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퀘스트가 생성됩니다(2)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찬 김환성이 다시 한율에게 물었다.
“그럼 시간이 아예 없는 거냐?”
“잘게 쪼개면 시간이 나올 거 같기는 한데. 그 시간 투자한다고 해서 아티팩트 제작 속도가 높아지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제작에 필요한 것은 시간보다는 집중력이니.”
“어쨌든 시간이 있다는 거구나.”
“……제작은 어렵지만요.”
“그러니까.”
“네. 제작만 어려워요.”
“그럼 부탁 하나만 하자.”
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의뢰 없다면서요.”
“대한민국에 자리한 모든 길드에게 요청하는 의뢰다.”
대한민국 길드에게 협회가 의뢰한다.
“북한 정벌이라도 하려고요?”
“그건 이미 진행 중이고.”
채현수, 이강현이 북한 영토를 수복하는 중이었다. 그 두 사람을 군부대와 가까운 헌터 길드가 지원하고 말이다.
“그러면요?”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너무 조용해서 불안하다고.”
“……게이트 소멸 작전?”
“그래. 딱 1회만 남기고 전부 정리하는 의뢰다.”
게이트 소멸 횟수가 늘어날수록 게이트의 서식하는 몬스터가 줄어든다. 하지만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B급 게이트도요?”
“그래. 일단 B급 게이트가 있어야 상위 등급 헌터들이 성장할 수 있으니.”
“흐음.”
A급, 아니 이제는 S급 헌터인 한율.
현 S급 헌터인 송아연.
S급을 바라보는 김세혁.
B급이지만 A등급이나 마찬가지인 헌터가 둘에다가 돈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확실히 실력이 있는 A급 헌터가 한 명이다.
“우리 길드라면 A급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헌터 협회가 마법사의 탑에 부탁할 것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다.”
“게이트 소멸 작전 도중에 위험에 처한 길드를 도와라?”
“그래.”
“한마디로 경호를 하라는 거네요. 흩어져서.”
“국가, 협회, 기업의 헌터도 당연히 함께 움직일 테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텐데.”
“흐음.”
성장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하는 헌터들을 지키는 일이다.
나쁘지는 않다.
헌터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뿐더러 잘하면 다른 길드에게 빚을 지어 둘 수 있으니까.
“일단.”
“그래.”
“저는 불가.”
“다른 애들은 가능하다?”
“일단 물어보고요.”
“길드장으로서 위엄이 없군.”
“있어 보여요?”
김환성의 비난에 한율이 반박이 아닌 그의 생각을 물었다.
“없어 보이기는 하지.”
***
한율이 헌터 협회에서 일거리를 가져온 다음 날이었다. 마탑 소속 헌터들은 최소의 인원만 남겨 두고 협회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첫째날 경호 의뢰를 맡은 사람은 이대한, 양 리리, 그리고 김세혁.
한율은 배웅을 마친 남은 사람들이 수련을 위해 지하 수련장으로 향하자 다시 4층으로 올라와 수업 준비를 마치고 강의실로 향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쌩쌩한 마법사들이다.
기억이 남아 얼굴을 붉히는 이가 있었고, 기억을 못하는지 방긋방긋 웃고 있는 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한율은 그런 마법사들의 반응에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칠판 앞으로 이동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서클 마법사 1시간 30분.
2서클 마법사 1시간 30분.
3서클 마법사는 개인 수업 및 일대일 교육.
한율은 수업을 진행했다.
1서클 마법사들을 가르치고, 2서클 마법사들을 가르치고.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찾아와 수업 종료를 알리고 4층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점심을 먹고 마나 컴퍼스 마법진 수련.
“진짜 조용하네.”
문득 너무 조용해 불안하다는 김환성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너무나 조용했다.
“아크럼은 피해가 너무나 커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A급 게이트가 생성되었지만 한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게이트의 생성과 동시에 S급 헌터들이 게이트를 소멸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S급 게이트는 아직 나타날 거 같지는 않고.”
작업을 멈춘 한율이 고민에 잠겼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게이트의 변화인가.’
게이트의 변화였지만 한율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걱정에 매몰되어 해야 하는 일도 하지 않고 끙끙 앓고만 있을 수는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일에 몰두하려고 할 때, 한율의 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 알림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S등급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하아.”
게이트의 변화가 낫고, 각성 범죄자들의 폭주가 낫다.
깊은 한숨을 내쉰 한율이 펜을 내려놓고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을 바라봤다.
“후우, 퀘스트창.”
***
[퀘스트, 언데드 드래곤이 생성되었습니다.]
차원의 조각을 납품하며 공간 이동 현상을 최대한 줄이는 여행을 다녔다.
“…….”
멍하니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자신만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레스트가 맥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맛있게 잘 먹었다.”
빙긋 웃은 레스트가 1실버를 소녀 종업원에게 팁으로 건네줬다.
“우, 우와아아. 감사합니다!”
“그래.”
