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양 리리(2)
기동성을 중시한 전투를 하는 헌터가 이능력을 사용해 적을 기습하는 것도, 빠르게 뛰어나가 적을 기습하는 것도 아닌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적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샤샥!
땅굴을 파고 있던 몬스터, 시각은 떨어지지만 청각과 후각이 발달한 아이언 몰이 굴착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렸다.
아이언 몰은 양 리리를 빤히 바라봤고, 이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이라 확신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쉬이익!
빠른 속도로 달려와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는 아이언 몰.
양 리리는 그런 아이언 몰을 주시하다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상체를 비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적의 공격을 피하고…….
“흐으음.”
상대를 관찰한다.
‘에?’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아이언 몰이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크게 팔을 휘두르는 대신 빠르게 팔을 뻗는 아이언 몰.
양 리리는 상체를 숙인 채 옆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해 공격을 피했다. 살기를 일으킨 아이언 몰이 공격을 이어 갔지만 그녀는 상대를 관찰하며 공격을 회피했다.
반격은 하지 않았다.
가만히 상대를 지켜봤고, 무력 차이를 실감한 것인지 아이언 몰이 크게 도약해 거리를 벌리자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해 적에게 접근했다.
“키에엑!”
아이언 몰이 눈앞에 나타난 양 리리를 향해 다시 양팔을 휘둘렀다.
양 리리?
그녀는 땅을 가볍게 박차 뒤로 물러나 공격을 회피했고, 바닥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찾았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양 리리가 다시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을 사용해 도착한 장소는 아이언 몰의 등 뒤.
양 리리가 크게 단검을 휘두르는 대신 역수로 쥐고 있던 단검을 찔렀다.
“끝났습니다.”
털썩.
자연스럽게 단검을 회수한 양 리리의 보고와 동시에 아이언 몰이 앞으로 쓰러졌다.
“……?”
빠르게 움직여 적을 기습하는 전투 방식이 아니다. 빠른 움직임으로 적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약점을 노리는 전투 방식이다.
공간 이동이라는 각성 능력이 있음에도 관찰하고 약점을 노린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계속 갈까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작은 미소와 함께 양해를 구한 양 리리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어, 음. 뭐 하시는 건지?”
“몬스터 사체를 챙기고 있습니다.”
“……아, 아아아, 그렇죠.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
가볍게 고개를 흔든 양 리리는 아이언 몰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몬스터를 찾아 이동했다.
저벅저벅.
‘아,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이기 때문에 관찰을 한 거구나.’
게이트를 방문하기 전, 상대하는 몬스터를 알게 된 양 리리는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이기 때문에 몬스터의 정보를 요구했었다.
“음?”
주변을 경계하듯 천천히 이동하던 양 리리가 멈춰 섰다.
“적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한율 헌터님.”
“네.”
“혹시 시간제한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시간은 충분하십니까?”
“시간이요?”
“네. 혹시 시험이 끝나고 따로 할 일이라도 있으신지.”
“없습니다만.”
“그럼 저에게 따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
음?
고개를 갸웃하던 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인 양 리리가 양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허리에 찬 후에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갑작스레 걸음을 멈춘 양 리리가 시간을 확인하고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꺼낸 것.
“곡괭이군요.”
“네. 곡괭이입니다.”
“……왜죠?”
“철을 캐려고 합니다.”
갑자기?
한율이 눈을 깜빡이며 양 리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율은 아이언 몰의 특징을 떠올리고 탄성을 흘렸다.
“아, 적을 유인하기 위해서군요. 아이언 몰은 강철을 주식으로 삼는 몬스터니까요.”
역시 A급 헌터다.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로 유인해 싸운다.
한율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양 리리가 천천히 고개를 젓고 이유를 설명했다.
“게이트 내부에서 채굴할 수 있는 철 중에는 마나를 품은 철이 있습니다.”
“……장비 강화가 이유였습니까?”
“아닙니다.”
“……?”
“비쌉니다.”
“예?”
“비쌉니다. 마나를 품은 철은 비쌉니다.”
“…….”
“몬스터 사체보다 비쌉니다.”
“그, 그렇군요.”
“예. 몬스터 사체보다 비쌉니다. 몬스터 사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체와 가공 작업이 필요한데 그건 헌터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계산을 하면 사체보다 철, 영초, 나무 등이 더 비쌉니다.”
“그래도 B등급 몬스터의 사체가 더 비싸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율 님.”
하지만?
양 리리가 천천히 곡괭이를 들어 회색빛 벽을 가리켰다.
“한율 님 앞에 보석이 떨어져 있습니다. 줍습니까, 안 줍습니까?”
“……줍죠.”
“그겁니다.”
한율이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빡이며 바라볼 때, 양 리리가 회색빛 벽 앞으로 걸어갔다.
양손으로 곡괭이를 잡고.
쉬이익! 카앙!
동굴이어서 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양 리리는 계속해서 곡괭이를 휘둘러 강철을 캤고.
“적입니다.”
마나를 개방해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지 아이언 몰을 발견하자 바로 곡괭이를 내려놓고 허리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을 꺼냈다.
