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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83화 (183/221)

183 순서(1)

쉬이익!

파앗!

차원의 문 안쪽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것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던 한율이 마나의 밀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떴다.

거대한 평야가 아닌 넓은 휴게실.

직시해도 눈이 아프지 않던 태양이 아닌 콘크리트로 된 천장.

자연스럽게 상체를 돌린 한율이 휴게실 문을 닮은 차원의 문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창.”

이름: 차원의 문(진).

설명: 차원 거래 대상의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을 생성합니다.

이동 차원: 레스트(불가), 에리얼(불가), 언소월(불가). 차원의 벽(가능).

“……으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킬의 이름, 설명, 이동 가능 차원을 확인하던 한율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차원의 문.”

스킬을 사용한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차원의 문을 소리 내어 말하니 짧은 마나의 유동과 함께 휴게실 문이 다시 나타났다.

“……취소?”

파앗!

반짝하는 빛의 폭발과 함께 사라진 차원의 문.

“차원의 문.”

우웅. 파앗!

마나의 유동과 함께 다시 생성된 차원의 문.

“오.”

차원 거래와는 다르게 사람이 직접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보니 쿨타임이 존재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틀렸다.

짧은 고민.

차원의 문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취소’라는 단어를 뱉어 차원의 문을 없애버리고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일단…….”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이 가장 먼저 퀘스트에 도전하기로 했고, 다른 차원 거래 대상자들이 그런 그녀를 돕기로 했다.

직접적인 도움이 아닌 간접적인 도움이었고, 에리얼의 요청에 따라 물건을 구입하고 그 물건을 판매해야 하니…….

“당장에 할 일은 없다.”

열심히 수련해 무력을 키워도 그 무력으로 에리얼을 도와줄 수 없었다. ‘혼돈의 정령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에리얼이 먼저 요청할 때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판매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퀘스트 외의 업무라고 볼 수 있다.

“어디 보자.”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은 한율이 인터넷에 들어가 게이트 지도를 확인했다.

인천과 대전.

“인천은 소멸 작전 팀에 합류해야 하는 게이트지만.”

이름: 중독된 검은 맹수의 숲 게이트(3/6).

등급: A-.

서식 몬스터: 블랙 울프, 블랙 보어 외 6종.

독 속성 몬스터들로 가득한 인천의 A급 게이트였기 때문에 한율의 참가는 필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전의 A급 게이트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이름: 거인의 화산(3/6).

등급: A-.

서식 몬스터: 레드 오우거, 라바 슬라임, 파이어 스네이크 외 6종.

거인의 화산.

화염 속성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는 A급 게이트.

“내가 빠져도 상관없을 거 같은데.”

만약을 대비해 최초 소멸 작전에는 참가해야 한다. 하지만 얼음 여왕, 송아연이 게이트, 그리고 몬스터와의 전투에 익숙해지면 바로 발을 뺄 수가 있었다.

너무 위험한 전투이기 때문에 발을 뺀다?

아니다. 한율은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마법사를 육성해야 했고, 무공서를 번역해 각국에 전달해야 했다.

마나 컴퍼스를 사용해 좌표를 확인, 이동 마법을 사용해 다른 국가로 이동해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야 했다.

그뿐이냐.

아니다.

3년 후에 찾아올 S급 게이트의 위협을 대비해 수련 시간을 늘려야 했다.

아티팩트 제작도 있고, 주문서 생산도 있다.

‘인천을 빠르게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동, 후방에서 아연 씨를 보조해 그녀의 적응력을 높인다.’

그 후에 게이트 소멸 작전에서 발을 빼고 각국에 전달한 마나 컴퍼스를 통해 확인한 좌표로 이동해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한다.

“그럼 대충…….”

인터넷 창을 아래로 내린 한율이 메모장을 열었다. 키보드 위에 양손을 올린 그는 빠르게 타자를 두들기다 생각에 잠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빠른 속도로 타자를 두들겼다.

인천 A급 게이트 시간표

09:00~14:00: 수업.

15:00~21:00: 게이트 소멸 작전.

22:00~02:00: 아티팩트 제작 및 주문서 생산.

“……흐음.”

팔짱을 끼고 시간표를 바라보던 한율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22:00~24:00: 아티팩트 제작 및 주문서 생산.

24:00~02:00: 수련.

수련 시간이 없었기에 아티팩트, 주문서 작업 시간을 줄인 한율이 수정된 시간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Enter’ 키를 눌렀다.

“다음은…….”

가장 먼저 완성한 시간표는 인천의 A급 게이트에 합류했을 때의 시간표.

한율이 다시 타자를 두들겼다.

대전 A급 게이트 시간표.

09:00~14:00: 수업.

15:00~20:00: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

21:00~24:00: 아티팩트 제작 및 주문서 생산.

24:00~02:00: 수련.

“대충 이렇게 하면 되나.”

대전의 A급 게이트에서 발을 뺄 때가 되면 게이트 소멸 작전에 사용하던 시간을 텔레포트 마법진 설치 작업으로 돌릴 생각이었다.

전투가 아닌 작업이었고, 이동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에 따른 시간 소모가 매우 적어 시간표를 약간 조정한 한율이 ‘내 PC’에 들어갔다.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시간이 많아 연동을 시켜 둔 상태.

자연스럽게 시간표라는 이름에 메모장을 핸드폰으로 옮긴 한율이 바로 파일을 첨부한 문자를 김환성에게 보냈다.

우우웅.

문자보다는 전화가 익숙했던 것일까.

시간표라는 메모장을 첨부해 문자를 보내고 3분.

