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휴식(1)
단 하루.
발 빠르게 움직인 헌터 협회, 그리고 정치권에 의해 단 하루 만에 아크럼 토벌 소식이 전국에 퍼졌다.
일반인 피해자들이 환호했고, 헌터들이 환호했다.
지방권 헌터들.
지방권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은 직접 헌터 협회에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하기까지 했다.
당연하다.
각성 범죄자들이 성장을 위해 선택, 즉 몰래 침입해 활동하는 게이트는 전부 사람이 적고 헌터 협회 지부와도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때 각성 범죄자들이 침략할지 알 수가 없다.
각성 범죄자와 조우하면 상대의 선택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
지방권 헌터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렇게 양지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에게 여유가 찾아왔을 때, 아크럼이 가져온 혼란에 끼어들었던 각성 범죄자들이 다시 음지로 숨어들었다.
앙!(그럼 쉬는 건가요!)
“어. 이제 조금 쉬어야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한율이 바로 대답했다.
게이트 활동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뭐, 게이트 활동 시간이 줄어든 만큼 마법사를 육성하는 데 할애하는 시간이 늘어나겠지만 한율은 휴식을 결정했다.
게이트 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있지만,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못 가겠지만.”
마법사 육성이라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사이기도 하니 분명 일이 찾아올 것이다.
국가가 될지.
협회가 될지.
아니면 다른 차원이 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아오. 죽겄네. 죽겄어.”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편히 기대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던 한율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10분을 보내고 20분을 보내고 30분을 보냈을 때였다.
띵동.
익숙한 엘리베이터 알람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쾅!
이어 문을 박살 내듯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열었다.
“30분 정도 쉬었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쉬이익!
거칠게 문을 연 두 소녀, 공중에 둥둥 떠 있던 흑발과 백발의 소녀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컴퓨터 앞에 착지했다.
작고 귀여운 백발의 소녀는 마우스 앞에 섰고, 흑발의 소녀는 키보드 위에 서서 컴퓨터가 켜지는 것을 기다렸다.
‘뭐 하는 거지.’
궁금해졌다.
-켜졌다!
-인터넷!
백발의 소녀가 마우스를 움직이고 주먹을 쥔 손으로 왼쪽 버튼을 가볍게 내려치자 키보드 위에 서 있던 흑발의 소녀가 힘껏 도약해 ‘엔터’ 키 위로 이동했다.
“허어.”
놀란 것도 잠시, 한율이 키보드 위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흑발의 소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크럼 토벌 작전을 마치고 바로 마탑으로 복귀한 한율은 바로 두 정령을 소환해 자유를 주었다.
타다다다다!
타다다다다!
열심히 달려오는 새하얀 강아지와 검은 고양이.
자기 계약자가 여기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달려간 두 정령이 힘껏 도약해 키보드 옆에 착지했다.
앙!(족발!)
냐앙!(난 비냉이당!)
족발을 사랑하는 하양이.
비냉을 사랑하는 커피.
한율이 잠시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간에…….
-어! 안 해!
-어떡하지! 전부 안 열었어!
앙!(왜 안 해요!)
냐앙!(비냉도 안 되냥!)
“……되겠냐.”
지금 시간이 7시다.
아침 7시.
아침 7시에 문을 연 냉면 집이…….
‘있나? 있을 거 같은데.’
있을 거 같다. 잘 찾아보면 있을 거 같기는 하다. 하지만 족발은 아침 7시에 문을 연 곳이 없을 것 같다.
“아니, 있겠다.”
잘 찾아보면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마탑 주변에는 없을 거 같았다.
-어떡하지!
-식당 가자!
앙!(해 줄까요!)
냥!(해 주냥?)
네 정령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침묵하는 것도 잠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두 정령이 날아올랐고, 두 정령이 도약해 책상 위에서 뛰어내려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
조용하다.
“허어.”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이 연구실이 조용하다.
탄성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다시 눈을 감았다.
엘리베이터와 연구실 사이에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떠난 정령들이다.
띵동.
또 한 번 들려오는 익숙한 알람 소리.
눈을 뜬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다친 거 같지는 않네.”
연구실을 방문한 소녀, 한유라가 한율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냐?”
“학교.”
“벌써? 밥은?”
“밥 먹고 학교 갈 거야. 밥 안 먹어?”
“시켜 먹을라고.”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한율의 모습에 한유라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렸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고, 한율은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띵동.
“대체 얼마나 지났다고.”
천천히 눈을 뜬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오는 한국영이 보였고,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남매가 보였다.
“다친 데는?”
“없어요.”
“오빠 안녕.”
“오야. 잘 잤냐.”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받아 준 한율은 식사는 했냐는 한국영의 물음에 나중에 먹는다고 대답했고 세 사람이 몸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짝 열려 있는 문 앞에 도착한 한율이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으로 연구실 안쪽에 내팽개쳐 둔 알람판을 가져와 문에 걸었다.
[close]
‘open’이 아닌 ‘close’가 앞으로 보이게 문에 걸어 둔 알람판.
