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61화 (161/221)

161 무공(1)

대초원 게이트는 B등급 게이트다. 하지만 중국은 지원을 요청했고, 중국의 지원 요청을 받은 국가는 S급 헌터를 파견했다.

22만.

22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공포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율의 제안으로 일반인이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했음에도 각국에서 파견된 S급 헌터들이 복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헌터의 사망률을 감소,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사체와 마석.

이 두 가지가 일반인들이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전함으로 위험도가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S급 헌터들이 대초원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한 이유였다.

“감정.”

이름: 대초원 게이트(3/5).

등급: B+.

서식 몬스터: 오크, 고블린, 코볼트 외 32종.

폭주까지 남은 시간: 2053:11:30.

포 핸드 오우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등급으로 따지면 A등급으로 분류되지만 이번 대초원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한 S급 헌터만 해도 다섯 명이 넘기 때문이다.

오히려 S급 헌터들은 가디언을 상대할 때보다, 일반 몬스터를 상대할 때 더 많은 위기를 겪었다.

수백, 수천이 아닌 수십 마리를 상대하는 일이었으니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위험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A등급 몬스터 다섯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게 낫다고 했지.’

페이신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그리고 헌터들을 지원하고 있을 때였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 들어왔던 알렉스의 혼잣말을 떠올린 한율이 다시 게이트 정보를 살폈다.

시간은 많다.

소멸도 이제 두 번만 더 진행하면 된다.

“흐음.”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한율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신음을 흘렸다.

대초원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한 헌터들 때문이었다.

“전력을 키울 필요가 있는데.”

헌터는 몬스터를 토벌해 성장한다.

마나량이 증가하고,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각성 능력이 강화되고.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직업, 헌터이기 때문에 체력 훈련도 하는 것인지 체력도 괜찮았고, 정신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한율은 전 헌터의 전력을 키울 필요성을 느꼈다.

게이트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드물게’ 생성되던 A등급 게이트도 ‘드물게’ 생성되고 있다,

먼 미래, 아니 멀지 않은 미래에 S등급 게이트도 생성될 것이다.

A등급 게이트?

S급 헌터들이 전력을 다하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S급 게이트는 달랐다. 현 헌터의 무력을 생각하면 S급 게이트가 생성되고 게이트를 소멸시키기 위해 S급 헌터 전원이 작전에 참가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그냥 실패하는 것도 아닌 ‘전멸’이라는 작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컸다.

“흐음.”

자신의 능력만 고집하던 원거리 각성 능력자들은 이능과 관련된 마법을 배우고 수련하면 이능이 강화된다는 것을 깨닫고 마법을 배우고 있다. 그러니 원거리 각성 능력자들의 강화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개하는 마법의 숫자를 늘리고, 기초 마나 호흡법으로 뼈대를 만든 이들에게 한 단계 높은 마나 호흡법을 공개하면 되니까.

“문제는 근거리 각성 능력자들.”

근거리 각성 능력자들 중에는 정령과 계약해 정령의 힘을 빌려 쓰는 이가 있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기초 마법을 배운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문.

마법은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적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주문을 외우기 위해 집중한다?

미친 짓이다.

“즉, 근거리 각성 능력자들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건데.”

3회차 게이트 소멸 작전을 마치고 복귀한 호텔.

의자에 앉아 고민에 잠겨 있던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고민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한 후에 침대에 누울 때까지 계속됐다.

“정령술은 불가.”

모든 사람들이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마석을 복용해 속성력을 쌓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 자연의 마석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럼 역시…….”

한율이 대화창을 열었다.

“언소월 님. 계세요?”

[언소월: 네. 한율 님. 필요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네.”

[언소월: 무엇입니까?]

“무공서요. 아, 그리고 언소월 님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책도요.”

* * *

차원 거래를 통해 한율과 연결된 언소월의 하루는 크게 달라졌다.

새벽에 체력 훈련을 하고, 오전과 오후에는 총관으로서의 업무를 하고, 저녁에 술법(마법) 수련을 한다.

다른 차원의 영약, 영초, 그리고 호흡법을 통해 ‘언가의 저주’라고 불리는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신체를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신체로 바꿨지만 언가의 권법을 배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술법(마법)을 배워 술법사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아쉬움?

없었다.

언소월, 그의 열망은 ‘무공’이 아닌 ‘힘’.

‘가문을 지킬 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율: 언소월 님의 차원의 언어를 배우려고요.]

마법 수련 도중에 날아온 한율의 편지.

물끄러미 메시지창을 바라보던 언소월이 손바닥 위에 둥둥 떠 있는 화염구를 없애고 물었다.

“언어를 말입니까?”

[한율: 네. 원거리 이능을 각성한 이들은 마법의 도움을 받아 이능을 강화하고, 자신의 힘을 키울 수 있지만 근거리 이능을 각성한 이들에게 마법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요.]

무공을 이용해 근거리 이능을 각성한 사람들의 전력을 키운다.

“언어책은 번역을 위해 필요한 것이군요.”

[한율: 네.]

“허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언어책만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한율: 당연히 방법을 세워뒀습니다.]

다시 나타난 메시지창.

파앗.

이어 메시지창 바로 옆에 나타난 거래창.

