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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47화 (147/221)

147 휴식(3)

‘인챈트…….’

장비에 마법을 부여하는 마법 기술, 인챈트.

마나 펜을 이용해 장비에 마법진을 그려 넣으면 착용자는 장비에 마나를 주입하고 시전어를 외쳐 장비에 저장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장비에 그린 마법진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마법은 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며 인챈트 기술을 정리한 한율이 이예찬에게 말했다.

“인챈트 기술은 있습니다.”

“역시 있군요.”

아티팩트, 주문서가 있는데 인챈트가 없을 리가 없다. 작은 미소를 그렸던 이예찬이 고개를 갸웃하며 한율을 바라봤다.

“문제가 있군요?”

“네. 문제점이 조금 많아요.”

“무엇입니까.”

“조금이라도 마법진이 훼손되면 마법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장비에 부여된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장비에 마나를 부여하고 시전어를 외쳐야 하고요.”

“번거로움, 그리고 잦은 마법진 훼손이 문제군요.”

“그렇죠.”

“그렇다면 방패나 갑옷 안쪽에 마법진을 그려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마나 펜을 이용해 마법진을 그리는 것입니다.”

“아.”

게이트 활동을 마친 헌터들은 장비를 세탁한다. 가죽이나 천이면 그냥 세탁기에 넣어 빨고, 금속이라면 손세탁을 통해 갑옷을 깨끗이 한다.

몬스터의 피, 그리고 몬스터의 악취가 배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도 있지만, 독성은 낮지만 몬스터들의 피에는 독이 있어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그 독이 착용자를 중독시키기 때문이다.

“장비의 파손뿐만이 아니라 세탁을 통해 지워질 수도 있군요. 아니, 지워지는군요.”

“네. 영구적인 효과가 있는 잉크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데…….”

블랙 케핀이라는 식물이 있다.

잉크의 재료로 사용되는 식물로서 특정 마법을 사용할 경우에만 지워지는 특수한 잉크의 재료였는데, 하필 그 재료가 자라나는 게이트가 지구에는 없었다.

‘없어서 생각하지 못한 걸까.’

헌터의 장비를 보고 아티팩트라는 마법 장비를 떠올렸고, 마법을 사용하는 데 시간이 걸려 주문서라는 마법 소모품을 떠올렸다.

게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마법 중에 속성력을 부여하는 인챈트 마법이 있음에도 마법 기술을 떠올리지 못한 것에 허탈함을 느꼈던 한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인챈트가 있었으면 한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주문서는 일회용. 거기다 위급한 상황에서 사용하기 무척이나 어려운 물건이고, 아티팩트는 매우 고가에 판매되어 중하위 등급 헌터들은 장비를 마련하기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흐음.”

인챈트 기술을 공개할 필요성이 생겼다.

문제는 잉크.

“알겠습니다. 있었으면 하는 것이 또 있나요?”

***

함께 게이트 활동을 하는 팀원들이 있는 이예찬이 떠난 카페 안.

아직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혼자 2인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율이 창문 앞, 바 테이블에 앉아 고민했다.

‘인챈트 기술을 공개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장비에 마법진을 그려 넣는 기술이다. 마나를 머금은 종이에 마법을 부여하는 기술, 주문서와 비슷해 숙련의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인챈트 기술에 꼭 필요한 블랙 케핀으로 만든 잉크의 부족.

고민에 잠겨 있던 한율이 통화를 차단하는 비행기 모드를 활성화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레스트 님.”

[레스트: 예, 한율 님.]

“블랙 케핀. 구할 수 있을까요?”

[레스트: 인챈트 기술을 공개하실 생각이시군요.]

“당장은 아니지만, 미리미리 확보해 두려고요.”

[레스트: 알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블랙 케핀을 구입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한율이 눈앞에 떠 있는 레스트의 메시지창을 빤히 바라보다가 처음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처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나요?”

[레스트: 폭탄, 그리고.]

메시지창이 새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한율은 조용히 기다렸다.

[레스트: 분명 흙강시가 늑대라고 하셨죠?]

***

거래창을 열어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확인한 레스트가 몸을 돌려 막사로 향했다.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고블린은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와는 달랐다.

진화를 통해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던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고블린은 주술사로 진화했다. 그것도 인간에 버금가는 뛰어난 지성을 손에 넣은 주술사로 진화해 흩어져 있는 동족들을 모아 하나의 왕국을 건설했다.

처음 고블린 주술사가 고블린 왕국을 건설했을 때, 국가와 용병 길드는 방관했다.

통솔 능력을 갖춘 고블린 로드가 탄생해도 그 고블린 로드가 이끄는 군대가 위험도 최하 등급에 머무르고 있는 고블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블린 왕국을 건설한 이는 고블린 로드가 아닌 차원의 조각을 흡수한 고블린 주술사였다.

전쟁을 선포한 고블린 주술사는 압도적인 힘으로 놈들을 제압,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었다.

