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질긴 놈들(1)
도를 사용하는 검은 가면은 무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타고난 신체 능력과 천재적인 전투 능력에 반비례하는 귀차니즘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씩 임무를 맡아 성실하게 수행했다. 정확하게는 성실하게 일하는 회색 가면을 대동한 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임무를 수행하고 남은 29일을 휴식을 취하는 데 사용했다.
수련?
하지 않았다.
천재였으니까.
실전을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천재였으니까.
S급 경지에 대한 갈망?
없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그는 후회라는 것을 했다.
“아씹, 훈련 좀 할걸.”
휴게실.
소파에 옆으로 누워 TV를 보던 검은 가면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
초대형 스톤 골렘이 너무 일찍 토벌당해 일이 꼬였고, 그래서 골렘이 토벌되고 몇 개월이나 지났음에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고민에 잠겨 있던 회색 가면이 고개를 돌려 검은 가면을 바라봤다.
“애들 떴다.”
“예?”
“협회 왔다고.”
“……어떻게 알고?”
“내가 아냐?”
지금까지 아크럼의 아지트를 찾은 사람은 없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있어서?
기업의 뒤에 숨어 있어서?
아니다. A급 ‘환각’ 능력자가 아지트로 사용하는 건물에 능력을 걸어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것이었다.
A급 헌터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환상이 아닌 환각 능력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지트 건물을 평범한 건물로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지트가 발각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아크럼의 아지트가 이곳에 있다.
환각 능력이 뇌를 속이기 전, 뇌가 먼저 아지트를 인지하고 있을 경우다.
“탐지 마법 비스무리한 거 썼겠지.”
가장 유력한 것은 마법사.
북한 영토에서 다시 만난 마법사가 유력하다.
검은 가면이 성큼성큼 걸어 소화전을 내리쳤다.
쾅!
따르르르릉!
삐이! 삐이! 삐이!
화재 경보다. 하지만 일반적인 건물에서나 화재 경보일 뿐이다. 아크럼에서 화재 경보는 적의 습격을 알리는 경고음.
타다다다!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각성 범죄자들이 뛰쳐나왔다.
회색 가면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아공간에서 기다란 도를 꺼낸 검은 가면의 뒤에 붙어 물었다.
“반격입니까, 아니면 후퇴입니까.”
검은 가면은 ‘전투의 천재’다.
“일단 다른 곳에 연락해 봐.”
회색 가면은 아무 말 없이 위성 전화를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신호음.
회색 가면이 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서 걸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검은 가면이 도를 찌르며 말했다.
푸우욱!
“쿨럭!”
문 뒤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신음 소리.
“후퇴한다.”
검은 가면은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오른발로 문을 찼다.
쾅!
문짝이 날아갔고, 그 뒤에 있던 복부가 찔린 헌터가 날아갔다.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헌터와 수하들의 시선.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한 채 명령을 내리려던 검은 가면이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도를 휘둘렀다.
카앙!
튕겨 나간 총알.
“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에 검은 가면이 씨익 미소를 그렸다.
***
기다렸다.
놈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매직 아이를 사방에 퍼트려 적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에서 기다렸고, 놈이 문을 박살 내면서 나타나기가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놈은 도면을 이용해 아주 가볍게 총알을 튕겨 냈다.
“와…….”
평범하게 튕겨 낸 것도 아니다. 마나 컨트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정확하게 날아온 방향으로 튕겨 내 은색 어깨 장갑을 착용한 왼팔을 들어 막아야 했다.
“진짜 실력 하나는…….”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S급 헌터 이강현도 능력을 봉인한 채 똑같은 마나량만 사용해서 싸우게 된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클 정도로 뛰어났다.
“후퇴 준비!”
검은 가면의 외침에 한율이 이를 바득 갈고 소총, K-99을 들었다.
타앙!
치열한 대치 끝에 후퇴할 거라고 생각했다.
카앙!
검은 가면이 다시 도면을 이용해 총알을 튕겨 냈다. 처음과 다른 점이라면 도를 비스듬하게 들고 마나 컨트롤에 집중해 날아오는 총알을 각성 범죄자와 싸우고 있던 어느 헌터에게 날렸다는 점이다.
퍼억!
날아가면서, 그리고 튕겨 나가면서 마나가 어느 정도 소멸된 것인지 총알은 갑옷과 부딪쳐 아래로 떨어졌다.
피해는 크지 않지만 헌터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위기에 빠진 각성 범죄자가 뒤로 물러서 적의 공격에서 멀어졌다.
“그냥 튀어!”
타악!
후퇴를 명령한 것과는 다르게 검은 가면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한율 또한 거래창을 열어 소총을 회수하고 피스톨을 꺼내 겨눴다.
평범한 공격은 가볍게 튕겨 내는 놈이다.
“어스 월.”
한율은 달려오는 검은 가면 앞에 흙벽을 세웠고, 한순간이지만 놈의 시야가 봉인되자 바로 메모라이즈 마법을 사용했다.
“메모라이즈. 블링크.”
파앗! 콰앙!