한율이 문을 닫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편히 기대앉은 것도 잠시, 그는 옆으로 몸을 기울여 소파에 누웠다.
“이제 좀…….”
우우웅.
눈을 감기 직전에 진동하는 스마트폰.
테이블 위.
멍하니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한율이 손을 뻗었다.
전화?
아니다.
문자 폭탄?
아니다.
미리 맞춰 둔 알람.
[30분 후에 강의.]
“아오. 씨바.”
한율은 욕설과 함께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
“그럼 오늘 강……. 하아아암.”
손을 들어 입을 가리지도 못했다. 한율은 글썽거리는 눈으로 전방을 바라봤고, 큭큭 웃는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말을 이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 궁금한 거 있으면 저녁에 올라오세요.”
“예!”
짧은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노트를 정리하는 마법사들.
한율은 그런 마법사들을 확인하고 몸을 돌렸고, 강의실을 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을 조작하면서 4층 연구실로 향했다.
졸리다.
하지만 배도 고프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던 한율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뭐 먹지.”
배가 고프다. 하지만 졸리기도 하다.
“좋아.”
결정을 내린 한율이 다시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스마트폰을 터치하려는 순간이었다.
-율이다!
-어! 율이가 스마트폰 만진다!
앙!(계약자다!)
냐앙!(계약자당!)
빠른 속도로 날아온 두 소녀가 양어깨에 착지해 스마트폰을 바라봤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두 정령이 급정거하는 차량처럼 한율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어! 배달 어플이다!
-치킨 시켜 줘! 치킨!
앙!(족발요!)
냐아아앙!(비냉! 오이 올린 비냉에 달걀 두 개당! 잊지 마랑!)
“…….”
연구실에서 해야 했다.
강의실을 나오기 전에 눈을 비며 눈물을 닦아 냈음에도 다시 시야가 흐릿해진 한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치킨, 족발 대자, 오이 올린 비냉에 달걀 두 개 맞지?”
-응!
“오래 걸릴 텐데.”
-하루에 한 번 시키니까 존나 빨리 오던데!
-맞아! 처음 시켰을 때는 더럽게 느렸는데 지금은 존나 빨라졌어!
“…….”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화이트와 초코를 번갈아 바라본 그가 물었다.
“존나?”
-응?
-왜?
“누가 그 단어를 알려 줬냐?”
-그냥 사람들이 막 쓰던데!
-많이 쓰던데!
“나쁜 말이야. 그거.”
-존나가?
-쓰면 안 돼? 존나 쓰면 안 돼?
“……어. 안 돼. 존나 쓰면 이제 치킨 없어.”
한율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엄청난 말을 들은 것처럼 입만 벙긋거리던 화이트와 초코가 동시에 소리쳤다.
-우와! 존나 나쁜 말인가 보다!
“하아아.”
***
순살 간장 치킨 한 마리.
순살 마늘 치킨 한 마리.
족발 대자.
달걀 두 개 추가한 오이 올린 비냉 하나.
그리고…….
“내가 제일 싸구려 먹는 것 같네.”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
-놀다 올게!
-율이도 같이 놀자!
하양이와 커피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연구실에서 놀고 있던 두 정령, 튀김 부스러기까지 먹어 치운 화이트가 하양이의 등에 올라탄 채 소리쳤고, 초코가 커피의 등에 올라탄 채 소리쳤다.
“됐어. 그리고 저녁 먹을 때까지 올라오지 마.”
-자게?
-바로 먹고 자면 소 된대!
앙!(계약자는 인간인데!)
냐앙!(계약자 바뀌냥!)
개판이다. 아니, 정령판이다.
한율은 아무 말 없이 손을 흔들었고, 네 정령이 다시 꺄르르 웃으며 엘리베이터로 달려가자 천천히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교육.
마쳤다.
정령.
쫓아……. 아니, 간곡하게 부탁해 내보냈다.
개인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은 저녁에 올 것이다.
게이트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자신을 괴롭히던 S급 제작 능력자들도 없다.
“좋아. 이제 진짜 쉬…….”
우우웅.
“…….”
우우웅.
마치 점심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진동하는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았다면 화면을 보지 않았을 테니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스마트폰은 화면이 위로 향하고 있었다.
[동생]
화면에 떠있는 동생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한율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바로 스피커 모드로 전환하고 다시 양손을 움직여 치킨 박스를 정리하던 한율이 입을 열었다.
“왜.”
-밥 먹었어?
“어.”
-시간 있어?
“어.”
-내 방. 책상 위에 USB 하나 있거든. 그것 좀 가져다줘.
“…….”
시간 없다고 해야 했다.
치킨 박스 정리를 마친 한율이 플라스틱에 붙은 비닐을 떼어 내며 물었다.
“지금 당장?”
-어. 발표 자료 들어 있어.
“……왜 따로 저장을 안 해 뒀냐.”
-했지. 하지만 오늘 아침에 한 번 수정을 했는데 그걸 노트북에 백업 안 해 놨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