스에게도 연락해야한다.
그 말인즉슨.
“오래 걸린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한 달 이상 걸릴 겁니다. 만약 생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더 걸릴 수 있고요.”
“일단 구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가시려는 겁니까?”
“예.”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한 한율이 과학자를 따라 이동해 연구소를 나왔다.
연구소 앞, 검은 리무진.
검은 리무진 앞에 선 한율이 안내, 설명, 거래, 마지막으로 배웅까지 나온 과학자를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다음에 또 놀러 오십시오.”
정확하게는 기부다. 하지만 기부를 한 이상, 정말 중요한 장소만 아니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율은 과학자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리무진에 올랐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탑이요. 아, 연락을 온 국가가 있나요?”
부상자가 발생해 첫날 세 번이나 게이트를 소멸시켰음에도 닷새라는 시간이 걸렸다.
“일본입니다.”
인천 A급 게이트에서 5일.
대전 A급 게이트에서 2일.
총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게이트에서 활동한 한율은 바로 게이트 소멸 작업에서 물러나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일본…….”
어인의 습격을 받았던 일본을 떠올린 한율이 연구소를 방문하기 전, 리무진에서 내리기 직전에 옆에 내려놓은 태블릿 PC를 가져와 실행시켰다.
경호원도 빠른 이동을 위해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석에 앉은 경호원은 차를 운전하고 다른 경호원들은 스마트폰을 만졌다.
그때였다.
한 경호원이 태블릿 PC를 조작하는 한율을 불렀다.
“한율 님.”
“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A급 게이트를 완전 소멸시킨 후에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 작업을 들어갈 수 있는데, 왜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겁니까?”
경호원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자 경호원 또한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양손을 흔들었다.
“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왜 이렇게 급하게 진행하시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으음, 일단 우리나라 A급 게이트 소멸 작전은 안정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죠?”
“예. 송아연 님의 활약이 매우 크다고 들었습니다.”
“네. 다행이죠. 만약 우리나라에 생성된 A급 게이트가 속성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몬스터가 서식하는 게이트였다면 우리나라에 생성된 A급 게이트를 전부 소멸시키고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 작업에 들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죠. 제가 빠져도 큰 문제 없이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 작업을 급하게 진행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A급 게이트가 생성된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니잖아요.”
“……아.”
다른 나라에도 A급 게이트가 생성되었고, 그 A급 게이트 때문에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는 국가가 많았다.
“다른 나라의 지원 요청을 받아 A급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작업도 함께 진행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의 A급 게이트 소멸 작전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마자 발을 뺀 것이군요.”
“네. 3년 후에 일어난 지구의 게이트화를 생각하면 헌터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니까요.”
지구의 게이트화가 발생한 이후, 수많은 국가가 몬스터의 침략을 받을 것이다.
물론 예측에 불과했다.
실제로 ‘차원의 벽’과 대화를 나눠 알게 된 정보를 통해 정리하면 하이시스, 그리고 놈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과 전투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지구의 게이트화’가 마음에 걸렸고, 그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 결과…….
“지구가 게이트로 변하는 거잖아요.”
“예.”
“그럼 그 게이트화가 일어난 후, 기존에 있던 게이트는 어떻게 될까요?”
“……어.”
지구가 게이트로 바뀌어 수많은 몬스터의 습격을 받는 것만 예상했다. 기존에 존재하던 게이트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생각하지 못해 사람들이 당황할 때, 한율이 토론을 통해 나온 가설을 그들에게 알려 줬다.
“통합.”
“……통합?”
“게이트화가 이루어진 지구와 기존 게이트가 통합한다.”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이뇨.”
아니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상체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고, 운전을 하던 경호원이 백미러를 살짝 조정해 한율을 바라봤다.
“게이트 내부는 다른 세상이잖아요. 숲, 산맥, 도시, 황무지, 화산, 바다 등등등.”
“예.”
“그 세상이 지구로 넘어온다. 간단하게 말하면 게이트의 세상과 지구가 충돌한다.”
“……!”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게이트는 몬스터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당연히 지구가 게이트로 바뀌어 기존 게이트가 그대로 게이트가 되어 버린 지구에 흡수된다면 몬스터만이 아니라 그 몬스터가 살고 있는 세상까지 지구와 통합될 가능성이 있다.
“요즘 TV를 보면 흔히 나오는 가설 중에 하나인데…….”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율의 가설이 나온 적이 있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움직이는 것이 가장 올바른 행동이었기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알리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통합에 따른 충돌’이라는 가설 또한 나온 적이 있다.
“아, 훈련, 그리고 게이트 활동에 바빠서.”
업무를 마친 경호원들은 그대로 퇴근하는 대신 게이트를 방문해 조금이라도 경험, 그리고 성장에 필요한 게이트 활동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경호원들은 몰랐다. 아니, 알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저 한율, 마법사 한율이 그 가설의 가능성을 생각보다 높게 보고 있어 놀랐을 뿐이다.
“그럼 한율 도련님께서는.”
“A급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지원하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고, 가까이 있는 게이트 소멸 작전을 할 생각입니다.”
“…….”
“A급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할 때보다 더 바쁠 겁니다.”
추가 업무가 있으니까.
그것도 직접 게이트에 진입해 소멸 작전을 진행하는 추가 업무가 있으니까.
***
대륙의 북서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사람들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거대한 존재를 바라봤다.
‘미, 미친…….’
드레이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생명체.
용암에 몸을 담그고 있는 생명체.
-재밌군.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사내의 음성에 사람들이 몸을 휘청거렸다. 목소리의 크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마나가 밀려들어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빠르게 지팡이를 흔들어 마나의 이동에 변화를 준 레스트가 거대한 금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령왕, 에리얼 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돕는다라. 내가…….
“내가 왜? 라는 말 따위를 할 생각은 없으시겠죠? 언데드 드래곤입니다. 언데드 드래곤.”
-…….
“중간계의 수호자라 불리는 드래곤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태양의 신께서도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성자, 테리를 저에게 보낸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 세계, 아니 우리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고 계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큭큭큭. 가벼운 장난 한번 쳐 볼 생각이었는데. 재미없는 놈이군.
우우웅.
거대한 마나의 유동.
파앗.
붉은빛이 용암 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레드 드래곤의 몸을 감싸 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빛이 줄어들었다. 그것도 레드 드래곤의 육체와 함께 빛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름은?”
용암 위에 서 있는 붉은 장발의 미남자, 레드 드래곤이 레스트에게 물었다.
“레스트라고 합니다.”
“전투에 협력하겠냐는 뜻이겠지?”
“예. 찾는 것은, 그리고 후방에서 보조하는 것은 드래곤 외 다른 종족이 맡습니다.”
“우리에게 전부를 맡기겠다?”
“예.”
“뭐?”
“일 좀 하시죠. 다른 차우……. 진화의 돌이 몬스터에게 넘어갔을 때에도 침묵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린 레드 드래곤이 이를 바득 갈며 살기를 일으키는 순간, 레스트가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말했다.
“가능합니까?”
“뭐가.”
-하이시스.
“……누구지?”
-최초로 차원을 이동한 인간이자 불사체인 리치.
“…….”
레드 드래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찌어찌 잘 해결되었다고 해도 다음에 다시 한 번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때 다른 차원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냥 도와주시죠.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