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질긴 놈들(2)
아크럼을 무너트린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크럼을 무너트리면 각성 범죄자들은 다시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살아갈 것이고, 헌터 협회는 각성 범죄자를 추적하는 인원을 줄이고 게이트 활동을 하는 헌터를 늘릴 수 있다.
장비 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각성 범죄자들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은 채 활동할 수 있다. 일반인들도 게이트, 그리고 몬스터만 걱정하며 살 수 있다.
타다다다!
소총을 회수하고 권총을 손에 쥔 한율이 달렸고, 천천히 뒤로 물러선 김세혁이 능력을 사용해 모습을 감췄다.
김세혁을 찾고자 하면 한율이 방아쇠를 당기고 마법을 사용한다.
한율에게 집중하면 모습을 감춘 김세혁이 공격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민을 하던 검은 가면이 땅을 박찼다.
한율을 향해?
김세혁이 모습을 감춘 장소로?
아니다.
검은 가면은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로 이동했다.
좌우(左右)에 단단한 컨테이너가 있다. 검은 가면은 기다란 도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단검 두 자루를 꺼내 양손에 한 자루씩 잡았다.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 아주 좁은 통로라면 김세혁의 기습 공격은 오로지 머리 위에서만 일어날 것이다.
후방?
자신이 공격을 피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날아간 화살은 한율을 공격하게 된다. 그래서 전장을 바꾼 검은 가면이었지만 한율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디그.”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으로 컨테이너를 밀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염력 마법은 조종하는 물건의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소모하는 마나량이 커져 한율은 컨테이너 바로 아래에 디그 마법을 사용했다.
쿠웅! 쿠웅!
아래로 훅하고 내려가 큰 굉음을 만들어 낸 컨테이너.
“쯧. 진짜 사기야. 사기.”
다시 땅을 박차 한율에게 멀어지던 검은 가면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유리한 전장을 찾아내듯 거리를 벌리는 검은 가면을 추적하던 한율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방아쇠를 당기자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총알.
쉬이익!
검은 가면이 오러를 두른 단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퍼엉!
칼날 형태의 오러와 마나를 주입한 총알이 부딪치며 폭발이 일어났다.
충돌 지점에서 일어난 푸른 연기.
검은 가면과 한율이 동시에 방향을 틀었다.
타악!
“후우.”
“쯧.”
좌측으로 방향을 튼 검은 가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우측으로 방향을 튼 한율이 아쉽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찼다.
거리가 벌어졌다.
총알이 빠를까, 마법이 빠를까.
당연히…….
타앙!
총알이다.
영창이 필요한 마법과는 다르게 권총은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되니까.
방향을 틀었던 한율이 다시 방아쇠를 당기고, 빠르게 속도를 줄여 다시 자신을 추적하며 기회를 노리자 검은 가면도 단검을 휘둘러 총알을 튕겨 내고 몸을 비틀어 총알을 피해 냈다.
쉬이익!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기척.
검은 가면은 땅을 박차 2층으로 이동해 활시위를 놓은 김세혁의 화살을 피했다.
“그래. 역시 영화랑 현실은 다르지.”
영화였다면 저 화살은 특수한 기계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 폭발했을…….
우웅.
땅속에 절반이나 박힌 화살.
그 화살에서 느껴지는 마나.
“에?”
콰앙!
당황한 나머지 반응이 조금 늦었다.
폭발에 휘말려 뒤로 날아간 검은 가면이 몇 차례나 바닥을 구른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응이 조금 늦은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전투에서 그 조금의 방심은 큰 부상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
축 늘어진 왼쪽 어깨.
탈골인가, 골절인가.
검은 가면은 마나를 돌렸고, 탈골이 아닌 골절이라는 것을 깨닫자 단검을 회수하고 다시 기다란 칼날을 가진 도를 꺼내 쥐었다.
2층에는 김세혁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고, 1층에는 한율이 권총을 겨눈 채 작은 목소리로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 있다.
“정말 쉴 틈을 안 주네.”
한숨을 푹 내쉰 검은 가면이 칼에 마나를 둘렀다.
우우웅.
푸른 오러로 둘러싸인 칼날.
“어스 핑거.”
검은 가면이 칼을 역수로 쥐고 바닥을 찔렀다.
푸우욱!
2서클 마법, 어스 핑거.
5서클 마법사의 힘이 담긴 2서클 마법이 검은 가면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이미 마나의 유동을 통해 무언가를 감지하고 오러를 두른 칼날로 바닥을 찌른 검은 가면.
마법이 발동되기 직전, 검은 가면의 마나가 한율의 마법을 훼손시켰다.
두 사람 사이에 찾아온 짧은 침묵.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였다. 칼을 놓아 버린 검은 가면이 뒤로 물러났고, 땅을 박찬 한율이 상대에게 달려들며 방아쇠를 당겼다.
처음과는 다르게 공방이 번갈아 이뤄지지 않는다.
한율과 김세혁은 공격을 하고, 검은 가면을 방어와 회피에 집중한다.
‘……뭐지?’
처음에는 열이 끓어올라 놓쳤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방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공격만 집중하고 있으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던 한율이 추격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런 씹…….”
줄었다.
헌터들과 싸우던 하얀 가면이 줄어 있었다.