한율이 빛과 함께 사라졌고, 뭉뚝한 오러를 둘러 벽을 부순 검은 가면은 마나를 개방해 사방으로 퍼트렸다.
위치는…….
파앗!
쉬이익!
빛의 폭발과 함께 나타난 한율이 방아쇠를 당겼고, 제자리에서 반 회전한 검은 가면이 아주 빠른 속도로 도를 연속해서 휘둘렀다.
카가가가강!
평범한 기습 공격도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율은 공격했다.
“……!”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미소를 지운 검은 가면이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상체를 비틀었다.
쉬이익!
푸욱!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마나를 주입했는지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땅에 깊숙이 박힌 화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검은 가면이 정면에 있는 한율을 한 번, 상체를 틀어 후방에 있는 김세혁을 한 번 바라보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왜 어벤져 놀이 안 하고?”
“뭐?”
“……음?”
“어벤져 놀이.”
“이런 씹…….”
“불쾌하군요.”
한율이 다시 피스톨을 겨눴고, 이대한과 문수원, 그리고 한율과 같은 무리로 묶인 게 매우 기분 나빴는지 김세혁도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로 활시위를 당겼다.
***
문수원은 마법사의 탑에 소속된 헌터였지만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밥은?”
“아, 먹었어요.”
방긋 웃으며 대답한 문수원이 신발을 벗으면서 물었다.
“아버지는요?”
“회식. 무슨 회사가 회식 그리 많이 하는지.”
부엌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그린 문수원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여, 왔냐.”
“……?”
자연스럽게 거실을 지나가던 문수원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소파 위를 바라봤다.
30대 초반, 스포츠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내가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영화, 블랙 나이트를 보고 있었다.
“……언제 왔어?”
“1시간 전에.”
‘문수원의 보디슈트’의 제작자.
B급 제작 능력자, 문장현이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건네고 다시 팝콘 통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뛰어난 제작 능력자인 문장현은 현재 독립해 개인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문제는 대체 뭐에 홀렸는지 제작하는 장비가 S맨, 블랙 나이트, 라이트닝 등이 나오는 코믹스 영화에서 나오는 장비라는 것이었다.
“……아, 형.”
“어?”
“김지현이라는 장비 제작자 알아?”
“……!”
문장현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어떻게 알아?”
“알아?”
“아니까 물어보지.”
“아. 길드원 중 한 명이 그분이 제작한 장비를 사용해서.”
“쯧.”
혀를 찬 문장현이 리모컨을 이용해 영화를 일시 정지시키고 말했다.
“라이벌이야.”
“……라이벌?”
“어. 그 사람이 제작하는 장비 보면 알 거 아냐.”
“…….”
그렇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단번에 라이벌이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혹시 그 인간이 마탑에 손을 뻗었냐?”
“……손을 뻗은 건 아니고.”
“아니고?”
“선물로 장비를 몇 개 받았는데.”
“……!”
문장현이 팝콘 통을 내려놓고 강렬한 시선으로 문수원을 바라봤다.
“한율 씨는 뭘 받았는데.”
“은색 어깨 장갑.”
“이런!”
당했다는 듯이 소리친 문장현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고 나서 문수원에게 물었다.
“혹시 너도 받았냐?”
“어?”
“……받았지?”
“받긴 받았지. 무기가 필요해서.”
“망치냐?”
이야.
진짜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라이벌이다.
“제작 의뢰가 밀려들어서 미뤄 뒀었는데.”
고집스럽게 코믹스 영화 장비만 제작하던 문장현은 게이트의 변화가 일어나 일반적인 장비 제작 의뢰도 받고 있었다.
손톱을 까득까득 물어뜯을 정도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문수원이 바라볼 때였다. 문장현이 고개를 홱 돌렸다.
“야.”
“어.”
“혹시 거기에 물 속성 능력자 없냐?”
“얼음 속성 능력자는 있는데.”
“……하늘을 날아다니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초능력자는?”
“…….”
“있냐!”
“있겠냐!”
문수원이 버럭 소리쳤다.
“마법사가 그나마 S맨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
“역시 아니야. 야.”
“또 뭐.”
“기계 인간은 있냐?”
“…….”
한숨밖에 안 나온다. 그래서 진짜로 한숨을 내쉰 문수원이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다시 향하는 순간이었다.
“동생아!”
“아, 또 왜.”
“길드원 받냐?”
“…….”
길드원?
문수원이 상체만 틀어 문장현을 바라봤다.
“길드원? 왜? 추천해 줄 사람 있어?”
“어.”
“누구.”
문장현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가리킨 곳은 자신의 명치.
“나.”
“……장비 제작자로?”
“장비 제작자 겸.”
“……?”
“블랙 나이트.”
“…….”
거절하고 싶다. 하지만 문장현은 B급 헌터다.
장비 제작 능력을 각성했기에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그는 장비 제작이라는 능력으로 전투 능력 각성자에 버금가는 무력을 갖출 수 있다.
거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장비 제작자다.
그것도 거액을 들여서라도 길드에 가입시킨다는 장비 제작자였다.