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빛이 나는 솔로(2)
“공부는?”
“여기 식당인데.”
“아, 습관처럼 물어봤네. 아니, 그 전에 만나면 묻는 게 마법이었던 거 같은데.”
“……헤헤헤.”
엘렌이 귀엽게 웃었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는 파티 안 해요?”
“……파티?”
“네.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
12월 20일.
나흘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이브고 그다음날은 크리스마스다.
“어, 우리 엘렌 제자?”
“네. 우리 율 스승님.”
“크리스마스잖아.”
“네.”
“애인 있는 년놈들이 살 부대끼는 날인데 꼭 파티를 해야 할까?”
“마탑에는 없잖아요. 년놈들.”
“…….”
“……?”
“진짜 없어?”
“네. 진짜 없어요. 년놈들.”
“미남 미녀가 이렇게 많은데? 여기 있는 놈들이 다 솔로라고?”
“전부는 아니고요.”
그럼 그렇지.
“기혼자 빼고 전부?”
“허이구우우우.”
한율은 물론 김태산, 국가 소속 헌터까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미리 대화라도 나눈 것인지 엘렌과 한율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눈 맞은 제자들도 없어?”
“썸은 있어요.”
“오.”
“썸에서 끝나서 그렇지.”
엘렌의 대답.
“허이구.”
“대부분 20대 아니었습니까?”
“정확하게는 10대부터 30대까지 골고루.”
“어쨌든 성욕이 왕…….”
김태산이 국가 소속 헌터의 입을 막았다.
“조금 순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국가 소속 헌터가 짧은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한창 연애하고 싶을 나이인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순화된 국가 소속 헌터의 말에 김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이어 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요.”
“그래요. 우리 빛이 나는 솔로 제자.”
“스승님도 애인 없잖아요.”
“여기서 팩폭을 때린다고?”
“유라가 말하길 스승님은 학창 시절에도 애인 없었다고 하던데.”
없다.
“그럼 빛이 나는 솔로는 우리 스승님이 아닌가아아?”
“우리 빛이 꺼진 솔로 제자님은 파티를 하고 싶은 건가요, 아닌 건가요?”
“하고 싶습니다!”
“……하아. 이브? 당일?”
“으음.”
고민하듯 신음을 흘린 엘렌이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식사 중이던 모든 이들이 검지와 중지를 들고 있었다.
“이틀 연속?”
***
고민은 짧았다. 한율은 바로 옆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엘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율의 허락이 떨어지자 식사를 하던 모든 마법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스승이 빛이 나는 솔로여서 제자들도 빛이 나는 솔로구나.”
“라임 좋네요.”
함께 연구실로 향하던 헌터들의 대화.
뚝 하고 걸음을 멈춘 한율이 상체를 틀어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쪽들은 다른가 봅니다?”
“…….”
침묵.
두 사람이 침묵하자 한율이 씨익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가 솔로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미소를 지우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시간은 멀었지만. 그리고 이미 순대국밥도 먹었지만.”
“예.”
“네.”
“술이나 한잔할까요?”
“찬성입니다.”
“안주는 제가 사겠습니다.”
빛이 나는 솔로 삼형제가 방향을 바꿔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 형.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편의점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문수원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음?”
“허어.”
“배신자가 여기 있네.”
문수원과 유세희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마주보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것도 스마트폰 한 대로.
“너네.”
“네?”
“어?”
“사귀냐?”
“네.”
“어.”
“언제부터.”
“중국에서 돌아온 날이요.”
“중국에서 돌아온 날. 고백 받았어.”
“허, 허허허.”
한율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국가 소속 헌터와 김태산도 웃음을 터트렸다.
“헌터라는 놈이.”
“몬스터와 게이트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수련을 해도 모자를 판에.”
이어 말하기처럼 말을 이어받아 문수원에게 압박을 가하던 세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흩어졌다.
김태산은 새우 과자.
국가 소속 헌터는 캔 맥주가 아닌 페트 맥주.
한율은 여덟 병의 소주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카운터 앞에 내려놓았다.
“계산이요.”
낮은 중저음으로 동시에 말하는 세 사람.
카운터 앞에 앉아 흐뭇한 미소로 청춘 남녀의 사랑을 지켜보던 한국영이 그런 세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 혀를 쯧쯧 차며 바코드 스캐너를 잡았다.
***
12월 24일.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매우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년놈들(?)이 밖을 쏘다니고 있을 때, 마탑은 파티에 취해 있었다.
“쏴리 질러!”
“와아아아아!”
귀여운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엘렌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 소리치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고 맥주병을 입에 물었다.
물론 미성년자들은 성인들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
“개판이네.”
파티가 시작되고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인간도 있었고, 순록 분장을 했다고 네 발로 뛰어다니는 술에 취한 인간도 있었다.
“이것이 빛이 나는 솔로들의 파티지.”
“그게 자랑이냐?”
가슴을 쭉 내밀고 말하는 한율에게 강렬한 비난을 쏟은 한유라가 다시 파티장 이곳저곳을 살폈다.
대체 누가 선물한 건지 김덕배는 트리로 분장했고, 류노스케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붕대와 안대를 붉은색으로 바꿨다. 망토도 붉은색으로 바꿨다.