사망자가 발생해 줄어 있는 것도 있지만, 처음 검은 가면을 기다리며 전장을 살펴볼 때를 떠올리면 후퇴에 성공해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장!”
문짝이 날아가 복도가 훤히 보이는 문 앞, 아니 통로 앞.
회색 가면의 외침을 들은 검은 가면은 주먹에 오러를 둘러 날아오는 김세혁의 화살을 튕겨 냈고, 황급히 정신을 차린 한율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후아.”
총알을 피한 검은 가면이 회색 가면의 옆에 나타나 뒷목을 잡은 채 목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더럽게 힘들었네. 애들은.”
“전부 도주했습니다.”
“다른 곳은?”
“마찬가지입니다. 피해가 조금 크기는 하지만.”
“쯧.”
혀를 찬 검은 가면이 한율을 바라봤다.
정말 쉴 틈도 주지 않을 생각인지 제자리에 서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김세혁이 한율을 노리는 회색 가면들을 상대하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아이언 랜스!”
쿠르르릉!
컨테이너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작은 구체가 되는 것도 잠시, 가로로 길어지고 세로로 길어져 거대한 창으로 바뀌었다.
“진짜, 아오, 씨바.”
황급히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도를 꺼낸 검은 가면이 칼날에 오러를 씌우고 크게 휘둘렀다.
한 손으로 휘두르기에 힘과 속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대량의 마나를 주입해 생성한 오러로 메웠다.
강철과 강철이 만났는데 들려오는 것은 쇠가 갈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식칼이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허어. 와. 진짜.”
칼로 두꺼운 강철을 베었다.
어이없어 헛웃음을 터트리고만 한율이 다시 집중해 손을 움직였다.
반으로 잘려 양옆 벽을 꿰뚫은 창이 그대로 공중에서 멈춰 섰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에 퍼트려 놓은 마나를 통해 감지한 검은 가면이 회색 가면의 팔을 잡고 그대로 도약했다.
쉬이익! 쾅!
방향이 살짝 꺾인 상태로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처럼 검은 가면을 노리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두 자루의 창이 충돌했다.
찌그러진 두 자루의 강철창.
아래를 확인한 검은 가면은 한율을 다시 바라봤다. 그의 손이, 그리고 그의 입이 다시 열리고 있었다.
“진짜 사기적인 능력이란 말이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검은 가면이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찌그러진 창을 향해 던졌다.
쉬이익!
콰아아앙!
이번에는 폭발음.
한율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채 손짓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었고, 검은 가면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천장을 뚫고 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야.”
“네.”
“그럼 우리 어디로 가냐?”
“일단 북한이요.”
“……거기도 아지트가 있었냐?”
“네. 만약을 대비해서 만들어 뒀다고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둘 중 하나입니다.”
검은 가면이 고개를 돌려 회색 가면을 바라봤다.
회색 가면은 뻥 뚫린 천장 구멍을 통해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첫 번째는?”
“중국 쪽으로 넘어가는 거죠.”
“두 번째는?”
“복수.”
“흐음.”
마음에 드는 것은 복수다. 하지만…….
“뭐 고를 거 같냐?”
“둘 다요.”
“둘 다?”
“네. 중국 쪽에 터를 잡는 것과 동시에 복수를 할 겁니다.”
“…….”
“아마도.”
“아마도?”
“제가 뭘 알겠습니까.”
어깨를 으쓱한 회색 가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검은 가면을 바라봤다.
“대장께서 선택하는 건데.”
“……하긴. 일단 북한이지?”
“네.”
파앗!
***
“다른 쪽은 어떻대요?”
“비슷하다고 합니다.”
“…….”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친 헌터들에게 치료 마법을 걸어 주던 한율이 고개를 돌렸다. 전화가 아닌 메신저를 통해 상황을 보고하고, 다른 팀의 상황을 알아보고 있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 김세혁이었다.
“검은 가면이 알아차린 곳도 있고, 아지트 밖에 설치된 함정 때문에 발각된 곳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아차려도 이미 주변을 포위하고 습격을 해 큰 피해를 주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완벽한 기습이 아니어서 우리 쪽도 큰 피해를 보았다?”
“예. 일단 헌터 협회에서 치유 능력자와 미리 의사들을 대기시켜 놓아 바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회복 마법으로 상처를 치유한 헌터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한율, 그가 다음 환자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아크럼은 어디로 도망쳤대요?”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미리 배를 구입, 또는 준비를 해 둔 것인지 항구 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만 해로를 감시하니 북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북쪽.
대한민국의 북쪽은 몬스터의 땅이라 불리는 북한의 영토다.
“북한 영토에 아지트가 있다?”
“아니면 북한 영토를 통과해 다른 나라로 이동하려는 걸 수도 있다는 게 헌터 협회의 답변입니다.”
“흐음.”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치료 활동을 잠시 멈췄다. 휴식을 취하겠다고 큰 목소리로 외친 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은 가면이 숨어 있던 아지트가 몇 개였죠?”
“열여덟 개입니다.”
“……그럼 사살한 검은 가면은요?”
“…….”
잠시 침묵한 김세혁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한율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사살 또는 제압한 회색 가면, 그리고 백색 가면은 많지만 검은 가면은 전무하다고 합니다.
“하. 질긴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