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전쟁(1)
1조, 근거리 각성 능력자들은 몬스터와 충돌 후 빠르게 흩어졌다.
첫 번째 충돌을 통해 자신과 적의 무력 차이를 확인한다.
이후,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대로 전투를 이어 가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면 가까이 있는 헌터에게 지원을 요청해 전투를 이어 간다.
쓰러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후퇴하며 근거리 각성 능력자들에게 적의외형을 설명하고 다른 적을 찾아 움직인다.
피해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 적을 쓰러트린다는 생각을 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전쟁을 너무나 얕잡아 보았다는 것.
“시발. 시발!”
한쪽 팔이 날아간 헌터가 마나가 섞인 살기를 일으킨 상태로 적을 노려봤다.
타악!
인간의 피 냄새, 인간의 비명 소리.
몬스터의 피 냄새, 몬스터의 비명 소리.
외형의 큰 차이가 있어 적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딜 가도 적을 마주치는 환경.
등급이 높은 헌터가 아닌 이상, 전장 한복판에서 정신을 차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타악!
한쪽 팔이 날아간 헌터가 다시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가슴에는 커다란 상처가 났고, 헌터와 마찬가지로 한쪽 팔이 날아가 피를 콸콸 쏟고 있었으니 오래 가지 않아 출혈로 사망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헌터는 몬스터에게 달려들어 그의 심장에 칼을 쑤셔 넣었다.
“죽어! 죽어! 죽어!”
푸욱! 푸욱! 푸욱!
살의가 가득 담긴 외침에 따라 몬스터의 가슴에 칼을 찌르고 또 찔렀던 외팔이 헌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몬스터의 푸른 피를 뒤집어쓴 외팔이 헌터였지만 그는 피를 닦아 내지 않았다. 그는 칼을 질질 끌며 다음 상대를 찾아 다시 움직였다.
***
처음에는 예상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전투가 길어지자 등급이 낮은 헌터부터 이성을 잃은 채 싸우기 시작했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전쟁이니까.’
전쟁이다. 인간 대 몬스터 간의 전쟁이다. 전투라는 소규모 싸움, 그것도 짧은 시간에 끝나는 싸움에 익숙한 헌터들은 전쟁을 처음 겪어 보는 것이니 이상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저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이기 때문에 놓쳐 버린 실수.
“상태 이상, 또는 정신 회복 능력자들이 있나.”
매직아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장을 살펴보던 페이신 사령관이 이어폰을 한 번 건드려 수신 버튼을 비활성화시키고 보좌관들에게 물었다.
“전부 투입된 상태입니다.”
“아…….”
2시간이 흘렀을 때, 페이신 사령관은 이성을 잃은 헌터들을 발견하고 바로 독, 환각 등을 치유할 수 있는 각성자를 보냈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 상태 이상 능력자, 또는 정신력을 회복시키는 힘을 가진 능력자를 모집하도록. 시간이 지나면 상위 등급 헌터들 또한 이성을 잃을 가능성이 있으니 가능한 한 빠르게.”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장교 중에 한 명이 자신의 보좌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막사를 떠나 게이트 입구로 달려갔다.
상태 이상 회복 능력자, 또는 정신력 회복 능력자들을 빠르게 모집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헌터들이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물론 S급 헌터, 그리고 A급 헌터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헌터들의 이성을 되돌리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장 놓쳐서는 안 될 실수였군.’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 이렇게 큰 실수가 될 줄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페이신 사령관이 다시 매직아이의 화면을 살폈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후방으로 물러서는 대신 적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헌터들이 있었다.
다가오는 이를 적으로 구분해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기를 휘두르는 헌터들이 있었다.
“……마법.”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해결법을 고심하던 페이신 사령관이 이어폰을 가볍게 두들겨 수신을 활성화시키고 무전기 주파수를 바꿨다.
“한율 님.”
-……예. 무슨 일이시죠?
“마법 중에 인간의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마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정신력 강화 마법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성을 잃은 헌터들이 생겼습니다. 상태 이상, 또는 정신력을 강화시켜 주는 각성 능력자를 모집하고 있지만 그들이 도착하는 것보다 이성을 잃은 헌터들이 전투 도중에 사망하는 것이 더 빠를 것으로 보입니다.”
-…….
“방법이 없겠습니까?”
***
한참 고블린을 토벌하던 도중에 들려오는 페이신 사령관의 이야기.
마법 구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새로운 무기인 K-99를 꺼내 마법을 사용하고 방아쇠를 당겨 고블린들을 토벌하던 한율이 전투를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이성을 잃은 헌터들이 이성을 되찾을 방법.’
정신력 강화 마법은 없다.
마법사의 보조 마법, 즉 지원 마법은 육체를 강화시키는 마법이 전부다.
‘이성을 잃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신력이 낮아졌다는 것.’
치료는 어렵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빠르게 탄창을 교체하고 다시 군인들의 옆에 선 한율이 방아쇠를 당기며 입을 열었다.
“슬립이라는 게 있습니다.”
-……수면 마법입니까?
“네. 헌터들의 이성을 되돌릴 방법은 저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헌터들을 제압할 방법은 있죠.”
-그렇군요. 치료가 어렵다면 제압을 한다. 지원이 가능하겠습니까?
“…….”
한율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흙벽 아래를 확인했다.
고블린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율은 새로운 흙벽을 생성해 놈들의 진격을 차단했다.
키에엑!
키엑! 키엑! 키에엑!
동족의 시체를 쌓아 언덕을 만드는 고블린들.
