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어벤져!(1)
게이트 소멸 작전 실행 일주일 전.
중국 헌터 협회 회의실.
“저는 아공간 주머니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공간 스킬, 아니 마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중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 리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다.
한율은 아공간을 가지고 있다.
허공에 손을 뻗어 물건을 꺼내고 허공에 손을 뻗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사라지게 하니 모를 수가 없었다.
“네. 그런데 이 아공간 마법이 제작되어 판매되는 아공간 주머니와는 다르게 무게 제한이 없습니다.”
무게 제한.
누군가는 부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한율을 바라봤고, 누군가는 아공간과 피해 최소화 작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추리했다.
“물건을 집어넣는 방법도 어렵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공간에 아공간(거래창)을 열고 그 안에 가져다 대면 되니까요.”
아공간(거래창)의 존재.
출납 방법. 정확하게는 물품을 받아들이는 방법.
부럽다는 듯이 한율을 바라보던 헌터들, 그리고 추리하기 위해 고민에 잠겨 있던 헌터들이 고개를 돌려 한율을 바라봤다.
“리훤 협회장님.”
“예. 한율 헌터님.”
“군 부대와 함께 작전을 진행하죠.”
“……아!”
과거도 아니다. 현재에도 진행되는 연구가 있다.
그것은 병기의 게이트 진입.
“아공간을 이용해 대량의 병기를 이동시킨다.”
러시아의 S급 헌터이자 군인인 알렉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율이 그런 알렉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에 회의실에 자리 잡은 헌터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저쪽에서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도 숫자로 밀어붙이죠.”
병기를 조종하는 인간이라면 헌터 못지않은 활약을 펼칠 것이 분명했다.
“마법과 정령술이 아닌 과학 기술.”
게이트 밖이 아닌 게이트 내부에서도 평범한 인간이 활약할 수 있는 방법.
리훤 협회장이 손을 살짝 들어 한율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린 후에 물었다.
“아공간은 마법입니까?”
“네.”
아공간(거래창)은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아공간 마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입니까?”
“3서클이요. 이후 성장을 통해 서클이 생성되면 아공간이 커집니다.”
“무게 제한은?”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무게 제한은 없습니다. 대신 공간의 제한이 있죠.”
“……한율 헌터님.”
“네.”
“한율 헌터님의 아공간 크기는 얼마나 합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수십 대가 아닌 수백 대는 보관할 수 있을 겁니다.”
리훤 협회장이 눈을 번뜩였다. 그는 뒤에 서 있던 측근에게 손짓했고 상대가 허리를 숙이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후에 한율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숙소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
만약 도시에 초대형 게이트가 생성되었다면 게이트 폭주를 걱정해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고, 몬스터의 침공을 대비해 도시 내부에 전차를, 그리고 병사와 헌터들을 배치시켜야 했다. 하지만 초대형 게이트, 대초원 게이트는 다행스럽게도 도시 내부가 아닌 도시 밖에 생성되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작전 사령관, 페이신이라고 합니다.”
임시 1군영.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날, 장교의 안내를 따라 군용 차량을 타고 임시 1군영을 방문한 한율이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중년의 사내의 귀를 힐끔 훔쳐봤다.
시중에 판매할 정도로 생산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한 것이 분명했다.
“대한민국의 헌터, 한율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바로 안내를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페이신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많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게이트의 변화.
폭주까지 남은 시간이 단축되었던 그 게이트의 변화가 또 발생할 것을 대비해 게이트 확인과 동시에 움직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훈련에 몰두하는 사람들.
전차를 정비하는 사람들.
거대한 컨테이너 안에서 회의 중인 사람들.
자연스럽게 임시 군영을 둘러보던 한율이 페이신을 바라봤다.
자신의 위치가 있다. 그래서 간부가 아닌 장교가 안내를 맡을 것이라 예상했다.
문제는 그 장교가 ‘작전 사령관’이라는 높은 직급을 가진 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
왜 작전 사령관이 안내역을 맡은 것일까.
가만히 생각하던 한율이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작전에 투입되십니까?”
“그렇습니다. 헌터분들과 함께 게이트 소멸 작전을 진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물론 헌터들을 지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 페이신 사령관이 속도를 늦춰 딱 한 걸음, 한율과의 거리가 딱 한 걸음이 될수록 있도록 속도를 맞춘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도착한 후에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동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게이트 밖에서 헌터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헌터들과 함께 게이트 내부로 진입, 몬스터를 토벌하고 게이트를 소멸한다.
“전차 백오십. 전투 헬기 삼백. 장갑차량 육백.”