“여러분 다 같이!”
노래방 기계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신곡을 열창하는 유아리와 그녀를 따라 파티에 참석한 식스센스 멤버들도 보였다.
“와…….”
탄성과 함께 한유라가 몸을 돌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크흐흐흑! 사실요! 저 헤어졌습니다!”
“그래그래.”
“게이트가 늘어나니까 휴가가 잘리고. 아니, 이해합니다. 국가 소속 헌터로서 국민을 지키는 것이 제 임무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그래그래.”
“연희야아아아!”
“마셔. 마시고 잊는 거야.”
“연희야아아! 보고 싶다아아!”
대체 언제 친해졌는지 국가 소속 헌터와 김태산이 열심히 술을 마시고 있다.
한유라가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옆 테이블을 확인했다.
“우리 하양이. 오늘도 귀엽네요.”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진 배희연이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하양이로 착각해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어흐흐흑. 아버지! 우리 유리가 뛰어다닙니다!”
“그래! 열심히 뛰어다니는 게 참 보기 좋구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지만 이유리를 사랑하는 부자는 울었다.
“응? 유리?”
그러고 보니 유리가 안 보였다.
한유라가 다시 상체를 틀어 파티장을 확인했다.
대체 언제 술을 마신 건지 이유리는 유세희와 함께 파티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준비한 선물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와! 여신 산타다! 여신 산타!”
“흐헤. 흐헤헷. 나는 여신 산타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괴상한 웃음을 흘린 이유리는 더욱더 신나하며 선물을 나눠 줬고, 유세희는 그 옆에서 그렇게 질색하는 민트 초코맛 우유를 마시며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하, 하하.”
1시간이다.
1시간 만에 파티장이 개판이 되었다.
“뭐…….”
즐겁기는 하다.
개판이어서 그런가 즐겁기는 하다.
“야.”
“어.”
“어떻게 1시간 만에 이렇게 되냐?”
“내가 말야.”
“어.”
“레스트 님하고 에리얼 님하고, 언소월 님에게 연락을 취했어.”
누구지?
친구들인가?
한유라가 고개를 돌리려 했다. 비틀거리는 이유리만 아니었으면.
“그래서 비싸고 독한 술을 싹 다 사들였지.”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비싸고 독한 술을 사서 파티장에 풀었다는 거지?”
“그렇지.”
“대체 얼마나 독…….”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고개를 돌린 한유라였지만 그녀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바로 옆에 한율이 앉아 있었다.
“야.”
“어.”
“그거 뭐냐?”
“기타.”
시뻘건 얼굴의 한율은 의자 위에 서 있었다.
그것도 기타를 들고 서 있었다.
“너 기타 배운 적 없잖아.”
“쯧쯧쯧. 우리 빛이 나는……. 유라야.”
“어. 왜.”
“너도 빛이 나는 솔로지?”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그래. 솔로여야지! 우리는 빛이 나는 솔로다!”
한율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소리를 지르던 엘렌이 고개를 홱 돌렸다.
“스승님이 일어났다!”
“우와아아아!”
“기타를 드셨다!”
“우와아아아!”
“한 곡 해! 한 곡 해!”
엘렌이 선창하자 다른 마법사들이 후창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사나이의 마음을 울려 보도록 하마!”
“여성의 마음을 울려도 모자랄 판에 스승님께서 남자의 마음을 울린다고 한다! 박수우우우!”
“그럼 간다! 이광식 선생님의 이등병의 약속!”
“우우우우우!”
엘렌이 야유하고 뒤이어 마법사들이 아유한다. 하지만 이미 얼굴이 불콰해질 정도로 취해버린 한율은 열창했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유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본관을 빠져나온 한유라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의 밤하늘답지 않게 별이 떠 있었다.
“우와.”
간다아아아! 가슴 속에에에에!
우우우우우!
너무나 예쁜 밤하늘로 눈은 정화되었는데 귀는 정화되지 않았다.
“진짜 개판이야.”
***
12월 25일.
아침 10시 30분.
“스승님.”
짙은 다크서클, 산발이 된 금발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산타복을 입고 순대국밥을 먹던 엘렌이 한율을 불렀다.
“어.”
제자라고 해도 말을 놓는 것은 아주 가끔씩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12월 24일 파티에서 한율은 모든 제자들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오늘도 파티해요?”
양념장을 다섯 큰 술 집어넣은 순대국밥으로 해장하던 기타리스트, 아니 마법사 한율이 엘렌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응? 또 하고 싶어?”
“네.”
“숙취는 어떻게 하고?”
“스승님.”
“응?”
“우리는 마법사죠.”
“……아. 마나 호흡법 돌려서 숙취 깨자고?”
“그래도 안 되면 큐어 마법 쓰면 되지 않을까요?”
큐어.
해독 마법.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지만 술도 어떻게 보면 독의 일종이니 가능할 것 같았다.
“글쿤.”
“파티?”
“코…….”
큰 목소리로 외치려던 엘렌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식당을 뛰쳐나갔다. 그러자 샐러드로 아침을 때우던 한유라가 또 한 번 그 말을 뱉었다.
“아침에도 개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