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전원 탑승!(2)
중국 베이징, 헌터 협회.
저벅저벅.
최측근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협회장, 리훤이 정문 앞에 멈춰 섰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국가는?”
“인도입니다.”
인도공화국.
S급 헌터를 셋이나 보유한 나라.
고개를 끄덕인 리훤이 조용히 기다렸다.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각국에서 방문하는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국. 기자. 정치인. 일반 시민.
대형 버스가 멈춰 섰다.
저벅, 저벅.
도복을 입은 사내가 가장 먼저 내렸다.
“후우.”
불과 관련된 초능력을 각성한 S급 헌터.
무장을 하지 않은 도복 사내가 무장을 한 열 명의 헌터들을 대동한 채 걸음을 옮겼다.
‘홍보도 하겠다는 건가.’
눈앞에 있는 이는 분명 S급 헌터였다. 하지만 그 S급 헌터는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이기도 했다.
“중국 협회장 리훤입니다.”
“아흐만입니다.”
리훤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가벼운 대화를 나눴고, 최측근 중 한 명에게 회의실 안내를 부탁해 그와 헤어졌다.
“다음은?”
“러시아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리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인도의 헌터들이 내린 버스가 떠나고 얼마 후, 새로운 대형 버스가 헌터 협회 앞에서 멈춰 섰다.
저벅저벅.
“……빌어먹을.”
군복의 사내가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다른 헌터들도 군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골든 베어에서 오는 거 아니었나?”
“함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3대 길드 중 하나인 골든 베어에 접근했다. 하지만 중국을 방문한 것은 골든 베어 길드의 S급 헌터가 아니었다.
국가 소속 S급 헌터.
저벅저벅.
S급 헌터가 주변을 한 번 쓰윽 둘러보고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골든 베어 길드에 문제가 생겨서 대신 왔습니다.”
“……그렇군요.”
문제는 없을 것이다.
리훤과 악수를 한 S급 헌터가 씨익 미소를 그리고는 황급히 앞으로 나선 리훤의 최측근과 함께 떠났다.
“빌어먹을.”
A등급 게이트가 아닌 B+등급이어서일까.
종교인이 왔고, 국가 소속 헌터가 왔다.
자신도 모르게 이를 바득 간 리훤이 다시 타국의 헌터들을 기다렸다. 다행히 아프리카 연합은 종교인도, 군인도 아니었다.
이어 일본 측 헌터들도 도착했다. S급 헌터를 파견한 것은 아니지만 리훤은 S급 헌터를 파견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대했다. 그렇게 입구에 서서 각국의 헌터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지 30분이 흘렀을 때였다.
“남은 국가는?”
“대한민국입니다.”
“……후우.”
리훤이 작게 호흡을 고르고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러시아, 인도,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S급 헌터를 파견한 국가다. 하지만 리훤은 긴장했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 버스가 도착했다.
저벅. 저벅.
가장 먼저 내린 것은 S급 헌터, 채현수.
뒤를 이어 내린 헌터는 군복을 입은 사내.
‘……음?’
협회를 방문하는 것은 각국의 헌터들이 아닌, 각국의 대표였다. 리훤은 차례로 내리는 세 명의 남녀를 확인하고 군복을 입은 사내와 나란히 서서 걸어오는 채현수를 바라봤다.
“어서 오십시오.”
“아, 예. 수고하십니다.”
리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안부 인사와 감사 인사를 전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군복을 입은 사내를 바라봤다.
“어서 오십시오. 한율 헌터.”
***
다리를 꼬고 있는 러시아 군인.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인도 사제.
두 자루의 시미터를 등에 메고 있는 여성 헌터.
마지막으로…….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지막 S급 헌터를 바라봤다.
“하아암.”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하품을 하는 헌터.
S급 헌터를 하나하나 살핀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중국의 S급 헌터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협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게이트를 지키고 있었다.
달칵, 끼이익.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측근들을 대동한 채 회의실에 도착한 리훤이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의 말을 전하자 통역사들이 바로 각국의 헌터들에게 전달했다.
협회장, 리훤은 바로 이동해 자리에 착석했고, 최측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각국의 헌터 대표들에게 무선 이어폰을 내밀었다.
“통역이라는 능력을 각성한 헌터의 힘이 담긴 물건입니다.”
