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빛이 나는 솔로(1)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네요.”
“차원 거래라는 능력을 숨긴 채 마법처럼 일반인들도 무공을 배울 수 있게 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하더라.”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이 사기 행각이요?”
“국가 하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 치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개의 국가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치는 것이니 쉬울 거라고 하던데?”
“…….”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국가의 대표들,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S급 헌터들이다.
비밀 계약서라는 마법 주문서 때문에 비밀이 발각될 일도 없다.
“어쨌든 능력이 발각되는 일은 없겠네요?”
“그건 그래.”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사기를 치지만.”
“스케일이 큰 사기를 쳐서.”
“……허허허허.”
“큭큭큭.”
문수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고, 한율은 정말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찌되었든 무공도 전파했으니 이제 수련, 수업, 게이트 활동이네요?”
“아, 내년 초부터 다시 나가 봐야 돼.”
“A급 게이트라도 나타났어요?”
안 그래도 바쁜 인간이 또 어딜 간다는 것일까.
한율이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문수원을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대답했다.
“6서클 경지에 오르면서 장거리 이동 마법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거든. 마법진 설치도 완벽하게 가능하고.”
“……다른 나라에 장거리 이동 마법진을 설치하시려고요?”
“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위급한 상황에서 장거리 이동 마법은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몬스터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나라가 있다면 장거리 이동 마법진을 타고 순식간에 이동해 그 나라를 도와줄 수가 있었다.
“거리에 따라 소모되는 마나량이 매우 크다 보니 소모하는 마석이 너무 많지만.”
“돈보다는 목숨이죠.”
“그렇지. 돈 아낀다고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그런데 그런 작업은 좀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주요 국가만 방문해 장거리 이동 마법진,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다. 한율은 몬스터의 공격에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일정 거리를 두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할 게 분명했다.
“아, 그건 걱정 마.”
“……마법?”
“마나 컴퍼스라는 마법이 있어. 텔레포트 마법을 위한 보조 마법인데. 텔레포트 마법진에 필요한 좌표를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이야.”
“진짜 만능이네.”
별게 다 있다.
각국에 마나 컴퍼스 마법 주문서를 전달한다.
마나 컴퍼스 마법 주문서를 전달받은 국가는 사람을 파견해 좌표를 확인한다.
좌표를 알아낸 한율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해 목적지로 단번에 이동해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고 바로 복귀한다.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나라를 방문해 설치하는 것보다는 수십, 수백 배는 빠른 방법이다.
문수원이 한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일회용 그릇을 들고 휴게실 부엌을 찾은 두 사람이 싱크대 위에 그릇을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봤다.
“누구 차례냐?”
“형 차례요.”
“……쩝.”
귀찮지만 해야 한다.
“그럼 수고하세요.”
“오냐. 열심히 수련하고.”
“형도 열심히 설거지하시고요.”
한율이 눈을 가늘게 뜬 상태로 바라보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문수원이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이고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에휴.”
일회용 그릇이다. 하지만 그냥 버릴 수는 없다.
한율이 싱크대 위에 쌓인 일회용 그릇을 깨끗하게 씻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둔 봉투에 일회용 그릇을 넣고 휴게실을 나왔다.
“그럼 이제…….”
일해야지.
어깨를 축 늘어트린 한율이 마법 주문서를 제작하는 책상 앞으로 이동했다.
마나 컴퍼스는 단 한 번도 제작한 적이 없었다.
연습 또한 한 적이 없었다.
6서클에 오르는 것은 먼 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 고생하겠네.”
6서클 마법, 텔레포트의 보조 마법답게 마나 컴퍼스는 3서클 마법이다. 텔레포트 마법의 좌표를 확인하는 마법답게 3서클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텔레포트 수식도 조금 들어가 있었지.”
까다로운 텔레포트 수식.
한숨을 푹 내쉰 한율이 마법 양피지가 아닌 일반 A4용지를 꺼내 책상 위에 펼친 다음 펜을 들었다.
방법은 연습밖에 없다.
1시간, 2시간.
한율은 계속해서 마나 컴퍼스 마법진을 A4용지에 그렸다.
실수가 많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사나흘 정도 걸리겠네.”
시간을 조금 더 추가하면 3일이면 완벽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연습 시간을 추가하지 않으면 4일에서 5일은 걸릴 테고.
“뭐, 사기 치느라 바쁠 테지만…….”
시간은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룰 수는 없다. 한율이 다시 A4용지를 꺼내 펼치고 펜을 들었다.
사흘, 아니 이틀 안에 완벽하게 그려 생산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6시가 되자 한율이 펜을 놓고 기지개를 폈다.
2시에 시작해서 6시에 끝냈다. 그것도 한자리에 앉아 집중력을 크게 높인 상태에서 연습만 했다.
우두둑. 우두둑.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이리저리 비튼 한율이 잠시 시계를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은 배달을 시켰으니 저녁은 식당이다.
한율은 휴게실을 나왔고, 휴게실 입구에 서 있던 협회, 그리고 청일 그룹의 헌터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또 일이 추가된 것 같습니다.”
