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65화 (165/221)

165 양 리리(1)

사흘.

한율은 약속한 사흘 동안 숙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소멸 작전에 참가한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관광을 다닐 때도, 마탑 소속 헌터들도 그 뒤를 따라 관광을 다닐 때도, 그는 숙소에 남아 다른 차원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 집중했다.

창웨이와 대화를 나눈 다음 날, 관광을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바로 숙소로 복귀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TV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에게 너무 가까운 헌터가 되어 버린 탓일까.

일반인들이 다가왔고, 정치인들이 다가왔으며, 기자들이 바로 앞을 가로막은 채 마이크를 내밀었다.

강제적인 숙소 휴식.

첫날에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한율은 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언어 습득에 집중해 사흘 만에 언소월 차원의 언어를 마스터하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번역.’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것이다.

“하아.”

“죄송합니다.”

아직 번역이라는 일거리가 남아 있어 한숨을 내쉬었던 한율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창웨이의 사과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 강제적으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아. 아닙니다. 마법을 공개하면서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홀로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율은 괜찮다는 답변을 하며 미소를 그렸고, 그 미소를 보았음에도 창웨이 부협회장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자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양 리리 헌터님은 어디까지 오셨나요.”

“아, 공항을 나와 준비된 차를 타고 이동 중입니다. 1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대화 주제가 없는 상태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대와 단둘이 앉아 있는 이 상황에서 10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

어색함이 감도는 상황에서 10분이라는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한율은 상대방이 관심을 가질 만한 대화 주제를 고민했고, 두 가지 주제가 떠오르자 다시 창웨이 부협회장을 바라봤다.

‘일단 회의는 제외.’

S급 헌터들을 시작으로 빠르게 퍼져 나간 ‘3개월 후에 진행되는 회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창웨이 부협회장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질문을 던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창웨이의 관심을 적적하게 가져오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대화 주제는 하나.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예?”

“마탑 지부.”

“아, 예! 마탑 지부!”

된통 당한 기억 때문인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창웨이 부협회장이었지만 이어지는 한율의 이야기에 다시 편안히 앉아 경청할 수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지부는 마법사를 육성, 아티팩트 판매, 인챈트 사업 등과 같이 마법과 관련된 업무를 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조금 애매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혹시 그때 그 일 때문에…….”

“아뇨.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잖아요.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씀드린 것은 다른 국가와는 달리 중국은 마법사의 탑에 소속된 마법사가 한 명밖에 없어서입니다.”

“아…….”

2차 모집을 실시했다. 하지만 제 발에 저려서 그런 것인지 각국에서 가입 신청서를 보낼 때, 중국은 가입 신청서를 보내지 않았다.

공개된 마법을 습득해 독자적인 마법사 육성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

“……방법이 있겠습니까?”

다른 국가에 지부가 설치될 때, 중국만은 지부가 설치되지 않는다. 한율은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창웨이 부협회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독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마법사. 그들을 보내 주세요.”

“……예?”

“하양이의 면접에 통과해야겠지만 협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독자적으로 육성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면접에 통과해 마탑에 가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물론 국가도 설득해야겠지만.”

“설득…….”

생각보다 힘든 이야기였던 것일까.

한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긴 창웨이 부협회장을 바라보다가 호텔 로비에 설치된 시계를 확인했다.

4분.

아주 천천히 설명을 한 덕분인지 4분이나 지났다.

남은 시간은 6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생각한 한율은 그냥 보내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현재 협회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공부 중인 마법사들은 2서클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들도 1차 마법사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것입니까?”

“……1차요?”

“1차 모집을 통해 마탑에 가입한 마법사들은 1차 마법사, 2차 모집을 통해 마탑에 가입한 마법사들을 2차 마법사라고 부릅니다.”

“아하. 테스트를 통해 실력을 확인하겠지만 큰 문제가 없으면 2서클 마법사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겁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1차 마법사들 따로, 2차 마법사들 따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경지에 따라 학생들을 나눠 수업을 진행하죠.”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창웨이 부협회장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웨이 부협회장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가입 후 마법사들에게 국가, 또는 협회가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국가, 또는 협회의 명령으로 무언가 일을 꾸밀 경우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일단 방출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중급 마나 호흡법을 공개하고 공격 마법을 공개하지만…….”

하지만?

“괘씸죄라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확신하시는군요.”