S급 장비 제작자와 통역 능력을 각성한 헌터의 힘이 담긴 물건.
“호오.”
무선 이어폰의 정체를 확인한 헌터 대표들이 탄성을 흘리고 귀에 착용했다.
“아아, 들리십니까.”
중국어다. 하지만 중국어를 모르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호오.”
헌터 장비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생활에 유용한 장비인 것은 분명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에.”
러시아 S급 헌터, 알렉스가 손을 살짝 들었다.
“통역 이어폰? 이거 사고 싶은데 대량 구입이 가능하오?”
“대량 구입은 불가능합니다. S급 장비 제작자와 통역 능력가의 합작이니까요.”
“아쉽구만. 그럼 이거라도 구입할 수 있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역시. 중국. 통이 크구만.”
씨익 미소를 그린 알렉스가 손을 내렸다.
“먼저 중국을 방문한 모든 헌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리훤 협회장이 허리를 90도까지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S등급 6명.
A등급 130명.
B등급 2,000명.
C등급 3,500명.
딱 한 번, 딱 한 번만 헌터의 피해가 매우 적은 상태에서 소멸에 성공하면 수많은 헌터들이 이번 작전에 참가할 게 분명했다.
“지켜보는 이들이 참가할 것이다?”
“예. 숫자가 가지고 오는 두려움 때문에 참가를 거부한 이들도 소멸에 성공하면 참가할 것입니다. 문제는 최소한의 피해로 게이트를 소멸할 경우라는 것.”
최소한의 피해로 계이트를 소멸할 경우, 22만이라는 숫자의 망설이던 헌터들도 두려움을 이겨 내고 참가할 것이 분명하기에 최초의 시도가 가장 중요했다.
회의 진행자가 한 번 더 ‘최초의 시도’라는 말을 뱉고 작전을 설명했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S급 헌터들이 포 핸드 오우거를 상대합니다. A등급 헌터들과 B등급 헌터들은 벽을 세워 포 핸드 오우거의 명령에 따라 몰려드는 적을 막아 내고 C등급 헌터들이 몰려드는 몬스터의 후방을 공격합니다.”
“……단순하군.”
잠깐의 침묵, 그 끝에 알렉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채로 말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무런 준비도 없이 22만이나 되는 몬스터들을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마법사 한율 님과 마법 주문서를 이용하여 낭떠러지를 만들 생각입니다.”
낭떠러지.
생각에 잠겨 있던 한율이 회의 진행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디그 마법을 사용해 낭떠러지를 만들겠다는 건가요?”
“예.”
“22만이나 되는 몬스터를 전부 막지는 못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A, B등급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 바로 앞에 깊고 거대한 낭떠러지를 만들어 포 핸드 오우거의 명령에 따라 돌진하는 몬스터를 떨어트린다.
몬스터 22만 마리를 전부 막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깊고 넓은 낭떠러지를 우회해 포 핸드 오우거에게 향할 것이고, 그때 A등급 헌터들과 B등급 헌터들은 그런 몬스터의 측면을 공격해 놈들의 이동을 봉쇄한다.
당연히 그렇게 A, B등급 헌터들이 몬스터를 막아설 때, S등급 헌터들이 포 핸드 오우거를 토벌하고 게이트의 핵을 파괴한다.
“그래도 생각보다 피해가 크겠네요.”
갑작스레 생성된 낭떠러지가 몬스터들에게 큰 피해를 줘도 1천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측면을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A등급 헌터는 130명, B등급 헌터는 2,000명에 불과하다.
“A등급, B등급 헌터들이 측면을 공격할 때, 후방에서 대기하던 C등급 이하 헌터들, 그리고 군인들이 움직여 후방을 공격합니다. 거리를 생각해 보면 C등급, 그리고 군인들이 상대하는 몬스터는 동쪽의 고블린. 정리해서 다시 한번 설명하겠습니다.”
S급 헌터들로 이루어진 1팀은 포 핸드 오우거 토벌 및 게이트의 핵 파괴.
A급, B급 헌터들로 이루어진 2팀은 마법을 이용해 지형을 변화시켜 몰려드는 몬스터를 방해, 그 후 몬스터들이 크게 우회하여 이동할 때 측면을 공격해 이동을 막는다.