이번 게이트는 일반 게이트와는 다르게 거대한 대초원에 22만 마리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게이트다. 몬스터의 숫자가 많으니 중국 측에서도 대량의 병기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많군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페이신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춘 한율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일단?”
“예. 실험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첫 시도다.
각성을 하지 않은 일반인이 게이트 내부에서 헌터들과 함께 몬스터를 토벌하는.
“다행스럽게도 황무지 지형 게이트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일단 그곳을 방문해 전차, 헬기, 그리고 장갑차량을 입고(入庫)하고 출고(出庫)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파악할 생각입니다.”
입고(入庫).
물건을 창고에 넣는 일.
출고(出庫).
물건을 창고에서 꺼내는 일.
아공간에서 병기를 꺼내는 것도 일이고, 넣는 것도 일이다. 당연히 병사들이 게이트에 진입하는 것도 일이고, 게이트가 소멸하기 전에 탈출하는 것도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확인을 위해 물어보겠습니다. 아공간에 인간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페이신이 함께 이동 중이던 장교에게 말을 전달하고 앞으로 손을 뻗었다.
한율은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봤고, 페이신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멈춘 것이 아니라 도착을 해서 멈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가장 가까이 있는 전차 앞으로 이동해 손을 뻗었다.
미리 거래창을 열어 둬 문제는 없다.
거래창에 전차를 가까이 가져다 대는 것은 마법의 힘으로 쉽게 가능한 일.
“넣으면 되겠습니까?”
“스물다섯 대. 빠르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마나를 개방했다.
“사이코키네시스.”
입고(入庫)를 위해 선택한 마법은 염동 마법, 사이코키네시스.
전차의 무게가 무게이다 보니 소모하는 마나량이 생각보다 높았다. 하지만 한율은 5서클, 그것도 돈을 벌 때마다 영약을 섭취한 대량의 마나를 보유한 5서클 마법사였다.
한율이 걸음을 옮겨 바로 앞에 생성한 거래창, 그리고 조금 떨어진 전차의 거리를 생각해 몇 걸음 더 옮긴 후에 전차를 움직였다.
“……호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라지는 전차.
너무 신기한 광경에 페이신은 물론 장교들까지 탄성을 흘리며 바라볼 때, 한율이 두 번째 전차 앞으로 이동했다.
방법은 동일하다.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을 사용해 전차를 아주 조금 움직여 거래창과 접촉시킨다.
전차 앞으로 이동하고 마법을 사용한다.
“끝났습니다.”
전차 열 대를 거래창에 집어넣은 한율이 페이신에게 보고했다.
“이번에는 출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출고는 입고보다 간단하다.
손가락으로 터치.
이동하고 손가락으로 거래창을 터치한다.
저벅저벅저벅.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기며 거래창을 터치해 전차를 출고한 한율이 다시 페이신을 바라봤다.
“한자리에서는 어렵습니까?”
“네. 불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입고 수량 확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문득 생각보다 오랜 시간 군영에 머무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쁠 건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
한율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후에 페이신의 부탁에 따라 다시 전차를 거래창에 집어넣었다.
***
입고 시간, 출고 시간, 병사 진입 및 퇴각 시간 확인.
과거 기록을 통해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탄약을 확인하고 확보하기.
헌터와 군부대의 협동 작전에 따른 지휘 체계 정비.
확인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한율이 하는 일은 많지가 않았다.
병기의 입고, 출고 시간 확인.
탄약을 보충할 때를 대비해 탄약 입고 및 출고.
퍼어엉!
거대한 전차가 고함을 토해 내자 한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다.
콰아앙!
폭발.
빠른 속도로 날아간 포탄이 지면을 강타하면서 일어난 폭발.
한율은 물끄러미 탱크의 맞은편을 응시했고,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사망한 몬스터가 나타나자 바로 페이신을 돌아봤다.
“흐음.”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던 페이신이 고개를 돌려 장교를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간 그가 이번에는 게이트의 핵을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홀로 고민해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듯,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페이신이 한율에게 다가갔다.
“한율 님.”
“네.”
“병기의 화력이 A등급 몬스터에게 통할까요?”
병기가 지원하는 게이트 소멸 작전의 무대는 B등급 게이트, 대초원 게이트다.
“가디언에게 통하느냐고 물으신 거죠?”
“그렇습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겁니다.”
“B등급 몬스터는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겠지만 일격에 사살하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뭐, 사용하는 탄(彈)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고개를 끄덕인 페이신이 다시 게이트의 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