텅 비어 있는 자신의 거래창이 아닌 다양한 물건이 올라온 한율의 거래창을 바라보던 언소월은 거래창에 올라온 물건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딱 하나만 남자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확인했다.

이름: 녹음기(80).

설명: 소리를 녹음(錄音)하고 재생(再生)하는 기계.

녹음과 재생.

[한율: 기계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가치가 높네요. 대충 맞춰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언소월이 바로 주변을 둘러봤고, 이내 가치가 맞는 삼류 무공서를 발견하고 녹음기와 거래했다.

허공에 나타나 아래로 떨어지는 직사각형 장치.

빠르게 손을 뻗어 떨어지는 녹음기라는 장치를 낚아챈 언소월이 다시 한율의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게 무엇입니까?”

[한율: 설명을 통해 확인하셨다시피 녹음기라는 기계입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소리를 녹음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삼각형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버튼을 누르면 녹음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고요.]

“……신기한 물건이군요. 한율 님의 차원에는 이런 물건이 많습니까?”

[한율: 네. 많죠. 어쨌든 그게 있으면 저도 언소월 님의 차원의 언어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로 옆에서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녹음기라는 물건이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언어책을 구입하고 그 언어책을 읽어 녹음기에 기록하고.’

한율의 의뢰만 진행할 수는 없다. 총관 일도 있고, 수련도 해야 하니 말이다.

“사흘. 사흘 안에 언어책과 함께 녹음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율: 감사합니다.]

***

부우웅.

콰앙!

거인형 몬스터, 포 핸드 오우거가 쓰러졌다.

“후우. 끝났군.”

포 핸드 오우거의 숨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알렉스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지포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지폈다.

“스으읍.”

5일에 한 번씩 소멸 작전을 진행했다.

일반인이 게이트 소멸 작전에 참가하며 아주 유리한 전쟁을 펼친 것은 맞다. 하지만 게이트 소멸 작전에 사용하는 무기의 보충, 그리고 작전에 참가하는 헌터들의 정신적인 피로를 풀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5일에 한 번씩 진행했다.

“후우. 더럽게 힘들었네.”

게이트를 소멸시킬 때마다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마지막 게이트 소멸 작전에서 상대한 몬스터는 15만 마리.

담배 연기를 크게 뱉으며 중얼거린 알렉스는 주변을 둘러봤고, 앉을 장소가 보이지 않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인도의 아흐만, 중국의 S급과 A급 헌터, 한국의 채현수와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끝났네요.”

멍하니 포 핸드 오우거를 바라보던 채현수의 말에 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끝났습니다.”

“흐아. 진짜 끝났네. 처음에는 이거 진짜 소멸시킬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채현수의 말에 휴식을 취하던 다른 헌터들이 동의하듯이 작은 미소를 그렸다.

22만 마리를 전부 토벌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방이 훤히 뚫려 있는 대초원에서 몬스터의 눈을 피해 가디언을 쓰러트리고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채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S급 장비 제작자가 제작한 소총을 옆에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헌터이자 게이트 소멸 작전에 군부대를 참가시킨 마법사.

“한율 님.”

“네. 채현수 님.”

“바로 복귀하실 건가요?”

“아뇨. 일단 배정받은 마석과 사체를 챙겨야죠.”

“아, 그럼 마석과 사체를 받고 복귀?”

“그다음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었는데?”

“아주 늦게 사체와 마석을 받을 거 같아서 그냥 사체와 마석을 받고 복귀해야죠.”

중국은 아주 늦게 마석과 사체를 전달할 것이다.

보상을 조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화해하기 위해서 보상 전달을 늦출 것이다.

“지원국에 먼저 보상을 전달하고, 그다음 마탑이 받을 보상을 전달할 거 같네요.”

국가의 이름으로 지원을 온 헌터가 있고, 길드의 이름으로 지원을 온 헌터가 있다.

전자는 채현수와 대한민국 헌터.

후자는 한율과 마법사의 탑.

“그럼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휴식을 취하던 알렉스의 물음에 한율과 채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한율은 같은 S등급 헌터인 채현수가 아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알렉스를 확인하고 물었다.

“대화 말입니까?”

“네. 시간이 많으실 테니까요.”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언소월 차원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계약 때문에 주문서도 제작해야 했고, 실전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마법사들도 교육해야 한다.

“나중에 따로 약속을 잡죠.”

“감사합니다. 아, 참고로 귀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깜빡했다는 듯이 탄성을 흘린 알렉스가 채현수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그렸고, 마법사 한율의 가치를 알기에 경계를 하던 채현수는 그런 알렉스의 행동에 오히려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럼 저도 같은 자리에 있어도 상관없습니까. 알렉스 헌터?”

“예.”

“……예?”

“예. 상관없습니다. 상담 비슷한 거니까요.”

상담.

채현수와 한율이 고개를 갸웃할 때, 알렉스가 아무 말 없이 새로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대화를 끝냈다.

“한율 헌터님. 저도 한율 헌터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인도의 아흐만.

천천히 걸어와 말을 건네는 아흐만에게 한율이 물었다.

“귀화 관련입니까?”

“아닙니다. 저도 상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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