연구실 입구를 지키던 청일 그룹의 헌터, 김태산이 물었다.
“네. 6서클에 오르면서 텔레포트 마법이라는 걸 배웠거든요.”
“텔레포트라면…….”
“장거리 이동 마법.”
“오.”
“물론 거리에 따라 필요로 하는 마나량이 너무나 커서 위급할 때만 사용해야 하지만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눈 깜빡하는 사이에 다른 나라에 도착하는데. 분명 헌터보다 사업가들이 더 많이 이용할 겁니다.”
사업가?
“……응? 이동 마법을 사업에 쓰자는 건가요?”
“네.”
“누가요?”
“당연히 한율…….”
마법사를 가르친다.
개인 수련도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게이트 소멸 의뢰도 해야 한다.
아티팩트 및 주문서도 생산해야 한다.
“관리의 큰 문제가 없으면 청일 그룹에 부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흐음, 사업이라.”
충분한 마석만 있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마법진 역시 소모품에 가까워 반복된 사용은 훼손, 즉 마법진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인데요.”
띵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식당으로 향하던 한율이 국가, 그리고 기업 소속인 헌터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물었다.
“장거리 이동 마법진을 설치했고, 그 장거리 이동 마법진은 국가 위기 시에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몰래 사용할 겁니다.”
“몰래 사용하겠죠.”
국가와 기업 소속 헌터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장거리 이동 마법입니다.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한 사업가 또는 정치인들은 한율 님의 요청에도 몰래 사용할 겁니다.”
“관리하기 귀찮은데.”
5서클 마법사만 되어도 설치는 불가능해도 관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마탑 소속 마법사 중 한율과 이유리를 제외하고 가장 경지가 높은 마법사는 사카이자와 류노스케라는 3서클 마스터 경지에 오른 마법사였다.
“크하하하하!”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웃음소리.
한율과 두 헌터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야외 수련장이 보였다.
한 손에는 붕대를, 한쪽 눈에는 안대를 착용한 청년.
크고 높은 탑이 그려진 검은 망토를 두른 채 붕대를 감은 손을 앞으로 뻗고 있는 청년.
“파이어 드래곤!”
화르륵!
1서클 마법, 파이어다. 하지만 3서클 마스터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전력을 다하니 거대한 불꽃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흐아아아압! 다크! 파이어! 드래곤!”
검은 화염이 아닌 붉은 화염이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서양의 용이 아닌 동방의 용.
“진짜 상상력은 최고야.”
상상력이 뛰어나니 붉은 화염은 완벽한 용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말릴까요?”
“누가요?”
국가 소속 헌터에게 한율이 물었다.
“…….”
침묵, 그 끝에 국가 소속 헌터가 말했다.
“오늘의 저녁 추천 메뉴가 궁금하네요.”
***
각국의 마법사 대표들이 마법을 공부하기 위해 찾은 마법사의 탑이다.
식당은 추천 메뉴를 제외하고 전부 뷔페식.
고민하던 한율이 식당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십니다.”
“율이 왔어?”
“네. 율이 왔습니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뭐예요?”
“우리 에렌이의 요청으로 거 라스트치킨?”
“엘렌이 로스트치킨을 요청했구나.”
“아. 맞아. 로스트치킨. 우리 외국 이쁜이가 고생좀 했지.”
한율이 고개를 돌려 열심히 요리 중인 외국 이쁜이를 바라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3성급 호텔에서 주방장을 하던 금발의 여성 요리사.
알렉스에게 고용되어 마탑으로 장기 파견을 나온 요리사.
그녀와 눈이 마주친 한율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네고 다시 자칭 대한민국 최고 순대국밥 요리사를 바라봤다.
“한국의 추천 요리는요?
“응? 순대국밥.”
“...”
역시 자칭 대한민국 최고의 순대국밥 장인 다웠다.
“오늘은 조금 달라.”
“오.”
한율이 탄성을 흘렸다. 김태산과 국가 소속 헌터도 조금 기대감을 가지고 순대국밥 장인을 바라봤다.
“뭐가 다른데요?”
“오늘은 전주식 순대국밥이야.”
“…….”
한율, 국가 소속 헌터, 김태산이 전주식 순대국밥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후르릅.
“맛있네요.”
“맛은 있습니다. 메뉴가 같아서 그렇지.”
“조금씩 다르잖아요.”
“조금씩 다르지요. 조금씩.”
지역에 따라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지 다르다. 문제는 김태산의 말처럼 앞에 붙는 지역만 다를 뿐 전부 순대국밥이 추천 메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진짜 맛있긴 맛있어요.”
“예. 도련님의 말씀처럼 자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시기는 합니다.”
세 사람이 열심히 숟가락을 놀렸다.
젓가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숟가락을 사용해 깍두기를 비롯한 반찬을 먹었다.
“스승님.”
열심히 순대국밥을 해치우고 있을 때였다. 그릇을 살짝 기울인 채 숟가락을 놀리던 한율이 옆에서 들려오는 제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