김환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간표? 대전은 빠지게?

“아연 씨의 힘으로도 충분하다 싶으면 바로 빠질 생각이에요. 당연히 청일 그룹의 제작 능력자들과 협력해 화염 저항력이 높은 장비를 제작하고 얼음 또는 물과 관련된 무기 및 아티팩트와 주문서를 생산해 보조할 생각이고요.”

-그렇군. 아연이가 있었지.

얼음 여왕, 송아연.

그녀는 분명 대전의 A급 게이트, 거인의 화산에서 큰 활약을 보일 것이다.

-그럼 인천 A급 게이트를 소멸시킨 후에 각국에 연락을 해 두면 되겠냐?

“네. 부탁드릴게요.”

-그래. 다른 전달 사항은?

“…….”

차원의 문이 있다. 하지만 한율은 잠시 고민했고, 이내 어떠한 결론을 내리고 대답했다.

“없어요. 당장은?”

-당장은?

“네.”

-있기는 하다는 말이구나.

“아직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 조금 있어서요.”

-일단 마음의 준비는 해 둬야겠군. 알았다. 고생해라.

“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

빛과 어둠.

상극의 힘을 사용하는 혼돈의 정령왕.

불, 물, 바람, 땅의 정령왕은 그런 혼돈의 정령왕을 봉인하기 위해 동시에 덤벼들었다.

“그때도 분명 기습을 통해 봉인시킨 거였지?”

기억을 더듬던 땅의 정령왕, 막대사탕을 쪽쪽 빨고 있던 그녀의 물음에 팔짱을 끼고 있던 불의 정령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정면에서 덤벼들어도 이길 가능성이 4할인가 3할인가. 어쨌든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기습, 협공으로 봉인시켰지.”

“그런데 그런 애가 차원의 조각을 흡수해 더욱더 강력해진다라.”

“…….”

침묵이 흘렀다.

너무나 강력한 혼돈의 정령왕.

“우리도 성장하기는 했지만.”

천천히 입을 연 물의 정령왕이 다른 정령왕의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게 만든 후에 말을 이었다.

“아마 혼돈의 정령왕에게는 미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네.”

3년 후,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혼돈의 정령왕은 봉인을 강제로 부수고 아공간을 탈출한다. 그러니 혼돈의 정령왕이 차원의 조각을 완전히 흡수하기 전에 놈이 봉인되어 있는 아공간으로 진입해 쓰러트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한율 씨에게 부탁해서 핵이라도 구해 보는 건 어떨까?”

게임을 통해 얻은 정보, 대량 살상 무기 ‘핵.’

“핵이 통할까?”

짧은 고민, 그 끝에 정령왕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 통하겠지.”

빛이라는 자연, 어둠이라는 자연을 동시에 품은 혼돈의 정령왕이었다. 핵이라는 무기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해 빛, 또는 어둠을 이용해 핵 공격을 피할 가능성이 높았다.

“끄응. 그때 막았어야 했어.”

“지금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질 거 없어. 그러니 그냥 쓰러트릴 방법이나 고민해.”

“후우.”

땅의 정령왕의 핀잔.

깊은 한숨을 내쉰 불의 정령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계에는 여섯 왕이 존재했다.

불, 물, 바람, 땅. 그리고 빛과 어둠.

하지만 빛의 정령왕과 어둠의 정령왕은 오래전에 소멸했다. 정확하게는 ‘혼돈의 정령왕’에게 패배해 놈에게 흡수당했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정령이 탄생했을 때, 정령왕들은 한자리에 모여 고민했다.

두 개의 힘, 그것도 상극인 두 개의 힘을 동시에 품은 정령이다. 정령왕들은 자연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존재이니 소멸시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지만 빛의 정령왕, 그리고 어둠의 정령왕이 그런 정령왕들을 설득했다.

그래도 자신의 자식이라고 열심히 다른 정령왕들을 설득했지만 그 결과, 혼돈의 정령은 빛의 정령왕, 그리고 어둠의 정령왕을 그대로 집어삼켜 왕의 힘을 강제로 이어받았다.

“일단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차원 거래 대상자들과는 이야기가 끝난 거지?”

땅의 정령왕, 오리에드가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에게 물었다.

“네.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구할 수 있으면 바로 구해 주겠다고.”

“그들의 직접적인 도움은 역시 어렵고?”

“흐음.”

땅의 정령왕이 다시 고민에 잠겼다.

직접적인 도움 없이 간접적인 도움만으로 기습, 협공을 통해 쓰러트릴 수 있었던 혼돈의 정령왕과 싸워야 한다.

그것도 과거와는 다르게 봉인이 아닌 소멸을 시켜야 한다.

“……순서를 바꾸는 건?”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가 차원의 문이라는 스킬을 가진 유일한 정령왕, 에리얼에게 물었다.

“순서요?”

“응. 다른 차원이 먼저 퀘스트를 완수하면 그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순서라…….”

에리얼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순서를 바꾼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쁜 이야기가 아닐 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소월 씨의 차원은 연합, 즉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는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있다고 해요. 그래서 변수가 많이 발생할 수가 있으니 압도적 힘, 즉 지원군이 없으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 사, 마 연합.

정파는 지금까지 쌓아 온 자신의 명예, 그리고 정(正)이라는 글자가 가져오는 힘에 따른 사용 제약으로 소속이 다른 문파를 공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邪)와 마(魔)를 사용하는 문파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기에 배신할 가능성이 높고, 그 배신은 악황제를 토벌한 직후에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진 지원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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