“마탑과의 관계가 틀어짐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는 유출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니까요. 그것도 매우 크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창웨이 부협회장이 질문을 던지려 할 때, 한율이 먼저 입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착했네요.”

“아…….”

물어볼 게 많아 안타까움을 담아 소리를 냈던 창웨이 부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율을 확인하고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성.

“……그래. 정상적인 사람도 있어야지.”

김세혁도 정상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꾸 이글아이, 이글아이 외쳐 대서 ‘반’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예?”

“아닙니다. 양 리리 헌터님.”

“네. 한율 헌터님.”

“마탑, 아니.”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공적인 자리.

“마법사의 탑에 가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유는 가족의 안전.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양 리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평범하다.’

그래서 더 좋다.

뭔가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느낌?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그렸던 한율은 양 리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려는 순간, 바로 흐뭇한 미소를 작은 미소로 바꾸고 말했다.

“면접을 보기 전에 양 리리 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혹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기본적으로 길드에 가입하고자 하는 헌터들은 면접관과 함께 게이트를 방문해 실력을 선보이고 그 후에 면접을 본다.

기존의 마탑 소속 헌터들은 이미 한율과 함께 파티를 맺고 게이트 활동을 한 전적이 있고, 한율과 함께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한 적이 있어서 실력을 선보이는 1차 시험은 물론 2차 시험인 면접을 패스했지만 기본적으로 길드에 가입하고자 하는 헌터는 실력을 선보이고 면접을 봤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네. 상관없습니다. 아, 하지만 어느 게이트에서 시험을 치르는지 미리 알고 싶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동하면서 시험을 치를 게이트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양 리리와 함께 호텔 로비를 걸으면서 시험을 진행할 게이트에 대해 설명했다.

“B등급 게이트입니다. 환경은 동굴입니다만 먼저 방문해 확인해 보니 통로는 물론 공터까지 매우 넓습니다.”

“서식 몬스터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아이언 몰입니다.”

“으음. 상대한 적이 없는 몬스터군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고민하던 양 리리가 한율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이언 몰(Iron Mole).

해석하면 강철 두더지.

양 리리가 스마트폰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 특징 설명란을 확인했다.

“철을 주식으로 삼으며, 종족의 특성인지 피부를 강철로 만들 수 있다. 섭취한 철의 양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며 땅굴을 파 함정에 빠트리거나 침입자를 기습하는 특징이 있다. 조금 까다롭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기에 마나를 담을 수 있으시죠?”

“네.”

“호흡법도 배웠고요?”

“배웠습니다.”

“그럼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A등급 헌터인 것도 있지만 김세혁 이후, 두 번째로 정상적인 헌터가 마법사의 탑에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게이트를 통과한 직후, 양 리리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도 아랑곳 않고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 어깨까지 내려오는 자신의 머리를 하나로 묶고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마법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한 양 리리가 걸음을 옮겼고, 한율이 그런 그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회차 대초원 게이트 소멸 작전이 성공한 이후, 수많은 헌터가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했다.

큰 피해 없이 게이트 작전을 소멸시켰다. 그래서 헌터들은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고 판단해 성장의 기회, 그리고 대량의 사체와 마석을 확보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참가했다.

거절?

중국과 협회는 거부하지 않았다. 큰 피해 없이 게이트를 소멸시킨 것이다.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차 게이트 소멸 작전 때 눈치를 보았던 헌터들의 참가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없네.’

대초원 게이트와 가까운 도시에서 활동하는 헌터 대다수가 이번 대초원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했다. 당연히 게이트 한 곳에 헌터들이 집중되었으니 다른 게이트는 텅텅 빌 수밖에 없다.

게이트 소멸 작전이 끝난 지 열흘이 흘렀다?

22만이나 되는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게이트에서 활동한 것이다. 대다수의 헌터들이 보름에서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하며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기로 했다.

“아이언 몰을 발견했습니다. 한 마리입니다.”

양 리리의 보고를 듣고 정신을 차린 한율이 걸음을 멈추고 마법을 준비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양 리리가…….

저벅.

“……?”

걸음을 옮겼다.

“음?”

단거리 이동이라는 공간 이동 능력을 각성했다.

무기 또한 단검이다.

착용하고 있는 갑옷은 기동성을 중시한 천으로 제작되었고, 그 위에 가죽 갑옷을 착용했지만 착용 부위 또한 급소를 보호하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음?”

한율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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