처음에는 동물형 몬스터, 그다음에는 인간형 몬스터, 그다음에는 몇 없는 거인형 몬스터.

그리고 그렇게 모든 종족을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둔 주술사는 숲을 벗어나 도시로 공격했고, 국가와 헌터 협회는 백작급 영지 하나가 무너진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몬스터와의 전쟁 준비에 나섰다.

저벅저벅.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개인이 아닌 집단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병사, 그리고 용병들의 인사를 받아 주며 걸음을 옮기던 레스트가 막사에 도착하자마자 마나를 퍼트려 주변을 확인했다.

접근하는 사람은 없다.

숨어 있는 사람도 없다.

레스트는 만약을 대비하듯 입구에 어스월을 사용한 후에 거래창을 열어 마법서와 교환한 늑대를 꺼냈다.

“크군.”

흙강시.

지구와는 다른 차원에 언데드.

“언데드가 아닌 언데드라.”

언데드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언데드와는 다르게 어둠의 마나를 품고 있지 않았고, 움직임 또한 늑대형 몬스터와 차이가 없었다.

한율에게 배운 강시 조종법, 그리고 마나를 이용해 흙강시의 움직임을 확인한 레스트가 다시 거래창을 열어 흙강시를 회수하고 대화창을 열었다.

“한율 님.”

[한율: 네. 말씀하세요.]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율: 흙강시요?]

“네. 지구와는 다르게 이곳은 감정 시스템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꼭 중개인이라도 된 것 같네.”

언소월에게서 구입한 흙강시를 레스트에게 판매한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까.’

감정 시스템이 적용되어 사용할 수 없는 흙강시.

메모장을 열어 흙강시와 관련된 내용을 작성한 한율이 다시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한숨을 푹푹 내쉬는 사람들도 있고.

한율이 메모창을 끄고 다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언소월 님.”

대화창을 연 한율이 이번에는 언소월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언소월의 대답이 늦어지자 스마트폰을 내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연구와 인챈트.”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던 한율이 옆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에 조심히 고개를 돌렸다.

정체가 발각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한 번,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는 손을 한 번 바라보는 여대생.

“아, 죄송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를 한 한율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손을 내려 허벅지를 톡톡 두들겼다.

‘연구는 미루자. 아니…….’

미룬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맡기자.’

농업 마법사를 꿈꾸는 김덕배에게 맡기고, 마법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듣고 눈을 반짝였던 국가에 맡기자.

마나를 그리고 마법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마법을 통해 발전시키는 기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마법이 ‘주’가 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천천히 진행하고 있는 마법 농업(임시로 붙인 이름)은 마법이 ‘보조’였기 때문에 농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구를 맡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인챈트는 2서클 마법사들에게.”

대학 입학으로 알바를 그만둔 이유리를 대신해 2서클 마법사 세 명이 자신을 돕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2서클에 오르기 전부터 연습을 한 것인지 처음부터 그럴듯한 주문서를 제작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1서클 마법 한정이지만 주문서를 제작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마법진을 그리는 물건의 차이, 그리고 재료의 차이만 있을 뿐, 주문서와 인챈트는 제작 방법이 동일하다.

“으음. 수업으로 만들어 버릴까.”

1서클 마법사들도 주문서를 제작할 수 있다. 마법 기술의 일종이기 때문에 반복된 연습이 필요하지만 1서클 마법사들도 주문서를 제작할 수 있다.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냐.

“마나를 흡수하는 나무랑 마나 펜을 대량 구입할 수 있을까요?”

-음? 부족해? 부족할 리가 없을 텐데.

“아, 수업의 일종으로 주문서 제작을 넣어 보게요. 뭐, 선택형 수업? 뭐 그런 거처럼 진행하겠지만 마법진 연습도 되고, 돈도 버니까 아마 대부분 수업을 들을 거 같아서요.”

-호오.

청일 그룹의 부회장, 이상민이 탄성을 흘렸다.

-제대로 된 주문서는 판매도 하고?

“네. 일단 불량품이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추가되겠지만 주문서 제작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쁘지 않지. 아니, 오히려 좋지. 1서클, 2서클 마법사들에게 저서클 마법 주문서 제작을 맡기면 너는 고서클 마법 주문서 제작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생산량은 유지할 건데요.”

-……아쉽네.

“일단 시도해 보고 성공하면 그때 다시 전화드릴게요. 일단 종이하고 마나 펜만 부탁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수고해라.

“네. 몸조심하세요.”

통화를 끝낸 한율이 다시 메모장 어플을 터치했다. 하지만 새로운 메모장을 열어 통화 내용을 적는 대신 잠시 침묵하다가 혼잣말을 뱉었다.

“계산은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자서 생산하고 판매할 때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판매한 모든 돈이 들어오니까.

하지만 수십이 아닌 일백이 넘는 사람들이 주문서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괜히 대기업이겠는가.

괜히 백화점을 운영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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