언덕을 이용해 흙벽을 넘어서려는 고블린들과 그런 놈들을 막기 위해 아래로 총구를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군인들과 헌터들.
시체로 쌓은 언덕을 계속해서 없애고 있는 자신이 최전방으로 향하면 고블린들은 흙벽을 넘어 아군의 허리를 끊어 내 최전방에 자리한 헌터들을 고립시킬 것이고, 후방에 자리를 잡은 원거리 능력자, 그리고 포격 부대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이다.
“어렵습니다. 대신 사람을 보내 주십시오. 슬립 마법 주문서가 있습니다.”
-몇 장입니까?
“300장.”
-……전부입니까?
“아, 이번 작전에 참가한 마탑 소속 마법사들도 다섯 장씩 가지고 있습니다.”
-수면 마법을 말입니까?
“작전 후에 불면증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해했습니다. 그럼 한 장을 제외하고 전부 구매하겠습니다. 값은 작전이 종료된 후에 치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뚝 끊긴 대화.
한율은 탄창을 교체, 다시 방아쇠를 당기며 입을 열었다.
“전부 들으셨죠.”
페이신 사령관은 마탑이 사용하는 주파수를 사용해 조언을 구했다. 한율은 들었다는 마법사들의 대답에 한 장을 제외한 모든 수면 마법을 넘기라는 말을 전달한 후에 주문을 외웠다.
순간적으로 페이신 사령관과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살피지 못했고, 그로 인해 두 개의 시체 언덕이 생겨난 상태였다.
“익스플로젼. 메모라이즈 익스플로젼.”
우우웅.
콰아앙! 콰아앙!
시체 언덕 안쪽에서 생겨난 빛의 구체가 폭발, 시체로 이루어진 언덕을 날려 버렸다. 살점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고블린의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진짜. 제정신을 차리는 게 이상한 광경이긴 해.”
피의 비를 피해 고개를 살짝 숙인 상태로 중얼거린 한율이 다시 방아쇠를 당기며 주변을 살폈다.
고블린 라이더의 명령에 따라 고블린들이 시체 언덕을 만들고 있었고, 고블린 워리어들이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흙벽을 파괴하고 있었다.
5서클 마법사가 생성하고, 강화시킨 어스 월이기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놈들의 공격이 쌓이고 쌓이면 파괴될 수밖에 없다.
한율이 흙벽에 마나를 부여해 마법을 강화시키고 다시 전장을 살폈다.
고블린 궁수들도 있었지만 흙벽이 너무 높아 놈들의 공격은 닿지 않는다.
‘분명 지휘관이 있다.’
한율이 고블린 궁수 주변, 즉 적의 후방을 빠르게 살폈다.
고블린 궁수들이 보였고, 지팡이를 쥔 고블린 주술사들이 보였다.
‘어디 있……. 찾았다.’
가면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들 사이, 거대한 마나를 품은 고블린이 보였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 주술사와 활을 들고 있는 고블린 궁수 사이에 자리한 대검을 들고 있는 고블린.
신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놓쳤지만 마음을 먹고 찾아보니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대략 B등급.’
안전하게, 그리고 고블린들의 방해 없이 고블린 로드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A등급 헌터가 나서야 한다.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세 팀으로 나눠 흩어져 문수원, 이대한, 그리고 청일 그룹의 김태산이 세 명의 헌터를 대동한 채 흩어진 상태.
“우측에 자리 잡은 마법사 호위 팀 대표가 누구죠?”
-네, 형. 말씀하세요.
문수원.
신체 능력(스피드) 강화 각성자.
등급은 아티팩트와 A급 장비 제작자의 장비, 그리고 계속해서 지급된 영약과 중급 마나 호흡법을 배워 A등급에 가까운 B등급 헌터.
“이쪽으로 넘어와. 고블린 로드를 토벌해야 하니까.”
-네.
쉬이익!
등 뒤에서 불어온 바람.
타악.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발소리.
한율은 고개를 돌렸고, 쫄쫄이 갑옷을 착용한 문수원이 보이자 다시 흙벽 아래로 총구를 겨눈 후에 방아쇠를 당겼다.
“사령부의 사람이 도착한 후에 바로 움직일 거야. 준비하고 있어.”
“로드의 등급은요?”
“B등급.”
“그럼 저 혼자 다녀…….”
A등급에 가까운 B등급 헌터다.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던 문수원이었지만 고블린 로드를 찾아 적의 후방을 살핀 직후, 바로 협공을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고블린 로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블린 로드를 호위하고 있는 고블린 주술사, 고블린 궁수, 그리고 몇몇 고블린 워리어들.
문수원은 바로 뒤로 물러나 마나 호흡법을 돌렸고, 한율은 고블린을 토벌하며 기다렸다.
파앗.
“늦어서 죄송합니다.”
빛의 폭발과 함께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
한율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대를 살폈고, 군복을 착용한 장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바로 방아쇠를 당기던 손을 거래창 앞으로 옮겼다.
한율은 슬립 마법 주문서가 담긴 박스를 꺼냈고, 허공에 나타난 박스를 낚아챈 장교가 인사를 건네고 떠나자 바로 문수원의 상태를 확인했다.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능력을 사용해 슬립 주문서를 챙긴 장교의 마나 때문인지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마나는?”
“70% 정도?”
“충분하네.”
완전 회복을 바란 것은 아니다.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문수원에게 K-99를 던졌다.
“이건 왜요?”
“마법 좀 저장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