“두 마리군요. 문제없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이미 약점을 파악했으니까요.”
“……네.”
“아.”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적을 기다리던 양 리리가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그냥 기다리는 것은 심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채굴을 해 보시겠습니까? 채굴한 철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
***
카앙! 카앙!
열심히 곡괭이를 휘둘러 철을 채굴하던 마법사, 한율이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양 리리를 바라봤다.
두 번째 전투에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적을 완전히 파악했는지 다섯 마리가 몰려들었음에도 너무나 쉽게 적을 쓰러트렸다.
푸욱!
일격.
그것도 정확하게 약점만 노린다.
한율은 마치 감정을 하는 것처럼 유심히 아이언 몰 사체를 살피던 양 리리가 밝은 미소와 함께 사체를 회수하고 다가오자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말입니다.”
“예.”
아공간 주머니에서 새로운 곡괭이를 꺼낸 양 리리.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한율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몬스터의 사체를 최대한 깨끗한 상태로 회수하기 위해서 일격으로 쓰러트리는 것입니까?”
적의 공격을 튕겨 내고 약점을 노릴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양 리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의심했다.
몬스터 사체를 깨끗한 상태로 회수하기 위해 적의 공격을 막아 내지 않고 회피하는 것이 아닐까.
튕겨 내고 반격을 가할 기회가 있음에도 회피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아시다시피 몬스터의 사체는 훼손 상태에 따라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흠집 없이 약점을 노려 일격에 쓰러트리는 것이 좋죠.”
“……그렇죠.”
자신도 그랬다.
윙 스네이크를 상대할 때, 조금이라도 가격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법사로서 성장을 하며 새로 터득하는 마법이 너무나 강력해 국가, 기업, 그리고 협회의 지원을 받아 포기했지만 자신도 그랬다.
“초심이라…….”
자신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손에 쥐고 있던 곡괭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양손으로 곡괭이를 잡고 양 리리와 함게 철을 캤다.
채굴을 마치면 이동한다. 아이언 몰을 만나면 싸우고 철을 발견하면 다시 곡괭이를 든다. 채굴 도중에 아이언 몰이 달려들면 아이언 몰과 싸우고 다시 채굴한다.
이동과 전투, 그리고 채굴을 반복하며 두 사람이 게이트 깊숙한 곳까지 이동했다.
“가디언이군요.”
지금까지 상대한 아이언 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아이언 몰을 발견한 양 리리가 이동하면서 보고했다.
“네. 탐지 마법을 사용해 주변을 확인하니 막다른 길이었고, 생체 반응과 함께 마나 덩어리를 확인했습니다.”
“게이트를 소멸시켜도 되는 것입니까?”
“네. 허락을 맡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양 리리가 곡괭이를 회수하고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B등급 게이트의 가디언은 A등급 몬스터였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K-99를 꺼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동해 게이트의 가디언을 발견했을 때, 두 사람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군요.”
가디언이 엄청나다는 것이 아니었다.
“네. 엄청나네요.”
가디언은 공터에 생성된 게이트의 핵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공터의 벽면이 전부 철, 그것도 마나를 품어 푸른빛을 띄우는 철이었다.
빠르게 주변을 관찰한 양 리리가 옆에 서 있는 한율을 돌아봤다.
“가디언을 토벌하겠습니다.”
“네.”
“핵은 파괴하지 않겠습니다.”
“네.”
가디언을 토벌한다. 하지만 핵은 파괴하지 않는다.
마나를 품은 철을 채굴하기 위해.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율이 양 리리에게 합류 의사를 밝혔다.
“시험이지 않습니까.”
“채굴할 철이 너무 많잖아요.”
“그렇군요. 그럼.”
손목을 가볍게 돌려 오른손에 쥔 단검은 역수로 쥐고, 왼손에 쥔 단검은 정수로 잡은 양 리리가 윗입술을 핥고 말했다.
“빠르게 처리하고 채굴하죠.”
***
출발 준비를 위해 양 리리가 떠나고 홀로 숙소로 돌아온 한율은 바로 마나 호흡법을 돌렸다.
“……조금 웃기기는 한데.”
곡괭이를 휘두르며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떠올릴 때였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살던 자신과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던 한율은 시간이 지나 처음 마법을 배웠을 때에 과거의 자신과 능숙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현재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마나가 자신의 의사를 무시한 채 움직여 서클을 건드렸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단초는 찾았다.”
작은 미소와 함께 중얼거린 한율이 침대 위에 누워 거래창을 열었다.
다양한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거래창.
한율은 거래창을 살폈고,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자 바로 손가락을 올려 그 물건을 꺼냈다.
“마법 이론서.”
마나와 마법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마법 이론서.
레스트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마친 마법 이론서.
한율이 다시 거래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작은 노트를 발견하자 바로 손가락으로 터치해 노트를 꺼냈다.
레스트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마나 호흡법.
그것도 레스트의 주석이 담긴 마나 호흡법.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율은 레스트에게 구매한 마법서를 꺼내 옆에 쌓은 후에 침대에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