레스트가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차원의 조각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있어 짐은 별로 없다. 정확하게는 한율처럼 거래창을 아공간 주머니처럼 사용하고 있어 처음 방을 빌렸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걸음을 옮긴 레스트가 침대 위가 아닌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후우. 퀘스트창.”
이름: 언데드 드래곤(DAY-1095).
설명: 3년 후, 차원의 조각을 흡수하기 위해 아공간으로 몸을 숨긴 언데드 드래곤이 잠에서 깨어나 아공간을 탈출합니다.
보상: 공간 이동 현상 감소, 능력 각성(차원의 문).
“이건 정말 너무하는군.”
언데드 드래곤.
소멸을 거부하고 스스로 언데드가 된 드래곤이 차원의 조각을 손에 넣었다. 그것도 다른 드래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좁고 어두운 아공간에 숨어 차원의 조각을 흡수하려 한다.
“정말 해도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입을 다문 레스트는 양손을 들어 머리를 꾹꾹 누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생명체는 진화를 한다. 그것도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진 개체로 진화한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언데드 드래곤은 차원의 조각을 흡수하는 중이다. 그러니 3년 안에 놈이 아공간을 펼친 장소를 찾아 그 아공간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언데드 드래곤을 토벌하든가 다른 드래곤의 힘을 빌려 강제로 열어젖힌 아공간에서 강제로 끌어내 토벌하면 된다.
“그래. 최악의 상황은 아냐.”
***
[임무, 황제의 부활이 생성되었습니다.]
아직 가문을 지킬 힘을 손에 넣지 못했다.
총관으로서 업무를 보던 언소월은 한율에게 들었던 홀로그램이라는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나타나자 주변을 쓰윽 둘러보았다.
한율의 설명처럼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인지 모두 업무를 보고 있었다.
“방에 놓고 온 물건이 있어서 잠시 가져와야겠습니다. 조금 쉬고 계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한 총관실 직원들이 붓을 내려놓았고, 언소월은 총관실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황제의 부활.
이름만 확인했을 뿐인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후우.”
작게 호흡을 고른 언소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임무.”
이름: 황제의 부활(DAY-1095).
설명: 3년 후,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악황제(惡皇帝)가 부활합니다.
보상: 공간 이동 현상 감소, 능력 각성(차원의 문).
악황제.
300년 전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힘으로 나라를 지키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데 사용한 최악의 황제.
그 황제가 3년 후에 부활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
3년 후에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악황제가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시간이 있다.
“하지만 악황제의 육신은 재가 되어 사라…….”
악황제의 육신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임무는 말한다.
악황제의 육신은 아직 건재하다고.
***
“환장하겠네.”
“…….”
“아, 진짜 평화로워서 좋았는데.”
한자리에 모여 한 마디씩 한 정령왕들이 고개를 돌려 과학 문물을 보급한 차원 거래의 대상,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을 바라봤다.
“대충 느낌이 오거든. 그래서 확답이 필요해서 물으마.”
천천히 입을 열었던 불의 정령왕이 찌푸린 인상을 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퀘스트 이름이 뭐냐?”
“혼돈의 정령왕의 탈출.”
“시발.”
이름: 혼돈의 정령왕의 탈출(DAY-1095).
설명: 3년 후, 아공간에 떨어진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혼돈의 정령왕이 아공간을 탈출합니다.
보상: 공간 이동 현상 감소, 능력 각성(차원의 문).
“걔 아직 안 죽었대?”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던 땅의 정령왕이 짜증난다는 듯이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중얼거리자 다른 정령왕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혼돈의 정령‘왕’이다. 하지만 혼돈의 정령왕은 전쟁을 사랑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을 사랑해 자신의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냈다. 계약을 맺을 수 없는 자연의 친화력이라는 전혀 없는 존재라 해도 그 존재가 전쟁터로 향하면 기꺼이 자신의 아이를 보냈다.
“3년 후에 아공간을 탈출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 말은 3년 후에 아공간을 탈출할 정도의 힘을 얻는다는 뜻이고.”
“차원의 조각을 흡수해서?”
물의 정령왕이 물었다.
“응, 하지만 그 말은 3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거잖아.”
“아공간은 어떻게 열고.”
“야. 우리는 친구들이 많아.”
과학이 발달한 차원.
마법이 발달한 차원.
무공이라는 무술이 발달한 차원.
***
이름: S등급 게이트(DAY-1095).
설명: 3년 후, 12월 26일. S등급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게이트의 핵을 파괴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지구는 게이트가 됩니다.
보상: 게이트 생성 속도 감소. 각성 능력 진화(차원의 문).
“그래도 대비할 시간은 주는구나.”
3년.
매우 부족했지만 그래도 3년이 어디인가.
“그런데 저건 뭐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설명란을 피해 한율이 보상란을 확인했다.
게이트 생성 속도 감소.
차원의 조각을 납품할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이다.
“각성 능력 진화. 차원의 문?”
한율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두 번째 보상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