C급 이하 및 몬스터 전용 무기를 갖춘 군인들이 후방을 공격한다. 거리상 3팀은 동쪽의 고블린을 상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니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2팀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미리 아군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게이트를 감시하고 있는 백룡회와 S급 헌터들을 이동시켜 사전 준비를 진행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헌터 길드, 백룡회와 S급 헌터들이 게이트에 입장해 포 핸드 오우거의 영역 바로 앞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포 핸드 오우거가 먼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인지 중앙 지역, 그리고 북쪽의 리자드맨을 불러 바리케이드를 파괴했다.
“그렇기에 디그 마법을 이용한 낭떠러지는 작전 실행과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A급, B급 헌터들이 위험하겠지만 꽤 괜찮은 방법이다.
지형을 이용한 전략 전술을 펼칠 수 없는 환경에서 5천이 22만을 막아 내는 것이니까.
토벌이 아닌 시간 벌기가 목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때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띄워 놓은 대초원 게이트 사진과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던 한율이 손을 들었다.
“2팀, 3팀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있습니다.”
“마법입니까?”
“……어, 아뇨.”
“그러면 정령술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생각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
한율은 투명 마법을 사용한 후에 게이트를 방문했다.
작전 실행까지 앞으로 6시간.
대초원 게이트를 잠시 둘러본 한율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게이트 입구와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거래창을 연 그가 기다란 지팡이를 꺼내 바닥을 찍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마법진을 그렸다.
1시간.
이 마법진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지만 마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1시간을 투자한 한율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동에서 1시간.
마법을 사용하면 1시간도 필요 없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그 순간, 감각이 뛰어난 몬스터가 경계를 할 게 분명해 한율은 이동을 하는 데 1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도착한 초원 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한율이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포 핸드 오우거를 한 번, 중앙 지역에 자리 잡은 수십 종의 몬스터를 한 번, 마지막으로 게이트의 북쪽을 장악한 리자드맨을 한 번 확인하고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은 마나를 주입하기 전까지는 낙서에 불과하니 문제는 없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을 투자.
남은 시간은 3시간.
한율이 여기서 또 1시간을 투자해 게이트 입구로 이동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어디 보자.”
몰래 마법진을 그리는 작업은 끝났다. 그러니 휴식을 취해도 되겠지만 최소한의 피해로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것이 이번 작전이었기 때문에 한율은 새로운 마법진을 그렸다.
한 사람을 위한 마법진이 아닌 후방에 배치될 2서클 마법사들을 위한 마법진.
한율은 1시간을 투자해 마법진을 설치한 후에 다시 게이트 입구로 돌아왔다.
저벅. 저벅.
눈을 감은 채로 게이트 입구에서 튀어나오는 헌터들.
눈을 뜬 헌터들이 앞으로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몬스터들의 시선이 모였지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몬스터들이 가만히 지켜보자 헌터들도 몬스터를 지켜봤다.
헌터 5,300명 전원 입장.
한율은 은밀하게 이동하는 S급, A급, B급 헌터를 확인했지만, 그들과 합류하는 대신 입구 주변에 서서 기다렸다.
척, 척, 척, 척.
군복을 착용한 중국인들이 게이트에 들어왔다.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군인들이었지만 장교들의 호통에 오와 열을 맞춰 대기했다.
“한율 헌터님, 전원 도착했습니다.”
통역 무선 이어폰을 아직 착용한 상태.
장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래창.”
멀리 떨어져 있는, 하지만 거리가 멀어진 탓인지 아주 거대해진 거래창을 확인한 한율이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을 사용해 좌측 상단에 올려놓은 물건을 터치했다.
파아앗!
갑작스레 나타나는…….
쿠우웅!
탱크 한 대.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나를 이용해 감각을 높인 덕분에 몬스터들을 볼 수 있었다.
갑작스레 거대한 물체가 나타나자 동물형 몬스터들은 꼬리를 바짝 세웠고, 인간형 몬스터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계속 소환하겠습니다!”
한율이 큰 목소리로 외친 후, 다시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을 사용해 거래창을 터치했다.
쿠웅! 쿠웅! 쿠웅!
계속해서 나타나는 탱크와 전투용 헬리콥터.
“전투 준비! 전원 탑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